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113화
23. 내 집(3)
“돈 욕심이 없는 친구로구만.”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의 홍성일 대표가 말했다.
김서진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소개한 표승재는 국내 최고의 투자전문가였다.
5년에서 10년쯤 바라본다면 자산을 크게 늘려줄 텐데 본인이 사양한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히 거절하려고 오진 않았을 테고. 다른 걸 받고 싶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묵은지가 답했다.
홍성일이 묵은지를 가만히 살폈다.
홍당무 엔터테인먼트 재직 당시 기획지원팀은 사실상 묵은지에 의해 돌아갔다.
더욱이 김서진 사건을 합리적이고 조속히 해결한데다, 이직한 곳은 큰 성장을 이루었다.
분명 묵은지의 영향이 있을 터였다.
‘볼수록 아깝단 말이지.’
지금도 요구는 하되 대화의 주도권은 홍성일에게 넘겨 겸양하는 자세를 보이니 마음에 안 들 수가 없었다.
“말해보게.”
“반찬용 대표님에게는 돈보다 장소가 필요합니다.”
“장소?”
“네.”
묵은지는 반찬가게와 반찬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반찬용의 입담과 친근함 그리고 정은 사람을 끌여들였다.
특유의 입담과 친근함으로 불규칙한 방송 일정 속에서도 10만 명에 달하는 코어 팬층을 확보해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주지승은 반찬용이 어려움을 겪자 기꺼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그 덕에 반찬가게는 단기간에 시청자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차지찬과 백우진이 반찬용을 돕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267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짐꾼과 145만 명이 구독한 우지니어스 모두 처음부터 대형 채널은 아니었다.
반찬용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지도 않았던 차지찬에게 오직 호의로 편집자 역할을 자처했다.
짐꾼 채널 내부에서 그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반찬용의 역할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차지찬과 안상규 PD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반찬용이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팔을 걷어붙였던 것이다.
우지니어스의 경우에는 온갖 주제를 다루느라 채널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3~4시간 짜리 원본 영상을 통째로 올렸던 탓에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했었다.
그런 백우진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준 사람이 반찬용이었다.
설명하길 좋아하는 백우진은 하나의 주제로 서너 시간을 떠들었는데 그 탓에 일을 맡으려는 편집자를 구하기도 어려웠거니와 직원 쓸 여력도 없었다.
반찬용은 그런 백우진을 도와 긴 영상을 30분 내외로 압축했고, 방만하고 산만했던 우지니어스를 국내 독보적인 팩트 체크 채널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자리잡기까지 2년을 오직 호의로 도왔던 것이다.
차지찬과 백우진 모두 반찬용을 편집자로 보지 않았다.
창업 파트너에서 둘도 없는 은인이자 친구로 여겼기에 각자의 채널이 안정된 후로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대우했었다.
만약 이들이 단순 계약 관계로 만났다면 차지찬과 백우진이 반찬용의 개인방송 성장과 건강 관리에 지금처럼 열성을 다하진 않았을 터였다.
차지찬과 백우진은 본인들의 시간을 쪼개가며, 혹은 들어오는 일조차 마다하며 반찬용을 도왔고.
반찬가게는 50만 구독자를 확보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었다.
그리고 불과 한 달 전.
반찬용은 또 한 번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당뇨병 환자 600만 시대에 밖에서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 고물가 시대에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식당.
이미 부족함 없는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반찬용은 본인이 느낀 문제의식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다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반찬용을 오래 지켜봐 왔던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기꺼이 함께한 것이었다.
반찬용 개인으로 시작된 일에 세 사람이 달라붙어 결국에 수천, 수만 명이 함께하는 데 이르렀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했던 묵은지는 기적이 일어난 듯했다.
백승용차의 따뜻한 마음과 선의에 반응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기부에 동참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 선량한 행동은 뉴스를 타고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미 WTV에서 방영된 백반따라를 통해 인지도를 확보한 반찬용은 지상파 방송국 뉴스 보도에 이어 김서진 사건에 따른 동정론까지 힘입어 어느덧 70만 구독자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묵은지는 그가 걸어온 길과 본인의 눈을 믿었다.
“WTV에 반찬용 대표님의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홍성일 대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짐짓 놀랐다.
장소가 필요하다기에 무슨 말을 꺼내나 싶었는데, 대한민국 4대 방송사 중 한 곳에 자리를 마련해 달라니 배포가 큰 것인지 욕심이 과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아볼 수야 있네만.”
소속 방송인을 위해 방송국마다 연을 대고 있던 홍성일에게 무리한 일은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 보게. 표승재 그 친구에게 맡기면 1년에 10%는 챙길 수 있어. 표승재 때문에 손해를 보면 내가 보상하겠네. 리스크 없는 편한 길을 두고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하려 하나?”
냉정하게 바라보면 한 프로그램에 고정된다 해서 반드시 수익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프로그램이 잘 되어도 반찬용이 묻힐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모든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홍성일은 굳이 위험을 안고 돌아가려는 반찬용과 묵은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큰 결과가 자연스레 돌아올 겁니다.”
묵은지가 홍성일 대표를 보며 말했다.
“확신인가.”
“네.”
“분석과 믿음은 다르지.”
홍성일은 묵은지가 내린 답이 반찬용을 믿기 때문인지 아니면 냉철히 분석한 결론 때문인지 결론 내리지 않았다.
