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112화 (112/120)

치팅데이 112화

23. 내 집(2)

화요일.

방송을 진행하던 중 라면 맛이 변했다는 채팅이 올라왔다.

└진짜 너무 밍밍함

└ㄹㅇ 맛이 좀 덜해지긴 했음

└라면 진짜 좋아했는데 안 먹은 지 좀 된 듯?

└그런가? 난 모르겠던데

└그냥 요즘 라면이 다 전체적으로 노맛임.

└실제로 구성품이 달라졌다고 어디서 봤는데

└MSG 빼서 그런 거 아니야?

“진짜? MSG를 왜 빼?”

MSG는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다.

그 어떤 음식에 넣어도 감칠맛과 풍미를 돋아주는 그 훌륭한 조미료를 왜 뺐는지 궁금하다.

└MSG 안 좋다는 얘기 도니까 뺐다고 알고 있음

“그래? 음. 이건 내가 좀 알아볼게요. 아예 주제로 잡아서 하루 이걸로 얘기해도 될 것 같다.”

나도 궁금해서 한번 알아볼 생각으로 다음 방송 주제로 삼았다.

시청자들과 인사하고 방송을 종료한 뒤 기지개를 켰다.

밤 8시.

평소보다 조금 일찍 방송을 마쳐서 시간이 남는다. MSG에 관한 정보를 찾아봐도 될 것 같다.

방을 나서자 묵은지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PD님, 다음 방송 MSG 다룰 건데.”

탕-

묵은지가 서류 뭉치를 꺼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큰 소리가 나 깜짝 놀랐다.

“오늘 확인하실 내용입니다.”

“어……. 고마워요.”

다가가서 서류를 챙겼다.

슬쩍 얼굴을 봤는데 신경도 안 쓰고 모니터를 보고 있다. 뭘 그렇게 보나 싶어 살피니 MSG에 관련한 기사를 보는 중이다.

방송 모니터링 하면서 미리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건 제가 할게요. 지승이 형한테 물어보면 잘 알 것 같기도 해서.”

“…….”

아무 대답이 없다가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저 키보드가 이렇게 시끄러웠나 싶다.

“PD님? 저, 오늘은 일찍 퇴근하실래요?”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왜 그런 날 있잖아요.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기분 안 좋은 날.”

묵은지가 오늘 처음으로 날 보았다.

“정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묵은지가 일어섰다.

어제 알게 된 사실인데, 묵은지는 그동안 나와 사귀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역시 혼자만의 마음은 아님을 알게 되어 기뻤고 주지승이 괜한 말을 한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한 달이나 속일 수 있습니까? 그동안 제가 어땠는지 알긴 하십니까? 저만. 저만.”

묵은지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앙다문 채 날 노려보았다.

“자꾸 보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고. 괜히 말 붙이고 싶고 그랬을 것 같아요.”

묵은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도 그랬거든요.”

천천히 다가갔다.

거절하지 않길래 조심스레 안았다.

“좀 더 빨리 말할 걸 그랬어요.”

묵은지가 몸을 틀었지만 벤치프레스 80㎏를 드는 날 밀칠 순 없었다.

“늦은 만큼 더 자주 보고 더 오래 있고 더 많이 얘기하고 싶어요. 안 돼요?”

묵은지가 벗어나기를 포기하고 가만히 있다가 내 허리를 감쌌다.

“고마워요.”

“치사합니다.”

“뭐가 더 중요한지 알고 있을 뿐이에요.”

“…….”

“정리하고 드라이브 갈래요?”

묵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 날.

묵은지와 같이 집을 나섰다.

“홍당무 엔터테인먼트로 가자고요?”

“네. 홍성일 대표와 약속이 있습니다.”

저번에 소개받았던 표승재 일이다.

뭔가 찜찜해서 연락하지 않았는데, 묵은지가 홍성일에게 내 의사를 전달한다고 얘기했었다.

“아. 그럼 같이 만나요.”

“아닙니다. 이 일은 제게 맡기고 대표님은 오늘 방송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저.”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호칭이 좀.”

“아.”

나도 묵은지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서로 대표님, PD님으로 부르는 게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연애를 해봤어야 알지.

