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108화 (108/120)

치팅데이 108화

22. 으쌰으쌰(9)

“근데 이름이 뭐야?”

백우진이 국토 대장정 행사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참가 신청까지 받았는데 행사명이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걸어서 저 하늘까지.”

차지찬이 자랑스레 답했다.

누가 봐도 예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에서 따온 제목인데, <걸어서 하늘까지>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걱정된다.

말려야 하나, 그래도 저렇게 자신 있게 말했는데 상처받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 백우진이 입을 열었다.

“올드해.”

“그래?”

“난 보지도 못했어. 노래만 알아.”

“넌?”

차지찬이 내게 물었다.

“나도 노래만 알아.”

“형은?”

“난 보긴 봤는데 기억이 거의 없어. 우리도 완전 어렸을 때잖아.”

“그래? 제작사랑 방송국 사람들은 좋아하던데.”

90년대 초반 당대 붐을 일으켰던 드라마인 만큼 40~50대 사이에선 호응을 얻을 수도 있다.

“괜찮아. 모르면 어때. 노래 들으면 끝장 나.”

확실히 전주부터 걷고 싶은 느낌이 들긴 한다.

“그나저나 돈 많이 들겠는데. 200명이나 되는 사람이 보름이나 같이 하면.”

“맞아. 도시락이야 우리 같이 부담해도.”

주지승과 백우진이 걱정스레 말했다.

“엉. 20억 정도.”

“어?”

깜짝 놀라 외치듯 물었다.

주지승과 백우진도 얼이 빠져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뭘 놀래. 다 투자 받고 광고 받고 해서 하는 거야.”

“미쳤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60만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버라도 상상하기 힘든 예산이다.

차지찬 본인이 설명한 대로 투자와 광고가 없었다면 진행하기 힘들었을 거다.

“그니까 나 망하지 않게 홍보 좀 제대로 해줘.”

“하기야 하지. 와, 근데 진짜 짐꾼 대박이다.”

“나도 준비하면서 계속 이게 맞나 싶었는데 백승용차 결과 나오니까 딱 마음이 잡히더라.”

차지찬이 날 보며 말했다.

“뭔 말이야?”

“뉴스만 보면 맨 속 뒤집어지는 일만 보여서 세상 거지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한데. 결국 진심은 통하더라고.”

차지찬이 씩 웃었다.

“어떤 멍청이가 손해보면서 장사를 하냐고.”

주지승과 백우진이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근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있네? 심지어 도와주네? 뉴스만 보다 보니까 몰랐는데 세상 아직 살 만하구나 싶더라고.”

차지찬이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건드렸다.

언행은 좀 괴팍하지만 좋은 일을 하는데다 능력도 좋으니 응원할 수밖에 없다.

“이 형이 좀 단순무식해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긴 해.”

백우진이 나섰다.

“저번 달 조회 수 진짜 미쳤더라. 아까 오면서 확인해 봤는데 나 신기록이야.”

“나도.”

“나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전 달 수익이 표기되는 날이다. 확정 금액은 아니더라도 근사치라 대부분 그 비슷하게 입금된다.

“확인 안 해봤어?”

“어.”

“봐 봐.”

다들 얼마나 찍혔길래 저리 말하나 싶어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

5월 조회 수가 다른 달과 비교해 유독 높다고는 생각했다.

뉴스도 타고 갑자기 불쌍한 사람도 되면서 크게 주목받았었다.

기존에는 구독자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서만 조회 수가 결정되었다면 이번에는 사회적인 관심을 받으며 새롭게 유입된 사람이 많아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49,630달러라니.

광고 수익과 슈퍼챗 등을 합산하면 5월에 번 돈만 1억 원을 한참 넘겼다.

정말 일할 맛 난다.

“미쳤다.”

“이야.”

“이열.”

“이 형 나보다 많아.”

세 사람이 고개를 내밀어 금액을 확인하더니 감탄하곤 난리를 떨었다.

주지승은 어깨로 날 밀쳤고 차지찬은 머리를 헤집었으며 백우진은 날 붙잡고 흔들었다.

“너 저번 달 영상 얼마 안 올렸잖아. 난 매일 올리고.”

백우진은 백승용차를 운영하면서 본인 콘텐츠를 많이 포기했다.

