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루엠 상단의 방문 (4/65)



〈 4화 〉루엠 상단의 방문

칼스는 아버지 한센과 케일에게 양봉지식의 일부를 설파했던 그날 이후 그저 촌장집 막내아들이라는 태생적인 신분을 벗어나 에올론 마을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편입되었다.

보통 이시대의 남자가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가 15살 전후라는것을 생각해봤을때 이제겨우 11살인 칼스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는것은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센은 당장 그날 저녁부터 여느때와 같았다면 장남 케인과 둘이서만 나누었을 마을의 여러 업무에 대한 대화에 칼스를 참여시켰고, 그가 만든 벌통과 앞으로 만들어질 벌통들을 관리하는것에 대한 권리를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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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우웅!

어느덧 칼스가 벌집을 관리하기 시작한지도 2달여가 흘러갔다. 초라했던 벌통은 이제 마을에서 목공일을 주로 담당하던 잭슨이 만든 제법 그럴듯한 녀석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기에 어느정도 벌들이 자리를 잡았다 느꼈을때  냄새를 맡은 여러 짐승이나 소형 몬스터가 접근해올 위험에 대비해 조심스럽게 벌통을 마을 목책안 방벽에서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한 위치로 옮겨야 했다.

이때 촌장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십분 활용해 차후 가축이 늘어나면 축사 자리로 활용하려 비워둔 널찍한 공터를 차지할 수 있었다.

"꿀이 채워지는 속도만 봐서는 쭉쭉 늘려나가도  문제가 될거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하나정도만 더 늘려볼까? 마침 이녀석들도 새로 왕대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사실 그가 좀더 욕심을 냈다면 더 빠르게 벌통의 숫자를 늘릴 수 있었겠지만. 아직 주변의 환경이 어떤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인지라 어떤 상황이 닥쳤을때 유연하게 대처 가능한 수인 5개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여름꽃 개화시기가 되어서인지 그의 생각을 훌쩍 뛰어넘는 양의 꿀이 채밀되는것으로 보아 어느정도 수를 늘려도 될거같아 보였다.


"으음. 루엠 상단이 다음주쯤에 온다고 했던가. 그럼 슬슬 팔만한 것들을 만들어야겠는데. 아무래도 일손이 더 필요하겠어. 누가좋으려나... 역시 제니랑 잭이 좋을거 같긴한데."

아직까지는 칼스 혼자서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었던데다, 혹여나 얼마 되지 않는 벌들을 소실할 우려가 있었기에 홀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해왔었다.


그러나 이제 벌통의 수도 어느정도 불어났고 그가 자리를 비우거나 다른일을 할때 벌통을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했기에 사람을 좀 지원받기로 마음먹은 그였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가장먼저 떠오른것이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고 마을의 여러 일을 도와 품삯을 받아가며 살고있는 제니와 잭 남매였다.

당장은 남의 밑에서 품팔이를 하면서 살수밖에 없는 그 남매에게 양봉일의 일부를 가르쳐 준다면 다른이들보다는 좀다 열정적으로 배움에 임하지 않을까 여긴것이다.


게다가 다음주면 외부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에올론 마을에 정기적으로 생필품을 거래하러 오는 상단이 방문할 예정이었고, 그때  2달간 조금씩 모아둔 꿀과 밀랍등을 팔아서 필요한 것들을 구비하기로 마음먹은 칼스였다.


"훈연기로 쓸 수 있을만한걸 구할  있었으면 좋겠는데. 횃불형태로 사용하면 여러모로 불편한점이 많단말이지. 으으. 일단은 팔아치울 물량부터 최대한 확보하자. 첫 거래인만큼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최대한 받을수있는만큼 받아내봐야지."

대부분의 물품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하는 사회였기에 가끔씩 찾아오는 상단행렬에 자신이 원하는 물품이 있을지도 의문인 상황이었다.

보통 이런 외진 마을까지 오는 상단의 경우 그 마을의 형편에 맞춰 들고갈 물품을 결정했고, 그렇기에 일반적으로는 식료품과 날붙이같은 것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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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후 이른아침. 에올론 마을을 포함한 인근 영토를 다스리는 마를르 남작령의 주성인 마를르성문을 빠져나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3대의 마차에는 뭔지 모를 짐들이 가득 쌓여있었고 그 주변엔 가벼운 무장을 갖춘 용병 10여명이 호위하고 있었다. 그중 중앙 마차의 마부석 옆자리를 꿰차고 앉은 캐러밴의 리더로 보이는 이가 마차의 옆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이번에 저희 상단이 향할 에올론 마을은 이곳 마를르 영지에서 아르덴 대삼림과 가장 가까이 접한 곳이지요. 실례가 안된다면 그곳까지 함께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조심스러운 그의 질문에 꽤나 손때를 많이탄것으로 보이는 로브위에 작은 가방을 메고있던이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답했다.

