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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데이-91화 (91/120)

치팅데이 91화

20. 돈 더 많은 돈(2)

생각지도 못한 관심을 받았기에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났다.

봉사 단체의 후원 요청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이 늘었다.

건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지금도 건강한 사람들이 찾아와 자극적이고 맛있는 반찬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 마음은 다 비슷할 거야.”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좀 더 돕고 싶고, 뭔가 더 보완하고 싶은 마음 누가 없겠어.”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우리가 다 할 수는 없잖아. 그래, 시작한 김에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다 쳐도 그때 가면 더 많은 요구가 들어올걸?”

“찬용이 형 말이 맞아.”

내 말이라면 콩으로 된장을 쑨대도 안 믿는 백우진이 나섰다.

“우리 한 달 하기로 했잖아. 매장 정리할 즈음에 더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어떡해. 도와주다가 안 하면 오히려 원망받을 거야.”

잠시 대화가 끊겼다.

주지승도 차지찬도 생각을 정리하는 기색이라 묵묵히 기다리자 이내 주지승이 두피를 쓸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고맙게도 나와 백우진의 의견을 받아주었다.

“그래. 형 나중에 매장 차리면 무조건 매상 챙길게.”

“나도 나도.”

손님들에게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차지찬과 백우진이 위로했다.

“그럼 이건 어때?”

주지승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 하던 대로 하면서 사이드로 돈가스만 하는 거야.”

“어?”

“사이드 하나만 추가하는 거니까 나 혼자 충분히 가능해. 너희한테 부담 갈 일 없어.”

“…….”

“돈가스도 했다가 새우튀김도 했다가. 어? 양 부족하거나 튀김 먹고 싶은 사람한테는 딱이네.”

옴마니반메홈을 외우던 궁예를 바라보던 신하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스멀스멀 광기에 차오르는 눈을 바라볼 자신이 없다.

“하겠다는 데 무슨 수로 말려.”

차지찬이 고개를 저으며 포기했다.

혼자서 하겠다고 하니 말릴 명분이 없다.

“그럼 그렇게 하고. 이제 뭐 해?”

백우진이 다시 테이블에 턱을 대고 물었다.

“운동하고 가.”

차지찬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꺼냈다.

나와 백우진이 못 들은 척하니 주지승이 다른 제안을 했다.

“여기 칼국수 잘하는 집 있다던데.”

“G식당?”

여의도에 오래 있던 차지찬도 아는 모양이다.

“그래. 거기 일요일도 한다던데 가볼래?”

“좋아.”

“찬성.”

오늘 나온 이야기 중 유일하게 반가운 일이라 냉큼 호응했지만 차지찬은 턱을 괴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셋이서 가. 나 식단 중이야.”

넷이 모였는데 한 사람을 빼고 가긴 좀 그렇다.

하는 수 없이 멍하니 있는데 백우진이 벌떡 상체를 들었다.

“세종에서 베토벤 뮤지컬 하는 중인데 보러 갈래?”

“갑자기 웬 베토벤?”

“뮤지컬?”

“응. 표 받았었는데 잠깐만.”

백우진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오늘은 2시 30분이랑 7시 30분에 하네. 보러 가자.”

나는 관심이 좀 있지만 주지승과 차지찬은 내키지 않는 눈치다.

“난 그런 거 못 봐.”

“뮤지컬이 뭐 하는 거야? 노래하는 건가?”

뮤지컬과는 조금도 연이 없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의 반응에 백우진 차마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날 쳐다봤다.

“다 한 마디씩 했잖아. 형도 아이디어 내 봐.”

“엄. 한강 갈래?”

“쓰레기 줍자고 하면 죽여버린다.”

차지찬의 협박에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아. 몰라. 집에 가.”

백우진이 일어서자 주지승이 말렸다.

“조금만 더 있자.”

“왜? 할 것도 없잖아.”

“……집에 있어도 마찬가지잖아. 안 그래?”

처음에는 주지승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했다가 다 같이 눈치챘다.

“와. 이 형, 완전 못됐네.”

“그니까. 나 형수님한테 이른다?”

