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81화
18. 백승용차(4)
준비했던 자료를 보여주었다.
“이 사진 본 적 있죠?”1)
└ㅁㅊㅋㅋㅋㅋㅋㅋㅋ
└밥 봐
└저게 고봉밥이구나
└저게 다 들어감?
└다시 봐도 신기하네
예상대로 시청자들도 놀라워한다.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는 나조차 많다고 느꼈었다.
“200년 전 한 선비의 밥상인데 딱 봐도 밥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물론 지금 먹방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처럼 이분이 유독 많이 드신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시대별 밥공기 크기의 변천사를 정리한 사진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가장 오른쪽이 2012년에 일반적인 밥공기예요. 대략 150g 정도 들어가죠. 2005년은 230g, 1960~70년에는 450g. 1940년대에는 무려 550g입니다.”
└무친ㅋㅋㅋㅋㅋㅋㅋㅋ
└양푼 아님?
└지금보다 밥을 세 배나 더 먹었다고?
└고려 시대가 더 커보이는데?
└왤케 많이 먹음?
“조선시대가 약 690g이었고 고려시대는 1,040g 그리고 고구려시대에는 1,300g이었다고 해요.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양이죠.”2)
밥을 좋아하는 나도 1,300g이나 먹을 자신은 없다.
지금 밥 한 공기의 약 10배에 달하니, 아무리 맛있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가 있어도 무리다.
“이렇게 밥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럿이에요. 첫 번째는 활동량이 많았기 때문인데 예전에는 자동차도 없었잖아요. 여기서 저기로 가려면 걷는 방법밖에 없었죠. 게다가 농경사회였으니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고 당연히 활동량이 높을 수밖에 없었어요.”
하루에 소비하는 열량이 높으니 당연히 섭취도 그만큼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우리 선조들이 드셨던 밥이 잡곡밥이라는 점이에요. 쌀밥은 잡곡보다 훨씬 비싸서 여유 있는 집에서나 먹었어요. 대다수의 농민은 겨나 보리 같은 잡곡을 주로 섭취했죠. 그리고 이들은 소화가 안 돼요.”
이게 중요하다.
“제가 지금 현미를 먹는 이유와 같은데, 우리 몸이 쌀을 흡수하려고 할 때 쌀겨가 방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혈당도 덜 올라가고, 그러니 살도 덜 찌는 거고.”
└영양분 섭취가 잘 안 되니 많이 먹었던 거임?
└ㅇㅇ 그런 듯
└아닠ㅋㅋㅋ 그래도 너무 많이 먹잖아. 저거 한 공기면 4인 가족이 하루는 먹겠다.
“세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의 계절적 특성이에요. 계절이 빠르게 변하고 여름에는 음식이 쉽게 상하기에 염장이나 젓갈, 발효 음식이 발달했는데 그러지 못하는 음식은 대부분 오래 못 갔죠. 아끼고 있다가 상해서 버릴 바에는 먹을 수 있을 때 다 먹는 게 나았죠. 언제 굶을지도 모르고요.”
내가 그랬다.
언제부터 먹는 양이 늘었는지 곰곰이 되짚어보면 첫 회사를 다닐 때였다.
항상 굶으니 먹을 수 있을 때 잔뜩 먹어야 했고 그때부터 조금씩 한 번에 먹는 양이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이게 가장 중요해요. 예전에는 고기를 먹기 힘들었어요. 워낙 비쌌으니까. 그래서 단백질이 항상 부족했는데, 그 부족한 분을 쌀에서 얻으려고 했던 거예요.”
선조들이 단백질이 무엇인지 알 리는 없지만 이것은 본능의 문제다.
몸은 단백질이 부족함을 알기에 자꾸만 식욕을 발산하고, 달리 먹을 게 없었던 선조들은 밥을 잔뜩 먹어야만 배를 달랠 수 있었다.
“현재를 기준으로 현미잡곡밥 한 공기에는 탄수화물이 70.38g, 단백질이 8.99g 정도 들어 있어요.”
이해를 돕기 위해 표를 보여주었다.
“단백질 섭취 권장량은 체중 1㎏당 0.8g에서 1g입니다. 조선시대 남자 평균 키는 약 161㎝, BMI 기준으로 정상 몸무게는 48㎏~59㎏. 이를 대입하면 하루에 먹어야 할 단백질이 최소 38.4g은 되어야 한단 뜻입니다.”
현미잡곡밥 4공기와 숟가락 두 개를 화면에 띄웠다.
└그러네 그럼 4공기보다 좀 더 먹어야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었네
└반찬용 왤케 똑똑해짐 ㄷㄷ
└맨날 개소리만 하다가 근거 들면서 얘기하니까 적응 안 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여기서 한 가지. 아까 조선시대 밥공기가 690g이라고 말씀드렸죠? 지금은 150g 정도고. 약 4.6배 차이가 납니다.”
물음표를 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내 말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ㅁㅊ 진짜 딱 단백질 섭취량만큼 오른 거네
└지금은 고기 잘 먹으니까 그만큼 줄어든 거고
└개소름
└와
└사람 몸이 진짜 신기함. 정확히 과학적으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들 알아서 굴러감.
└조선시대에는 4.2공기를 먹어야 했는데 지금은 단백질 섭취가 쉬우니까 21% 정도로 줄어든 거임?