"숲의 길을 걷는 이들이 발걸음을 행하는데는 아르케 여신님의 의지가 함께하기 마련이지요. 마침 저도 그쪽으로 향하는 중이었으니 그 마을까지 함께하는게 어렵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오오! 혹시 모를 위험이 있는 길에 함께 해주신다면야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여하튼간에 가는 길에 피로를 느끼시거든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안락한 자리는 아닐지라도 부족하나마 짐칸에라도 자리를 내어드릴테니."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대륙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 이정도 여정은 이미 충분히 겪어보았습니다. 게다가  길이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면 아무리 힘든길이라도 문제없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펑퍼짐한 로브 안쪽에서 듣는이로 하여금 절로 기분이 좋아지게만드는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상인은 기쁜기색을 감추지못하며 연신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자! 목적지는 에올론 마을이다! 주변에 큰 위협이 될만한 것들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없었으나 방심하지말고 나아가도록!"


그가 외침소리에 선두의 있던 마차가  멀리 보이는 푸른 숲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 드르르르르륵
- 다각. 다각

일반적인 성인남성이 걷는 속도로 나아가는 상행을 따라 걷기 시작한 이가 답답했는지 뒤집어쓰고있던 로브를 벗었다.

"후우...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겠구나."


그러자 초록빛 머리칼을 길게 기른 여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만 그녀의 귀는 일반적인 사람의 것으로 볼수 없을 정도로 길게 뻗어나와 있었는데 이는 바로 아르덴 대삼림속에 무리지어 살아가고 있다는 엘프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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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솨아아아아~

릴리나는 6년만에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들떠있었다.

길게는 300년의 세월을 살아가는 종족인 엘프들은 불과 200여년전만 하더라도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기피하며 자신들만의 영역안에서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신이 절대적 유일신이라고 굳게 믿었던 솔라교단의 힘을 등에업은 솔라스 제국이 대륙을 통일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믿던 태양신 솔라가 아닌 다른 신을 따르는 이들과 마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신을 믿던 인간뿐 아니라 수많은 이종족들이 제국군의 창칼에 목숨을 잃었으며, 특히 개개인의 능력에비해  개체수가 현저히 적었던 엘프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동쪽 끝에 있는 아르덴 대삼림으로 쫒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솔라스 제국은 통일을 이룩했던 클라우 황제가 죽고 그의 후손들이 제대로된 통치를 하지 못하자 지방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최초 그들이 세웠던 솔라스 제국의 근원지인 대륙 서북부의 작은 영역으로 축소되어 이제는 제국이라는 이름마저 잃어버린채 솔라스 왕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있었다.

이러한 과정속에 엘프들은 자신들이 너무 폐쇄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느라 바깥의 동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이와같은 참사를 겪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이후로는 제법 많은 수의 엘프들이 새로운 고향인 아르덴 숲을 떠나 대륙을 활보하며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주를 뽐내게 되었다.


릴리나는 솔라스 제국이 패망한 이후 태어났기에 인간을 직접 접할일이 없었고, 말로만 들었던 인간들의 생활상을 궁금해했었다.

그렇기에 성년식을 치루자마자 마을을 나서서 대륙 이곳 저곳에 자리잡은 일족들의 안부를 묻기위한 임무에 자원했고 이제 출발할때 받았던 모든 임무를 마치고 귀환길에 오른 참이었다.

"처음에는 위험한 일도 많이 겪었었지. 대부분은 내가 너무 순진해서 당한 일들이긴 했지만."


처음 마을을 나왔을 때는 그저 순수하기만 했던 그녀를 이용해 먹으려는 인간들의 수작으로 인해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겪어야만했다.

그 과정속에서 릴리나는 엘프들과는 차이를 보이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인간들이 그 욕망이 있었기에 다른 어떤 종족들 보다도 훨씬 빠르게 세력을 뻗쳐 나갈 수 있게 되었음을 알  있었다.


"물론 순수한 욕망으로만 치자면 다른 몬스터들이 훨씬 앞서긴 하지만. 그들에게는 지혜라는것이 결핍되어 있으니까. 그나저나 이제 이 마을을 지나면 한참동안은 인간들과 마주할 일이 없겠지."

마를르성에서 이른아침에 출발한 릴리나를 포함한 일행은 저녁이 다 되어갈 무렵 인공적으로 조성한듯 보이는 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는것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녀는 마음만 먹는다면 이런 작은규모의 캐러밴과 동행할 필요없이 곧바로 자신의 고향 엘그랑가든으로 향할 수 있었으나 어차피 방향이 크게 다르지않으니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영역에서 가장 가까운 영지와 마을의 동향을 살필겸 마를르 성과 에올론 마을에 들르기로 한것이다.

"엘프님. 목적지인 에올론 마을에 다 도착했는데 같이 안으로 들어가실겁니까?"
"여기까지 왔으니 잠시 들러서 마을을 살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네요. 아무래도 제 고향과 가장 인접한 곳이라고 하니 어떤 분위기인지 직접 둘러볼참입니다."
"뭐 이런 시골 깡촌마을을 둘러봐도 크게 눈에 띄는것은 없겠습니다만. 엘프님이 원하신다면야 함께 가도록 하시지요. 이봐! 자네! 먼저 달려가서 마를르성의 루엠상단에서  일행이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릴리나와 잠시 대화를 나누던 루엠상단의 리더가 휘하의 상인 한명을 먼저 마을로 보냈고, 잠시  그들의 앞에 에올론 마을의 촌장 한센과 그의 아들들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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