소설리스트

치팅데이-74화 (74/120)

치팅데이 74화

17. 메뉴 개발(5)

“하지만 거절만 당하진 않았습니다.”

백우진과 시청자들이 눈물을 그쳤다.

“무려 3달 동안 일주일에 5번씩 제안했음에도 불평은 들었을지언정 거절당하진 않은 메뉴가 있죠.”

└?

└그런 게 있음?

└일주일에 5번이면 뭐든 질리지 않나?

└아닠ㅋㅋ 3달 동안 만났으면 사실상 사귄 거 아님?

└뭔가 슬픈 예감이 드는데

“바로 제육볶음입니다.”

채팅창이 잠시 멈췄다.

“증거 자료를 제출하겠습니다.”

미리 준비해 둔 카카오톡 대화방 캡처 파일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느라 고생했지만 내 주장을 확실히 못 박을 결정적인 증거다.

“이것은 제가 회사 다닐 때 같은 팀 직원과 나눈 대화입니다. 물론 여성이었습니다.”

--------2017년 09월 11일 (월)--------

오후 12:01{점심 드시죠}

{넵}오후 12:01

---------2017년 09월 12일 (화)--------

오후 12:01{점심 드시죠}

{넵}오후 12:01

---------2017년 09월 13일 (수)--------

오후 12:01{식사하러 가시죠}

{넵}오후 12:02

{홍보 영상 편집 마쳤습니다.}오후 05:08

오후 05:09{수고했어요}

---------2017년 09월 14일 (목)--------

오후 12:00{제육 괜찮죠?}

---------2017년 09월 15일 (금)--------

오후 12:01{점심 드시죠}

{대리님 혹시}

{오늘 제가 점심 사도 될까요?}

{회사 근처에 맛집 있던데}오후 12:05

{아 늦게 봤네요}

{사도 제가 사야죠}

오후 12:17{나중에 다 같이 가요}

---------2017년 09월 18일 (월)--------

오전 11:59{식사하러 가시죠}

{네}오후 12:02

---------2017년 09월 19일 (화)--------

{대리님}오전 11:39

{점심 다른 거 먹으면 안 돼요?}오전 11:39

오전 11:59{오늘 오삼불고기인데요?}

---------2017년 09월 20일 (수)--------

오후 12:00{점심 드시죠}

{네}오후 12:01

---------2017년 09월 21일 (목)--------

오전 11:59{점심 드시죠}

{네}오후 12:01

{대리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 아무래도 회사 더 다니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적성에 안 맞는 것 같고. 하고 싶은 일도 있고. 몸도 안 좋고. 잘 가르쳐 주셨는데 죄송합니다.}오후 05:35

{우리 회사가 많이 힘들죠?}

오후 05:41 {미리 힘든 거 배려했어야 했는데}

오후 05:42{팀장님하고는 얘기했어요?}

{이따 말씀드리려고요}오후 05:43

{정말 죄송합니다}오후 05:44

오후 05:42{아니에요. 괜찮아요.}

{힘든 거 아니까요. 자책하지 말고}

오후 05:44{고민 많이 하셨을 텐데 힘내세요}

“이분은 다른 꿈이 있으시다며 아쉽게도 퇴사하셨지만 적어도 3개월 동안 제육볶음을 거부하진 않으셨습니다.”

채팅창 반응이 이상하다.

└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봐도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은 거잖앜ㅋㅋㅋㅋㅋㅋ

└눈치 드럽게 없넼ㅋㅋㅋㅋㅋㅋㅋ

└반찬용 드디어 나무위키에 논란 탭 생기겠넼ㅋㅋㅋㅋ

└점심 제육강욬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중간에 자기가 산다고 했음ㅋㅋㅋㅋㅋㅋ

└바꾸면 안 되냐고 묻는데 오늘 오삼불고기인데요 이지랄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직장 내 괴롭힘 아니야?”

백우진이 큰일 날 소리를 꺼냈다.

“뭔 소리야. 내가 이분한테 얼마나 잘해드렸는데. 첫 부사수라서 도망, 아니, 퇴사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면서 대했어. 봐. 9월 21일 목요일에 잘 가르쳐 줬는데 미안하다고 하셨잖아.”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톡하고 아래 톡하고 시차가 없잖아. 이렇게 긴 내용이면 메모장에 썼다가 바로 복붙한 거야.”

