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93화 (93/120)

치팅데이 93화

20. 돈 더 많은 돈(4)

“놀다 오니 좋냐?”

수요일.

백승용차로 출근하니 차지찬이 어깨를 툭 부딪히며 물었다.

백반따라 촬영 때문에 하루 빠진 것으로 놀리는 거다.

“놀기는. 엄연히 일이야.”

“여행 가게 해줘.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도 줘. 출연료도 주고. 이게 어떻게 일이야?”

“그건 그래.”

사실 출연료가 0원이라도 이득이라 할 수 있다.

“어제가 마지막 촬영이라고 했나?”

주지승이 물었다.

“응. 윗분들이 가만있질 않나 봐.”

“그건 뭔 소리야?”

차지찬이 물었다.

“뉴스랑 드라마 사이가 광고 단가가 세잖아.”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주지승과 차지찬도 잘 아는 일이다.

“근데 15분짜리 프로그램이 들어가도 된다는 게 백반따라 덕분에 확인이 된 거지. 그러니까 그 자리에 PPL 가득 넣은 프로그램 넣고 싶은가 봐.”

“결국엔 돈이구만.”

“그치.”

어제 촬영을 마치고 제작진과 조촐한 쫑파티를 가졌는데, 술에 취한 박상철 PD가 해준 이야기였다.

어쩐지 원래 계획되었던 기간보다 줄어들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라 묘하게 납득이 되었다.

“그래도 시즌2 확정됐으니까.”

“그래. 어쩔 수 없는 일보단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차지찬이 등을 퍽 때리며 응원했다.

“뭐야. 느낌이 다른데?”

“뭐가?”

“이 새끼.”

차지찬이 갑자기 날 와락 안고 등을 더듬었다.

“뭐, 무슨 짓이야!”

“이야. 형, 얘 등 봐. 제법인데? 어! 허벅지!”

“어디.”

주지승까지 다가와 등과 어깨 허벅지를 주물러댔다.

“아! 하지 마! 소름 돋아!”

“제법인데?”

주지승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야, 반찬용. 운동 열심히 하긴 했다?”

“진짜 하지 마. 이거 엄연히 직장 내 괴롭힘이야.”

“좋은 아침.”

마침 백우진이 들어왔다.

“백우진, 얘 허벅지 만져 봐.”

“내가 찬용이 형 허벅지를 왜 만져.”

“엄청 딴딴해.”

차지찬이 또 한 번 내 허벅지를 주물러댔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밀쳐내려던 찰나, 묵은지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

반가워서 인사하려니 묵은지가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매장 안 쪽으로 들어갔다.

나도 주지승도 차지찬도 묵은지가 휙 하고 지나가버린 길을 보며 말을 잊었다.

“PD님하고 무슨 일 있냐?”

“아니?”

문득 월요일에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 평소랑 좀 다른데?”

“아, 별거 아니야.”

나도 다이어트를 하기로 마음먹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묵은지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거다.

내가 대답을 재촉할까 봐 피하는 것 같은데 이따가 천천히 대답해도 되니 충분히 고민해 보라고 말해줘야겠다.

* * *

“오, 새우튀김?”

점심 장사를 준비하던 중 차지찬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일어나서 보니 주지승이 냉동 새우를 꺼내고 있었다.

“오늘 사이드야?”

백우진이 다가와 물었다.

“어. 도시락엔 새우튀김이지.”

주지승이 씩 웃으며 답했다.

갑각류 알러지가 있지 않고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수많은 도시락 매장과 편의점 도시락을 섭렵한 나 또한 새우튀김을 높이 평가한다.

“지찬아, 대야에 찬물 좀 받아줄래? 물 10리터 넣고 소금이랑 식초 10스푼씩 넣으면 돼.”

“소금 식초 10스푼씩?”

“맞아.”

“식초는 왜 넣어? 연해지라고?”

호기심 많은 백우진이 물었다.

“냄새 잡으려고.”

