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92화
20. 돈 더 많은 돈(3)
방송을 마치고 확인해 보니 하루 만에 약 300만 원의 슈퍼챗을 받았다.
구독자가 크게 늘어난 뒤에도 슈퍼챗 수익은 하루에 30~40만 원 수준이었고 이조차 분에 넘친다고 생각해 왔는데.
정말이지 믿을 수 없다.
“축하드립니다.”
묵은지가 다가왔다.
“그러게요. 이게 무슨 일이에요?”
“좋은 일을 하시니 구독자들도 응원하고 싶었나 봅니다.”
“하.”
여운이 남아 있다.
“뉴스 보면 매일 화나는 일만 나오던데 이런 거 보면 세상 아직 살 만해요.”
대답 대신 작게 미소 짓는다.
“내일 촬영이 있으시니 미리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아, 네.”
월요일 녹화였던 백반따라가 저번 주부터 화요일로 바뀌었다.
백반따라 시즌1이 곧 종영이고, 박상철 PD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때문이다.
“쿡쿡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매출이 370% 늘었다고 고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묵은지가 편지 봉투를 건넸다.
요즘 세상에 고맙단 인사를 편지로 보내서 의아하게 여겼는데 열어 보니 백화점 상품권 10만 원권 5장이나 동봉되어 있다.
쿡쿡이 사장님 통도 크다.
“우리미와 바름에서도 같은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우리미는 백승용차 도시락에 사용하는 쌀이고 바름은 야채 납품을 해주는 곳이다.
두 업체 모두 식자재 일부를 협찬해 주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이건 광고 문의 목록이니 천천히 확인해 주시고, 이쪽은 강연 문의입니다.”
“강연이요?”
“네. 3개 대학에서 문의가 왔는데 날짜가 가까운 순으로 정리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모교 숭실대학교도 있다. 이 달 채플 시간에 강연을 해줄 수 있냐는 내용이다.
“음.”
“일정이 빠듯해서 목록에서 제외할까 싶었는데 대표님 모교로 알고 있어 넣어두었습니다.”
“그러게요. 채플이 보통 6월 되기 전에 끝나니까.”
가급적 하고 싶지만 5월에는 일이 너무 많다.
내일이면 백반따라 촬영이 끝나더라도 백승용차가 있으니 좀처럼 시간을 내기 힘들다.
그러지 않아도 백반따라 촬영 때문에 빠지는 게 미안했다.
묵은지와 이지혜 PD가 나와 백우진을 대신해 자리를 채워주긴 했지만 하던 사람만 못했을 거다.
“백승용차 때문이시라면 기존처럼 제가 대신 근무하겠습니다.”
“음…….”
“대표님 업무 보조하는 게 제 일입니다.”
“PD님은 괜찮다고 해주셨으니 다른 사람한테도 물어볼게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네. 마지막으로 새 콘텐츠 기획입니다.”
서류를 주길래 받아보니 예전에 했던 음식 관련 이야기다.
“백우진 씨와 진행하시던 음식 역사, 문화 관련 내용을 다시 다루면 어떨까 싶어서 작성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자 기획 의도가 적혀 있다.
묵은지는 반찬가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유튜브 알고리즘도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고 예상했다.
기존 먹방 채널에서 음식을 주제로 한 정보 채널로 분류되었으니 전보다 노출 빈도가 높아졌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사실 음식 이야기를 도중에 그만 둔 이유는 당시에 모든 관심이 백반토론에 쏠렸기 때문이다.
백반토론 조회 수가 높아지면서 기존 먹방 영상 조회 수는 조금씩 줄었는데.
아마 유튜브가 반찬가게를 먹방 채널에서 썰 위주의 채널로 바꿔 인식하면서 알고리즘에도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했었다.
묵은지도 나와 같은 분석을 한 것이다.
“지금이라면 경쟁력이 있습니다. 또 새 콘텐츠가 필요할 시기로 봅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그럼 준비 좀 해야겠고. 우진이랑 같이 하면 좋겠다고요?”
“네. 백우진 씨가 출연한 영상 조회 수가 다른 영상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백반토론의 영향이지만, 그만큼 두 분의 호흡이 좋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같은 생각인데. 우진이랑 너무 오래 하는 거 아닐까요? 저야 좋은데 식상하거나 질리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런 반응이 나왔을 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네?”
묵은지는 항상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미래에 닥쳐올 위기를 배제해 왔다.
“함께 있을 때를 보면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두 분 모두 적당히 유치하고 적당히 진지해서 재밌습니다.”
“…….”
“무엇보다 콘텐츠든 출연진이든 반응이 올 때 활용해야 합니다. 흔히 뽕을 뽑는다고 표현합니다.”
“흡.”
