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109화 (109/120)

치팅데이 109화

22. 으쌰으쌰(10)

쌈을 입에 우겨넣고 핸드폰을 꺼내 수익을 보여드리니 안경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핸드폰을 멀리 잡았다가 가까이 두었다가 하시며 화면을 살피신다.

조금 재밌다.

“이거 진짜야?”

“그럼요. 제가 어머니한테 거짓말을 왜 해요.”

“세상에나. 누가 이렇게 돈을 많이 줘? 유튜브니?”

“시청자들이 줬죠. 광고주하고.”

어머니께서 핸드폰과 날 번갈아 보다가 핸드폰을 돌려주셨다.

“그래도 아니야.”

“에이. 보셨잖아요.”

“지금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잘 모아뒀다가 나중에 집 살 때 써.”

“잘 모으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이번에 정기예금도 들고 적금도 넣고 있어요.”

“엄마가 너 힘들게 번 돈을 어떻게 쓰니.”

“그럼 저는요. 어머니가 힘들게 버신 돈 잘만 쓴 전 뭐 불효자예요?”

“엄마는 엄마잖니.”

“아들은 아들입니다.”

“으이그.”

“정말 괜찮아요. 힘들게 벌었고 나쁜 일 해서 번 돈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좀 누려요. 잘난 아들 덕 본다고 생각하시면 좀 좋아?”

그러고 보니 샷시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휘어져서 바람이 조금만 불면 덜컹거리고 바람 소리도 크게 났다.

“이번 기회에 샷시 갈아요. 오래 됐잖아요.”

“아니야.”

“여름에 덥고 벌레 들어오고. 겨울에 춥고. 안 고칠 이유가 없잖아요. 새로 해요.”

“아니야. 아니야.”

“해요.”

“아니야. 못 해.”

어머니가 고개를 저으셨다.

그렇게 말씀드려도 아들이 잠도 줄여가며 번 돈을 쓰기가 아까우신 모양이다.

“사치 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일에 쓰는 거잖아요.”

“이걸로 못 해.”

“네?”

“2,000은 있어야지.”

“…….”

샷시가 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

“어머니.”

“음?”

“돈 더 벌어서 새 집 사드릴게요.”

30년 된 아파트 샷시 고치는 데 2,000만 원이면 차라리 그 돈 아껴서 더 넓고 신축 아파트를 사 드리는 게 낫겠다 싶다.

“엄마는 이 집이 좋으니까 네 집부터 사.”

몸을 갈아가며 일하고는 있지만, 내 수입은 내 노력 이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주변 사람과 시청자의 도움과 운이 작용해서 번 돈이라 계속 유지하긴 힘들 거다.

“열심히 해야죠. 어머니 밥 먹으니까 힘이 막 나는데요? 으쌰으쌰.”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셨다.

“그래. 우리 아들 멋있다.”

“멋있죠?”

“근데 이렇게 멋진 우리 아들은 왜 여자친구 한번 못 만났을까?”

“…….”

갑자기 심장을 해집어 놓으신다.

“살도 빼니까 인물도 좋고. 돈도 많이 벌고. 심정도 착하고. 누가 우리 멋진 아들 안 데려가니?”

“어머니, 어머니한테만 그래요.”

“왜? 이만 하면 괜찮지.”

“에이. 빨리 드세요. 제가 다 먹을 거예요?”

“더 있어. 더 먹어.”

“그 뜻이 아닌데…….”

“마음 있는 사람도 없어?”

“……있긴 한데.”

“그래? 누구?”

“아니에요. 아니에요.”

“전에 얘기했던 직원? 일 잘하고 똑부러진다던?”

“아, 아니에요. 빨리 드세요. 찌개 식어요.”

“얘기 좀 해봐. 응?”

괜히 꺼냈다.

* * *

고향집에서 푹 쉬고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돌아왔다.

이틀 동안 거의 잠만 잔 덕에 몸 상태가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역시 어머니하고 고향이 최고다.

지난 한 달간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어머니와 오순도순 얘기도 하고, 웃으시는 얼굴과 자랑스럽단 말씀을 접하니 마음이 가득 충전되었다.

날씨도 괜찮고 기분도 좋아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 오늘 할 일을 정리했다.

“어디 보자.”

오늘부터 백우진과 새 콘텐츠를 시작한다.

이름은 ‘요리보고’.

