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드디어 벌통을 만들다 (2/65)



〈 2화 〉드디어 벌통을 만들다

- 타박타박 타악!
"야! 칼스! 너 아침부터 어디에 숨어있다가 오는거야!"

이제 막 자리잡기 시작한 벌통의 벌들을 어떻게 증식시켜야할지 고민을 하며 걷던 칼스는 집앞에서 자신의 길을 막아서는 소녀를 발견했다.

그는  손을 허리춤에 얹고는 잔뜩 성이난 표정으로 야단을 치는 여자아이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누나. 내가 분명 오늘 아침식사 시간에 아빠랑 엄마한테 오전에 마을  언덕에 놀러간다고 이야기를 했잖아."
"어쭈! 이게 누나한테 거짓말까지 하네! 내가 아침밥먹고 너 찾으려고 거기에 가봤거든? 솔직히 말해 너  마을 뒤편 숲속으로 들어갔다 온거지?"
"어 그러니까..."
"거봐! 그리고  퀘퀘한 냄새는 뭐야? 너 설마 숲속에서 불장난 하다 온거야? 그러다 불나면 정말 큰일나! 요정님들이 알게되면 잡혀가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숲속은 온갖 짐승들이 오가는 위험한곳이라고 아빠가 들어가지 말랬잖아? 내말 듣고있어? 그러니까 앞으로 어디를 가려거든 나랑 같이 다녀야해?"

칼스보다 한해 먼저 세상에 태어나 11살이 된 에일린은 그의 손윗누이였다.

그녀는 막내동생인 그가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게된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전생의 기억을 찾기 이전부터 자주 동생인 칼스를 괴롭혔고

기억을 찾은 이후에도 꾸준히 그에게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아가며 신경질을 부리곤 했으나 그녀의 상대는 속의 내용물이 서른을 훌쩍 넘긴 능구렁이 아저씨로 바뀌어 버렸으니...

그는 어린(?)누이의 비위를 살살 맞춰주며 호감을 얻어왔었는데 요 근래 벌집을 살핀다고 며칠 신경을 못써줬더니 자신과 놀아주지 않아 단단히 삐진 모양새였다.

"결국 혼자 남아서 심심했다는 말이구만."
"뭐라고?"
"아냐아냐. 그나저나 누나 꿀 좋아하지?"
"꿀? 왜? 오후에 마을밖 들판에 놀러가자구? 으응... 좋아! 얼마전에 보니 꽃이 엄청 많이 피어 있었으니 그거  따서 먹으면 달착지근하니 좋을거야 히히."

이시대에는 꿀이라는것이 원체 귀하다보니 그가 말한 꿀이 벌집에서 딴 벌꿀이 아닌 소와 양을 먹일 초지 인근에 핀 야생화를 이야기하는줄 알았는지. 어느새 오후의 일정을 새롭게 짜며 즐거워 하는 에일린이었다.

칼스는 언제 화를 냈냐는듯 방실방실 웃으며 말을 하는 귀여운 누나[?]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허리춤에 소중하게 끼고있던 단지의 뚜껑을 열어 꿀이 잔뜩 들어있는 벌집의 일부를 떼어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헤헤 들판에서 잘 살피다보면 산딸기도 찾을 수 있을.. 아붑!? 므하느그야?"
"누나 그거 뱉으면 안돼. 어렵게 구한거니까."
"으움?"
-우물우물

처음엔 자신의 입속으로 갑자기 들어온 이물질과 칼스의 손가락을 뱉어내려 했던 에일린였으나. 그의 말에 호기심  경계심 반 섞인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안에 들어온 벌집조각과 꿀을 굴려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새 그 달큰한 맛과 향에 취했는지 눈을 감고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녀였다.

"어때. 맛있지?"
"응응! 꿀꺽! 이거 벌꿀이자나? 어디서난거야? 케일 아저씨가 산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못들었는데."

케일은 에올론 마을 인근의 산속을 누비며 각종 약초와 버섯등을 채취해오는 약초꾼들을 이끄는 리더였는데, 오랜 기간 산을 누비던 그는 가끔 운이 좋을때면 산속에서 벌집을 발견해 목청이나 석청을 마을에 들여오곤 했었다.

