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루엠 상단의 방문 (7/65)



〈 7화 〉루엠 상단의 방문

"자자~ 여기 잘드는 농기구들이 있어요! 집안에 있는 가죽이나 훈제고기와 교환해드립니다!"
"남부 평원에서 막 빻아서 가져온 밀가루도 있습니다!"
"저기. 밀가루를 좀 구하려는데."
"아이고! 어서오십시오! 일단 이쪽에 앉으시고."


이미 마을 공터에 마련된 임시 장터에는 좌판이 벌려져있었고 그곳에 자리한 상인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물건을 마을 사람들에게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역시 흔치않은 기회임을 알고있었기에 그간 집에 쌓아두었던 여러 물품들을 가지고 나와 자신이 원하는 물건과 교환하려 했고, 여기저기서 교환비를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들의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단. 훈연기로 쓸 주전자부터 찾아봐야겠는데. 어디보자... 저쪽에서 집기류를 판매하는 모양이네."


칼스는 좌판들 중에서 각종 농기구과 솥단지등을 판매중인 곳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옵-! 응? 어린애잖아? 간식거리를 찾는거라면 저쪽으로 가보거라."

아무래도 집기류는 언제나 수요가 넉넉한편이어서인지 이미 많은 마을사람들이 그 앞을 서성이고 있었고, 그런 마을사람들이 혹시나 물건을 망가트리거나 훔쳐가지는 않는지 살피던 상인은 칼스를 발견하고는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군것질 거리를 사러 온건 아니구요 제가 찾는 물건이 있는지 궁금해서 와봤어요."
"엥? 네가? 엄마 심부름이라도 온게냐? 흠... 뭘 찾고있는데?"
"혹시 쇠로 만든 차주전자같은게 있을까요?"
"차주전자? 이런 깡촌에 그런 물건을 들고오는 머저리가 있으려고? 게다가 차주전자를 쇠로만드는녀석이 어디있어?"
"음. 그게 제가 찾는물건은요..."

칼스는 상인에게 간단히 훈연기의 기능과 쓰임새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들은 상인은 자신의 짐가방을 뒤적이더니 손잡이가 달린 작은 반합을 꺼내 보여주었다.

"네가 말하는 물건이 뭣에 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 이거면 안에다가 풀떼기를 넣고 불을 붙여도 크게 망가지거나 하지는 않을거다. 우리같은 상인들이 장거리 상행에 나갈때 스튜같은걸 끓여먹을때 쓰는 반합인데 어떠냐? 이게 아니면 딱히 다른물건은 없는것 같구나."
"으음..."

칼스는 상인이 건네준 반합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제법 많은양의 철을 써서 만든것인지 크기에비해 무게가 나갔고, 그의 설명처럼 조리용으로 쓰였는지 밑바닥 부분에는 약간의 그을음마저 남아있었다.

그말은 직접 불에 닿아도 상하지 않을정도의 내열성을 갖추고 있다는것을 의미했기에 상인의 말대로 아쉬운대로 훈연기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어보였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쓸만할거같아요. 이거 얼마예요?"
"얼마라니? 돈으로 지불하려는게냐?"
"네."


당연하다는듯 대답하는 칼스의 모습에 의심섞인 표정을 보이는 상인이었고, 바로 그때 구매한 꿀과 밀랍을 안전하게 창고안에 넣어둔 제이콥이 멀리서 칼스의 모습을 보았는지 두사람을 향해 다가와 물었다.


"뭐 사야할 물건이라도 있는거냐?"
"엇? 부상단주님 여기는 어쩐일로."
"아아. 별일 아니니 걱정말게. 여기 작은 손님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이지."
"안녕하세요 제이콥님. 벌을 키울때 쓸 물건을 좀 사려구요. 근데 제가 찾는 물건이 없어서 적당히 비슷한 물건으로 찾아보고 있어요."
"특이한 물건을 찾나보지? 하기사 이 마을에 올때는 그다지 많은 물건을 챙겨오는편은 아니지. 대부분 식료품이나 간단한 생활용품만 팔리는 곳이니 말이야.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언제한번 마를르성으로 찾아 오는게 나을거야."
"조언 감사합니다."

그렇게 칼스에게 이야기를 해준 제이콥은 다시금 다른 상인들을 살피려는지 멀어져갔고, 칼스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살피는 상인에게 품속에 넣어두었던 은화 1개를 꺼내보였다.

"그 은화로 지불하려고?"
"왜요? 그 반합통 하나가 은화한개보다 비싸다고 하려는건 아니죠?"
"에이. 내가 아무리 장사치라고 해도 그정도 날강도짓은 안하지. 다만 이런 깡촌에서 물물교환이 아닌 돈으로 값을 치루는 애가 있을거라고 생각을 못했을 뿐이야. 어디보자. 이 반합이면 동전 30개정도는 받아야할거 같구나."
"그렇게 비싸요?"
"마를르에서도 동전 15개는 줘야 구할수 있는 물건이다. 사실  비싸게 받을수도 있지만 제이콥님과 아는 사이인거 같아 싸게주는거야."


