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루엠 상단의 방문 (8/65)



〈 8화 〉루엠 상단의 방문

몇시간  이미 떠날준비를 모두 마친 루엠상단의 일원들이 마을밖에 서있었다.

마을에 들어설때 각종 식료품으로 가득했던 짐수레에는 에올론 마을에서 교환한 가죽과 훈제된 고기, 그리고 유제품으로 가득했고, 특히 부상단주인 제이콥의 짐수레에는 칼스에게서 구입한 꿀단지들이 잘 밀봉되어 묶여있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제이콥님."
"아아. 촌장덕분에 편히 머물렀네."
"모든것이 부족한 마을이라 여러모로 불편하셨을텐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이번일은 저보다  맏아이인 이녀석이 많이 준비를 했었죠."

한센은 마을을 떠날 준비를 마친 제이콥에게 다시한번 장남인 케인의 존재를 부각시켰고, 그런 그의 의도를 알아챈 제이콥은 케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말했다.

"네가 이 마을의 차기 촌장이 될 아이지? 마를르성에 볼일이 생기거든 꼭 상단에 들르거라. 내가 이래뵈도 마를르성내에서는 제법 발이 넓은편이니 여러 사람을 소개시켜주마."
"감사합니다."

그렇게 케인과도 가벼운 인사를 나눈 제이콥은 칼스의 앞에 다가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 상행에서 가장  수확이라면 바로 너를 알게된게 아닐까싶구나. 부디 여신께 받은  지혜를  활용해  마을과 우리상단에게 큰 이득을 안겨줄수있었으면 좋겠다. 믿어도 되겠지?"
"헤헤. 걱정하지마세요! 다음번에는 적어도 이번보다  많은 꿀과 밀랍을 안겨드릴테니까요."
"그래. 기대하고있으마."


그는 그렇게 말하며 칼스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주고는 자신의 자리에 올라 소리쳤다.


"자! 어서 출발하자! 성문이 닫히기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한다!"

제이콥의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행렬을 이룬 루엠상단의 캐러밴은 에올론마을을 출발해 마를르성으로 향해 떠나갔다.


그런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마을입구에서 바라보던 한센은 문득 생각이났다는듯 칼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보니 엘프님은 동이트기전에 마을을 나섰다는데  쉬다 가셨는지 모르겠구나. 듣기로는 네가 마중을 나갔다고 하던데."
"새벽운동을 하려고 나섰는데 마침 떠나시는 엘프님을 보게되어 가볍게 인사를 나눴어요."
"별다른 말은 없었고? 숲을 드나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말이야."
"네. 아무래도 저희가 엘프들이 살고있는 방면으로는 벌목도 거의 하지않잖아요? 그런부분이 제법 만족스러운 모양이더라구요."


한센은 아무래도 그부분이 신경쓰였던 모양인지 칼스의 대답을 듣곤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답했다.


"다행이구나. 그럼 주변 마을사람들에게도 말을해서 그쪽의 나무는 어지간하면 손대지 말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며칠 에일린누나의 방을 뺏어쓴게 미안하다면서 작은 머리장식 하나를 주고 갔어요. 뭐 비싼건 아니고 엘프마을에서 나무를 깎아만든거라고 하던데."
"그래? 요 며칠 제방을 내어주고 입이 튀어나와있던데 잘됐구나."


그렇게 말한 한센은 마을에 산적한 일들을 처리하기위해 마을로 돌아갔고, 칼스역시 혹시나 그사이 벌통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하기위해 양봉장으로 향했는데 그의 손에는 어제 새로산 간이 훈연기가 들려져 있었다.

* * *

- 부우우우우웅!

"으아악!"
"겁먹지 말라니까. 오히려 동작을 크게하면 애들이 공격한다고."
"벌써 몇대 쏘였다니까?"
"그정도는 몸에 좋은 보약이나 다름없으니까 참아! 나참... 여동생보다 못한 오빠라니."
"윽."
"푸후훗."


루엠상단이 에올론 마을을 떠난지도 벌써 한주가 흘렀다. 그사이 칼스는 아버지 한센에게 공식적으로 제니와   남매를 자신의 일에 투입할 수 있게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번 거래에서 확실한 장래성을 확인한 그는 아들의 제안을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그후 두 남매는 마을의 허드렛일을 돕는생활에서 벗어나 칼스가 관리하는 양봉장의 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여기는 이렇게 해두면 되는거지?"
"응. 확실히 손재주가 좋네. 대신 벌집내부를 살필때는 언제나 여왕벌이 다치지 않게끔 조심해야하는거 잊지말고."
"알았어. 근데 슬슬 꿀을 따야하는거 아니야? 몇몇벌집은 이제 완전히 꽉 차다시피했는데."
"아직이야. 잭슨아저씨한테 요청해놓은 벌통들이 완성되면 2층으로 쌓아올릴거야. 그러면 벌의 숫자를  늘려야하는데 지금 꿀을 뺏어오면 애들이 새끼를 안낳게되거든."
"아하. 그렇구나."