“하나 더 묻지. WTV에는 이미 백반따라가 있지 않나. 박상철 PD 줄도 잡은 걸로 알고 있고. 그만한 성과 냈으면 시즌2 얘기도 나왔을 테고. 굳이 내게 청탁할 이유가 있나?”
“백반따라 시즌1은 시청률 9%를 기록했음에도 조기종영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충분한 성과를 냈음에도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 때문이었다.
뉴스와 드라마 사이 그 15분 동안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WTV 편성국의 선택이었다.
홍성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를 내놓았음에도 힘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유능한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도 같은 경험이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좋네. 단 이번 일로 빚은 갚은 걸로 해두지.”
“알겠습니다.”
묵은지는 확신했다.
반찬용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큰 사업을 할 자금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가 전달될 공간과 그것을 지켜낼 힘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돈과 명예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가요소일 뿐이었다.
* * *
“뭔 소리야? 돈이 최고죠.”
MSG 방송을 마치고 시청자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한 사람이 슈퍼챗을 보냈다.
└[간헐적단식초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찬용 님 덕분에 돈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됐어요. 앞으로도 좋은 일 많이 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이 최고 이지랄ㅋㅋㅋㅋㅋㅋ
└아ㅋㅋ 돈이 전부 맞지ㅋㅋㅋ
“제가 없이 살아봤잖아요. 근데 진짜 일단 돈이야. 시작이 돈이에요. 생각해 봐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예요. 목숨. 그것도 내 목숨이잖아요.”
시청자들이 이응을 반복해 보냈다.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해. 먹고 입고 자야 하잖아. 의식주. 근데 그 의식주를 갖추려면 돈이 필요해요. 뭐, 어디 산 속에 들어가서 혼자 살 수 있는 분들은 괜찮아. 근데 전 산 속에 혼자 있으면 굶어 죽어요. 그래. 그동안 먹어온 게 있어서 몇 달은 버티겠지.”
└몇 달?
└저번엔 5년은 버틴다몈ㅋㅋㅋ
└족히 10년은 버틸 듯
└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진짜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그래. 시간은 금이라는 말 있잖아? 여기서 말하는 금이라는 게 돈이예요. 금본위란 말 들어봤죠? 돈이 없으면 시간도 못 산다는 말이야.”
└?
└그게 그 말이 아닌데
└이 아저씨 또 헛소리하넼ㅋㅋㅋ
└돈스라이팅 ㄷㄷ
“그래서 돈은 시작이다. 뭔가를 시작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조차 돈이 있어야 한다. 이 말이에요. 근데 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어요. 다는 아닌 거야.”
물 한 모금 마셨다.
“돈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뭐야. 그래요. 밥 사 먹으려고 있는 거잖아요. 결국에 우리는 시간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밥을 먹는다. 즉, 먹기 위해 산다. 이 말입니다.”
└진짜 어질어질하네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근데 맞는 말 아님? 우리가 돈 버는 게 시간을 사려고 하는 행동인 건 맞음. 쌀 키우고 제배하고 유통하는 거 모두 시간 써야 하는데 그냥 돈으로 퉁 치는 거잖아.
└?
└이 아저씨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함. 듣다 보면 맞는 거 같은데 꼭 이상하게 결론 지어짐.
이 사람들은 꼭 내 생각 말하면 다 틀렸다고 한다.
“그러니 간헐적단식초님, 주신 돈은 오늘 보리밥이 돼서 제 뱃속으로 넣겠습니다. 만 원 감사합니다.”
└환불 좀.
“안 돼요. 안 돼. 환불 안 돼. 민법에도 적혀 있어요. 민법 1조.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한다. 우리 유구한 역사가 있잖아요. 줬다 뺐지 않는다. 낙장불입.”
└변호사입니다. 식초 님이 좋은 곳에 쓰라고 명시하고 슈퍼챗을 보냈기 때문에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시 환불 청구 사유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변호사 등장
“진짜 변호사예요?”
당황해서 물었는데 이응 두 개가 돌아왔다.
“좋은 데라는 표현을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잖아요?”
└구차하네
└한 달에 1억씩 벌면서 만 원 가지고 쩨쩨하게
└반찬용 초심 잃었네
└아님. 얘 원래 돈 밝혔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헐적단식초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걸로 소고기 처먹고 만 원으로 좋은 일 해. 나쁜 놈아.
“아이고! 식초 님, 감사합니다.”
슬슬 장난 그만하고 묵은지와 밥 먹으러 갈까 싶던 차.
보리밥 집 사장님이 잘 왔다며 계란후라이 두 개 줄 때만큼이나 행복한 일이 벌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얜 진짜 뭐가 본심인지 모르겠음ㅋㅋㅋㅋㅋ
└다 컨셉이지. 지 돈 수천 써 가며 기부하는 애가 고작 만 원 가지고 저러겠냨ㅋㅋㅋ
└ㄹㅇ? 당뇨 아저씨 개부자였네
└수천은 아니고 백승용차 하면서 수백은 깨졌지 지금도 공개되어 있으니까 가서 보셈
└ㅋㅋㅋㅋㅋㅋ변호사형 올 때만 해도 굳더니 10만 원 받고 빵끗 웃는 거 킹받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