칼스는 두배의 값에 판다는 말을 인심이라도 쓴다는듯 말하는 상인을 보며 내심 욕지기가 치밀었으나, 당장 급한것은 자신이었기에 임시 훈연기로 사용할 반합2개와 마을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을 이것저것 사들이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왁자지껄했던 장터도 슬슬 사람이 줄어들었고, 상인들은 하나 둘 자리를 접고 성으로 돌아갈 채비를하기 시작했다.

이미 충분한 물품을 팔아 목표했던 물량을 확보한 이들은 희희낙낙한 표정으로 저들끼리 웃고 떠들어댔고, 영 성과가 시원찮았던 이들은 아직 마을을 기웃거리는 아낙들에게 연신 흥정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저들은 다시 왔던길을 따라 되돌아갈것이었다.

***

그날저녁 여전히 자신의 방에서 쫒겨난 분풀이를 해대는 누이를 피해나온 칼스는 릴리나가 머물고있는 방에 찾아갔다.

- 똑똑

"들어와도 좋아요 칼스."

한없이 자신을 귀찮게 만드는 에일린이 머물때와 다를바 없는 작은 공간이었으나, 그 안에 릴리나가 자리하고있다고 생각하자 왠지  긴장감이 느껴지는것 같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선 칼스였다.


"글도 쓸줄 아는건가요 칼스?"
"네. 능숙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는 읽고  수 있습니다."


릴리나는 자신에게 꿀을 준 대가로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하던 시골마을의 소년이 종이와 펜을 들고 들어서는 모습에 다시한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마을의 촌장임을 상기한 그녀는 어느새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침대맡에 걸터앉았고, 칼스는 에일린의 화장대 의자를 끌어와 앉아서 깃펜끝을 잉크에 담궈 쭉 빨아들였다.

"자. 그럼 뭐가 궁금한건가요?"
"먼저. 왕국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하셨죠? 리온 왕성에도 가보셨나요?"
"물론이죠. 리온은  들러야할 일이 있었으니까요."
"여기서 먼가요?"
"여러곳을 거쳐서 오긴했지만. 마를르까지 마차로 15일쯤 움직였던것 같네요. 트루아후작령과 라힘스백작령을 지나야 마를르 남작령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럼 왕국에서..."


칼스는 릴리나에게 동부왕국에 위치한 주요 영지들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특산물등의 정보를 얻을  있었다.


특히 왕국에서도 마를르남작령이 위치한 동쪽 지역의 정보를 집중적으로 얻어냈는데,  결과 마를르남작령은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자리잡은지 얼마 안된 지역이라 왕국의 다른지역보다 발전이 더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흐음. 분명 이마을에서 나고자란 아이라고 들었는데. 하는 행동은 여느 귀족가의 자제만큼이나 명석해보이는데?'

릴리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중요한 내용들을 휘갈기듯 적어내려가는 칼스를 보며 보면 볼수록 신기한 아이라는걸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녀는 칼스가 화려한 도시의 경관과 귀족들의 모습등을 이야기해달라는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을때 종이와 펜을 챙겨왔을때부터 그런 예상이 틀렸음을 직감했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과연 눈앞의 이 소년이 왕국에서 가장 구석진곳에 위치한 마을에서 태어난 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워졌다.


"사실 마를르성도 다른지역의 남작령의 주성이 될만한 규모는 안되어 보였지요. 그나마 가까스로 체면치레정도는 할 정도라고해야하나? 뭐 그래도 주변 영지와 마찰만 빚지않으면 다른 위험요소가 없는곳이라 발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이지만요.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기는 하는거죠 칼스?"
"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는 다 알아들었어요. 고마워요 릴리나."
"좋은 꿀을 공짜로 받았으니 이정도는 해줘야지요."

칼스는 그녀에게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싶었으나. 이미 밤이 깊어가는 시간이었기에 아쉽지만 여기서 질문을 끝마치기로했다.

"더 이야기를 나누다간 밤을 샐거같으니 여기까지 할게요. 내일이면 릴리나도 고향으로 돌아가는건가요?"
"그래야죠. 원래는 오늘 낮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칼스와 약속을 해버리는 바람에 하루 더 머물게 된거니까요."
"아쉽네요.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싶었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마을을 떠나는 시기를 물었으나 역시나였고, 오늘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앞으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점검하기로 마음먹었다.

칼스는 방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릴리나가 해준 이야기들을 되새겨보고 있었다. 몇년간 마을에서 살아오면서 주변사람들에게 들어온 이야기와 그녀의 말을 종합해보면 확실히 지금 그가 살고있는 시대는 지구의 중세시대와 흡사한면이 많았다.


'마를르 남작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은 규모의 가문이었나보네.'

