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드디어 벌통을 만들다. (3/65)



〈 3화 〉드디어 벌통을 만들다.

칼스는 호기심이 섞인 한센의 얼굴을 보며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중에  고비 하나가 찾아왔음을 알수 있었다.

바로 촌장인 아버지를 설득하여 벌집이 들어선 벌통의 소유권을 얻고, 거기에 앞으로 더 규모를 키워나가게 될 양봉에 대한 확실한 언질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동부왕국, 아니 동부왕국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10살 남짓의 어린아이란 그저 어른들의 말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 앞으로 살아갈 기술을 습득하는 애송이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어린아이의 인권이란 관념은 아주 희박하기 그지없었고, 그랬기에 어떤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도태되거나 다치고 죽게 되더라도 새로 낳아서 키워나가면 된다 여겨졌다.

한센 역시 자신의 세 아이중 맞이인 케인에게 마을의 전반적인 일들을 가르쳐왔고, 딱히 큰아들 케인에게서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기에 아직은 어린 칼스에 대한 관심과 기대치가 그다지 큰편은 아니었다.

그저 건강하고 엇나가지 않게 자라서 때가되면 인근마을의 촌장이나 유력자의 딸과 혼인하여 마을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어주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막내인 칼스가 자라나면서 종종 총명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한센에게있어 우선시 여겨지는것은 장남이자 차기 촌장이 될 케인이었다.

"그래? 장하구나. 하지만 벌집은 위험한 것이니 앞으로는 그것을 발견하면 네가 건들지 말고 마을 어른들에게 말하도록 해라."
"아뇨 아빠.  벌집은 제거예요. 제가 만들었던 나무 상자들 기억하세요? 벌집이 생긴곳이 바로 그 안이라구요. 제가 벌들이 찾아들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고, 그랬기에 그 안에 벌들이 집을 만들어 살게된거라구요."
"하하하! 칼스. 벌은 원래 나무틈이나 바위밑 공간같은 좁은 공간에 집을 만드는 녀석들이란다. 꿀이 탐이 나서 그런가본데 네가 발견한 벌집이니 충분한 몫을 떼어 주마."
"헤에! 부럽다. 누나한테도 많이 나눠줄거지?"

칼스는 역시나 한센을 비롯한 가족들은 자신이 벌집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수 있었다.

그는 벌통에서 나온 꿀을 어떻게 나누고 사용할지 계획을 세우는 가족들을 향해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생각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 드르륵!
"아녜요! 사실은 아르케님의 계시가 있었다구요! 꿈에서 직접 제게 그렇게 하라고 알려주셨단 말이예요!"
"음?"
"칼스?"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친 그의말에 가족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칼스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막내의 모습에 화를 내려했던 한센은 곧 그 내용을 머릿속에 되새기고 진지해진 눈빛으로 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저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치기어린 외침이라고 여기기에는 그간 보여온 막내아들의 행동이 범상치 않았고, 또한 아무리 어리다한들 신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는것은 금기에 가까운 행위임을 모르지 않을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말이지만 네 욕심을 채우려고 여신님의 이름을 판것이라면 크게 혼쭐이 날 각오를 해야할거다."
"사실이예요. 어느날부터 꿈에서 엄청나게 아름다운 분이 제게 벌집으로 쓸 상자를 만드는 법과 벌을 진정시키는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그게 사실이라면 진작 나나 엄마에게 알렸어야 하지 않느냐."
"사실 저도 성공적으로 벌들이 벌통안에 들어설때까지는 진짜 여신님인지 알수 없었어요. 그런데 말씀을 그대로 따랐더니 정말 벌들이 들어섰단 말예요."

칼스는 겉으로는 두려움에 가득찬 표정을 연기하면서 가족들, 특히 아버지인 한센의 표정을 살폈다.

동부왕국은 여러 신들을 섬기는 다신교가 주류를 이루는 나라였고, 오늘 그가 언급한 아르케는 숲과 꽃의 여신으로 인간들 사이에서는 그저 아름다운 여신쯤으로 여겨졌으나 숲에서 생활하는 숲지기나 나무꾼 그리고 엘프들에게는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였다.

