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107화
22. 으쌰으쌰(8)
“으으으음.”
“뭔가 마음에 걸리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네. 요즘 주가 조작이나 코인 관련해서 문제가 많잖아요. 혹시나 문제 있는 회사면 괜한 일 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묵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홍당무가 깨끗한 기업은 아닌 것 같고요.”
이번 일을 통해서 홍당무가 인터넷 방송인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게 되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댓글 조작, 추천 조작 등을 활용하는 사람들이니 제임스자산운용이라고 해서 합법적인 일만 한다고 믿긴 힘들다.
묵은지가 빙그레 웃었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습니다.”
“그럼 이건 어쩌죠?”
“대표님 뜻은 제가 홍성일 대표에게 잘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줄래요?”
“걱정 마십시오.”
고개를 끄덕이곤 내 방으로 들어섰다.
“으음.”
그러지 않아도 백승용차 광고 덕분에 몫돈이 생겨서 정기예금이라도 들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법인회사 반찬가게와 나는 수익을 7 대 3으로 나누고 있는데, 그 덕에 광고 계약으로 번 돈은 6,300만 원이다.
팔공이를 개인 명의로 사는데다 일시불로 결제한 바람에 현재 수중에 있는 돈은 1억 5,000만 원 정도.
그냥 두기에는 아까우니 정기예금이라도 들어야겠다.
* * *
“프로틴.”
“틴트.”
“트랙. 이겼지?”
“랙레일.”
“그게 뭔데?”
“톱니 달린 레일. 아프트식 기관차 달리는 구간에 쓰여.”
“일. 일…… 일꾼.”
“꾼? 악!”
뒷자리에 앉아 끝말잇기를 하던 백우진이 비명을 내질렀다. 차지찬에게 꿀밤이라도 맞은 모양이다.
“다시 해. 짐승.”
“승모근.”
“근대.”
“대퇴근.”
“근비.”
“근비가 뭐야? 자꾸 어려운 말 쓸래?”
“식물 뿌리에 주는 비료를 근비라고 해. 빨리 해.”
“비. 비…… 비복근.”
“근. 근쭝.”
“쭝? 중이 아니라 근쭝?”
“응.”
“야, 그런 말이 어딨어? 뭔 뜻인데?”
“있어. 한약재 잴 때 한 근을 한 근쭝이라고 해.”
“찾아 본다?”
“있다니까.”
“진짜 있네? 지승이 형, 반찬, 근쭝이란 말 알고 있었어?”
“그런 말을 어떻게 알아.”
토요일.
강원도 도계로 향하는 길이다.
어제 백승용차 쫑파티에서 강원도 다녀온다고 했더니 이 셋도 같이 가자고 졸라댔다.
술김에 하는 말이겠거니 싶었는데 아침에 짐까지 챙겨 집 앞에 모여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빨리 대.”
“자.”
“아으으으.”
백미러로 보니 약이 바짝 오른 백우진이 차지찬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곤 신음했다.
맞은 사람은 멀쩡하고 때린 사람만 고통스러워하니 분명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게임이다.
“근데 안 바빠? 왜 따라오는 거야?”
“이번 주말 일 다 뺐어.”
“한 달 동안 매장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코에 바람 좀 넣어줘야지.”
“휴방 공지 올렸어.”
백승용차가 힘들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일정이 워낙 바빠서 주말 없이 일하던 사람들이 이틀이나 일정을 비웠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네가 가면 이유가 있겠지 싶고.”
“그치. 반찬용이 4시간 운전해서 갈 정도면 어지간히 맛집 아니겠어?”
“그래서 뭐 먹으러 가?”
“물닭갈비.”
“물닭갈비가 뭔데?”
“춘천 닭갈비랑은 다르나?”
“닭갈비인데 육수 넣어서 먹는 거야.”
“처음 들어 봐.”
“그러게. 영동 쪽은 그렇게 먹나?”
“춘천 닭갈비하곤 다르지. 육수랑 부추랑 미나리 잔뜩 넣고 끓이는데 맛있어. 겨울엔 냉이도 넣고.”
야채를 싫어하는 나도 좋아하니 이 사람들 입에도 맞을 거다.
