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88화
19.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4)
백승용차 멤버들이 청소를 시작하자 주지승은 카메라 앞에 앉았다.
최미카엘 PD가 물었다.
“백승용차 첫날 마무리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정신이 없어요. 지금 옷이 땀으로 다 젖었는데, 제대로 했는지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요식업 경험은 처음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네. 언젠가 한 번쯤은 도전해 보고 싶었던 일인데 기회가 되었네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동기가 있을까요?”
주지승이 고개를 들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찬용이가 처음 얘기 꺼냈을 때는 망설였죠. 이런 일을 우리끼리 할 수 있을까 싶고. 근데.”
주지승은 고개를 주억이며 피식 웃었다.
“와이프가 답을 알려주더라고요.”
최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지승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도왔다.
“반야식경을 오래 운영하다 보니까 한계를 느꼈어요. 알고 있던 레시피는 소모한 지 오래고, 매일 공부하며 새로운 요리법을 찾는데 그마저도 약간 기계적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주지승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폈다.
“그런 고민을 알고 있던 와이프가 좋은 기회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주지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긴 해도 유튜브 잘 되고 있고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던 제가 부끄러웠죠. 먹고 살 만해지니까 안일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도전했습니다.”
“요리를 처음 시작하신 계기도 형수님 덕분이라고.”
“예. 와이프가 요리를 너무 못 해서.”
주지승과 최미카엘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농담이고. 직장 다닐 때 당뇨가 왔는데 그때 와이프가 정말 지극정성으로 도와줬거든요. 자기도 출근해야 하는데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 싸 주고, 일찍 퇴근해서 저녁 차려주고. 많이 좌절했었는데 덕분에 힘냈죠.”
주지승이 옛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근데 제가 너무 힘들게 해서 와이프한테도 병이 왔어요. 아차 싶더라고요. 이러다 둘 다 죽겠다. 건강부터 챙겨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최미카엘이 입을 꾹 다문 채 주지승을 바라보았다.
“모아 둔 돈이 있어서 일단 둘 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때부터 집안일은 모두 맡아서 했어요. 하다 보니 요리가 적성에 맞아서 하게 됐고. 와이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 찾다 보니 유튜브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건강은 어떠신가요?”
“너무 건강해졌어요. 생전 운동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살려고 헬스 시작하더니 지금은 뭐.”
주지승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신다면.”
“와이프가 제게 차려주었던 밥상, 제가 와이프 생각하며 만들었던 음식 그 마음 그대로 만들고 있습니다. 많이들 찾아 주세요.”
주지승이 씩 웃으니 최미카엘이 녹화를 종료했다.
“됐어?”
“아니요. 이제 청소하는 거 찍어야죠.”
“하아. 미치겠다. 지찬아, 교대.”
“엉.”
주지승이 부엌으로 향하자 차지찬이 빨간 고무장갑을 벗으려 했다.
“대표님, 잠깐.”
안상규 PD가 차지찬을 불렀다.
“왜?”
“끼고 있는 게 좋아 보여요. 그대로 가죠.”
“일 좀 했다고 티 내라고?”
“좀 내면 어때요.”
“에휴.”
차지찬이 한숨을 내쉬곤 주지승이 자리했던 의자에 앉았다.
“도시락 장사 소감이 어떠세요?”
“얼마나 웃었는지 얼굴이 움직이질 않아.”
“구독자들과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잖아요.”
“그치. 야, 우리 꾼꾼이들 운동 열심히 하더라. 방송할 때 훈수 두길래 입만 산 줄 알았는데. 어?”
안상규 PD가 작게 웃었다.
“백승용차 도시락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놈이 꼬셨어. 우리 헬스장 회원들한테 주면 좋을 거라고.”
차지찬이 프라이팬을 닦는 반찬용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럼 헬스장 홍보 차원에서 하신 건가요?”
“그런 이유도 있고. 또 동생이 뭐 해보겠다고 하니까 겸사겸사 도와주는 거지. 의리.”
차지찬이 슬쩍 웃었다.