지식을 다루는 채널이다 보니 영상마다 준비 기간이 많이 필요한데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오!”

백우진이 옷을 놓지 않았다.

약이 오른 모습을 보니 왠지 놀려주고 싶다.

“어디 조회 수도 나보다 낮은 게 옷을 붙잡아?”

한껏 잘난 척해주자 백우진이 입을 쩍 벌렸다.

“앞으로 형으로 모셔. 알았어?”

“이이이익. 분하다. 반찬용을 형이라고 해야 한다니.”

“원래 찬용이가 형 아니었어?”

주지승의 질문에 다들 작게 웃었다.

“찬용이가 89고. 우진이가 몇 살이지?”

“형 내 나이도 몰랐어?”

“넌 내 나이 알아?”

“어. 85년 소띠 39살.”

“오.”

“지찬이 형 86 호랑이띠 38살.”

“이야. 백우진 똑똑하네? 근데 조회 수는 왜 그래.”

“아! 진짜!”

차지찬이 조회 수 이야기를 꺼내니 백우진이 펄쩍펄쩍 뛰었다.

상대적으로 덜할 뿐, 우지니어스 채널도 백승용차 특수를 받았기에 한 달 조회 수는 평소와 큰 차이 없다.

내가 단 한 번 올린 수익을 백우진은 거의 매 달 달성하기에 마음 놓고 놀릴 수 있다.

그렇게 백우진을 뜯고 씹고 맛보며 놀다보니 어느새 놀림거리가 떨어졌다.

한바탕 웃고 나니 피로가 몰려든다.

“이제 가자.”

“나 동해역에 내려주라. KTX 있던데.”

“나도.”

“나도.”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동해역에 내려달라고 얘기했다.

“바로 올라가게?”

하루 자고 같이 올라가면 좋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물으니 다들 고개를 젓는다.

“쉬어야지.”

“나도 오늘내일은 좀 자야겠어. 그래야 또 기합 넣고 일하지.”

“배불러서 자꾸 졸려.”

나도 사실 지칠 대로 지쳤는지라 더는 권하지 않았다.

잘 곳도 마땅치 않으니 차라리 올라가서 본인들 집에서 편히 쉬는 게 나을 거다.

“가자.”

빈 잔을 카운터에 돌려놓고 팔공이한테 돌아갔다.

“…….”

“와. 심하네.”

“으. 징그러. 세차 어떻게 해.”

올 때도 앞유리창에 벌레가 잔뜩 부딪혀 신경 쓰였는데, 그릴에 중지만 한 벌레 사체가 잔뜩 달라 붙어 있다.

“아아아악!”

* * *

“저 왔어요.”

집에 들어섰는데 인기척이 없다.

“아. 등산 가신다고 했지.”

연초에 오고 근 반년 만에 찾은 고향집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잘 정돈되어 있다.

부지런한 어머니를 본받아 나도 집청소를 주기적으로 해야 할 텐데 쉽지 않다.

대강 씻고 나오니 졸음이 밀려든다.

한 달 동안 방송과 장사를 겸했고 오늘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장거리를 뛰었으니 방전이 된 듯싶다.

TV 좀 보다가 자려 했는데 눕자마자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의식이 멀어졌다.

그러다 문득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간장과 된장 그리고 돼지고기 냄새가 섞인 이 구수한 냄새는 분명 수육이다.

그릇 놓는 소리와 동시에 눈을 뜨니 밖이 어느덧 어두워져 있고 주방만 환히 밝다.

“어머니.”

“일어났어?”

“네.”

어머니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냄새 좋다.”

“얘는. 징그럽게.”

“수육 냄새요.”

“으이그. 가서 앉아 있어.”

“네.”

수저를 챙겨 식탁에 놓았다.

식탁에는 이미 여러 채소가 놓여 있었다. 상추, 깻잎, 당귀, 두릅 없는 게 없다.

“차 좋더라. 입구 바로 앞에 세워둔 차 맞지?”

“네. 예쁘죠?”

“그래. 근데 너무 비싸더라.”

“아들 돈 많이 벌어요.”

“언제 망할 줄 알고. 아껴 써.”

“그건 그래요.”

작게 웃었다.

“근데 이게 다 뭐예요?”

