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죄송하지만 키스부터 하겠습니다 (3/97)


#3. 죄송하지만 키스부터 하겠습니다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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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 설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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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왔지? 구경할 배짱도 없어 보이는데.”

니콜라이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뺨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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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똑바로 차려, 엘리자벳. 넌 마성의 팜므파탈이야!’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밤새도록 연습했던 대사를 던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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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꿀이라도 바른 듯 달콤한 목소리였다.

눈을 반쯤 내리깔고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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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고 싶다면 기꺼이 환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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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어울리는 것보다 독점하는 걸 좋아한다면요?”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다니!

심장이 벌렁거리고 팔다리가 비비 꼬였다.

그래도 니콜라이를 웃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입꼬리가 살짝 위로 말려 올라가는 가벼운 미소에 불과했지만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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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씨. 웃으니까 더 잘생겼네. 잘생김이 가면을 막 뚫고 나온다……!’

더글라스가 달달한 과즙과 보드라움으로 승부하는 복숭아라면, 니콜라이는 압도적인 퇴폐미로 똘똘 뭉친 야수였다.

작가의 사랑을 듬뿍 받은 세계관 최고의 미남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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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 재력, 권력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지. 니콜라이는 왜 클라우디아에게 투항했을까? 친위대랑 도망칠 수도 있었는데.’

원작 엘리자벳과는 달리 단두대 앞에서 니콜라이는 지독하리만치 처연했다.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고, 황위를 빼앗은 클라우디아를 저주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이 나라를 말아먹은 폭군이 아니라, 모든 번뇌를 끊은 순교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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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수록 이상하네. 캐릭터 붕괴 아냐? 설마 애독자도 모르는 비밀 설정이 있는 건가?’

나는 니콜라이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선입견을 말끔히 지운 시선으로.

하지만 지금 내 앞의 황제는 관능미를 풍기는 바람둥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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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솔직한 여인을 좋아한다. 그대가 그런 여인인 줄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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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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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만 제국에서 엘리자벳을 모르는 남자가 있나?”

황제가 아닌, 남자.

날 여자로 본다는 뜻 같아서 뱃속이 근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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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폐하를 처음 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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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면인 황제를 잘도 팔아먹던데? 날 우롱하지 말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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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들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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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이 초대장 장사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귀찮은 파티를 처리해주니 묵인했을 뿐. 그대는 어떻게 알았지?”

니콜라이는 여자 둘을 상대하면서 파티 돌아가는 사정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과연 난 놈은 난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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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은 정보에 빠른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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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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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이유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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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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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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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솔직해져 봐. 그래야 더 달콤해질 것 같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가 여자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내 코앞까지 바짝 다가온 이유도 몰랐다.

낯선 체취 탓에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미남이란 이토록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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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라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도발적으로 턱을 치켜든 채 한쪽 눈을 찡끗거렸다.

마성을 듬뿍 실은 회심의 윙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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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건가?”

의아하다는 듯 니콜라이가 미간을 좁혔다.

뭐야? 반응이 왜 이래?

덜컥 조바심이 일었다. 서둘러 몇 번의 윙크를 더 했다.

눈꺼풀에 경련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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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지? 눈에 뭐라도 들어갔나?”

니콜라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등 뒤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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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도 클라우디아처럼 목숨 건 신념을 가진 건가? 여자밖에 모르는 악역이 그럴 리 없잖아!’

정성이 부족했는지도 몰랐다.

실패라는 예감을 애써 지우고 손끝에 키스했다.

쪽.

하찮고도 야살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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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색하고도 처참한 침묵이 테라스를 짓눌렀다.

회심의 일격이 실패하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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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우뚝 서 있던 니콜라이의 목에 두 팔을 감았다.

그를 내 쪽으로 끌어내리며 까치발을 들었다.

그래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고고한 입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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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만 키스부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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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허락을 기다릴 마음도 없었다. 어차피 물러날 데도 없지 않은가.

눈을 감고 그의 입술을 머금었다.

입술이 닿고, 타액이 오가면, 천하의 니콜라이라도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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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를 이런 식으로 하게 되다니.’

아쉬움은 길지 않았다.

촉촉하고도 부드러운 입술이었다.

니콜라이의 숨결은 은은하고 따스했다.

가슴에서부터 관자놀이까지 심장 박동 소리가 둥둥 울렸다.

온몸의 피와 신경이 몽땅 입술로 몰린 듯했다.

입술에서 시작된 찌릿한 촉감이 혈관을 타고 돌았다.