“도와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댓글도 보이더라고요.”
“뭐, 반찬용이 빨대 꽂았다고? 아직도 그런 놈들 있어?”
“꼭 그런 얘긴 아니고요.”
“하.”
차지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 어려울 때 쟤 덕분에 유튜브 성장한 건 몇 번 말했고. 이번 일은 여러 가지가 섞여 있어. 아까 말했던 헬스장 회원 서포트하는 느낌도 있고, 홍보 목적도 있고. 찬용이가 하는 일이니 하는 것도 있는데.”
차지찬이 뒷머리를 벅벅 긁다가 말했다.
“오해 말고 들어 봐. 내가 나쁜 짓 안 하고 남한테 피해 안 주고 나름 성공해서 돈도 많이 벌고 그랬단 말이지.”
“그렇죠.”
“근데 돈도 어느 정도 이상 벌게 되니까 막 크게 와닿지가 않더라고. 좋고 비싼 물건 아무리 사 봤자 채워지지 않는 게 사람이더라고.”
“이건 논란이 좀 있겠는데요?”
“그러든가 말든가. 난 그래. 처음에는 그게 그냥 마음 나누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착한 일? 존경받고 싶다? 그런 느낌이었어.”
“존중 욕구네요.”
“그게 뭔데.”
“매슬로. 아니에요. 계속하세요.”
“그래. 내가 가방끈이 좀 짧잖아. 약간 콤플렉스 같은 것도 있어.”
“가방만 짧은 거 아니잖아.”
쭈그려서 그릇을 정리하던 백우진이 고개를 내밀며 외쳤다.
“이 자식이.”
차지찬이 엉덩이를 들자 백우진이 다시 쏙 고개를 집어넣었다.
“근데 유튜브 하면서 이런 나라도 남한테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할 수 있더라고? 그게 내 자부심이고 좀 더 나아가서는 실질적으로 좀 도우며 살고 싶더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요?”
차지찬이 반찬용에게 시선을 주었다.
“쟤한테 배웠어.”
안상규 PD가 카메라를 돌려 반찬용을 담았다.
“저놈 방송에서 하는 거랑 다르게 자존감 같은 게 거의 없거든.”
“아, 내 얘기는 왜 꺼내!”
반찬용이 소리쳤다.
“근데 내가 쟬 존경하는 점이 그렇게 본인이 약한 점을 인정하고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을 하더라고. 반찬용 매주 일요일마다 도림천이나 한강에서 쓰레기 줍는 거 알아? 아는 사람 없을걸?”
“아!”
반찬용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가만 있어. 형이 좋은 얘기 해주는데 고맙다곤 못할망정.”
“관악산은 왜 빼먹어!”
“흐흫흐흐흣.”
반찬용의 너스레에 매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작게 웃었다.
“그래. 뭐, 관악산에서도 쓰레기 줍는대.”
“근데 찬용 씨가 그러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안상규가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쟤 매일 얼마나 걷는지 확인하다가 일요일에 유독 2만 보, 3만 보씩 찍히길래 물어봤거든. 뭐 하느라 이렇게 많이 걸었냐고. 그랬더니 사진 보여주더라고.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 가득 담은 사진을 수십 장이나.”
“아.”
“내가 그랬지. 유튜브에다 올리라고. 좋은 일 하는 거 알리면 좋지 않냐고 했더니 그냥 자기가 흔들릴 때마다 하는 거래. 뭔가 남한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자기가 소중하다고 멘탈을 잡는 거라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대.”
“방금 다 말했잖아!”
반찬용이 소리쳤다.
“니 입으로 하는 것보다 내가 하니까 그림이 나오잖아.”
“고마워.”
반찬용이 다시 프라이팬을 닦았다.
“저러는 거 보니까 나도 뭔가 좋은 일 하면서 뭔가 찾아보려고. 지금 내게 부족한 게 뭔지.”
“그래서 봉사활동도 계획 중이신 거네요?”
“그치. 뭐, 계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맞거든. 존경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하는 일이야.”