어떻게 칭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표님이 먼저 말씀하십시오.”

“어.”

가장 먼저 떠오른 호칭은 자기인데 묵은지를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PD님이 먼저 말씀해 주세요.”

“싫습니다. 늦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따라 붙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네요.”

운전대를 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하다가 침을 삼켰다.

“……은지 씨.”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쑥스러워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 다시 오른쪽으로 돌리니 묵은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

“어? 별로예요?”

“기대했던 것과 다릅니다.”

“어떤 걸 생각했는데요?”

“말해주기 싫습니다.”

머릿속이 하얗다.

실망시키기 싫어 어떻게든 좋은 호칭을 떠올리고 싶은데, 35년간 뇌에 저장된 그 어떤 정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고작 이름 부르면서 부끄러워하는 건 제법이었습니다.”

“네?”

“출발하십시오. 늦었습니다.”

* * *

묵은지를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에 데려다 주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커피를 마시며 MSG에 관해서 조사를 했는데, 아무래도 확인 절차가 필요할 듯싶다.

이런 일은 전문가에게 확인받아보는 편이 정확하다.

주지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찬용아.

“형, 안 바빠?”

-괜찮아. 밥 먹고 쉬고 있어.

“지금 MSG 공부하고 있는데 형이 잘 알 것 같아서. 괜찮아?”

-MSG?

“응. 찾아보니까 MSG가 나쁜 이미지를 가지게 된 시작이 미국이더라고?”

1968년 미국에서 중국 음식점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L-글루탐산나트륨, 즉, MSG를 다량 복용하면 메스꺼움, 두통이 발생하는데 주로 중국 식당에서 일어난다는 한 의사의 주장으로 탄생한 말이었다.

-그치. 근데 좀 애매해.

“응.”

-MSG 자체가 문제였으면 중국음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음식이 문제가 되거든. 고기, 생선, 다시마, 달걀, 버섯, 토마토에 많이 들어 있으니까.

“응.”

-고기에 토마토, 버섯 많이 넣은 음식하면 뭐 생각 나는 거 없어?

“……피자. 파스타?”

-그치. 피자나 파스타도 중국 음식 못지않게 MSG가 많이 들어 있거든. 그래서 맛있고.

“근데 왜 하필 중국 음식점 증후군이야?”

-아마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없지 않았나 하는 말도 있어.

“음. 근거는 뭐였는데?”

-당시에는 연구가 좀 조악했어. 듣기로는. 이건 진짜 그냥 들은 거라 팩트 체크는 안 된 건데.

“응.”

-쥐 눈에 MSG를 주사기로 넣었더니 실명되더라. 뭐 이런 실험 결과를 냈대.

“엥? 눈에다가 뭘 주사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MSG가 아니라도.”

-내 말이. 근데 웃긴 건 그렇게 잘못된 연구 결과들이 반영돼서 FDA에서 MSG에 섭취 제한을 유도했던 거지.

“FDA 막장이었네.”1)

-그랬지.

“그럼 미국에서 60년대에 잘못 알려진 결과가 지금 우리까지 영향을 준 건가?”

-우리나라는 좀 달라. 아, 이거 좀 복잡한데.

주지승이 잠시 망설이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93년도에 럭키라는 회사가 맛그린이란 조미료를 팔았는데 그때 이미 다시다랑 미원이 시장을 꽉 잡고 있었단 말이야?

“응.”

-맛그린 입장에선 점유율을 확보하려고 다시다랑 미원에 유해성 논란이 있는 MSG가 포함되어 있다고 홍보했어.2)

공격 마케팅이다.

예전에 마케팅 관련 정보를 다루는 채널 편집을 해주며 알게 되었는데, 시장 선도자에게 불리한 정보를 주거나 채우지 못한 욕구를 공략하는 측면 공격 전략에 하나다.

-화학조미료 MSG 이제 그만이라는 문구를 내세웠는데 그 화학조미료란 말이 엄청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졌지.

“그럴 만하다. 나도 찾다 보니까 알게 됐는데 결국 MSG 위해성을 증명 못 했다며?”

