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84화
18. 백승용차(7)
방송을 켰다.
대기화면을 띄우고 제목을 중대발표로 수정한 뒤 커피를 타 오니 시청자들이 문을 열라고 성화다.
└중대발표??
└무슨 일 있나?
└뻔하지 저번처럼 폭식해서 사과방송하겠지
└근데 요새 몸 좋아지지 않음?
└ㅋㅋㅋ설마. 맛집 발견했단 거겠지.
└이거닼ㅋㅋㅋㅋ
다른 사람 방송에서 중대발표라고 하면 대형 콘텐츠라든가 연애 관련 추측이 나올 텐데, 어찌된 일인지 내 방에서는 그런 말이 조금도 안 나온다.
카메라로 화면을 전환했다.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야? 나 오늘 진짜 중대발표할 거예요. 무슨 맛집 발견이야.”
└맛집은 중대사항이 아니다?
└초심 잃었네
└얘는 초심 좀 잃어야 함ㅋㅋㅋ
└맞아ㅋㅋㅋ 기껏 살 좀 뺐는데
“아니. 맞지. 새로운 맛집 발견은 중요한 일 맞는데 오늘은 다른 얘기야. 진짜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라 조심스러웠거든. 근데 이젠 진짜 진행하게 돼서 말씀드리려고 해요.”
물음표가 올라온다.
“실은 지승이 형, 지찬이 형, 우진이랑 같이 사업을 하나 시작하기로 했어요.”
└유튜버가 사업해서 좋게 된 꼴을 못 봤는데?
└사업이 쉬운 줄 아냐
└ㅋㅋㅋㅋㅋ그만 좀 뭐라햌ㅋㅋㅋ 아저씨 삐지겠다
└라인업 미쳤다
└짐꾼 241만, 우지니어스 140만, 반야식경 89만, 반찬가게 50만 ㄷㄷ
└미친 520만?
└이 정도면 솔직히 뭘 해도 되지 않나?
내 생각에도 말이 안 되는 규모다.
우리 네 명이 합방을 자주 가지며 중복 시청자가 많다고 해도 말이다.
“이름도 지었어요. 백승용차. 백우진, 주지승, 반찬용, 차지찬.”
└구림
└일단 이름부터 망했고요
└520만 명이라고 했을 땐 무조건 성공할 것 같았는데 이름 들으니까 폭망하겠넼ㅋㅋㅋ
└누가 지었음?
└이름을 짓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놈이 바로 배신자다. 명심해.
내가 지었다는 말은 못 하겠다.
“일단 사진 같이 보면서 진행할게요.”
오늘 방송 참고자료 폴더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
└뭐임?
└제네시스 아님?
└백승용차가 진짜 하얀색 승용차 말이었음?
└이쁘긴 하다
└중고차 사업함?
“실수. 실수.”
실수인 척 연기하니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보내왔다.
“아, 이거요? 사실 제가 그저께 자동차 계약을 하고 왔거든요. 이 사진은 그냥 차 사기 전에 예뻐서 저장해 둔 건데 여기 끼어 있었네. 아이 뭐 자랑하려는 건 아니고.”
└자랑 맞네
└아니 지 사업하는 것까지 자랑하는 데 이용해?
└제네시스를 샀다고?
└계약만 한 거짘ㅋㅋ 계약금은 얼마 안 함. 취소하면 환불도 해주고ㅋㅋ
└돈 그렇게 잘 벌어?
└이 아저씨 몇 달 전에 회사 차려서 돈 없다고 찡찡대지 않았음?
└슈퍼챗 환불 좀.
└아 불쾌하네요. 구취합니다.
“진짜 살 거예요. 원래 법인 차량을 사려고 했는데 너무 예쁜 거야. 이걸 어떻게 참아? 그래서 그냥 개인 명의로. 제 명의로 삽니다.”
잠시 채팅창을 보며 반응을 즐기다가 입을 열었다.
“부럽지?”