“아~”

차지찬이 대야에 소금, 식초를 섞은 물을 받으니 주지승이 냉동새우를 조심스레 넣었다.1)

“이렇게 손질된 것도 팔아?”

백우진이 손을 보태며 물었다.

“노바시 새우라고 손질할 필요가 없어서 업장에서 많이 써. 칼집을 내둬서 익혀도 휘지 않고.”

“꽤 길어.”

“새우튀김은 거의 이거 쓰지?”

“이렇게 해서 얼만데?”

“20팩에 125,000원 쯤 했나?”

주지승이 확인 차 고개를 돌리니 최미카엘이 125,240원이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럼 이것도 비용처리 하자.”

“아니야.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그래도 매출 잡아야지. 돈 받고 팔았는데 기록 안 남기면 큰일 나. 이따 125,240원 보내줄게.”

매출입 장부 관리하는 녀석이 똑부러져서 안심이다.

“근데 이거 다 몇 마리야?”

“30미에 20팩이니까 600마리.”

“그럼 몇 개씩 주게?”

저렴한 도시락을 추구하기에 사이드 메뉴는 무조건 1,000원으로 설정해 두었다.

새우튀김을 몇 마리나 줄지 궁금하긴 하다.

“한 마리당 얼마지?”

“208원.”

주지승이 잠시 고민하니 뒤에서 고사리를 다듬던 차지찬이 답을 내놓았다.

“진짜야?”

믿기지 않아 물어보니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208원.”

“문과라서 숫자 못 샌다던 인간이 암산은 드럽게 빠르네.”

예전에 당한 일이 생각나서 한 소리 하니 차지찬이 피식 웃었다.

“그럼 5마리씩 주면 되겠네.”

“5마리면 1,040원인데? 기름값이랑 튀김가루랑 계란은 어쩌고?”

“어차피 손해볼 거 알면서 하는 거잖아.”

주지승이 날 보며 말하길래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천 원에 새우튀김 5마리면 미쳤다.”

“맞지. 맞지.”

백우진이 스마트폰에 이것저것 기록하며 답했다.

“씁. 그래도 되나?”

차지찬이 고개를 돌렸다.

“뭐가?”

“우리가 너무 싸게 팔면 주변에 피해 주는 거 아니야? 우리야 봉사지만 사람들이 다른 가게 가서 여긴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하면 어떡해.”

생각지도 못한 가정이라 눈만 껌뻑이며 서로 눈치만 보았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 지.”

“있지.”

“있지. 있어.”

수십, 수백만 명의 구독자로부터 댓글을 받다 보니 세상에 미쳐도 이런 미친 인간이 있구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상식적으로는 봉사 활동이니 당연히 싸게 판매하는데, 생업을 목적으로 한 매장에서 똑같이 요구하는 미친 인간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럼 한 3마리만 할까?”

주지승이 물었다.

“3마리 정도면 뭐.”

“3마리도 충분히 판타지야.”

“그럼 3마리로 가자.”

백우진이 또 뭔가를 적었는데 아마도 매출에 기록할 내용 같다.

“아.”

매출표를 보다 보니 문득 그제 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방 시청자들이 후원해 줬어. 백승용차 운영에 보태라고.”

“맞다. 형 그 날 먹방 채널 하루 슈퍼챗 세계 3위 찍었더라?”

“엥?”

“그래? 얼마나 받았는데?”

“300 좀 넘었어.”

“반찬용.”

“이열.”

“와.”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동시에 탄성을 뱉었다.

나보다 훨씬 많이 버는 인간들이 이러니까 꼭 놀리는 것 같다.

“왜 이래. 자기들이 더 벌면서.”

“나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나도.”

“나도.”

주 수입원이 슈퍼챗이 아닌 모양이다.

사실 운동, 먹방, 요리, 지식 모두 슈퍼챗을 많이 받는 분야는 아니다.

“사실 나도 좀 받아서 사업자 계좌에 옮겨놨어.”

백우진이 사업자 계좌를 보여주었다.