중간에 한 번 쉬고 12시를 조금 넘겨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도착했다.
T식당 주차장에 딱 한 자리만 남아 있어, 벌써 사람이 많이 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서 순한맛 4인분과 우동 사리 2개를 주문했다.
“사람 진짜 많다.”
“맛집이긴 한가 봐.”
“여기 늦게 오면 자리 없다고 하던데 운이 좋네.”
“어디.”
주지승이 메뉴판을 확인했다.
“매운맛이랑 순한맛 딱 둘이네?”
“응.”
백승용차를 운영하면서 느낀 거지만 메뉴는 확실히 적을수록 좋다.
재료를 관리하기에도 수월하고 이 집처럼 장사가 잘 되면 순환도 잘 되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음식 나왔어요.”
사장님이 금방 물닭갈비를 내주셨다.
*순한맛 3인분과 우동사리 1개
“와.”
“거의 탕 아니야?”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물닭갈비를 보고 감탄했다.
수북히 쌓인 야채 틈 사이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빨간 육수는 언제 봐도 매력적이다.
“카레 냄새 난다.”
“그러게. 이 집은 카레 가루도 좀 넣나 보네.”
“형도 처음이야?”
“응.”
아침도 안 먹고 출발했고 휴게소에서도 딱히 먹은 게 없었기에 배가 미친 듯이 고프다.
우동 사리가 제대로 익기도 전에 한 젓가락씩 하다 보니 2인분을 금방 해치웠다.
“국물 되게 깔끔하다.”
백우진이 감탄했다.
“미나리 때문일 거야. 여기 진짜 괜찮다.”
“먹다 보면 쫄아서 맛이 달라져.”
물닭갈비의 매력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육수 맛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다 익었다.”
주지승이 말을 뱉기가 무섭게 모두 달려들었다.
“허우.”
“호. 호.”
닭고기를 입에 넣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열기를 머금은 살이 너무도 야들야들하다. 생전 이렇게 부드러운 닭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엄청 부드럽다.”
“그러게. 연육을 어떻게 한 거지.”
닭고기는 보통 우유에 재워 살을 부드럽게 하고 잡내도 제거하는데, 그런 걸 모를 리 없는 주지승도 이 집 닭고기만큼은 신기한 모양이다.
“와. 미쳤다.”
차지찬이 부추와 닭고기를 함께 먹으며 연신 감탄한다.
“강원도까지 와서 먹을 만하다. 진짜.”
“그러니까.”
백우진은 앞접시에 국물을 받아서 한 번에 쭉 들이켰고 주지승은 사진을 찍다가 안 되겠는지 카메라를 옆으로 치우고 식사에 집중했다.
“나 밥 먹을래.”
백우진이 말했다.
“볶음밥 안 먹고?”
“둘 다 먹으면 되지.”
“돼지.”
“그래서 안 먹을 거야?”
백우진이 묻자 서로 눈치 보다가 주지승이 사장님을 불렀다.
“사장님, 여기 밥 4개요!”
밥이 나올 즈음에는 재료가 진득하게 끓여져 육수가 제법 걸쭉해졌다.
흰쌀밥이 딱 어울렸기에 반찬은 깍두기와 단무지뿐인데도 한 공기를 뚝딱 먹어 치웠다.
“몇 개 볶아?”
밥을 먹고 나니 물닭갈비도 양이 상당히 줄었다. 백우진이 당연하다는 듯 볶음밥 이야기를 꺼냈다.
“2개만 해.”
“그래. 2개만 볶자.”
나와 주지승이 2개만 볶자고 의견을 내놓으니 차지찬이 정색을 했다.
“사람이 몇인데. 4개 해.”
대회 준비로 식단한다더니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지 오래다.
“형 대회 나간다며.”
“안 먹었으면 몰라. 이미 먹었는데 어떻게 참냐?”
“그건 그래.”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다.
모르는 음식은 먹고 싶은 감정이 크지 않지만, 얼마나 맛있는지 아는 음식 앞에선 버티기 힘들다.
“사장님, 저희 밥 4개 볶아 주세요.”
“네. 불 올려주세요.”