묵은지 입에서 뽕을 뽑는다는 표현이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대중을 상대하는 일은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릅니다. 평소와 똑같이 해도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 반응이 있을 때 유지하시고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시는 게 옳습니다. 또 이런 대안도 마련해 두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묵은지가 음식 역사, 문화 관련 콘텐츠 기획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좋아요. 이건 이번 주 금요일에 좀 더 얘기해 봐요.”
“알겠습니다.”
“사실 주제만 던져주면 우진이가 알아서 할 것 같긴 한데.”
“빨대 꽂을 생각이십니까?”
고개를 드니 묵은지가 씩 웃었다.
“농담입니다.”
묵은지가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나섰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는데 묵은지가 웃는 일이 잦아졌다.
첫인상은 깐깐하고 딱딱했는데 웃음이 늘어나는 걸 보니 반찬가게와 이 일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
나와 반찬가게를 편하게 여긴다는 말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후.”
방송도 마쳤고 빨리 퇴근해서 자야겠다. 내일 촬영지가 충북 단양이라 이동시간이 상당하다.
방을 나섰다.
“퇴근하죠?”
“전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내일 백승용차 가야 하는데 일찍 퇴근해서 쉬세요.”
묵은지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 부분도 예전과는 다르다.
할 일이 남았다면서 버티던 사람이 이젠 휴식을 받아들인다.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멘 뒤 책상 아래 휴지통을 들어다 탕비실로 향한다.
그냥 가도 될 텐데 퇴근할 때는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잡아줄게요.”
쓰레기를 담기 쉽게 종량제 봉투를 잡아주니 묵은지가 쓰레기통을 탈탈 털었다.
“어?”
반가운 물건이 있다.
“이거 요 앞 분식점 그릇 아니에요?”
황색 두꺼운 종이 재질로 된 납작한 이 원통 그릇은 분명 건너편 분식점에서 쓰는 일회용기다.
“……아닙니다.”
“맞네요. 여기 로고도 있고. 식사하신 거예요?”
묵은지가 드물게 당황하더니 황급히 종량제 봉투를 눌러담았다.
“어땠어요? 다닐 때마다 냄새 때문에 힘들었는데. 뭐 드셨어요? 맛있었어요?”
섭식 장애가 있는 묵은지가 뭔가를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쁘고 또 뭘 먹었는지 궁금해서 얘기하던 차.
묵은지가 상체를 불쑥 들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어서 당황스럽다.
“어…….”
“그런 말씀 안 하셨으면 합니다.”
“예?”
“……수치스럽습니다.”
“예?”
묵은지가 다급히 손을 씻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섰다.
나 뭐 잘못했나?
대체 어떤 점에서 수치심을 느꼈는지 감도 안 잡히는데 저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다.
“PD님, 잠깐만요. PD님!”
서둘러 문을 잠그고 뛰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는 것을 겨우 잡았다.
“잠깐만요! 은지 씨!”
“이러지 마십시오.”
“이대로 가면 어떡해요. 일단 진정하고 얘기 좀 해요.”
묵은지가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눌러서 나도 버튼을 반복해 눌렀다.
그러기를 얼마간 묵은지가 한숨을 내쉬며 버튼에서 손을 뗐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층을 눌렀다.
일단 붙잡긴 했는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저.”
고개를 돌리니 묵은지가 입을 꾹 다문 채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수치스럽다는 말을 할 만큼, 뭔가 신경 쓰이고 창피하단 뜻이다.
“미안해요.”
“…….”
“PD님이 뭔가를 드셨다는 게 너무 기뻤어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아무 말이 없다.
“괜찮으면 어디가 잘못됐는지 얘기해 줄래요?”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묵은지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여 먼저 발을 옮기니 천천히 따라 내렸다.
“데려다 줄게요. 요 앞에 주차해 놨어요.”
묵은지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미안해하실 일 아닙니다.”
입담으로 먹고 살았다.
뭔가를 주장하거나 설득하는 일, 일상적인 대화 등 대화에는 나름 자신이 있건만 이 사람 앞에서는 자꾸만 말문이 막힌다.
“당황스러워서 과하게 반응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묵은지가 고개 숙여 인사하곤 버스 정류장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잠깐만요. PD님.”
묵은지가 돌아섰다.
“이렇게 가면 어떡해요. 전 이대로 PD님 못 보내요. 밤새 잠도 못 잘 거고 내일 녹화도 망칠 거고 내내 뭐가 잘못되었을까 고민하다가 모레는 PD님 보기가 무서워질 거예요.”
“무섭.”
“네. 무서워요. 이제 겨우 정 붙여 가는데 모든 게 망쳐질까 봐. 지금도 불안해 미치겠어요. 무엇보다.”
하필 삑사리가 나서 당황했는데 묵은지는 웃지 않았다.
“뭔가 상처를 받았는데 그대로 돌려보낼 수가 없어요. 제가 힘든 거 이상으로 힘들 거 아니에요.”
나도 나지만 묵은지도 분명 오늘 밤이 괴로울 거라 생각한다.
