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75화 (75/120)

치팅데이 75화

17. 메뉴 개발(6)

“지금 WTV 틀어서 백반토론 보세요. 내일 시험볼 거야.”

└ㅂㅂ

└안 볼 건데?

└와! 생방 끝나면 녹방!

└아닠ㅋㅋㅋ 목요일은 진짜 얘들만 보네

└ㅋㅋㅋㅋㅋ시험은 무슨ㅋㅋ

‘백반따라’를 시청해 달라는 말과 함께 방송을 마쳤다.

“하아암.”

차지찬에게 받은 마사지 효력이 떨어진 모양이다. 하품을 참을 수 없다.

“제육볶음이 뭐냐? 형은 나한테 진짜 많이 배워야겠다.”

백우진이 또 모처럼 이겼다고 우쭐댄다.

어절마다 높낮이를 달리하는 말투도 열받고 가늘게 뜬 눈과 길어진 인중도 적잖히 도발적이다.

데이트 식사 메뉴로 떡볶이나 생각해내는 녀석에게 이런 취급을 받으니 분하다.

“너한테 배워서 될 일이었으면 진즉에 다리 붙잡고 부탁했을걸.”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백우진의 뻔뻔함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WTV를 틀어 ‘백반따라’가 방영되길 기다리는데 묵은지가 문을 두드렸다.

“네. PD님.”

“편집 외주자 포트폴리오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반가운 소식이다.

저번 주부터 편집자를 구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지원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고생했어요. 내일 보고 말씀드릴게요.”

“네. 그럼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묵은지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는데 백우진이 두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묵은지는 백우진에게도 가벼운 목례로 답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따 밥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백우진이 말했다.

“PD님?”

“응. 자리 한번 만들자.”

묵은지는 달가워하지 않을 거다.

백우진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나 섭식 장애가 있는 그녀가 회식을 달가워할 리 없다.

“아. 사장이랑 같이 밥 먹으면 싫으려나?”

어떻게 말을 돌릴까 고민하던 차에 백우진이 알아서 마음을 접었다.

“근데 그건 왜 안 올렸어?”

“뭘?”

“은지 PD님 종이박스 쓰고 물 마신 거 있잖아. 진짜 완전 빵 터졌는데.”

“정색하면서 말리던데.”

“그럼 어쩔 수 없지.”

“왜 이렇게 PD님한테 관심이 많아?”

“재밌으니까. 일 잘하고. 매력 있잖아.”

“너……. 안 돼.”

둘이 혹시라도 사귀게 되었다가 헤어지면 중간에서 난감해진다.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호감 느낄 수도 있는 거지. 뭘 또 그런 식으로 생각해.”

“정말이야?”

“그럼.”

“하기사 떡볶이 따위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지.”

떡볶이는커녕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대령해도 거부할 사람이다.

“제육볶음보단 낫지롱.”

백우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약올린다.

“어떻게 눈치가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없지? 제육볶음으로 퇴사하게 만든 사람은 처음 봤다.”

“시끄러워.”

“한 달에 5만 원만 내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줄게.”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할 무렵 백반따라가 시작되었다.

* * *

“뭘 그렇게 적었어?”

백반따라를 시청하며 방송국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편집했는지 메모했는데 궁금한 모양이다.

백우진이 노트를 눈짓하며 물었다.

“편집 어떻게 했나 싶어서. 괜찮은 거 적었어.”

“아직 안 놓았어?”

아직 편집을 하냐는 질문이다.

“나도 놓았으면 좋겠다.”

내일은 만사 제쳐두고 지원자 포트폴리오부터 확인할 거다.

“말도 안 돼. 편집 아직도 형이 해?”

백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누가 해?”

“일주일에 5개 올리잖아. 방송도 하고 도시락 준비도 하면서 그걸 다 해왔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눈을 깜빡인다.

“형 그러다 죽어.”

“안 그래도 편집자 구하고 있어. 아까 포트폴리오 받았다고 들었잖아.”

“부족해서 더 뽑는 줄 알았지.”

당연히 내가 편집자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해도 업무량이 과하긴 하다. 외주 편집자를 구하더라도 한 명으로는 안 될 거다.

“아무튼 뭐 먹을래?”

오늘 백반토론에서 졌으니 저녁을 사야 한다. 저녁 식사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말이다.

“비싼 거.”

“비싼 거란 음식은 없어.”

“그동안 뜯긴 거 다 뜯어낼 거야.”

백우진이 앞장섰다.

사무실을 정돈하고 나서려는데 묵은지가 이미 정리해 두어서 불만 끄고 바로 나설 수 있었다.

“근데 진짜 상철이 형 팀이 다르긴 다르더라. 뭔지 몰라도 달라.”

백우진도 ‘백반따라’에 감탄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프로들도 참고하잖아.”

“형도 편집 잘하잖아. 어때?”