제니의 경우 처음에는 벌레에대한 본능적인 혐오감때문에 주저했으나. 벌을 자주 접하게되면서 오히려 조그만한 생물들이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귀여움을 느꼈는지 적극적으로 배움에 임하기 시작했다.


"으으... 칼스 여기 이쪽도 마무리됐어."
"거봐. 천천히 하면 다 잘되는데 왜 지레 겁을먹고 난리를치다가 쏘이고그래. 아무튼 잘했어 전반적인 점검은  끝났으니  쉬러가자."


문제는 잭이었는데, 어릴때 벌에 쏘인경험이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아직까지도 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있었다.


잠시 쉬었다하자는 말이떨어지기 무섭게 잭은 벌집들이 모여있는 공터의 한켠에 마련된 그늘진 쉼터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양봉에 필요한 여러 물품과 더불어, 벌집을 다루다보면 늘 꿀과 프로폴리스로인해 온몸이 끈적이기 마련이기에 씻을수 있는 물이 통에가득 차있었다.


촤악! 촤악!
"어으... 따가워라."
"거기 쏘인데엔 적당히 꿀이라도 발라놔."
"이 아까운걸 여기다 왜바르냐? 차라리 좀 아프고 말지."

그렇게 몸 이곳저곳에 묻은 이물질들을 적당히 씻어내고 앉아있는데 마을쪽에서 몇몇사람이 무언가를 잔뜩 품에안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칼스. 저기 사람들이 오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뜯어온 풀의 양이 훨씬 많은것 같아보이네. 이제 애들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것같아."
"풀쪼가리를 뜯어다주면 꿀을 나눠 준다는데, 가족들중에 바쁘지 않은사람들이 다 달려들었겠지."


칼스는 벌통의 갯수를 늘리겠다는 마음을 먹고나서, 마을 어린아이들에게 쑥을 뜯어오면 꿀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전에는 남는시간에 칼스가 직접 마을 주변에서 쑥을 뜯어왔지만. 이제  규모가 커진만큼 혼자서는 감당이 힘들정도였기에 작은 꾀를 낸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꿀을 준다는말에 마을앞 목초지에 흔하게 자라나있는 쑥을 조금씩 뜯어서 가져왔고, 그럴때마다 칼스는 아이들에게 약간의 꿀을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만에  소식이 마을 전체에 퍼졌고, 이제는 어린아이들보다 일손이남는 어른들이 그 일을 도맡아 하게된것이다.

"여어 칼스. 오늘은 꽤 많이 뜯어가지고 왔는데. 어때?"
"양이 엄청많이 늘었네요? 설마 이거 뜯겠다고 숲 깊은곳까지 들어가신건 아니죠? 괜히 그러다가 산짐승이나 흘러들어온 몬스터들이라도 맞닥들이면 큰일난다구요?"
"그렇게 깊이까지는 안들어갔으니 걱정마라. 그나저나  주변에서 이 풀떼기는 거진 다 뜯은거같은데. 다른거 필요한건 없냐?"


주로 마을 인근에서 나무를해다가 마을에 공급하는일을 하던 롭은 며칠전부터 가족들과함께 쑥을 뜯어다가 칼스에게 가져다주는 일을 하고있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쉬는시간마다 쑥을 뜯어대니 어느새 주변에서는 쑥을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혹시나 더 필요한것은 없는지 칼스에게 물어본것이었다.

"당장은 생각나는게 없네요. 아무튼 고마워요 롭아저씨."
"내가 더 고맙지. 네덕에 요새 새로운 맛에 눈을떳다는거아니냐. 빵위에 치즈를 얹고 꿀을 발라먹으니 그렇게 안주로 그만일수가 없었다니까?"
"크... 좋죠. 그런데 그렇게 먹다가 엔젤아주머니에게 걸리면 혼날텐데요?"
"괜찮아. 나보다 오히려 우리 마누라가  좋아하니까 말야. 물론 술은 나만마시지만. 아무튼 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라. 손이 남는다면 얼마든지 보탤테니까."

그렇게 롭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칼스에게 뜯어온 쑥을 주고 적당량의 꿀을 받아갔다.


사실 처음 이런행동을 했을땐 주변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왜  꿀을 루엠상단이 왔을때 다 팔아치우지않고 그렇게 낭비하느냐는 핀잔을 들어야했다.

하지만 칼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이 양봉일에 대해 호감을 갖기를 바랬기에 이런식으로 나름대로 평판을 쌓고있는것이었다.


'뭐 요새는 마을 어디를가도 반갑게 맞아주시는걸보면 확실히 나쁜투자는 아니지. 게다가 꿀은 이시대의 열악한 영양공급문제를 해결해줄  안되는 완전식품이기도 하니까.'
"칼스. 그럼 나랑 제니는 이것들을 널어두러갈게."
"응. 나는 잠깐 빨래터쪽에 가볼테니 부탁좀 할게."