완전히 밀착된 살점이 비벼지는 은밀한 소리가 고막을 꽉 채웠다.

니콜라이는 날 밀어내지 않았다. 우악스럽게 내 입술을 탐하지도 않았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내가 건넨 키스를 받아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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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니콜라이의 목을 감았던 팔을 천천히 풀었다.

힘이 쭉 빠지며 무릎이 후들거렸다.

니콜라이와 어울리던 여자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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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고 싶지 않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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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히 차례를 기다려야죠!”

아무래도 내게 새치기당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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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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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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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와 할 말이 있다. 단둘이.”

니콜라이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속마음을 꿰뚫고 꼭꼭 숨겨둔 진심마저 파헤칠 것 같은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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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인가? 아니면 실패?’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입술을 짓깨물었다.

니콜라이에겐 유혹당한 사람 특유의 열렬함이 보이지 않았다.

분노나 노여움도 내비치지 않았다.

먹잇감을 탐색하는 포식자의 눈앞에서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때 니콜라이가 얼굴의 절반을 가렸던 가면을 휙 벗어던졌다.

거추장스러운 가면이 사라지자, 야성적이면서도 관능적인 그의 미모가 달빛 아래 완전히 드러났다.

짙은 눈썹과 그윽하고도 깊은 눈매.

높다란 콧대와 육감적인 입술은 가히 예술 작품이었다.

그런데 왜 날 이런 눈으로 보는 거지?

헤어졌던 연인과 재회한 남자의 눈빛일까? 아니면 첫사랑에 빠진 소년의 눈빛일까?

아니, 뭔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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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마성이 통한 거야. 니콜라이가 내 꼭두각시가 된 거라고!’

생명줄을 연장했다는 기쁨과 환희가 날 감쌌다.

그때 니콜라이가 입술을 달싹였다.

너무도 이성적이고 냉철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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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 황비가 돼라.”

 

***

두 여인을 탐색하면서도 니콜라이의 신경은 온통 파티장에 쏠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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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낯선 향기가 나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22살 대관식 이후 니콜라이는 어떤 향기도 맡지 못했다.

갓 구운 빵도, 만개한 장미도, 최고급 향유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후각은 오직 ‘저승꽃’이라 불리는 돌림병의 악취에만 반응했다.

저승꽃을 찾아내고, 병마를 품은 사람들을 비밀리에 격리하는 것이 니콜라이의 숙명이었다.

저승꽃이 발병하면 꽃잎처럼 붉은 발진, 기이한 향내, 고열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치료제도, 예방법도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역병을 멈추기 위해 선황은 치유의 여신 모라신시아를 찾았다.

몸소 10일 동안 금식한 뒤 100일 제사를 올렸다.

또한, 황소 1,000마리와 양 1,000마리를 신전에 바쳤다.

감복한 모라신시아 여신은 저승꽃을 내쫓고, 병마의 씨앗을 추적하는 늑대를 선황의 몸속에 하사했다.

저승꽃은 자취를 감추었고, 선황은 나라를 구한 성군으로 기록됐다.

니콜라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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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저승꽃을 찾고, 맛보고, 억누를 뿐이지. 근본적으로 저승꽃을 없애주진 못해. 선대에서 종식된 저승꽃이 다시 활개 치는 이유도, 젊은 여인들에게만 발병하는 이유도 모른다.’

선황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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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하라. 늑대는 네 욕망에 기생한다는 걸. 황제는 욕정에 흔들려선 안 된다. 사사로운 행복을 좇아서도 안 된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여신의 늑대가 곁에 있으면 저승꽃은 발병하지 않았다.

저승꽃 씨앗을 품은 이들을 황궁에 가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가 젊은 여인이었으므로 니콜라이는 카사노바란 추문을 감수해야 했다.

그걸 아는 사람은 최측근 몇 명이 전부였다.

측근들조차 28세의 청년 황제가 동정이란 사실은 알지 못했다.

니콜라이에게 여인이란 끝나지 않는 의무이자, 감시 대상일 뿐이었다.

욕망은 감각과 함께 사라졌다.

오늘도 그는 저승꽃의 악취를 따라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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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블로섬에 재스민, 스위트베리가 섞인 듯한 향기…… 착각이 아니야. 늑대도 눈치챈 것 같군.’

엇박으로 뛰는 심장 위에 오른손을 올려놓았다.

향기의 주인공이 테라스에 등장했을 땐, 얼어붙고 말았다.

맹세컨대 이보다 매혹스러운 향기를 맡아본 적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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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인은 엠스터 상단의 상속녀 아닌가? 무색무취의 보통 여인이었는데?’