에올론 마을이 속해있는 마를르남작가는 그 지위를 인정받은지 50여년밖에 되지않은 신생가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마를르 성에 인접한 마을이아닌 거리가 조금 있는 우리마을 같은곳들은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거군, 아직 마를르 성 주변 정리도  완료된게 아니라고 하니까.'


60여년전 가솔들을 이끌고 지금의 마를르성이 위치한곳에 자리잡은 그들이 주변에 살고있던 주민들을 끌어모아 도시를 만들었고, 어느정도 자리를 잡게되자 공식적으로 리온왕가에 봉신으로 임명되어 남작위를 받고 그들의 영향력하에 있는 마을들을 봉토로 인정받았다고했다.

'하지만 50년이나 지난만큼 슬슬 그것도 막바지에 다다랐을테니 어느정도 거리에 있는 마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려들겠지. 적어도 그 전까지 재력이든 무력이든 갖춰야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을텐데.'


어떻게하면 이제 막 씨앗을 틔운것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사업을 키우고 마을을 발전시켜 행복한 이세계 라이프를 만끽할수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칼스는 어느순간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음날 여느때처럼 새벽녘에 눈을든 칼스는 매일같이 빼먹지않고 하는 아침운동을 하기위해 집밖으로 나섰다.


"엇. 릴리나! 간밤에 잠은  잤어요?"
"덕분에 푹 쉬었지요. 이 마을은 어머니숲과 가까워서인지 더더욱 편안하게 쉴수 있었어요."


그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평소보다  환한 표정을 짓고있는 그녀였다. 다만 그녀의 등에는 작은 짐가방이 메여있었고, 그 아래엔 밧줄로 단단히 묶어둔 꿀단지역시 걸려있었다.


"그나저나 차림새를 보니 이제 떠나실 모양이시군요."
"후후. 어제 말했다시피 원래는 이미 마을로 떠났어야했으니까요. 게다가 오늘 저와함께 이 마을을 찾은 상인분들도 출발하신다니 마을이 부산해지기전에 조용히 출발하려고했지요."
"그럼 제가 마을앞까지 배웅해줄게요."

칼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새벽공기를 마시며 마을길을따라 걸어내려갔다.


아직 동이트기전인데도 몇몇 마을사람들과 상인들은 하루를 시작했는지 바삐 움직이고있었고, 그런 모습들을 구경삼아 걷다보니 어느새 마을입구에 도달할수 있었다.

"어라? 칼스. 이시간에 여기는 무슨일이야? 뒤에계신분은?"


해가진 후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외부의 습격에 대비하기위해 마을입구의 문을 닫고 두어명이 경비를섰는데 그들중 한명이 칼스와 릴리나의 접근을 알아채고 다가왔다.

"콥스형! 이분은 엊그제 도착한 상인분들과 함께온 엘프님이신데 먼저 마을을 나선다고 하셔서요. 숲으로 돌아가신다고 하네요."
"그래? 엘프님이 나가신다는데 얼른 열어드려야지. 잠시만 기다려줄래? 야! 웨일럼! 문좀열자!"


두사람은 칼스의말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않고 굳게 닫혀있던 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그러고는 마을을 나서는 릴리나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는데, 그들역시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엘프를 직접 눈으로 본적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칼스가 함께 나와주지 않았다면 조금 곤란했을뻔 했네요."
"아마 릴리나가 부탁을 했으면  친절하게 대했을거예요. 콥스형은 케일씨의 큰아들이거든요. 케일씨는 숲에서 약초를 캐거나 작은 산짐승을 사냥해오는분이시라 엘프분들한테는 더 깍듯하게 대하실테니까요."
"그런가요? 어쨋든 이렇게 같이나와줘서 고마워요. 너무 멀리까지 나오면 칼스가 위험할테니 슬슬 이쯤에서 헤어지는걸로 하죠."

릴리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칼스를 향해 곧게뻗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고, 칼스는 활짝웃으며 그런 그녀의 손을 맞잡고 두어번 흔들어주었다.


"언제나 숲의 푸르름이 함께하길 빌게요 릴리나."
"후후 고마워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마을을 나서게되면 잊지않고 들리도록 할게요 칼스. 아참 이걸 저에게 방을 뺏긴 칼스의 누이에게 전달해줄래요? 그리 귀한건 아니지만 나름 우리 마을에서 손재주가 좋은이가 만든거라 마음에 들어할거예요."


그녀는 가끔 머리를 정돈할때면 사용해왔던 작은 머리장식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에일린누나가 좋아하겠네요.  전달해줄게요. 그나저나 저도 그럼 한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뭐 필요한거라도 있어요?"
"아뇨. 그런건아니고 다음에 볼때는 좀더 편하게 저를 대해주셨으면해요."
"하하하! 그때는 칼스가 훌쩍 커버린 후일지도 모르는데요? 좋아요. 노력해볼게요."

칼스의말에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고는 아직은 어둠이 가득해보이는 숲속으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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