묵은지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벤치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앉아서 얘기해요.”
자리를 잡으니 묵은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가끔. 정말 가끔 자제력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떡볶이라든지 순대, 아이스크림을 닥치는 대로 먹습니다. 저도 그런 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섭식 장애에 관하려 찾아볼 때 거식증 환자가 간혹 폭식을 한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면 자괴감이 밀려듭니다. 결국 식욕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이 정도밖에 안 됐나 싶은. 고작 식탐조차 자제하지 못한다는. 그런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쏟아집니다.”
묵은지는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달달 떨렸다.
“그런 감정이 차오르면 먹었던 것을 모두 게워 냅니다. 자제력이 없으니 그런 짓을 해서라도 돌이켜보려는 겁니다.”
스스로 먹은 걸 토해내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도 안 된다.
그녀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무엇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창피하다는 건 그런 뜻이었습니다.”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묵은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먹는 게 잘못이니까?”
조심스레 물으니 묵은지가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도 예전에 빵을 있는 대로 먹고 한동안 힘들어 했었다.
그 후로도 가끔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닥뜨렸는데 그때마다 자책하곤 했다.
“자제력이 없다고 하셨는데 반대예요.”
묵은지가 고개를 돌렸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식욕이 돌았다는 건 PD님이 그만큼 위험한 상태였다는 뜻이에요. 신체가 더는 못 버티니까 생존본능으로 움직인 거라고요.”
묵은지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상관없다.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식사를 참은 걸 어떻게 자제력이 부족하다고 해요.”
“…….”
“그리고 솔직한 말로 그게 어떻게 폭식이에요. 간식거리도 안 되더만.”
묵은지가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평소 마른 몸이 좋다고 얘기한 본인이 건강에 안 좋고 살찌는 음식을 먹은 걸 들켜서 창피해하는 것 같다.
“PD님, 우리 올바른 다이어트 영상 만들었잖아요. 건강 도시락도 만들고요. 논문도 찾아보고 실제 사례도 찾아보고.”
“…….”
“이제 뭐가 옳은지 알 거라고 생각해요. 참지 말아요.”
그동안 괜한 참견으로 여겨지진 않을까 싶어 미루고 또 미뤘던 말을 이제야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저한테 계약 문의하실 때도, 홍당무 퇴사하실 때도, 우리 회사 들어올 때도, 쿡쿡이랑 계약할 때도, 백승용차 만들 때도 PD님은 항상 옳았어요. 그리고 떡볶이 먹고 싶은 마음도 틀리지 않았어요.”
최근 묵은지가 보여준 웃음이 이 정도 말은 해도 된다고 말해준다.
“PD님 되게 괜찮은 사람이에요.”
고작 얼마나 봤다고 남을 함부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가 있기에 그녀를 믿고 솔직한 심정을 얘기했다.
쿡쿡이 계약 건과 같은 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당신은 멋진 사람이라고 그러니 자책하지 말라고 줄곧 말하고 싶었다.
“…….”
그저 여기저기로 시선을 옮길 뿐 대답이 없다.
“진심이에요.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쭉 지켜본 제 진심이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려던 찰나, 묵은지가 벌떡 일어났다.
“너,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잠시 이해가 안 됐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욕구를 억제해 왔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으니 한순간에 바뀌긴 힘들 거다.
“괜찮아요. 천천히 알아가면 되죠.”
묵은지가 고개를 돌렸다.
동그랗게 뜬 눈이 잔뜩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간 건강을 넘어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
내가 비만으로 인해 당뇨를 비롯한 각종 성인병을 얻었듯이, 묵은지 또한 극단적인 다이어트로 인해 위험한 상태다.
나름 건강한 식단을 추구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니, 나도 묵은지도 본인과 반찬가게를 위해서라도 건강해져야 한다.
“처음은 어색할 테지만 같이 하면 훨씬 쉬울 거예요.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그런 말씀 한 번도 안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면 눈치라도.”
묵은지가 물었다.
“불편해할까 봐 그랬죠.”
“그럼 지금은 왜…….”
“PD님 요즘 자주 웃으시더라고요. 편해졌구나 가까워졌구나 싶었죠. 혹시 제 착각이었어요?”
“……그건 그렇지만.”
묵은지가 날 보았다.
“저와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네.”
“어색해도 처음부터?”
“네.”
“대, 대체 언제부터 그런…….”
“처음 뵀을 때부터요.”
묵은지가 입을 벌렸다.
“곤란합니다. 너무. 너무 갑작스럽고 또 그런 쪽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괜찮아요. 천천히 대답해도 돼요.”
묵은지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부리나케 뛰어갔다.
“…….”
하긴 나도 당뇨에 걸렸단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충분히 식사를 하고 운동도 겸하라고 해도 당장 받아들이긴 어려울 거다.
천천히 설득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