“오차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단백질 40g을 먹는다고 쳤을 때 우리 몸은 40g을 온전히 소화할 수 없습니다. 대변으로 나오죠.”
이래서 칼로리를 딱 맞춰 먹으면 저칼로리 식단이 된다. 저칼로리 식단이 계속되면 살찌기 쉬운 체중이 되고 말이다.
“또 탄수화물이 곡식에만 있는 건 아니니 어느 정도 오차는 거기서 충당이 될 거예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자료를 전부 치웠다.
“자,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왜 골고루 먹어야 할까요?”
조금 전만 하더라도 비협조적이었던 시청자들이 ‘뭘까?’, ‘아 너무 궁금하다’와 같은 마음에도 없는 채팅을 쳐 호응해 준다.
어울려준다는 느낌이다.
“그렇습니다. 영양불균형은 과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또 어느 영양분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면 신체 발달이 안 되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평균 신장이 크게 커진 것도 그 이유 때문이고요.”
채팅창이 ‘ㄹㅇㅋㅋ’으로 도배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면역력 저하나 비만 혹은 저체중 같은 신체적 문제가 생기죠. 게다가 우울증, 주의력 결핍장애 같은 정신적 문제도 야기하고요.”3)
묵은지가 신경 쓰여서 섭식 장애를 공부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섭식 장애와 우울증은 한몸이나 다름없어, 멘탈 관리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했다.
“이제 왜 골고루 먹어야 하는지 알겠죠?”
└네네! 네네네!
└착한 어린이는 골고루 먹어야 해요
└선생님! 왜 쉬 쌌어요!
└다들 왜 이랰ㅋㅋㅋㅋㅋ
└반찬용이 유치원 선생님 말투 쓰니까 뭔가 기분 나빠짐
“두 번째. 적당히 먹기는 뭐,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테고. 아무리 좋은 것도 많이 먹으면 안 좋습니다. 마늘 좋다고 많이 먹으면 경련, 소화불량 생겨요. 쑥도 설사해요. 마늘이랑 쑥 많이 먹어서 좋은 건 곰하고 호랑이뿐이에요. 알았죠, 여러분?”
└녜!
└선생님! 얘 쉬했다니까요!
└오리 꽥꽥
└선생님 나 똥.
└미친놈들아 그만햌ㅋㅋㅋㅋ
처음엔 의도하지 않았는데 채팅창 분위기가 유치원 쪽으로 흘러 어울려 주었더니 이상해졌다.
“마지막으로 아침 먹기.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새로운 자료를 띄웠다.
“지금부터 포뮬러1 선수들이 시차에 적응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거예요.”4)
포뮬러1 선수들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시차적응을 어떻게 소화하는지에 따라 기량 차이가 발생한다.
“하버드 대학 의과대학의 패트릭 풀러 교수가 진행한 실험을 보죠. A와 B는 포뮬러1 선수로 16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현지 시간에 적응해야 합니다. A는 평소대로 먹고 자는 반면 B는 물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한 채 비행기에 탑승하죠.”
사진을 넘기며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패트릭 박사는 우리 몸이 16시간 이상 굶으면 음식시계가 작동한다고 합니다. 즉 식욕이 수면욕을 압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배고프면 못 잔다니.
이 얼마나 합당하고 당연한 말인가.
“16시간의 비행 후. 물만 마시고 공복을 유지했던 B는 첫 식사를 마치자 몸이 개운해졌다고 합니다. 반면 식사를 그대로 이어가던 A는 피로를 느꼈고요.”
KBS1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라는 점을 보여준 뒤 시각 자료를 닫았다.
“여기서 야식을 먹지 않고 아침을 챙겨 먹는 게 왜 중요할까요?”
└16시간 공복인가?
└일상 패턴이 유지되겠네
└규칙적인 생활
└엄마가 맨날 아침 먹으라는 게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던 거네;;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거임.
“그렇죠. 아침을 먹어야 힘이 난다는 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야식을 먹고 아침을 거르면 자연스레 오전은 피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는 떴지만 몸은 밤으로 인지할 테니까요. 점심을 먹은 뒤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다이어트와 수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기사가 있어서 보여주었다.5)
“이 기사에 따르면 수면부족이 신진대사를 저하시킨다고 합니다. 뇌는 이런 상태를 지방과 당이 부족한 것으로 느껴서 식욕이 늘어나게 되고요.”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살이 찌는 원인은 당이다.
“뇌가 당분이 부족하다고 착각을 일으키면 자연스레 살이 찔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스탠퍼트 대학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 수면부족인 사람은 식욕이 25%나 증가한다고 해요. 저를 기준으로 삼으면 밥 한 공기를 더 먹게 되는 겁니다.”
└ㄷㄷㄷㄷ
└밥 한 공기 더 먹는다고 하니까 확 와닿넼ㅋㅋㅋㅋㅋㅋ
└아니 나 너무 신기해. 그냥 야식 먹지 마라, 아침 먹어라, 골고루 먹어라 같은 거 알고는 있었는데 이유를 설명해 주니까 훨씬 더 와닿는데?
└이유를 아는 거랑 모르는 거랑은 다르지.
“이렇게 아침밥을 먹고, 야식을 먹지 않으면 우리 수면 패턴이 돌아오니까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에요. 이제 어린이 여러분, 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반찬 투정 안 하고 아침 꼭 챙겨 먹어야 하는지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