사실 칼스는 이 이야기를 준비하면서도 과연 이것이 먹힐까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그도 그럴것이 신이라는 존재가 없는 세상에서 30여년간 살아온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그였기에 마를르성의 신전에서 1년에 한번정도 영지내의 마을을 순회하는 사제들의 모습을 보았음에도 아직 그러한 신들이 실존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의 말로는 그들이 신성력이라는 힘을 사용해  병이나 상처를 고쳐준다고는 하는데, 그는 아직까지 그런 기적을 직접 두눈으로 본적이 없었다.

다만 그러한 것들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는데 이 세계에는 그가 살던 지구에는 없는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종족들이 실재로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책에서만 보았던 검기와 마법 신성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법은 또 없지 않겠는가.

"으음... 하지만 네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수는 없다."
"그렇다면 제가  벌들을 제대로 키워내게 되면 믿어줄 수 있는거잖아요? 만약 제가 단순히 벌집에 들어있는 꿀때문에 여신님의 이름까지 팔아 거짓말을 한거라면  벌들을 키워낼 수 없을것 아녜요."
"좋다. 네 말이 부디 사실이길 바라마. 그렇지 않다면 너는 더이상 이집에 머물 수 없게 될테니 말이다."

한센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방으로 들어갔고, 다른 가족들이 왠지모르게 가장인 한센의 눈치를 살피는것이 느껴졌기에 칼스는 조용히 자신의 식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잘먹었습니다. 죄송해요 저때문에 즐거운 식사자리가 엉망이 됐네요."
"칼스. 정말 여신님께서 네게 가르침을 내리신거니? 괜한 거짓말을 한건 아니지?"
"네. 정말이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알겠다. 정리는 나랑 에일린이 할테니 먼저 올라가보렴."

그날 저녁, 꿈에서 본 여신과 벌통에 대해 물어오는 형과 누나의 질문세례를 받던 그는  남매가 잠에 빠져들고 나자 자리에 누운채 앞으로 해야할 일들에 대해 하나씩 다시한번 점검해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10일가량 벌통에 머물렀고, 산란과 채밀도 꾸준히 하는걸로 봐서 그 벌들이 다시 이동하지는 않을거야.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빠르게 벌들이 불어나고 있다는건데... 일단 안에 벌집틀 몇개를 더 넣어주고,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분봉(일정 규모이상의 벌들이 새 여왕벌을 만들고 무리를 나누는 것)을 유도해야지. 그리고...'

칼스는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가던  어느순간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칼스는 평소처럼 눈을 뜨자마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는 지구에서 양봉일을 시작하고나서 체력을 기르기 위한 운동을 하게되며 얻은 습관이었는데, 이곳에서 기억을 되찾고  이후에도 꾸준히 아침운동을 했고 그래서 그런지 꽤나 열악한 환경에 내던져졌음에도 작은 잔병치레 한번도 겪지 않았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리저리 움직여댄후 살짝 배어나온 땀이 아침공기와 맞닿아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잠시 휴식을 취하던 그에게 아버지 한센이 다가왔다.

"칼스! 아침식사 후에 케일과 함께 네가말한 벌통이 있는곳으로 가보도록 하자.  말이 사실인지 확인을 해 보아야겠으니까."
"네. 그럼 간단히 준비물만  챙겨둘게요."
"아참! 어제는 내가 말이 좀 심했던거 같다. 아비가 되어서 아들의 말을 믿어주지도 못하다니 말이다."
"아녜요. 아버지는 마을의 대표이시잖아요. 마을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짜식... 네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은 안해도 되겠구나."

어젯밤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건지는 모르지만 한결 나은 분위기가 결코 자신에게 나쁠것은 없었기에 마음이 가벼워진 칼스는 벌통을 살필때 사용할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미리 연락을 해두었는지 마을 약초꾼들의 리더인 케일이 찾아왔고, 촌장인 한센과 칼스 그리고 케일 세사람은 마을 주변을 두르고 있는 목책 너머의 숲으로 들어갔다.

칼스의 안내에 따라  초입부에 위치한 공터에 자리잡은 벌통에 도달하자 역시나 자신의 세를 과시라도 하듯 위협적인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 부우우우웅!
"음. 확실히 벌들이 자리잡고 있군요. 저 나무상자가 칼스녀석이 말한겁니까?"
"나도 듣기만해서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저 벌들을 보니 맞는거 같군."