“그게 뭐?”

“설득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것저것 구구절절 다 적어놓고 한 번에 보낸 거라고.”

“왜?”

“왜긴 왜야. 점심 때문이지!”

“아, 오해할 수 있는데 저때가 일이 많아서 힘들었어. 그거 때문이야. 그리고 저분 꿈도 있었고.”

“꿈? 무슨 꿈.”

“이탈리아에서 피자가게 한대.”

“영상 제작 회사 다니다가 피자가게? 그것도 이탈리아?”

“멋지지? 꿈이 야무지더라.”

“형, 정신차려. 누가 봐도 제육볶음 때문이야.”

“그럴 리가. 나중에 이탈리아 가면 놀라 오랬어.”

└순진한 거야 멍청한 거얔ㅋㅋㅋ

└다시 빡대가리 이슠ㅋㅋㅋㅋㅋ

└이탈리아 어딬ㅋㅋㅋ 어딘뎈ㅋㅋ

└진짜 어지간히 도망치고 싶었나 보닼ㅋㅋㅋㅋㅋ 댈 핑계가 없어서 이태리 피자가겤ㅋㅋㅋㅋ

“그리고 이거 뭐야. 다른 거 먹으면 안 되냐고 묻는데 오삼불고기인데요? 형 사이코패스야?”

└ㄹㅇㅋㅋㅋㅋㅋㅋ

└진짜 뭐가 문젠지 모르는 거 보니 공감능력이 의심된닼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ㅋ진짜 무슨 스릴러 영화냐곸ㅋㅋㅋㅋㅋ

└상상만 해도 소름돋넼ㅋㅋㅋ 제육만 먹기 지쳐서 다른 거 먹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오삼불고기인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날 식당 아주머니가 오징어 싸게 들어와서 오늘은 오삼불고기 먹어보라고 추천했단 말이야. 오삼불고기를 어떻게 참아. 진짜. 정말 만에 하나라도 싫었으면 얘기를 했겠지.”

“만에 하나. 와.”

백우진이 기가 차다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좋아. 이분이 다른 이유 때문에 퇴사했다고 쳐도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내가 다른 거 먹자고 했을 때는 다 거절당했잖아? 근데 제육볶음은 한 번도 거절당하지 않았고. 제육볶음보다 나은 메뉴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떡볶이보단 낫다는 말이지.”

“그 제육볶음 때문에 퇴사한 거라니까?”

“왜?”

└순진무구하게 왜냐고 묻는 거 개열받넼ㅋㅋㅋㅋㅋㅋ

└[곰지렁이 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알았다. 이 아저씨 뇌에는 제육볶음=맛있다임. 그래서 제육볶음을 싫어한다는 말 자체를 이해 못 하는 거임

└이것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제육볶음을 떠나서 같은 메뉴만 3달 먹으면 누구라도 질린다곸ㅋㅋㅋㅋ

└이거 진짜얔ㅋㅋㅋㅋ나 제육볶음 좋아하는데 3달은 선 넘음ㅋㅋㅋㅋ

└남여노소를 떠나서 같은 음식 3달은 정당한 퇴사 사유임. 실업급여 줘야 함.

“여러분, 이분이 퇴사 사유를 자꾸 제육볶음 탓으로 돌리시는데 이거 정말 억지예요. 말이 제육볶음이지 백반이었단 말이야. 밑반찬 매일 다르게 나왔고 국물도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김치찌개 돌아가며 나왔어요. 질릴 리가 없다니까?”

말을 하는 와중에 슈퍼챗 하나가 올라왔다.

└[모짜렐라 님이 2,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대리님, 저 은주예요. 제육볶음 때문 맞아요.

└??????

└본인등판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찐임?

6년 전 이탈리아로 떠난 김은주가 후원을 보냈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하기엔 본인 이름을 정확히 언급했다.

“진짜 은주 씨예요?”

“거 봐! 진짜 제육볶음 탓이라고 하시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라 아님?