요리(料理)를 보고(報告)한다는 뜻도 있고, 요리(料理)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寶庫)에 담았다는 뜻도 있고 동사 보다의 의미도 있으며.

요리조리 살핀다는 뜻의 요리로도 읽힐 수 있어서 마음에 든다.

제목 그대로 하나의 요리를 소재로 삼아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간인데.

사실 예전에 백반토론과 함께 진행했던 ‘백반하나’와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형식이다.

오늘 다룰 음식은 초계탕.

날이 무더워지면 꼭 한번 생각나는 요리라 준비했다.

백우진이 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그전에 도계 촬영본 편집 가이드를 작성하고, 초계탕에 관해서도 알아볼 생각이다.

“대표님.”

순간 가슴이 멎었다.

뒤를 돌아보니 묵은지가 서 있었다.

“일찍 나오셨습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 네. 엄청 좋아요. 네. 안녕하세요?”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니 묵은지가 걱정스레 쳐다본다.

“주말 잘 보내셨어요?”

“네. 모처럼 편히 쉬었습니다. 도계는 어떠했습니까?”

“좋았어요. 괜히 소문 난 게 아니더라고요. 닭고기 진짜 부드럽고 우동은 직접 뽑나 봐요. 잘은 모르지만 마트에서 파는 제품하곤 뭔가 달랐어요.”

“그랬습니까.”

묵은지가 싱긋 웃고는 본인 자리로 향했다.

내 마음을 인지한 뒤로 계속 신경 쓰이긴 했는데, 이틀 만에 보니 좀처럼 진정이 안 된다.

더군다나 아직 저번 주 월요일 일을 확인하지 못했다.

친구들 앞에서 좋아한다고 했던 말을 묵은지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신경 쓰여 미치겠다.

차가운 물이라도 마시고 정신을 차리려고 밖으로 나섰는데 순간 묵은지와 부딪힐 뻔했다.

“…….”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자 묵은지가 텀블러를 보였다.

마침 타이밍이 맞았던 모양이다.

이대로는 심장에 안 좋다.

“PD님.”

“네.”

“…….”

그간 계속 묻고 싶었다.

그때 친구들 앞에서 했던 말을 들었냐고 확인하고 싶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묵은지가 걱정스레 물었다. 밥 먹으면 나누던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날 향한 눈이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을 때와 다르지 않고 벤치에 앉아 있을 때처럼 호흡도 고르다.

나 또한 그때와 다르지 않다.

“대표님?”

묵은지가 날 다시 부른 순간.

그 말을 들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듣지 못했다면 제대로 전하고.

들었다면 그 답을 듣고 싶다.

그간 나누었던 대화와 함께해서 즐거웠던 기억, 고동 치던 감정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다.

“…….”

묵은지가 기다린다.

더 머뭇거리지 말고 용기를 내야 한다.

“조.”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몇 시간씩 혼자 떠들면서 이 한 마디 꺼내는 게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조, 조식은 드셨어요?”

“…….”

“아침을 먹어야 건강해지잖아요. 하하하.”

아무 반응이 없다.

“그. PD님.”

“말씀하십시오.”

“이따 방송 끝나면 저녁 같이 드실래요? 파스타 맛있는 레스토랑 아는데.”

아무래도 지금 말하긴 벅차다.

그럴싸한 곳에서 분위기의 힘이라도 빌려야겠다.

“안 됩니다.”

묵은지의 거절에 숨이 턱 막혔다.

“금요일에 이어 토요일에도 일반식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도 그러시면 혈당 관리에 좋지 않습니다.”

“아.”

“최근 방심하고 계십니다. 다시 굳게 마음먹으셔야 합니다.”

“그래도.”

“저는 샐러드나 비빔밥 겉도 충분합니다. 굳이 저번처럼 좋은 곳에 데려가실 필요 없습니다.”

“어……. 그럼 저녁은 같이 먹어도 되는 거예요?”

“항상 같이 먹지 않았습니까?”

저녁도 거절당한 건 아니라 안도했다.

“그럼 요 앞에서 샐러드 사다가.”

“좋습니다.”

묵은지가 슬쩍 다가왔다.

깜짝 놀라 몸이 굳었는데 나를 지나쳐 정수기에 텀블러를 가져다 댔다.

정말이지 심장에 안 좋다.