└ ㅗㅗㅗㅗㅗㅗ
└ ㅗㅗㅗㅗ
└와 돈 없어서 밥에 소금 뿌려 먹던 애가 제네시스를 타네
└이렇게까지 잘되길 바라진 않았는데
└배 아파! 배 아파!!
└지금 누구 놀림?
└ㅊㅊㅊㅊ 성공했네
└내가 그동안 나보다 부자한테 슈퍼챗 쏘고 있었네
└구독 취소하자
“부럽지? 부럽죠? 부러운 거 알아요. 더 부러워해 주세요. 제발.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시청자들을 놀리며 놀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놀라서 의자를 돌리니 종이가방을 뒤집어 쓴 묵은지가 다가왔다.
“적당히 하십시오.”
“네?”
“적당히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네.”
기에 눌려서 대답하니 날 지긋이 바라보다가 방을 나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나 더 혼내줘!
└묵PD 잘한다!
└그러니까 적당히 좀 하짘ㅋㅋ
└직원한테 혼나는 사장이 있다? 뿌슝빠슝
└아 내 속이 다 시원하넼ㅋㅋㅋ
적당한 시점에 들어와 주긴 했는데 깜짝 놀랐다.
사전에 미리 얘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종이가방까지 뒤집어 쓰고 들어와 딴지를 걸 줄은 몰랐다.
“그럼 도시락 얘기로 돌아가서. 악.”
당황해서 실수해 버렸다.
└도시락?
└뭔 도시락?
└얜 뭐 머리에 먹을 생각밖에 안들었낰ㅋㅋㅋ
└혹시 저번에 말하던 다이어트 도시락 얘기임?
└짐꾼 방송할 때 얘기 잠깐 나왔던 것 같은데.
중복 시청자가 많은지 짐꾼 채널에서 잠깐 얘기했던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네. 맞습니다. 백승용차가 이번에 다이어트 도시락 매장을 열어요. 6월 1일부터 짐꾼 헬스장 2층에서 딱 한 달 동안 합니다.”
미리 제작해 둔 홍보용 포스터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도시락 종류는 한 가지고 하루에 200개만 팔 거예요. 반야식경의 지승이 형하고 제가 직접 요리하고 우진이가 계산, 지찬이 형은 놀아요. 물주거든요.”
헬스장 회원들에게 도시락을 소개해 주고 월세 안 받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이다.
“이건 지승이 형이랑 우진이가 산정한 예상 단가예요. 약간 변화는 있을 수 있고, 변동사항은 반야식경이랑 우지니어스 채널에 올라갈 영상 참고해 주시면 됩니다.”
도시락 한 개당 얼마를 쓸지 정리한 표를 보여주었다.
“일단 빠진 것부터 설명드릴게요. 지찬이 형 덕분에 임대료 안 나가고요, 저랑 지승이 형, 우진이가 인건비 안 받고 일해서 그것도 빠졌어요. 그리고 배달을 안 해서 당연히 배달어플과 계약도 안 하고, 사실 못했고 해서 수수료도 없습니다. 또 농사 유튜브 하시는 흥부님이 도와주셔서 몇몇 채소는 원가로 납품받게 되었어요.”
장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월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이 없으면 음식 가격이 상당히 낮아진다.
“그래서 도시락 하나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3,500원으로 잡았고 판매가격은 4,000원으로 할 거예요. 이건 예시 이미지입니다.”
지승이 형이 미리 만들어 본 도시락을 보여주자 시청자들이 놀랬다.
대량 조리를 해야 하기에 하나하나 공을 들여 꾸밀 순 없었지만, 나물 두 종류, 김치 하나, 제육볶음에 잡곡밥으로 구성한 나름 알뜰한 도시락이다.
└저게 4,000원밖에 안 한다고?
└나물 두 개가 미쳤는데?
└ㅋㅋㅋㅋㅋ하루 200개를 만든다고?
└편의점 도시락보단 확실히 나아 보임.
└편의점 도시락 가성비 좋긴 한데 야채가 너무 없어서 아쉽긴 하더라
└근데 저게 왜 다이어트 도시락임?