“한 번만 더 말해 봐. 녹음 못 했어.”

차지찬, 백우진과 함께 돌아가며 놀리자 주지승이 손사레를 쳤다.

“농담. 농담. 난 농담도 못 하냐.”

“아닌데? 표정이 완전 진지했는데?”

뚜르르르- 뚜르르르-

전화 소리가 들려 시선을 옮기니 백우진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너 지금 어디다 전화해?”

“형수님.”

“야, 네가 우리 와이프 번호를 어떻게 알아.”

주지승이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물었다.

-우진아.

“응, 누나. 나 지금 지승이 형이랑 같이 있는데.”

“여보! 아니야! 얘 말 듣지 마! 너 뭐야! 정체가 뭐야!”

-여보세요?

“지승이 형이 방그읍!”

주지승이 백우진의 입을 틀어 막고 전화기를 뺏었다.

“여보 이따 다시 전화할게. 어. 사랑해.”

“으브브븝!”

차지찬이 백우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곤 날 보며 턱을 들었다.

저녀석이 형수님 번호는 어떻게 알고 있냐는 뜻이다.

모른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 * *

월요일.

도시락 장사를 마치고 곧장 사무실을 찾았다.

하루 쉰 덕분에 죽을 만큼 힘들진 않지만 피로가 꽤 쌓였다.

굳은 목 근육을 스트레칭하는데 묵은지가 아메리카노를 잔에 따라 주었다.

“아, 고마워요.”

“편집자를 구하기 전보다 일이 늘었습니다.”

“그러게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대로는 버틸 수 없어서 편집자를 급하게 구했는데, 겨우 찾은 여유에 또 다른 일을 넣고 말았다.

“그러니 당분간은 일을 더 키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죠.”

“오늘 주지승 씨가 튀김기를 가져오셔서 놀랐습니다.”

“그러니까요. 본인이 한다니까 어쩔 수 없는데, 재밌나 봐요.”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만.

주지승이 백승용차 도시락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 다행이다.

“본인 요리를 사람들이 먹고 좋아하는 모습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그 점이 좋다고 하시더군요.”

“지승이 형이 그랬어요?”

“반야식경 유튜브에 올라왔습니다.”

“하긴. 가족하고 미카엘 씨, 저 정도만 먹었으니까.”

처음에는 아내와 딸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유튜버가 되고 이제는 여러 사람에게 본인 요리를 맛 보여 주고 있다.

언젠가는 음식 장사를 해보고 싶다더니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다.

“확실히 요리하던 사람이라서 손이 엄청 빠르더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럼.”

묵은지가 본인 자리로 돌아갔다.

커피를 한 모금 쭉 들이켜고 오늘 다룰 이야기를 한번 훑은 다음 방송을 켰다.

└반하

└아니 좀 쉬라고

└운동하더니 체력이 남아 도나보넼ㅋㅋㅋ

└반하

└도시락 잘 먹었어요

채팅창이 순식간에 채워졌다.

이제는 모든 채팅을 읽는 게 불가능해졌고 반복해 올라오는 내용이나, 중간중간 눈에 들어오는 채팅만 볼 수 있다.

뉴스와 드라마 사이에서 짧게 방영되는 백반따라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데다 얼마 전 뉴스까지 타면서 시청자가 4~5,000명을 유지하니.

정말 출세했단 생각뿐이다.

몇 달 전만 해도 백반토론할 때나 가능했던 수치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맞아요. 죽겠어요. 어. 진짜 그런가? 체력이 좀 생겼나?”

한 시청자의 채팅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예전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서 눕곤 했는데, 요새는 무리를 좀 해도 버틸 수 있다.

“맞아. 나 건강해진 것 같아. 얼마 전에 보니까 발가락이 보이더라고.”

└예?

└발가락은 원래 보옄ㅋㅋㅋㅋㅋ

└맞음 님 체격 좀 좋아짐

└찹쌀떡 같았는데 이젠 좀 단단해 보이긴 함

└근돼가 되어가는 건가

└얘 운동 고작 6달 했음ㅋㅋㅋ 벌써 그렇게 바뀔 리갘ㅋㅋㅋ

└아님. 초고도비만이 6개월 빡세게 운동하면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음. 예전 영상이랑 비교해 봐.

