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120화
24. 짊어진 사람(5)
묵은지와 안상규가 김기태를 설득하는 와중에도 백승용차의 고민은 이어졌다.
“알겠어. 형들 마음 알겠는데 일단 걸어서 저 하늘까지는 중단하는 게 맞아.”
백우진이 친구들을 설득했다.
“생각해 봐. 그냥 걸어가는 것도 힘든데 비까지 와. 그냥 오는 것도 아니고 한 달 내내. 만약에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
백우진의 의견은 타당했다.
한 달 내내 이어지는 장마에서 안전 문제를 간과할 수 없었다.
차지찬이 숨을 길게 내쉬고 눈을 감았다.
그 또한 행사를 강행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알고 있기에 무작정 일을 진행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주지승, 반찬용, 백우진, 짐꾼 직원들이 다치거나 위험에 처한다면 그런 상황으로 이끈 본인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차지찬이 눈을 떴다.
“내 고집이 맞다.”
차지찬의 결단에 백우진이 반색했다.
그 역시 차지찬이 얼마나 고심했을지 알기에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잘 생각했어. 진짜 형한테 뭐라 그럴 사람 아무도 없어. 우리끼리 그냥 기부 약속한 곳 찾아가서 일도 돕고 그러자.”
반찬용이 차지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가 이번 일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기에 안타까웠다.
차지찬이 반찬용을 손등을 툭툭 다독이곤 앞으로 나섰다.
“여기까지 할게. 와 줘서 고마워.”
차지찬의 말에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투닥거리기는 해도 차지찬을 진심으로 위하기에 그의 결단을 반겼다.
“괜찮겠어?”
“괜찮고 말고.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주지승이 묻자 백우진이 차지찬과 주지승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야.”
반찬용이 답했다.
현재 여론은 걸어서 저 하늘까지가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음을 인정하는 쪽과 차지찬을 응원하고 동정하는 쪽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차지찬을 응원하는 사람들 중에는 WTV와 레터럴, 스폰을 약속했던 기업, 참가 취소자를 원망하는 경우도 상당했다.
“오늘 아무도 안 온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어?”
반찬용의 질문에 백우진이 미간을 좁혔다.
참석하기로 했던 유튜버의 팬과 차지찬의 팬 사이에서 서로 누가 잘못했니, 잘했니 싸움이 날 게 뻔했다.
“지금도 WTV, 레터럴, 스폰서, 불참한다고 밝힌 유튜버들 탓하는 사람 많아.”
방송국 때문에, 제작사 때문에, 기업과 유튜버 때문에 걸어서 저 하늘까지가 중단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차지찬을 아끼는 마음이 크기에 그의 팬들은 원망하고 탓할 대상을 찾고 있었다.
이벤트 진행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지금도 마음 바꾼 유튜버들 채널에 ‘약속해 놓고 왜 이제 와 발을 빼냐’, ‘차지찬 합방으로 성장했으면서 너무한 거 아니냐’와 같은 댓글이 달리는 실정이었다.
그러한 행동은 반감을 살 수밖에 없었고 타 유튜버 구독자와 짐꾼 구독자들 사이에 분위기가 점차 험악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일이 계속되면 짐꾼은 여론에서 철저히 고립될 터였다.
“지찬이 형 잘못 없어.”
“지찬이 형 잘못 없고. WTV, 레터럴, 스폰서, 참가한다던 사람들도 잘못 없어.”
반찬용이 선을 그었다.
문제가 있다면 첫째는 이상기후 현상이고 둘째는 차지찬을 옹호하려고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고는 이들이었다.
“그래. 우리 다 알잖아. 누가 문제인지.”
“지찬이 형 자기 구독자한테 뭐라 할 사람 아니야.”
백우진의 반론에 반찬용이 못을 박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차지찬이 씩 웃었다.
“짜식. 잘 아네.”
반찬용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나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수 좀 했다고 어떻게 뭐라 하냐. 그냥 내 선에서 끝냈다고 말하는 게 두루두루 좋게 해결하는 방법이야.”