“여러분, 저 형 부끄러워서 저렇게 말하는 거니까 믿지 마세요.”
“넌 인마 오늘 끝나고 봐.”
차지찬이 또 고개를 불쑥 내민 백우진의 양볼을 한 손으로 움켜잡아 흔든 뒤 풀어주었다.
자연스레 바톤을 이어받은 백우진이 볼을 비비며 카메라 앞에 앉았다.
우지니어스 채널의 이지혜 PD가 물었다.
“요즘 매를 벌고 있단 댓글이 올라오는데 어떻게 생각해?”
“어?”
백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지승이 형이랑 지찬이 형하고 질문이 다르잖아.”
“이따 할게.”
이지혜 PD의 단호한 태도에 백우진이 잠시 주변을 살피며 생각을 정리했다.
“찬용이 형 때문이야.”
“내가 뭐?”
“저 형하고 같이 다니면서 화가 늘었어. 맞아. 억울하게 당한 게 많아서 한이 맺혔어.”
“내가 뭘.”
“카카오 미팅 때 진짜 카카오 안 좋아하냐고 묻더라! 이상한 질문 댓글 달려서 무시했더니 초등학생이라고 무시하냐고 진짜 아동학대하냐고 올라오지 않나! 심지어 촉수 좋아하는 변태로 아는 사람도 있어!”
백반토론을 통해 무수히 많은 오해를 산 백우진이 한을 토해냈다.
“그걸 누가 진짜로 믿어서 그러냐?”
차지찬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나도 알아! 안다고 놀림당하는 게 달라져? 나 원래 이미지 안 이랬어! 귀엽고 똑똑하고 착했다고! 저 인간 때문에 다 망친 거야!”
백우진이 펄쩍펄쩍 뛰며 소리쳤다.
차지찬이 나서서 입을 틀어막으니 반찬용이 빈자리를 차지했다.
“내 차례잖압!”
“자, 자. 진정하고. 그릇 닦자.”
“인터뷰 아직 안 끝났어!”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웃겨.”
“봐! 이래도 내가 화가 안 나게 생겼어?”
“옳지. 옳지. 착하다. 착하다.”
“차지찬!”
“어허. 형 이름을 막 부르면 안 되지.”
“형은 무슨! 아!”
백우진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자 반찬용이 묵은지가 들고 있는 카메라에 고개를 숙였다.
“동료 3명을 감언이설로 꼬드겨 장사를 시작한 소감이 어떠십니까.”
묵은지가 질문을 건네자 반찬용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감언이설이라뇨? 다 같이 모여서 상의하고 시작한 일이에요. 그치?”
반찬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을 구했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대형 유튜버 3명에게 빨대를 꽂은 기분이 어떠십니까.”
“빨대는 맞죠. 맞는데, 허락을 받은 빨대예요. 사실상 빨대가 아니죠.”
“방송이나 열심히 하지 돈 좀 벌었다고 나댄다는 댓글에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니, 잠깐. 진짜 그런 질문이 있었어요?”
“있었습니다.”
“어디 봐요.”
반찬용이 묵은지가 오늘 방송에서 추려낸 채팅을 살폈다.
└예능이 아니었네;;
└요즘 4천 원에 저런 도시락 어디서 못 구한다 진짜
└남긴 하나?
└내가 보기엔 별론데. 고기가 불고기뿐이잖아.
└ㄹㅇ 튀김 하나 정돈 있어야지.
└ㅋㅋㅋㅋㅋ건강 도시락에 뭔 튀김이야
└봄나물 요새 가격 미쳤음. 갓 지은 밥에다가 싱싱한 나물 3개에 고기 반찬, 계란말이, 미역국, 제로콜라도 주는데 4,000원이면 마진 없다고 봐야 함.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진짜 이해가 안 되네. 방송이나 하지 왜 사서 고생을 함?
└좀 유명해지면 사업 벌리는 애들 많잖앜ㅋㅋ
└아저씨 쓸데없는 짓하면서 나대지 말고 이럴 시간에 백반토론이나 더 올려요
반찬용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