그가 그렇게 꿀을 따오게 되면 대부분은 마를르성에 판매하였지만 마을사람들도 적게나마 꿀을 맛볼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특히 촌장인 한센의 집에는 다른집보다 많은양의 꿀이 들어와서 그때마다 음식에 달큰한 향이 첨가되곤 했었다.

"후후. 어디서 얻었는지는 나중에 알려줄게 누나. 일단 이거 엄마한테 가져다주고 나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으흐~ 맛있다. 응! 난 그럼 오전에 집에만 갇혀있었던 로니한테 가있을게."

그렇게 에일린은 얼마전에 태어난 당나귀 로니에게 가려는지 헛간으로 쪼르르 달려갔고, 칼스는 그제야 집으로 들어설  있었다.

이시간이면  어머니가 거실에 머물고 있음을 알고있었기에 그곳으로 향했고, 그의 집에서 파출부 비슷한 생활을 하는 제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어머니 안나에게 조그마한 단지를 건네주었다.

"엄마! 이거 받으세요."
"칼스 이게뭐니? 어머! 벌집이잖아? 게다가 마르지도 않은 촉촉한 꿀이 들어있네? 케일씨가 방문했나 보구나? 근데 바쁜일이라도 있었나? 얼굴도 안비치고 그냥 가버린걸보니."
"아녜요 엄마. 이건 제가 채집해온거예요."
"뭐? 정말? 대체 어디서? 숲 깊은곳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했을텐데!"
"깊은곳 까지는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걸 보세요! 제가 만든 벌통에 벌들이 집을 만들었더라구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결국엔 해냈다 이말이예요!"
"이녀석이 겁도없이! 어디 다친곳은 없고? 세상에! 왼팔이 퉁퉁 부었잖니!? 게다가  퀘퀘한 냄새는 또 뭐고."

처음에는 한눈에 봐도 신선해 보이는 꿀에 시선을 빼았겼던 안나였으나 칼스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재빨리 그를 자신의 앞에 끌어다놓고, 이리저리 다친곳이 있는지 살피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눈에 부어있는 한쪽팔이 들어왔는지 깜짝 놀라며 다그쳤고, 그는 그런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주기위해 부어있는 팔을 붕붕 휘둘러가며 큰 문제가 없다고 어필하며 말했다.

- 부웅! 부웅!
"한번 쏘이긴 했는데, 재빨리 침을 뽑고 꿀을 발라놔서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거예요. 그리고 냄새는 벌에게 공격 받지 않기위해 연기를 좀 쐬서 그런거예요."
"뭐가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벌집이 들어선 장소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  아빠에게도 단단이 일러둘테니까. 어린애가 겁도없이!"
"그건 안돼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란 말예요."
"칼스. 엄마는 네가 정말 똑똑한 아이라는걸 알고있단다. 하지만 똑똑한것과 위험한것은 별개란다. 벌은 정말 위험한 벌레라는걸 잘 알지않니. 네 말대로 한두번 쏘이는 거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있지.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운이 좋을거라고는 생각할수가 없구나. 게다가 벌집에서 나는 꿀에 이끌린 짐승이라도 만난다면 어쩌려고그래?"
"하지만 엄마. 벌들을  키워낼수만 있다면 마을에 큰 도움이 될거예요. 꿀도 꿀이지만 벌집은  녹여내면 질 좋은 초를 만들 수 있는거 아시잖아요. 그럼 그 초를 신전에 봉헌하면 사제님들이 만든 좋은 약을 마을에 구비해둘수 있을 거라구요."

안나는 그가 마을의 발전까지 운운하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다는걸 알아챘는지 가만히 아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배에서 나온 세 아이들중에서도 칼스가 주변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것을 그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지구에서의 기억을 갖게된 이후 주변 어른들의 말을 잘 따랐고, 특히 어지간한 일이 아닌이상 부모님의 말은 잘 들어왔다.