“포인트 잡는 건 비슷한데 아무래도 시간을 오래 쓸 수 없으니까 퀄리티 차이가 나지.”

“흠흠.”

“사실 이미지나 음악 마음대로 쓰는 게 제일 부러워.”

“맞다. 다 제작비로 처리하지.”

“나도 돈 많아서 마음 놓고 쓰고 싶다.”

“왜 없는 척해?”

“광고비 들어오기 전에는 힘들어.”

“들어오면?”

“흐흐흥흫.”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곧 입금될 돈을 생각하니 무거웠던 발이 한결 가뿐해졌다.

그렇게 실없이 웃으며 걷다가 문득 오늘 있던 일이 생각났다.

“참. 요즘 애들 무섭더라. 부천 가는 길에 중학생 둘이 와서 나 알아보더라고?”

“또 사인해 준다고 했어?”

“…….”

“했지?”

또 연예인병 걸렸다고 놀릴 게 분명하다.

“하긴 했는데.”

“푸핳!”

“아, 들어 봐. 얘들이 사인을 해주는데 이름을 안 가르쳐 주는 거야. 왜 그러냐고 물으니 당근에다가 팔 거니까 이름 안 적는 게 더 좋대.”

“헐.”

“내가 딱 지금 네 표정이었어. 어이가 없어서 입이 안 떨어졌는데 농담이라고 하더라.”

“무서워. 요즘 애들 무서워.”

“무서워.”

한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걸었다.

“근데 형 진짜 유명해지긴 했나 봐.”

“전혀.”

“점심 때 구독자 만났다며.”

“알아보는 사람은 가끔 있더라.”

“그리고 오늘 그 김은주 씨? 그 사람 얘기 하는데 딱 연락이 되는 일이 쉬운 줄 알아?”

“우연이지.”

“아니지. 그만큼 우리 방송 보는 사람이 많아졌단 거잖아.”

“그런가?”

작년 겨울만 해도 평균 시청자가 2~300명이었다.

불과 5달 만에 구독자는 50만 명을 바라보고 있고, 목요일에 한정된 일이지만 백반 토론 시청자는 평균 1만 명을 유지하며 지금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그럼. 백반따라가 딱 좋은 타이밍에 들어간 것 같아.”

“오늘 반응도 괜찮았으면 좋겠는데.”

“약간 신경 쓰이긴 해.”

“어떤 점이?”

백우진이 식당 문 앞에 섰다.

“유튜브에도 올라갔잖아.”

“댓글 때문에 그래?”

“응.”

TV에서 방영된 ‘백반따라’ 1, 2화가 월요일, 화요일에 한 편씩 WTV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되었다.

유튜브용인 만큼 유튜브 감성에 맞추어 따로 편집했는데 구독자 일부에서 불만이 나왔다.

우지니어스 채널 구독자 중 일부는 백우진의 설명을 왜 편집했느냐,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애가 이렇게 얌전했을 리 없다, 편집이 어색하다, 억지로 유튜버 영상인 척하는 것 같다는 식으로 댓글을 달았고.

반찬가게 구독자 일부는 병맛이 빠졌다, 공중파 나가더니 몸 사린다, 반찬가게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이 더 재밌다, 철 지난 밈 그만 써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상철이 형도 신경 쓰이는 것 같더라.”

“우리 영상 좋아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나도 알지. 근데 백반따라가 잘 돼야 우리도 좋은 거잖아. 그 사람들은 우리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단 댓글일 텐데 솔직히 좀 그래.”

백우진이 솔직할 뿐 나라고 다르진 않다.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소수라도 목소리는 크게 전달되는 법이다.

방송국도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있을 텐데, 나와 백우진이 개인적으로 진행하던 영상과 다르다 해서 비난할 순 없다.

각자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 생각하는 분들한테 뭐라 할 수도 없고. 아아아악.”

백우진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밥이나 먹자. 여긴 어디야?”

“파스타 맛집이래. 아까 검색해 봤어.”

“저녁으로 파스타를 먹는다고?”

“왜?”

“배가 안 부르잖아.”

“더 먹어 그럼. 스테이크도 있어.”

“그럴까?”

역시 똑똑한 녀석이라 생각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매장 분위기는 캐주얼한 편이었다.

와인도 판매하는 곳 같다.

비싼 걸 먹겠다더니 차지찬처럼 정신나간 곳을 다니진 않는 모양이다.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얼굴에 피로가 묻어나온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이니 지칠 때다.

“두 분이신가요?”

직원이 다소 건조하고 퉁명스레 물었다.

“네.”

“저희 매장 라스트 오더 10시인데 괜찮으신가요?”

“금방 먹을 거지?”

“응.”

“네. 괜찮아요.”

“커플이신가요?”

“예?”

어이가 없어 되물으니 삐딱하게 고개를 들고선 다시 묻는다.

“커플이신가요?”