* * *

백우진이 살짝 늦는다고 해서 미리 방송을 켰다.

순식간에 늘어나는 시청자 수를 보며 커피를 마시니 다들 한 마디씩 한다.

└반하

└왤케 일찍 켰어?

└요리보곤 또 뭐얔ㅋㅋㅋ

└또 백우진이야?

└국밥 조합

“안녕하세요.”

예전에는 한 사람, 한 사람씩 닉네임을 부르며 인사했는데, 이젠 그러려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몰라 생략할 수밖에 없다.

못내 아쉽다.

“국밥 조합이 왜 국밥이겠어요. 여러분 국밥이 지겨운 적 있어요? 그만큼 맛있기 때문에 국밥인 거예요.”

└ㄹㅇㅋㅋ

└그래서 요리보고가 뭐냐곸ㅋㅋ

└좀 쉬긴 했음?

└영상 계속 올라오던데.

“요리보고 이야기는 우진이 오면 같이 할게요. 주말에 많이 쉬었어요. 역시 고향집이더라고. 이틀 내내 밥 먹고 잠만 잤어요.”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이 집안일 도와주진 못할망정 밥 내놓으라고 한다.

└우리 새끼 아직도 새끼네?

└불꽃불효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방 분위기 왜 이럼ㅋㅋㅋㅋ

└방장이고 청자고 죄다 사람 나락 보내려고 작정함ㅋㅋㅋㅋ

“참나. 뭔 말을 못 해. 진짜 먹고 자기만 했겠어?”

물론 진짜 먹고 싸고 자기만 했지만 이 사람들이 어머니께 확인해 볼 수도 없으니 마음대로 지를 수 있다.

└우리 아들이 용돈 많이 주고 갔어요~ 욕하지 말아주세요~

└?

└진짜 어머니임?

└구라짘ㅋㅋㅋ

└노잼임

“어?”

어머니가 쓰시던 아이디가 눈에 띄었다. 놀라서 전화를 걸어보니 바로 받으신다.

-응~ 아들

“어머니, 지금 제 방송 보고 계세요?”

-어. 보고 있어.

“LEE6205 이거 어머니 아이디 맞아요?”

-응. 엄마 아이디야. 내 목소리 지금 방송에 나가니?

“아니요. 왜요? 틀어드려요?”

-그래. 잠깐 틀어줘 봐.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아니, 우리 아들 효자인 거 몰라주시니까 속상해서 그러지. 어머. 이제 나오네. 여러분, 우리 아들이 용돈 많~이 주고 갔어요. 먹고 자기만 해도 예뻐니까 뭐라 하지 말아주세요~ 찬용이 방송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머닠ㅋㅋㅋㅋㅋㅋ

└먹고 자기만 한 건 맞넼ㅋㅋㅋ

└어머니 증언

└용돈 드리면 그만임? 연로하신 어머니 도와드리진 못할망정!

└어머님이 뭐라 하지 말라고 하시잖아

└암암. 어머니 앞에서 아들 뭐라 그러면 안 되지

“저, 어머니. 그만 끊을게요.”

-그래. 잘 지내고. 참, 네가 좋아한다던.

생각지도 못한 돌발 발언에 어머니가 말씀을 끝맺기도 전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와 자기 창피하다고 어머니 전화를 막 끊네

└좋아한다던?

└반찬용 논란탭에 불효자 항목 추가해야지

└와 당뇨 아저씨 실망이에요. 착한 척하더니 어머니 전화 그리 끊어도 됨?

└무슨 말씀 하시려던 거지?

묵은지 이야기다.

어제 만나는 사람 없냐고 계속 물으셔서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둔 사람은 있다고 답했는데 누구라고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난감하다.

“요!”

때마침 백우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우진이다

└우하

└왜 볼 때마다 볼이 빵빵해짐?

└조금만 더 있으면 반찬용보다 백우진이 더 쪄보이겠는데?

“무슨 말이야? 여기 시청자들 왜 이렇게 무례해? 당신 나 봤어요?”

백우진이 채팅창을 확인하곤 시청자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오자마자 뭔데

└ㅇㅇ 우지니어스 영상 다 봤음

└솔직히 통통하긴 해~

“다 봤다고? 그럼 인정.”

이렇게 쉽게 납득할 거면 왜 항상 싸움을 거는 걸까.

정말 이해 못 할 녀석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