“오늘 따 온 거.”

“이걸 다요?”

친구들과 함께 백복령에 가신다고 들었는데 세상에 이 귀한 것을 많이도 따 오셨다.

“더 있어. 더 줄까?”

“아니요. 이것도 많아요.”

어머니께서 밥솥을 열려고 하셔서 미리 선수를 쳤다.

“장사해 보니 어때?”

“말도 마세요. 얼마나 힘든지 한 달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보람은 있었지?”

“네. 살다 살다 뉴스에도 나오고. 칭찬도 받고. 생각해 보니 칭찬을 얼마 만에 받았는지 기억도 안 나더라고요.”

어머니께서 수육을 꺼내 자르셨다.

뒷모습이지만 왠지 미소 짓고 계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엄마는 다른 게 아니라 네가 마음 맞는 친구랑 좋은 일도 하고 재밌게 지내는 것 같아서 좋더라.”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 이야기다.

“그러게요.”

작년까지만 해도 세상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는데 어느새 주변이 떠들썩해졌다.

사람 많은 곳이라든가 사교성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가 빨려 힘든데 백승용차와 함께하면 그런 기분이 조금도 없다.

오히려 안도감을 느껴 신기할 따름이다.

“근데 돈 많이 썼겠더라.”

“네. 딱 우리끼리만 했으면 적자였어요.”

“그래. 그 도시락을 어떻게 3천 원에 팔아. 국이랑 음료수도 주면서.”

“마지막 주만 3천 원이었고 4천 원이었어요.”

“그래도. 요즘에는 국밥도 만 원씩 하더라.”

물가가 비싸진 건 서울 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콩나물국밥이 9,000원~10,000원 하는 걸 보고 정말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그래도 돈 많이 벌었어요.”

“어떻게?”

“광고도 하고 영상 조회 수도 있고 후원도 받았죠.”

“네가 그런 걸 한다니까 적응이 안 된다.”

“저도 그래요.”

어머니께 반찬을 넘겨 받아 상에 올리니 수라상이 따로 없다.

“와.”

“많이 먹어.”

살 빼라고 하시면서 밥 먹을 땐 꼭 많이 먹으라고 하신다.

“잘 먹겠습니다.”

먼저 두릅 무침을 입에 넣었다.

고소한 참기름 향이 두릅의 쌉싸름한 향과 어울려 일품이다.

“진짜 맛있다.”

“엄마 솜씨 여전하지?”

“그럼요. 어머니 솜씨가 최고죠.”

물에 빠뜨린 고기는 취급하지 않는 편이나 어머니가 삶은 수육은 논외다.

상추에 당귀를 얹고 그 위에 수육 한 점과 무생채를 올려 싸 먹으니 입 속에서 봄이 찾아왔다.

6월에 접어 들면서 날이 많이 더워졌는데 온갖 향미가 코와 혀를 자극하니 입맛이 돈다.

순두부 된장찌개도 어머니의 맛이다.

숟가락으로 푹 떠서 밥에 슬슬 비벼먹으니 위장과 가슴이 편안해진다.

진한 걸 먹었으니 시원한 것으로 입가심을 할 차례.

열무김치를 집어 먹으니 아삭아삭 살얼음이 쪼개지듯 시원하다.

“열무도 맛있어요.”

“막 맛이 들었어.”

야들야들한 수육이 가진 작은 느끼함을 열무김치가 잡아준다.

이 열무김치만 있다면 수육을 무한대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참. 돈 부쳤는데 확인해 보셨어요?”

“안 보내도 된다니까. 엄마 돈 벌잖아.”

“그래도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어머니가 핸드폰을 들고 살피시더니 눈을 크게 뜨셨다.

“어머. 세상에. 얘 좀 봐.”

“흐흐흐흫.”

“뭘 이렇게 많이 보냈어. 응?”

“저 이번에 돈 진짜 많이 벌었어요. 걱정 마시고 필요한 데 쓰세요.”

“그래도 그렇지. 아니야. 다시 보내줄게.”

“어머니 진짜 괜찮아요. 그거 번 돈의 10분의 1도 안 돼요.”

어머니께서 미간을 좁힌 채 날 보신다.

1,000만 원을 보내드렸는데 10%라고 하니 믿기 힘드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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