오늘 여러모로 말이 막힌다.

컨디션이 안 좋은 탓인지 이상한 사람을 많이 만난 탓인지 모를 일이다.

직원이 귀찮다는 듯이 포스터를 가리켰다.

“내일까지 커플 손님에겐 20% 할인해 드려요.”

“커플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편견이 없어도 너무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니 백우진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 사귀는 사이로 보여?”

“밤 9시에 남자 둘이 파스타 먹으러 오면 오해할 수도 있나?”

“그런가?”

직원에게 자리를 안내받았다.

메뉴판을 펼쳤는데 순간 눈을 의심했다.

부야베스 파스타 한 그릇에 20,000원이고 프레시 트러플 리조또란 음식은 리조또 주제에 43,000원이다.

“야. 뭐 이런 델 왔어.”

상체를 내밀고 목소리를 최대한 줄여 말했다.

“오늘 다 뜯어 먹는다고 했잖아.”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리조또 하나에 40,000원이 넘어.”

“진짜? 그것도 먹어야겠다.”

미친놈이다.

백우진이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프레시 트러플 리조또 하나랑 농어 스테이크 하나, 리옹 샐러드 하나 주세요. 형은?”

“형은? 그것만 시켜. 뭔.”

“배고파. 안 시키면 나 혼자 먹을 거야.”

“너 지금 제정신 아니야.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오늘 같은 날 이런 것도 못 사 줘?”

“적당히 해야지.”

“진짜 실망이다. 요즘 돈도 잘 벌면서 나한테 이 정도도 못 사 주냐고. 내가 형한테 어떻게 했는데?”

성질이 나서 뭐라 쏘아붙이려는데 옆에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잔뜩 지친 얼굴로 나와 백우진을 빤히 보는데 뭐든 좋으니 제발 주문해 달라는 표정이다.

“……브리치즈 파스타랑 연어 스테이크 하나 주세요.”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큰 지출에 당황해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 못 하는 일은 없었다.

분하게도 24,000원이나 받으면서 고작 풀떼기, 토마토, 브리치즈만 넣은 파스타가 절묘했다.

꾸덕한 치즈를 두른 파스타가 입에 딸려 들어올 때마다 침샘이 자극된다.

연어도 껍질을 충분히, 아니, 과하다 싶을 만큼 구워서 내 취향이었다.

바삭한 첫 시감 뒤에 부드럽게 바스러지는 연어살이 예술이다.

“여기 괜찮다.”

“…….”

“그치.”

“시끄러워. 먹기나 해.”

“삐졌어?”

“난 아무리 생각해도 파스타 한 그릇에 24,000원은 아닌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계산하면 안 먹어.”

“이게.”

“아~ 배부르다.”

식사를 마친 백우진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배를 문질렀다.

뽈록 튀어나온 배를 자랑하며 웃으니 더 뭐라 할 수도 없다.

비싸긴 해도 맛은 있었으니까.

한숨을 내쉬며 빌지를 챙겼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조금 전보다 더욱 지쳐 보이는 직원이 의무적으로 물었다.

“네. 잘 먹었습니다.”

“148,000원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아, 근데 저희 방금 사귀기로 했는데 커플 할인 받을 수 있을까요?”

직원이 고개를 들어 나와 백우진을 살폈다.

나도 고개를 돌렸는데 백우진의 눈이 거의 튀어나와 있었다.

“뭔 개소리야.”

“너가 연애 가르쳐 준다며.”

“뭐?”

“가르쳐 달라고. 그럼 사귀는 거 아니야?”

“뜬금없이 왜 이래? 쪽팔리게 하지 마.”

대꾸하지 않고 녀석의 손을 잡아 들어 보이니 직원이 삭막한 얼굴 그대로 건조하게 말했다.

“거짓말하시면 안 됩니다.”

“정말이에요. 손도 잡았잖아요.”

직원이 나와 백우진을 빤히 보더니 이내 포스기를 조작했다.

“계산 되셨습니다.”

영수증을 받으니 148,000원에서 20%가 할인된 가격 118,400원만 적혀 있었다.

“미쳤어? 고작 3만 원 할인받자고 무슨 짓을 한 거야?”

식당을 나서자마자 백우진이 따졌다.

“네겐 고작 3만 원이겠지만 나한테는 아니야.”

“그렇다고!”

말문이 막히는지 발을 동동 구르다가 소리친다.

“그렇다고 이런 짓을 하면 어떡해! 거짓말이잖아! 그리고 우리 지금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 이런 거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는 거 몰라?”

“그럼 헤어져.”

“뭐?”

“성격이 안 맞네. 헤어지자.”

“……형 진짜 또라이야?”

“지가 연애 알려준다 할 땐 언제고.”

“아. 아아아아악!”

백우진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토론에서 이겼다고 놀리고 말도 안 되게 비싼 밥을 요구한 복수는 제대로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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