그렇게 잭과 제니 남매는 자루에 쑥을 쓸어담기 시작했고, 칼스는 그런 그들을 뒤로한채 마을의 외곽을따라 흘러내리는 개천으로 향했다.


타악! 철썩!
- 팍팍팍!

개천이 마을을 돌아 빠져나가는 하류지점에는 매일같이 생겨나는 집안의 빨래들을 처리하는 마을의 여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 칼스 또왔니? 여기에 자주 드나들면 고추떨어져!"

그녀들은 흐르는 물에 빨랫감을 담궜다가 빼내어 근처에 놓아둔 넓직한 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를 이용해 내려쳐 묵은때를 제거하는방식을 사용해왔다.

"이아줌마가 애한테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농담이예요 농담! 그나저나 뭐하러온거니??"


칼스는 어제 잿물과 도축한 가축에게서 얻어진 동물성 기름을 혼합해 만든 비누를 만들어 나누어줬고, 과연 그것이 얼마나 잘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러 와본것이었다.

"어제 제가 나눠준 비누가 쓸만했는지 궁금해서요."
"아 그 시커먼 덩어리?  말대로 물묻혀서 빨랫감에 비벼다가 치대봤는데. 때는 잘빠지는것 같더라."
"그래요? 그런데 벌써 다 쓰신건가요? 분명히 그정도면 며칠은  쓸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만들어줘서 최대한 써보려고했는데, 빨래를 하고나면 뭔가 퀴퀴한 냄새가 남아서말야. 그래서 어제도 좀 써보다가 그냥 물로만 빨았다. 쓰다남은게 여기 어디에 있을텐데..."

이미 큰 자녀를 독립시키고, 이 마을 아낙들의 대장노릇을 하고있는 메릴의 말에 칼스는 씁슬한 한숨을 내쉬며 빨래터 어딘가에 쳐박혀있을 비누[?]를 찾기시작했다.


다행히 물에 떠내려가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빨래터 한켠에 돌 사이에 끼어있는 것을 찾아낼수있었으나. 메릴의 말대로 퀴퀴한 냄새가 올라와 저 멀리 집어던져버리는 그였다.


"윽."
"깔깔깔! 거봐! 냄새가 심하지?"
"으... 그렇네요. 만들어서 굳혀놨을땐 저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때는 확실히 잘빠지더라고, 도저히 못쓸만큼 지저분해진것들을 빨때 쓰면 좋을거같아보여."
"좀더 좋게 만들어서 다시 가져와볼게요."
"그럼~ 우리야 좋지."
"아유 칼스 네덕에 요새 마을에서 꿀냄새가 넘치는거알지? 고맙다."

메릴 외에도 다른 아줌마들과 어린 소녀들까지도 몰려들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통에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버린 그는 도망치듯 빨래터를 빠져나왔다.


멀리서 들리는 여인들의 하이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동물성기름으로 만든 비누의 문제점을 되새겨보았다.

'으음... 향료를 넣는다고 해도 저 냄새는 없애기 힘들어보이는데. 그렇다고 먹을 곡식도 부족한 상황에서 식물성기름을 비누만들자고 쓸수도없고, 잿물이 좀 묽어서 기름이 덜 중화된건가? 다음번에는 잿물을 더 졸여서 농축시킨다음에 만들어봐야겠다.'

칼스는 지구에서 양봉업을할당시에  뿐만아니라 꿀과 프로폴리스를 첨가해만든 천연비누를 판매하여 부수입을 올리곤했었다.

특히 벌이 벌집에서 분비하는 프로폴리스의경우 그가 죽음을 맞이할무렵에 한참 여러가지 효능으로 인해 인기가 높았기에 그 벌이가 꽤나 짭잘했었고, 그렇기에 대략적인 비누만드는 방법을 알고있었다.

'아오! 한국에선 인터넷만 키면 가성소다건, 천연 향료건 마음껏 구해다 쓸 수 있었는데. 에휴...'

그가 이렇게 비누를 만들기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마을사람들의 위생을 위하는 마음도 있지만, 비누역시 이 시대에서 꽤나 인기있는 물품이 될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여인들의 미용에대한 욕구는 대단했기에 입소문만 잘 낸다면 일반사람들이 아닌 좀더 부유한사람들을 타깃으로 판매할  있을것이었다.

'이곳에서 성공하려면 주 고객층을 상류층으로 잡아야 해. 그러다보면 나름대로의 인맥도 쌓을수 있을테고, 최종적으로는 주변에서 나와 우리 가족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만큼의 힘과 배경을 갖출수도 있을거야. 그렇지 않으면 결국 다른이들에게 집어삼켜질테니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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