차지찬이 인중을 콧구멍에 붙이며 백우진을 보았다.
“무슨 이유든 좋은 일에 참여하려 했다가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거잖아. 나 도우려던 사람들 욕 먹게 두고 싶진 않다. WTV도 레터럴도 스폰서도 유튜버들도. 내가 중단하는 게 맞아.”
차지찬은 본인이 이 일을 중단하고 책임을 져야 상황이 원만히 수습된다고 판단했다.
그 속이 얼마나 처참할지 주지승, 반찬용, 백우진은 가늠하기 힘들었다.
“하.”
백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날씨 때문에 잘 돌아가던 모든 일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죄 없는 차지찬이 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지 억울했다.
“이 일은 그렇게 마무리하고. 할 일은 해야지.”
착잡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던 세 사람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이야?”
“남한테 피해주는 일은 해결했으니 하기로 한 일은 해야지.”
세 사람은 잠시 차지찬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간다고?”
백우진이 묻자 차지찬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안 한다며. 이벤트 접는다고 방금 말했잖아.”
“걸어서 저 하늘까지는 접어야지. 근데 나 혼자 가는 건 상관 없잖아.”
“그니까! 아까부터 말했잖아! 갈 이유가 없다니까?”
“왜 없어? 약속인데.”
차지찬의 대답에 백우진은 말문이 막혔다.
“내가 하기로 했어. 구독자들하고 복지시설에 계신 분들한테 찾아갈 테니까 만나서 놀자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약속했어. 포카리 준다는 분도 있었고 같이 걷는다는 사람도 있었어.”
기부는 일방적인 일이었다.
음료수를 준다거나 같이 걷는다는 말은 진심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차지찬은 댓글 하나하나를 약속으로 여겼다.
“난 간다.”
차지찬이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걸어서 저 하늘까지 중단하는 데, 혼자라서 그만두는 거면 진짜. 어. 비참했을 거야. 와줘서 고마워. 정말.”
차지찬은 진심으로 친구들에게 고마웠다.
세 사람이 아니었으면 오기로라도 행사를 진행했을 텐데, 자기 편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함께하려는 사람이 셋이라도 있어서 행사를 중단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반찬용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간다는 거 아니야. 사람 설레게 왜 빙빙 돌려 말해?”
“그러게. 안 가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주지승도 한 마디 거들었다.
“안 가도 돼. 행사 안 한다니까?”
차지찬이 두 사람을 말렸다.
“형은 가잖아. 내가 뭐 행사한다고 부산까지 걸어갈 사람이야? 형이 간다니까 가는 거지.”
“반찬.”
“이것도 약속이잖아. 안 그래?”
반찬용이 주지승과 백우진을 보며 물었다.
주지승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백우진은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차 타고 가면 되지 않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백우진이 막 말을 뱉으려던 차.
안상규 PD가 세미나실 문을 열고 소리쳤다.
“사장님!”
모두 의아해하는 와중 떠난 줄 알았던 김기태 실장이 뒤따라 들어와 말했다.
그가 돌아온 이유는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었고 백우진은 절망했다.
“이러지 마. 이러지 마아아악!”
* * *
짐꾼 채널에 공지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토요일, 오늘 대책회의 결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걸어서 저 하늘까지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영상 속 차지찬이 고개를 숙였다.
-예상치 못한 기상 문제로 인해서 참가자들의 안전, 행사 실행 가능성 등 여러 문제를 검토한 결과 여기서 매듭 짓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지찬은 담담히 상황을 설명했다.
-이 결정은 영상이 업로드되기 전 WTV, 레터럴, WH, EI, 바로크 등 협력사 21개 업체와 200명의 참가 예정자에게 모두 전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시기로 하셨던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이 영상 외의 과도한 추측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차지찬이 콧김을 내뿜었다.