└구라면 어떻게 이름까지 아는뎈ㅋㅋㅋ 진짜짘ㅋㅋㅋㅋㅋㅋ

“와. 진짜 반가워요. 피자는 잘 만들고 있어요? 후원하지 말고 그냥 채팅해도 돼요.”

└모짜렐라: 아니요. 거짓말이었어요. 그땐 너무 어려서 어떻게 퇴사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이유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너무 놀라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데 백우진이 나섰다.

“은주 씨, 혹시 실례가 안 되면 통화 가능하세요? 정확한 제보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야. 부담 주지 마.”

몇 년 전에 잠깐 같이 일한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부탁을 하기 민망해서 말렸는데, 의외로 흔쾌히 수락했다.

번호를 바꾸지 않았는지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어……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그럼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어. 저는 신대방에서 사는 30살 김은주라고 합니다. 반찬용 대리님하고 예전에 같은 회사 근무했었어요.

“어? 30살 아니에요. 은주 씨 92년생이었어요. 오해가 있었네.”

-만으로요.

김은주의 목소리에 살짝 장난스러운 짜증이 섞이자 백우진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니까요. 요즘 누가 세는 나이로 말해요. 만 나이로 말하지. 우리 형이 이렇게 교양이 없어요. 죄송해요, 은주 씨.”

-괜찮아요. 예전에도 약간 배려심이 없으셨어요.

백우진이 날 구박하고 김은주가 장단을 맞추니 시청자들이 웃었다.

“그 배려심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데. 조금 전에 제육볶음 때문에 퇴사하셨다고 하셨잖아요. 자세히 얘기 좀 해주세요.”

백우진의 질문에 김은주가 살짝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제가 처음 취직한 곳이라서 몰랐는데. 일주일 내내 제육볶음만 먹는 거예요.

“저런.”

백우진이 한탄했다.

-대표님, 팀장님, 실장님, 대리님 전부 그냥 점심 시간 되면 자연스레 건물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 가서 제육볶음을 먹었어요.

“정말 고통스러웠겠네요.”

-저도 제육볶음 좋아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제육볶음만 먹겠어요?

“그쵸. 그쵸.”

-그래서 대표님이나 팀장님께 말씀드리긴 무서워서 잘해주셨던 대리님께 어필을 좀 했는데.

“했는데?”

-정말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

“흐항핳항핳핫.”

백우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삼불고기 얘기 나왔을 때요. 저 때가 한 번이 아니었어요. 그 전에 두 달 가까이 다른 거 먹고 싶단 뉘앙스로 말씀드렸는데 그때마다 저러시더라고요.

“핳핳햫햫햣.”

“그만 좀 웃어.”

“그럼. 크흠. 그럼 정말 제육볶음 때문에 퇴사하신 거네요?”

숨이 넘어갈 듯 웃던 백우진이 겨우 진정하고 물었다.

-그 이유도 있긴 하죠.

“다른 이유도 있지만 제육볶음도 지분이 있다?”

-네.

“아니, 은주 씨. 정말 그렇게 싫었어요? 거기 제육 맛있잖아요.”

-맛있는 것도 한두 번이죠.

김은주의 대꾸에 백우진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그……. 정말 몰랐어요. 알았으면 두루치기도 먹으러 가는 건데.”

-흐항항.

김은주가 갑자기 웃었다.

백우진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고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제육이나 두루치기낰ㅋㅋㅋㅋ

└얘 진짜 문제의 본질을 이해 못함ㅋㅋㅋㅋㅋㅋㅋ

└오랜만에 육성으로 터졌넼ㅋㅋ

└저 회사 지금도 있음?

└제육 고문 ㄷㄷ

“아무튼 지금 잘 지내신다니 다행이고.”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세요?”

-아. 네. 반찬용 대리님 사실 저한테 엄청 잘해주셨어요. 제육볶음도 대리님이 아니라 회사 분위기 같은 거였고요. 그러니까 악플? 달지 말아주세요.

“아, 좋습니다.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네. 방송 재밌게 보고 있어요.

서둘러 통화를 끊었다.

백우진은 배를 잡은 채, 이제는 웃는지 우는지 헷갈릴 정도로 꺽꺽대고 있다.

“……졌습니다.”

더 이상 오늘 토론을 이어갈 힘도 의욕도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