-어. 그래서 시정 명령 받았지. 근데 그런 결과는 잘 안 알려져. 그냥 화학조미료는 나쁜 거구나, MSG는 나쁜 거구나 그런 인식만 기억되는 거지.

“음.”

-그러다 이제 웰빙 붐이 일면서 MSG 혐오가 생겨났지. 사실 잘못된 정보인데 확인을 안 하고 그냥 믿는 거야. 예전에 광고에서 봤으니까.

“그치. 그치.”

-게다가 먹거리 X파일이라고 알아?

“알아. MSG 검색하다 보니 나오더라.”

-그게 인기가 많았거든. 근데 거기서도 MSG를 죄악시 하니까 아무래도 인식이 박힐 수밖에 없지.

TV매체의 파급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금도 TV 프로그램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친다.

하물며 10년 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답답한 게 글루탐산이 다른 게 아니라 단백질 구성원이거든. 음식에 없을 수가 없어.

“응. 모유에도 있다고 하던데?”

-맞아. 모유에서 가장 많은 성분이 글루탐산이야. 50%나 되니까. 모유 먹던 아기가 우유 잘 안 먹는 것도 글루탐산을 인지해서 자기한테 적합한 모유를 선택하는 거거든.

“MSG가 해롭지 않다는 건 FDA에서도 발표한 내용이니까.”

-그래도 안 믿는 게 문제지. 사실 MSG 조금 넣으면 맛이 바로 좋아지니까 소금도 덜 넣게 되거든? 나트륨 섭취도 줄고.3)

“응.”

-어디더라. 국제 아미노산과학연구회. 그런 데가 있어.

“응. 있다.”

검색해 보니 ICAAS란 이름의 연구회가 나왔다.

-거기서 MSG가 오히려 위점막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고 밝혔어. 그렇게 연구가 많이 되다 보니까 이젠 학자들도 더 연구할 필요가 없대.

그런데도 의심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긴 하다.

사람은 믿고 싶은 걸 믿으니까.

“그런 영향 때문에 라면 회사들도 MSG를 빼는 건가?”

-그치. 라면 회사 연구원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그걸 모르겠어. 다만 고객들의 생각을 바꿀 순 없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바꿔 보는 거겠지. 이건 내 추측.

“나도 그럴 거 같아. 다 석박사들이잖아.”

-그치. 그리고 라면 맛이 변한 이유가 MSG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어.

“그건 무슨 말이야?”

-아까 얘기했잖아. 음식에 MSG가 빠질 수가 없다. 미원, 다시다 이런 건 그냥 더 넣어주는 것뿐이고.

“응.”

-라면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화학조미료란 말에 예민하니까 자연 식품에서 MSG를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거야. 그니까 MSG 함유량이 좀 달라질 순 있어도 없진 않단 뜻이지.

“함유량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도 있고. 또 뭐가 있단 말이지?”

-그치. 예를 들어 올해 사과하고 내년 사과하고 똑같은 품종이라도 맛이 다를 수가 있거든.

“그러네? 비가 얼마나 왔는지. 해가 얼마나 떴는지에 따라 다르겠다.”

-그래. 밀이나 당근, 파, 라면에 들어가는 거 전부 그렇단 말이야. 그래서 해가 바뀔 때마다 똑같은 레시피라 해도 맛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 그걸 캐치하는지는 다른 문제고.

“오.”

-게다가 레시피도 바뀌고 있잖아. 한 가지 문제는 아니라는 거지.

“와. 형 진짜 대박. 진짜 고마워.”

주지승과 20분 정도 통화한 내용만으로 영상 한 편이 충분히 나올 것 같다.

-너 토요일마다 부천 오는 거 비하면야.

“그런가?”

한번 크게 웃었다.

“형 나 영상 올릴 때 지금 통화 내용 올려도 돼?”

-어. 올려. 올려. 참, 너 어떻게 됐어?

“뭐가?”

-묵 PD.

“아. 어……. 나중에 얘기할게.”

-아 이 자식 비싸게 구네.

“어. 좀 비싸. 흐흐흫.”

-그래, 인마. 네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축하해.

“고마워. 땡큐!”

-어.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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