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90화
20. 돈 더 많은 돈(1)
백승용차 도시락 관련 영상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었던 탓인지 유튜브 조회 수는 각 채널의 평균치에 약간 못 미쳤는데.
우리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던 터라 신경 쓰진 않고 장사에 집중했다.
그러던 개업 사흘째 되던 날 변화가 생겼다.
“우진아, WTV 뉴스에서 인터뷰 가능하냐는데?”
우지니어스 채널의 이지혜 PD가 전한 말에 정신없이 일하던 우리 모두 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 무슨 짓 했어.”
차지찬이 백우진을 다그쳤다.
“내가 뭘.”
의심스러워서 지그시 바라보니 백우진이 억울하다는 듯 발을 굴렀다.
“진짜야!”
“음주운전, 학교폭력, 마약, 성희롱 다 아니야?”
“뭔 개소리야! 자꾸 이상한 프레임 씌울래?”
장난 삼아 물으니 백우진이 펄쩍 뛰었다.
“그럼 왜지?”
“대표님, KTN 기자가 잠시만 시간 내줄 수 있냐고 하네요?”
WTV 뉴스에서 인터뷰를 요청할 일이 무엇인지 묻기가 무섭게 짐꾼 채널의 안상규 PD가 차지찬을 찾았다.
“나도? 왜?”
“백승용차 도시락 관련해서 인터뷰하고 싶대요.”
차지찬이 곤란해했다.
그러지 않아도 바쁜데 자리를 비우기 미안한 듯 보인다.
“죄송하다고 하고 돌려보내. 지금 바빠서 그럴 시간 없어.”
“왜? 갔다 와.”
주지승이 차지찬을 밀었다.
“에이. 됐어.”
“아직 준비해 둔 거 남았잖아. 30분은 버티겠는데? 우진이도 갔다 오고.”
“계산은 누가 하고?”
“내가 할게.”
이지혜 PD가 계산대에 섰다.
“나가서 하는 게 아니라 매장 안에서 하고 싶대요. 우리 쉬는 테이블에서 하면 될 것 같은데.”
안상규 PD의 말에 차지찬과 백우진이 조금은 안심했다.
멀리 나가지 않으니 여차하면 바로 일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럼 형부터 해.”
백우진이 차지찬에게 말했다.
“그래, 뭐. 길게 할 것도 아니고.”
차지찬이 안상규 PD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선 안상규 PD는 취재 기자와 함께 들어왔고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곧장 인터뷰를 시작했다.
“신기하다. 그쵸?”
훈제 오리를 뒤집으며 묵은지에게 물었다.
“그렇습니까?”
“그럼요. 아는 사람이 뉴스에 다 나오고.”
“대표님도 하실 일입니다.”
“네?”
“어제 NBC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업무일지에 적어 두었는데 확인 안 하셨습니까?”
장사를 마친 뒤에는 곧장 개인 방송을 했고, 지쳐 쓰러지기가 무섭게 일어나 재료 손질을 해야 했다.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못 봤어요.”
“1시간 뒤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근데 뭐 때문에.”
“고물가시대에 유명 유튜버들이 모여 저렴한 도시락을 판매한다는 기획 보도로 보입니다. 추측하기로 주지승 씨의 소속사 토마토 엔터테인먼트에서 힘을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계란후라이를 부치는 주지승을 보았다.
최미카엘이 다가가 뭐라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주지승에게도 인터뷰 요청이 간 듯싶다.
“이틀 전에 여러 신문사에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저도 아는 분들께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토마토, 우지니, 짐꾼 모두 행동했을 테고 신문 기사와 커뮤니티에 많이 언급되고 있으니 방송국에서도 관심을 보인 듯합니다.”
구독자 합계 520만 명의 유튜버들이 하는 일이니 관심 가질 만한 일이긴 하다.
“뉴스라고는 해도 생활, 문화 정도로 짧게 다뤄질 겁니다.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생각보다 일이 너무 커지는데.”
조금 부담스럽다.
“개업 첫 날 백우진 씨가 개인방송에서 한 얘기가 있습니다.”
“뭐라고 했는데요?”
“누군가의 호의나 관심,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이 베풀 수 있다고 합니다. 좋은 결과가 따를 겁니다.”
* * *
-여의도의 한 건물 앞. 점심 시간을 맞이한 직장인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왜 줄을 서 계신가요?)도시락 사러 기다리고 있어요.
-고물가시대. 서울 직장인의 점심 비용이 평균 12,285원으로 조사된 가운데 한 청년들이 이른바 가성비 도시락을 판매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찾으셨나요?)싸서? 요즘 김밥 한 줄도 4,000원인데 이 정도면 완전 혜자죠.
-(어떤 이유로 찾으셨나요?)편의점 도시락은 야채가 거의 없는데, 여기는 영양 밸런스가 좋다고 해서.
-이곳 도시락 매장을 운영하는 인터넷 유명 크리에이터인 청년들은 다이어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플루언서 반찬용]저도 다이어트하는 입장에서 힘든 점이 많더라고요. 일하면서 건강한 식단 먹는 게 돈이라든가 시간이라든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인플루언서 백우진]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심지어 직장인들도 식비를 아끼려고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떼우는 뉴스를 봤어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인플루언서 차지찬]먹는 게 운동보다 중요합니다. 영양밸런스가 맞아야 하는데 식당이나 편의점 음식만 먹으면 불균형이 오기 쉽죠.
-[인플루언서 주지승]삼각김밥 하나로 끼니 떼우는 모습 보면 마음이 아프죠. 예전 생각도 나고. 마음 같아서는 더 싸게 해드리고 싶어요.