엠스터 가문은 하트만 제국에서 손꼽히는 거부였다.

엠스터의 후계자를 니콜라이가 모를 순 없었다.

사교계를 주름잡는 여왕벌이란 소문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저승꽃과 무관한 여자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엘리자벳을 도발한 것은 오랜만에 느낀 강렬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니, 허기라고 해야 하나?

그도 아니면 간절한 바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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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끼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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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요!”

테라스를 꽉 채웠던 고약한 악취가 물러가고 상쾌한 꽃 향이 휘몰아쳤다.

콧속이 맑아지며 입안에 침이 고였다.

엘리자벳을 바라보는 두 눈이 굶주린 맹수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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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를 풍기는 것들의 맛이 쓰다면, 향기를 품은 것은 달지 않을까?’

기묘한 열기가 뱃속을 헝클어놓았다.

그녀를 맛보고 싶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단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던 흉포한 욕망이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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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이 악취만 맡고 사는 날 가엾게 여긴 건지도 모른다. 잠시라도 구원해줄 누군가를 보냈을지도.’

어처구니없는 망상에 사로잡힐 만큼 엘리자벳은 니콜라이를 흔들어댔다.

경련하듯 한쪽 눈을 깜빡이고, 손 키스를 반복하면서.

엘리자벳의 의도가 몹시 궁금할 즈음, 그녀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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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만 키스부터 하겠습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을 확신할 수 없었다.

입속으로 달콤함이 쏟아졌다.

의식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으로 훌쩍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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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케이크처럼 묵직하고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라, 산뜻하고 싱그러운 단맛이야. 마비된 신경이 깨어나는 것 같아.’

온 감각을 집중해 엘리자벳의 향기와 맛을 음미했다.

신음하는 것조차 아까웠다.

봄을 찬란히 수 놓은 체리블로섬 향기가 내부에서 요동쳤다.

니콜라이는 난생처음, 여자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 오래 키스하고 싶다고,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더 깊이 닿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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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 황비가 돼라.”

얼어붙은 줄 알았던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달콤한 여자가 제안을 거절할까 봐 두려운 까닭이었다.

두려움이라니. 니콜라이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바람둥이 황제를 제 발로 찾아와 대담한 키스를 건넸으니, 뭔가 바라는 바가 있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엘리자벳이란 여자가 절 유혹하겠다고 떠든다는 보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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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할 리가 없지. 세상에 부귀영화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지만 엘리자벳은 이번에도 니콜라이의 예상을 산산 조각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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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데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감히 황명을 거역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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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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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관심 없어요. 제가 원하는 건 그냥 폐하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것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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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황제에게 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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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요? 어차피 제게 푹 빠졌을 텐데.”

엘리자벳은 뻔뻔스러울 만큼 자신만만했다.

미간을 잔뜩 좁힌 니콜라이가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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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면 어쩔 테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엘리자벳의 안색이 바뀌었다.

잠시 눈동자가 흔들린 그녀가 불쑥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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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잠시 앉았다, 일어나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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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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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뜀을 해보시거나, 코끼리 코 하고 돌아보세요.”

엘리자벳은 무섭도록 진지했다.

손수 코를 잡고 빙빙 도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니콜라이가 제 명령에 따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불쾌함과 다른 당혹스러움을 삼키며 그가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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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래 줘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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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성의 팜므파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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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딱서니가 실종된 말괄량이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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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엘리자벳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이제야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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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내가 누군지도 기억해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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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황제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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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망했는지 감이 오는가?”

니콜라이가 손가락을 튕겼다.

무장한 근위 기사들이 밀어닥쳤다.

눈치 빠른 기사들이 엘리자벳을 둘러쌌다.

사색이 된 엘리자벳이 우물쭈물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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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소인이 폐하를 능멸하려던 건 아니고! 이게 좀 복잡한 사정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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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를 능멸하다니. 삼족을 멸해 마땅할 중죄로다.”

니콜라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언제 콧대를 높였냐는 듯 엘리자벳이 오들오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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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송구합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었다.

니콜라이는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 없지만, 프란츠의 손바닥 위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비단 쥐를 본 적 있었다.

검고 동그란 눈동자. 반짝반짝 윤이 흐르던 털.

겁에 질려 움찔거리던 자그마한 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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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햄스터라 불렀던가? 이 여인과 똑 닮았군. 엘리자벳 엠스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키며 니콜라이가 다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여자를 제 것으로 만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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