“우리 방은 없었어.”

“우리도.”

차지찬과 주지승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나와 비슷하게 갑자기 시작될 것 같은데 시기의 문제라고 본다.

“아무튼 잘됐잖아. 이걸로 적자 매꾸면 되고.”

“그러게.”

주지승이 스테인리스 판을 세 개 꺼내서 튀김가루와 계란물, 빵가루를 각각 넣었다.

우리도 각자 할 일이 있어서 차지찬은 고사리를 다듬고, 나는 밥과 된장국을 만들고, 백우진은 도시락통을 정리하는데 새우 튀겨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보다 아름다운 소리가 또 있을까.

베토벤의 교향곡, 슈베르트의 가곡,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비견할 만하다.

무스카리보다 달콤하고 프리지어보다 그윽한 냄새 또한 일품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튀김기 앞으로 가니 백우진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나 줄까?”

고민도 안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기다려 봐.”

주지승이 피식 웃으며 새우를 마저 튀기고, 새 프라이팬을 꺼내 간장과 양파, 계란을 넣고 볶았다.

“찬용아, 밥 다 됐어?”

“어.”

“여기 조금만 담아주라.”

대접에 밥을 퍼서 주니 계란, 양파, 간장을 넣어 익힌 소스를 붓고 그 위에 새우튀김 세 마리를 얹었다.

“미쳤다.”

순식간에 완성된 새우튀김 덮밥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먹어 봐.”

주지승이 권하자 백우진이 젓가락을 든 채 새우덮밥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러고 있어? 빨리 먹고 넘겨.”

마음이 다급해져서 재촉하니 백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새우는 영어로 슈림프.”

“뭐?”

“중국어로는 샤.”

“그래 멘보샤. 헛소리 말고 빨리 먹어.”

“스페인어로는 감바스.”

“그래! 감바스 알 아히요!”

“일본어로는 에비.”

백우진이 고개를 숙이고 새우튀김 덮밥을 바라보았다.

새우튀김이 눅눅해지는 꼴을 더는 볼 수 없어 내치려던 차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건 에비가 셋이니 여포덮밥.”

“……뭐?”

“픕.”

주지승이 작게 웃었고 차지찬은 관심 없는 모양이다.

아마 삼국지에서 아버지가 셋이었던 여포를 빗댄 말장난 같다.

“지금 새우튀김 덮밥을 앞에 두고 뭔 개짓거리야. 비켜.”

백우진을 밀어내고 새우튀김 하나를 집었다.

와삭 하는 소리와 함께 튀김 옷의 속살이 느껴지고 그 안에 탱글탱글 육질을 보존한 새우와 살을 맞대었다.

기다림이 너무나 길었던 탓일까.

씹힐 때마다 나는 고혹적인 소리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영악하기 짝이 없는 탱탱한 식감 때문일까.

갓 튀긴 새우튀김 앞에서 나는 오직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절제라고는 전혀 모르는, 본능에 이끌려 게걸스럽게 새우를 뜯어먹는 짐승일 뿐이었다.

“내 거야!”

백우진이 옆에서 날 밀쳐내려 하지만, 다람쥐가 곰의 식사를 방해할 순 없는 법이다.

“다 먹지 마? 어?”

새우튀김을 맛보았으니 이제 갓 지은 쌀밥과 소스를 함께 먹어볼 차례다.

숟가락을 들어 그대로 한술 푹 뜨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간장 소스에 버무려져 익은 계란이 녹아내린 황금처럼 눈부시다.

“허우.”

입에 넣으니 뜨거움이 훅 밀려든다.

쌀알 하나하나에 스며든 소스가 일품이다. 간장의 감칠맛과 짠맛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단 한 번으로 참을 수 없는 맛이다.

“나 먹을 것도 남기라고!”

또 한 번.

“야, 이 돼지야!”

다시 한번.

“그만 먹어! 그만 먹으라고!”

과연.

이 폭력적인 조합은 도시락계의 여포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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