케일은 한눈에 보아도 제법 규모가 있어보이는 벌통의 모습에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한센 역시 아들의 말이 그저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조용히 칼스를 지켜보았다.

이에 어제 벌통을 열어봤을때 미리 넣어둔 벌집틀이 거의 대부분 채워져 있음을 확인했던 칼스는 오늘 추가로 넣을 소비(벌집틀)를 가져왔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야생쑥을 감아 만든 훈연횃대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자. 그럼 내검에 앞서서 잠시 여기에서 나오는 연기를 좀 쐬어 주세요. 안그러면 벌들에게 공격당할 수 있으니까요."
"호오... 연기를 쐬서 벌을 진정시킨다는건 어디서 배운거지?"
"케일 저게 효과가 있기는 한건가?"
"물론입니다.  또한 바위틈이나 나무에 자리잡은 벌집을 발견하면 주변의 나뭇잎들을 태워 연기를 만들어 쫒곤 하니까요. 근데 이 풀은 좀 특이하군요. 적은 양인데 뿜어지는 연기가 제법 풍부하니 효과가  좋을거 같네요."
"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들의 작업을 바라보는 케일의 반응을 본 한센의 눈빛이 좀더 진지해졌고, 그런 뒤의 사정을 알리 없는 칼스는 어느새 준비를 마치곤 두사람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벌통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선 그가 손에 든 훈연기를 이용해 벌들의 움직임을 진정시켰고, 곧 벌통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뚜껑을 열자  안에 가득 들어차있는 벌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서 멈추지않고 칼스가 벌떼들 사이로 손을 넣어 꿀이 들어있는 벌집을 꺼냈고, 거기에 붙어있는 벌들을 살짝 털어내고서 두 사람의 눈앞에 들어보였다.

"자 여기 방마다 차있는게 꿀이예요. 케일아저씨는 숲속에서 자주 봤으니 잘 아시겠죠?"
"확실히. 제법 꿀이 많이 들어차있구나. 그보다 이 벌집틀은 네가 만든거냐?"
"네. 제가 가져온 새 벌집틀 보이시죠? 저거처럼 네모난 틀 사이에 벌집의 중심을 잡아줄 실이나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십자로 교차시켜 두면 이렇게 나무틀 안에 이쁘게 집을 지어놓거든요."
"그렇군 확실히 일반적인 벌집보다는 균일하게 집을 지어두었어. 게다가 이런식으로 틀을 사용한다면 벌집을 크게 망가트리지 않으면서 꿀이 있는 부분만 채집할 수 있겠군 멋진 생각이야."
"일단 이건 내려놓고...  여기 이쪽에 있는게 여왕벌인데요. 얘가 이 벌들의 영주님이라고 보면 되요. 얘 혼자서 이 많은 벌들을 낳아서 키운거죠. 이쪽 판에는 꿀이 들어있지 않아요. 벌들은 기본적으로 집과 먹이창고를 분리해두거든요. 집은 여왕의 주변에, 먹이는 바깥쪽에 두는식으로요."

칼스는 아버지와 케일에게 간단히 벌집의 구성과 구조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고, 새로 가져온 소비 두장을 더 넣어주고, 다시금 벌통을 닫기 시작했다.

세력이 제법 커지고는 있었으나 아직 분봉을 할만한 단계는 아니었기에 빈 벌집을 넣어 더욱 큰 강군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사이 두어번 벌에 쏘인 한센과 케일은 멀찌감치 물러나있었는데, 칼스 역시도 벌에 쏘이기는 했으나 이럴때 큰 동작을 취하면 더욱 벌들이 흥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주변을 정리하고 벌통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벌집을 정리해두고 물러나온 칼스는 여러 질문을 던지는 케일과 한센에게 그들이 이해할  있을만큼의 얕은 양봉지식을 설파하였다.

물론 그 지식의 출처는 철저히 꿈속에서 본 아르케 여신이 되어있었고, 그런 아들의 논리정연한 말에 한센은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아들의 말을 믿어주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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