-행사가 처음 기획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차지찬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래도 저 여러분과 한 약속은 지키고자 합니다. 네. 갈 겁니다. 처음 계획했던 곳들 다 들러서 조금이라도 나누겠습니다. 처음 계획과는 내용이 많이 달라지고 부족하지만.
차지찬이 손뼉을 한 번 쳐 분위기를 환기했다.
-고맙게도 반야식경 지승이 형, 반찬가게 찬용이, 우지니어스 우진이가 함께해 주기로 했습니다. 부산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하면 천만 원씩 기부하고 실패하면 천일만 원씩 기부할 계획입니다.
차지찬이 씩 웃었다.
-또한 WH에서 걸어서 저 하늘까지에 약속해 주셨던 후원금의 일부를 계속 지원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커뮤니티에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비록 인터넷 방송인 200명이 함께하고 여러 업체가 후원하는 대규모 자선 행사 ‘걸어서 저 하늘까지’가 취소되었지만.
도시락 사업으로 한창 주가를 올린 차지찬, 백우진, 주지승, 반찬용이 또 한 번 힘을 모은다 하고.
모든 스폰서가 이탈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최고 기업 WH가 후원을 약속했다는 소식은 큰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걸 한다고???
└이걸 WH만 후원하넼ㅋㅋㅋㅋ
└와 알짜만 딱 남았네
└다른 거 다 떠나서 건강이 걱정되는데
└그러게. 그냥 가도 힘든데 비 맞으면서 간다고?
└원래 혼자라도 하려 했대. 주변 도움을 받아서 크게 됐던 건데 처음으로 돌아간 것뿐이라고 하더라.
└아닠ㅋㅋㅋㅋ 왜 성공하면 천만 원이고 실패하면 천일만 원인뎈ㅋㅋ
└만 원을 아끼겠다는 굳은 의지
└난 무조건 응원함
└백우진이 커뮤에 글 올림.
└걸어야 하는 이유: 1. 건강해지니까 2.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니까. 3. 만 원 아껴야 하니까. 4. 사실 그런 거 없고 형들한테 납치당함. 5. 제발 살려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단하네. 방송국이랑 스폰 다 빠졌는데도 한다니.
└애초에 원래 하려던 일에 도움을 받아서 저럴 수 있는 듯. 큰 이벤트 자제가 목적이었으면 불가능했지.
└WH 후원이 크지.
└의리없이 저걸 다 빠지네. 하고 싶다고 난리치던 놈들이.
└자기들 생계 달렸는데 아무 메리트 없는 자선 행사에 참가하는 게 이상하지. 백승용차가 이상한 거지 불참하는 애들은 정상이야.
└꼭 이런 놈들이 지돈 만 원도 안 나눔ㅋㅋㅋㅋ
└이런 놈들 때문에 차지찬이 행사 취소한 건데 ㅉㅉ
└암만 그래도 너무 무모한데. 도중에 포기할 것 같음.
└얘들 진심인 게 도시랑 도시 사이 이동할 때마다 들어오는 후원은 전액 기부한다고 밝힘.
└미쳤다.
└아닠ㅋㅋㅋ 도시락도 그렇고 대체 왜 저러는 거얔ㅋㅋㅋㅋ
└난 반찬용이 젤 신기하던뎈ㅋㅋ 맨날 사리사욕 챙긴다고 말하면서 저런 일 꼭 참가하더라
└ㄹㅇ 진짜 의외임.
└아니…… 주지승은 어쩌냐고. 비 맞으면 머리 빠지잖아. 주지승은 좀 봐주라.
└이미 빠질 머리가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야 ㅠㅠ 기르면 좀 있는데 보기 안 좋아서 그냥 미는 거란 말이야 ㅠ
└이번 기회에 모근 다 빠져서 귀찮게 안 밀어도 될 듯.
└너어는 진짜 나빴닼ㅋㅋㅋㅋ
└아쉽다. 고아원이랑 양로원에서 기대 많이 했을 텐데.
└어쩔 수 없지. 기업도 남는 게 있어야지. WH라도 남아준 게 다행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