└마진 10%면 박리다매해야 할 텐데 200개 가지고 됨?
└200개 다 팔려도 10만 원 버는 거넼ㅋㅋㅋㅋㅋ
└팝업 스토어라 해도 빡센데?
└아니 자동차도 좋은 거 탈 정도로 돈 벌면서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함?
└방송이나 열심히 해
└그래 아저씨 일 너무 많더라
└쓰러질 것 같아서 편집자 구하더니 이제 좀 살만해졌냨ㅋㅋㅋㅋ 정신차려
└쓸데없는 짓 말고 잠이나 자
“이게 사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이긴 한데, 제가 생각해도 멍청해요. 근데 해야 하는 이유가 세 개나 있어요.”
말투는 다소 공격적이더라도 날 걱정해 주는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처음은 예전에 한번 말한 적 있는데, 나 같은 사람들 위한 식당이 너무 적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는 반찬가게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고 싶어요. 이번 일 제대로 배우고 성공시켜서 경험으로 삼고 싶어요.”
└아
└기억 남
└진심이었네;;
“두 번째는 다들 같은 생각이었어요.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우리가 대단해서 그런 거긴 하지만 사실 여러분 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내가 남들에 비해 잘 먹고, 표현력이 되고, 헛소리를 잘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방송을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50만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버가 아니라, 그냥 밥 잘먹고 우스개 소리 좀 하는 사람이었을 거다.
└꼭 지 잘났다는 말은 끼워넣넼ㅋ
└오~
└그치 우리 없었으면 아저씬 그냥 당뇨 아저씨잖아
└아님. 돈 못 벌었으면 저렇게 찌지도 못했을걸?
└말넘심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아저씨 원래 편집자로 돈 많이 벌었음.
“아무튼 그래서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어서 최소한의 마진만 남기고 건강식 드리고 싶었어요. 원래는 이 마진도 남기지 말고 원가로 드리자고 했었는데.”
마지막 이유다.
“6월 말에 지찬이 형이 유튜버, 스트리머, BJ 등 개인방송 하시는 분들과 함께 국토대장정 하거든요? 그때 들르는 지역마다 어려우신 분들 만나 뵙고 도시락 드릴 건데 도시락 팔아서 남긴 돈이랑 우리 네 명이 따로 모은 돈으로 진행하려 해요.”
└헐
└엌ㅋㅋㅋㅋㅋㅋㅋ
└아까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던 애 어디 감ㅋㅋㅋ
└좋은 일 하네
└아니 왜 진짜 좋은 일이에요;;
└갓찬용! 갓찬용!
└나 이런 거에 좀 약함
└선한 영향력 좋네.
“우리 백승용차 도시락에 사용되는 돈은 우진이가 정리해서 커뮤니티에 올릴 거예요. 어디에 얼마 썼고, 뭘 샀는지 다 빠짐없이 적어서 영수증까지 보여드릴 거니까 그 점은 걱정 마시고. 이후 자세한 내용은 반야식경, 우지니어스, 짐꾼에 올라갈 거니까 한번씩 봐주세요.”
* * *
내 방송을 시작으로 반야식경, 우지니어스, 짐꾼에 차례로 백승용차 도시락 영상이 올라왔다.
주지승은 영양사까지 모셔서 우리 도시락의 영양소 비율이 괜찮은지 확인 받았고.
백우진은 백승용차 도시락 사업이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설명했다.
식자재를 떼오는 곳부터 광고와 협찬을 해준 기업들도 소개해 주었다.
분명 처음에는 쿡쿡이만 있었는데, 알음알음 알게 된 이들을 통해서 무려 5곳과 광고 및 협찬 계약을 맺게 되었고 예산을 두둑히 확보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인건비를 받지 않고, 도시락 나눔 행사에 기부를 하고도 큰 돈을 벌 수 있었으며.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도시락을 전달할 수 있었다.
차지찬은 도시락을 먹어서 나눔 행사에 참여해 주는 분들께 단체 PT를 무료로 진행한다며 홍보에 박차를 가하면서 백승용차 도시락은 조금씩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