-이들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 상대적으로 지갑 사정이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도시락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한편, 취약계층에 도시락을 무상으로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각박한 현실에 단비 같은 청년들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WTV 이유리였습니다.
8시 뉴스에 백승용차가 보도되었다.
상상 이상으로 좋게 얘기해 주어서 얼떨떨한데, 어머니가 전화를 걸으셨다.
“네, 어머니.”
-아이고. 우리 아들 이뻐 죽겠네.
“뉴스 보셨어요?”
-그래. 어떻게 된 거야? 방송국에서 찾아갔어?
“네. 뭐, 좀 복잡한데 그렇게 됐어요. 너무 좋게 말해줘서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잘했어. 돕고 살아야지.
“흐흐흫.”
-엄마가 요즘 우리 아들 덕분에 살맛이 나네?
“식사는 하셨어요?”
-먹었지. 너는.
“저도 먹었어요. 도시락 나눔한다고 좀 많이 만들었더니 남아서 그걸로 먹고 있어요.”
-김치는 안 필요해?
“네. 요새 밖에서 먹느라 집에서 먹을 시간이 없어요.”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네.”
통화를 마치니 여기저기서 카톡이 와 있었다.
백승용차 단체 카톡방도 난리가 났고,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도 TV 봤다고, 백반따라 잘 보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참.”
아직 얼떨떨하긴 한데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 * *
백승용차 도시락을 개업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
뉴스에 보도된 후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관심을 받았는데, 살짝 저조했던 백승용차 도시락 영상 조회 수가 300만을 넘어섰다.
댓글이 얼마나 많이 달리는지, 댓글 보는 낙에 살던 나조차 하나하나 확인하기 힘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어려움도 있었는데.
“좋은 일 하신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영업 시간에 찾아오는 후원 단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관심 있게 설명을 들었는데, 너무 많은 곳에서 찾아와 매장을 운영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대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모든 후원 단체에 후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은 알겠는데 확실히 해야 해.”
“맞아. 하다 보면 끝도 없어.”
일요일.
후원 단체를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지 고민을 나누던 끝에 결국 우리끼리 진행하자는 결론을 냈다.
“근데 우리 쉬기로 하지 않았어? 왜 나오냐고.”
백우진이 테이블에 엎드린 채 불평을 내놓았다.
개인 일정에 도시락 장사까지 한 탓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일요일은 쉬기로 했다.
“다음 주 식단 짜야지.”
주지승이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200개 한정 판매에 불만인 사람이 많더라고. 멀리서 왔는데 번호표도 못 받은 사람도 있고.”
“설마.”
나와 차지찬, 백우진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상상도 하기 싫은 말을 꺼낼 것 같다.
“딱 100개만 더 하는 게 어때?”
“안 돼!”
“제정신이야?”
“지금도 힘들어 죽겠구만.”
이 정도 반응이 나오면 마음을 접을 법도 하거늘 주지승이 나와 차지찬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슬슬 익숙해졌잖아. 하면 또 된다니까?”
“안 돼. 못 해. 나 진짜 죽어.”
백우진이 결사반대했다.
“나도.”
“나도 못 해.”
나와 차지찬도 반대하자 주지승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좋아. 300개로 늘리는 안건은 양보할게.”
“또 뭐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뭔가 또 이상한 말을 꺼낼 것 같아 선수쳤다.
“식단 문제야. 봐.”
주지승이 태블릿을 넘겼다.
그동안 우리 네 명이 각자 업로드한 영상에 달린 댓글을 모아두었는데, 반찬 종류가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백승용차 맛있냐?
└ㅇㅇ
└가성비 지리긴 한데 솔직히 난 편의점 도시락이 나은 듯
└나도. 나물이 너무 많아.
└ㄹㅇ 돈가스 한 장은 있어야지.
└너무 건강한 맛임
무슨 의민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은 백승용차가 건강, 다이어트에 초점을 맞춘 도시락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4,000원짜리 도시락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놈들 신경 쓸 거 없어. 건강 도시락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이 악물고 안 듣잖아.”
차지찬이 말했다.
“그렇긴 한데 이런 니즈도 있다는 거지. 또 우리 목적이 다이어트랑 건강만은 아니잖아.”
“지금까지 받은 걸 조금이나마 돌려주자. 물가가 너무 비싸니까 저렴하고 질 좋은 점심 제공하자?”
백우진이 확인하듯 말했다.
“그렇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렇다고 돈가스 같은 튀김 요리나 소시지를 넣을 수도 없잖아.”
내가 선을 그으니 차지찬과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튀김은 건강, 다이어트와는 상극이다. 가공육도 좋지 않기에 우리 백승용차 도시락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말인데.”
“안 돼. 새 메뉴 내자는 말이면 난 무조건 반대야.”
또 불안이 엄습해서 다시 한번 선수를 쳤다.
“에이. 설마.”
차지찬이 피식 웃고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주지승은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야?”
“기왕 시작한 거 메뉴 하나만 더 늘려보자. 찬용이 하는 거 보니 잘하던데, 기존 백승용차 도시락은 찬용이가 맡고 신 메뉴는 내가 해볼게.”
“그걸 나 혼자 어떻게 다 해?”
“잘하던데 뭘.”
“아니야. 형, 진짜 아니야 이건.”
“이러다가는 다 죽어!”
백우진이 외쳤다.
*여러분의 관심 덕분에 큰 금액은 아니지만 결식우려 아동 도시락 지원에 카카오페이지우진이란 이름으로 후원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사회초년생과 대학생들이 물가가 너무 높아져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떼우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저 또한 사회초년생 시절 배고팠던 기억이 있기에 작은 용기를 냈습니다.
어려울수록 서로 돕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