└그냥 딱 봐도 건장해 보이네

└간신 쳐내

이 인간들이 웬일로 내 칭찬을 다하는지 모르겠다.

“좀 생소하긴 한데 보기 좋으니까 계속해 봐요. 나 칭찬 좋아해. 무지성 칭찬 해 줘요.”

└응 싫어~

└ㅋㅋㅋㅋㅋ얼마나 칭찬이 고팠으면

└이래서 칭찬하면 안 됨

└[김쏭 님이 10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좋은 일 하시더라고요. 얼마 안 되지만 저도 보태요.

└그래봤자 돼지임

└헐

└10만 원 ㄷㄷ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얼마 안 되다뇨. 너무 큰 돈인걸요. 감사합니다. 좋은 일에 쓰라고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혹시. 혹시나 해서 말인데 제 사리사욕에 쓰면 안 되는 건가요?”

└양심 ㅇㄷ?

└진짜 개뻔뻔하넼ㅋㅋㅋㅋㅋㅋ

└좋은 일에 쓰라곸ㅋㅋㅋㅋ

└[김쏭]: 환불 좀

“아이. 농담이죠. 알겠습니다. 이 돈 진짜 까먹지 않고 백승용차 운영하는 데 쓸게요. 약속.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데 또 한 번 슈퍼챗 알림이 들렸다.

└[박뚫뺣 님이 10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뉴스 보고 찾아왔어요. 저도 취준생 때 힘들었는데 좋은 일 하시더라고요. 한 손 보탭니다.

└[제철입니다 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파이팅

└헐 뭐임?

└오늘 왜 이럼?

└[이바바바 님이 5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사리사욕에 쓰셈

└[박지영 님이 20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 보니까 계속 적자더라고요. 힘내세요.

“어? 엉?”

슈퍼챗이 이렇게 한 꺼번에 몰린 적은 처음이라 정신이 없다.

“뭐야, 이거? 몰카야? 왜들 이래요. 그만. 그만.”

말리는 도중에도 후원이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중간중간 우리 매출 내역을 언급하는 사람이 있는데, 백우진이 백승용차 도시락 운영에 드는 모든 매출입 내용을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공유해서 그걸 보고 우리가 적자를 내고 있음을 안 모양이다.

“일단 박뚤……뺩? 이거 어떻게 읽는 거야. 아무튼 박뚫뺩 님 100,000원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취준생 때 진짜 힘들죠. 그쵸. 감사합니다. 제철입니다 님 10,000원 정말 감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읽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 수 없다.

한 사람한테 인사하는 도중에 몇 개씩 올라오니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아니. 잠깐만요. 그만해 보세요.”

└[머핀환자 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응 할 거야

└[네모 님이 2,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파이팅

└[포터너드 님이 3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적자 내면서까지 해줘서 고마웡

거의 30분 동안 이어진 슈퍼챗 때문에 무슨 말을 못 하고 고개만 숙였다.

“이제 진짜 그만. 슈퍼챗 해주신 분들 한 분, 한 분 진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은데 못 해서 정말 죄송하고요. 보니까 대부분 백승용차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오늘 받은 후원은 전부 취약계층 도시락 나눔 행사에 사용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중간에.”

후원 내역을 한참 올렸다.

“이바바바 님이 사리사욕 채우라고 주신 50,000원은 제가 챙길게요. 이건 인정이지?”

└그걸 기억하넼ㅋㅋㅋㅋㅋㅋ

└그 많은 것 중에 자기 껀 봤엌ㅋㅋㅋㅋ

└그냥 네가 써 어차피 지금도 많이 나누고 있는데

└이 방 사람들 돈 왤케 많음?

└반찬용 슈퍼챗 이렇게 많이 받은 적 처음 아님?

└대체 얼마얔ㅋㅋㅋㅋㅋ

└평소에 안 주다가 오늘 모아서 준 느낌인데?

└반찬용 입 찢어지는 거 봐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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