하지만 가끔 꼭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매질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가서는 결국 그런 그의 고집에 타당한 이유가 있었음이 밝혀지곤 해서 막내아들인 칼스가 이런 모습을 보일때는 한번  신중히 생각을 하게된 그녀였다.

"일단 오늘 저녁식사 시간에 이 일을 아빠에게 이야기하고  생각을 이야기 해보렴. 만약 네가 아빠를 설득할  있다면 엄마도 반대를 하지는 않으마."
"알았어요. 대신  꿀을 이용해서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주세요. 아빠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져야 제 말이 더 잘 먹혀들테니까요."
"에휴... 알았으니 나가봐라. 제니! 너는 나랑 벌집에 들어있는 꿀을 뜨도록 하자. 밀납으로 초를 만드는 법은 저번에 알려줬으니 이번에는 네 스스로 한번 해보렴."
"네."
"엄마!  그럼 저녁까지 누나랑 놀고있을게요."

양이 적기는 했으나 어쨋든 귀한 벌꿀이 들어있는 벌집이었기에 안나는 제니와 함께 꿀을 뜨는 작업을 시작했고, 칼스는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집밖으로 나와 자신을 기다리는 누이와 오후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날 오후 처음에는 누이인 에일린과 둘이서 나들이를 가려는 계획이었으나 막살 마을 거리로 나서자 하나 둘 나타난 또래의 아이들이 합류했고, 금새 10여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함께 놀아달라고 졸라댔다.

사실 마땅히 놀이문화라고 해봐야 소꿉장난 비슷한 것 뿐이었던 마을에 여럿이 모여 할만한 놀이들을 여럿 전파한 그는 어느새 마을 꼬마들의 우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낸 아이들은 해가 저물어갈때즈음 각자의 집으로 되돌아갔고, 칼스 역시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과 어울리느라 기진맥진한채 흐느적대는 누이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마을일을 돌보러 나갔던 아버지 한센과 큰형 케인은 식탁에 앉아 음식이 나올동안 오늘 있었던 일에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칼스와 에일린은 그런 아버지 한센에게 달려가 가벼운 포옹을 나누곤 각자의 자리에 앉아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에올론 마을의 주요 생산물은 소와 양에서 나오는 젖과 고기였으나, 마을 사람들의 주식은 밀로 구워낸 빵이었다.

이날 한센가의 저녁식사 식탁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미리 구워둔 빵이 놓여있었고, 그와 함께 야채와  말려둔 훈제 고기를 약간 넣고 끓여낸 스튜가 접시에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음식들보다 가족들의 눈에 먼저 들어온것은 작은 그릇에 담긴 황금빛의 벌꿀이었다.

"와! 이게 왠 꿀이예요 엄마?"
"음? 케일이 벌써 산에 다녀왔나? 색이나 상태를 보니 뜬지 얼마 안된 새 꿀인거 같은데."
"케일씨가 가져온건 아니예요."
"그래? 누가 근처에서 벌집이라도 찾아낸 모양이네. 일단 스튜가 식기전에 먹도록 하자."
"잘먹겠습니다!"

칼스는 가족들이 자신이 따온 꿀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하면서, 자신도 빵에 적당량의 꿀을 찍어가며 오랜만에 맛보는 단맛을 즐겼다.

달큰한 감미료의 힘이었을까 평소보다 좀더 빠르게 식사가 마무리되고 어느정도 배를 채운 한센은 안나가 후식으로 내어준 꿀차를 보더니 다시금 궁금해진듯 그녀에게 물었다.

"케일이 아니면 누가 벌꿀을 가져다준 거야? 내일 날이 밝으면 감사의 인사라도 전해야겠어."
"놀라지 말아요 여보. 이 꿀 칼스가 가져온거예요."
"칼스가?"

아내의 입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막내아들 칼스의 이름이 언급되자 한센은 사실이냐는듯한 표정으로 바라봤고, 그런 그의 눈빛에 다시한번 각오를 다진 칼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제가 따온거 맞아요. 그리고 벌들이 자리만 잘 잡아준다면 앞으로 꾸준하게 꿀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생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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