사장님이 금방 다가오시더니 밥을 준비해 주셨다.
자작자작한 팬에다 밥과 김가루를 넣은 뒤 참기름을 넣으시는데 순간 너무 놀랐다.
참기름을 한 바가지나 넣은 사장님은 무심하게 밥을 볶아서 펼친 뒤 주방으로 돌아갔다.
“어.”
“…….”
“실수 아니시겠지?”
당황한 기색은 조금도 없어서 정말 이게 맞자 싶은데, 고소한 냄새를 맡으니 또 맛있어 보이긴 한다.
“냄새가 좋긴 하다.”
“직접 내려 쓰시나 보네. 그렇게 많이 넣었는데 냄새게 독하지 않잖아.”
“소주 병에 담겨 있었어.”
“쓰읍.”
볶음밥과 참기름 냄새를 함께 맡으니 침이 나온다.
팬에 눌러 붙기 시작한 가장자리 부분을 맛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맛있어. 진짜 맛있어.”
오늘 분명 혈당이 튈 것이다.
우동에 흰쌀밥을 한 공기 다 먹은데다 참기름을 듬뿍 넣은 볶음밥까지 먹었으니 내 피가 버틸 리 없다.
그럼에도 눈앞에 놓인 음식을 거부할 수 없다.
비강을 가득 채우는 고소한 향과 자극적인 양념, 중간중간 씹히는 야들야들한 속살과 늘러붙은 밥알까지.
정말이지 완벽한 물닭갈비다.
* * *
점심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모두 포식했는지 표정들이 한껏 풀어져 있다.
“왜 우리 집 근처엔 이런 데가 없지?”
“내 말이.”
이른 아침부터 나오기도 했고 배도 부르니 잠이 솔솔 온다.
“이렇게 느긋하게 있었던 적이 대체 얼마만이냐.”
“그러게.”
특별한 대화 없이 커피도 마시고 멍하니 있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휴식이다.
“형은 다음 주부터 또 바쁘겠네.”
문득 6월 말 행사가 떠올라 차지찬에게 말을 걸었다.
“어. 바로 시작해야지.”
“진짜 사서 고생이라니까.”
“고생보다 얻는 게 있으니 하는 거다 이 말이야.”
차지찬의 말에 나도 백우진도 살짝 미소 지었다.
국토 대장정은 차지찬이 작년부터 준비해 온 행사로.
인터넷방송인들이 모여서 서로 친분도 나누고 운동도 하고 선행도 베풀자는 취지였다.
이쪽 업계에서는 상당히 큰 관심을 모았는데, 260만 구독자를 확보한 짐꾼 채널이 기획, WTV가 제작하는데다 넷플릭스와도 계약이 된 터라 다들 참가하길 원하고 있다.
“참가 신청은 다 받았잖아.”
“엉.”
“몇 명이나 돼?”
“1,200명 좀 넘던데.”
주지승이 눈을 크게 뜨고, 백우진과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이 너무 크지 않아?”
“그치. 다 같이 하면 좋겠는데 그렇게까지 대인원이 하는 건 좀 힘들어. 딱 200명만 하려고.”
“그래도 많아.”
“숙소랑 식당 다 확보가 된 거야?”
“그럼. 우리 애들이 얼마나 꼼꼼한데.”
차지찬이 안상규 PD와 다른 직원들을 자랑스레 여기는 건 좋은데, 그들이 백승용차도 도왔다는 게 문제다.
“백승용차도 도왔잖아.”
“그러게.”
“이 형이 진짜 악독 사장이었어.”
“그니까. 그 와중에 그걸 어떻게 다 준비했어?”
“그러니까 사람 많이 뽑아. 돌아가며 쉬면 다 할 수 있어.”
“그럴 돈 없어.”
“많이 벌면서 엄살은.”
“직원들도 직원들인데 너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주지승이 걱정스레 말했다.
“대회도 나간다며.”
“그래. 백승용차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생각해 보니 정상적인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일정이 아니다.
“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걱정 붙들고 형이랑 너희는 와서 재밌게 놀다 가면 돼.”
차지찬이 씩 웃었다.
국토 대장정을 정말 기대하는 것 같아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