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마를르 남작과의 만남 (10/65)



〈 10화 〉마를르 남작과의 만남


드디어 칼스가 마를르성으로 출발해야할 날이밝았다.

마을의 가장 중요한 행사중 하나였기에 촌장인 한센역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대열의 최선두에 서서 마을에 남아있을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있었다.


"케인. 내가 자리를 비우는동안은 네가 마을의 촌장이다. 만약 무슨일이 생긴다면 신중하게 처신해야함을 잊지말거라."
"네. 아버지 걱정하지마세요. 길어봐야 며칠인데 그짧은기간에 뭔일이 나겠어요?"
"언제나 일은 예상하지 못할때 들이닥치는법이야. 아무튼 믿고 떠나마."
"아빠! 나도 갈래!! 리온성에서 새로 유행하는 옷들이 분명 새로 들어왔을 거라구요!"
"아쉽지만 이번에는 좀 힘들거같구나 에일린. 대신 다음번에 성에 가야할 일이 있을때  데려가줄테니 참아다오."

에일린은 몇차례 마를르성을 오갔던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마을에서는 구할 수 없는 화려한 장식이 달린 옷들을 탐내곤했다.

하지만 그런 옷들은 보통 성내에 거주하고있는 부유층 귀족영애들을 위해 만들어진것이었기에 가격이 제법 나가기 마련이었다.

기껏해야 가축을 키워 거기서 나오는 부산품들을 팔아 마을 생필품을 사오는 처지인 에올론마을의 상황을 아는 에일린은 비록 구매하지는 못하더라도 일종의 아이쇼핑으로 마음을 달래곤했다.


"누나. 이번에 내가가서 영주님께 선물을 드리고 예쁜 옷이 있으면 사가지고 올게."
"정말? 근데 너도 요즘 유행하는 옷이 뭔지도 모르잖아."
"에이~ 거기가서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돼.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하지말고 기다리라고."
"알았어."

에일린은 칼스의 말에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딸아이의 모습을 조금은 안쓰러운 모습으로 바라보던 안나는 칼스를 잠시 품안에 끌어안아주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정말... 누가보면 네가 누나인줄 알겠구나. 너무 비싸면 안사와도 돼니까 무리는 하지말고."
"걱정마세요. 아참. 엄마도 뭐 필요한건 없어요?"
"후후. 나는 괜찮으니까  누나랑 형이나 잘 챙겨주렴."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안돼겠다 가서 제일 이쁜옷으로 한벌 사와야겠어요."

에올론마을에서 내야할 세금은  5마리와 양 20마리, 그리고 각종 치즈를비롯한 유제품과 숲에서 얻은 약초등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칼스의 양봉장에서 나온 물품이 대거포함됐는데, 사실 마를르남작가에서는 저번 루엠상단에서 가져갔던 물량을 기준으로 산출량을 계산했는지  10단지와 밀랍 2통정도를 요구사항에 적혀있었다.


그러나 요 몇달간 늘어난 벌통에서 나온 꿀의양이 어마어마했고, 그걸 마을내에서 모두 소화해내는건 불가능했기에 이번 원정에 절반정도를 상납하기로했다.

그 양이 단지로는 50개에 이르렀고, 밀랍또한 이번 기회에  신전에 봉헌할것까지 포함하여 무게로 20kg이상을 수레에 싣고있었다.


"자 그럼 콥스.  깃발을 들고 앞에서 인도하도록 해. 다른사람들은 소랑 양이 길 밖으로 흩어지지않게 주의하도록 하고."
"네 촌장님."
"칼스 너는 다른곳에 신경쓰지말고  물건들을 잘 챙겨라."
"알았어요 아빠."

그렇게 칼스를 포함해  20여명이 이끄는 긴 행렬이 마을입구를 나와 마를르성으로 향했는데, 그 선두에는 마를르가문을 상징하는 푸른나무에 둘러싸인 성채가 그려진 깃발을 든 콥스가 있었다.


이는 주변에  일행이 마를르가에 세금을 바치러가는 일행임을 알리는 것이었고, 만약 이들에게 해꼬지를 하면 마를르남작가를 공격하는것과 동일하다고 경고하는 효과를 가졌다. 거기에 마을의 자경단 역할을 하는 젊은이들을 몇명 무장시켜 일행 주위를 지키게했다.

꿀을비롯한 여러가지 물품들을 실은 수레에 타고 이동을 하기 시작한지 몇시간정도가 흘렀을까, 에올론 마을에서 이어지던 길이 다른 길과 만나는 지점을 지날때 칼스는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한센에게 물었다.

"아빠. 방금전 보인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거예요?"
"보얀마을으로 이어지는곳이다. 그나마 우리 마을에서 가까운곳이지."
"아하! 마을 사람들한테 몇번 들어본것같아요. 그런데 별로 우리와는 왕래가 없는거같네요."
"보통 마을밖에서 서로가 필요한 물품이 있을경우 교환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게다. 실제로 보얀마을의 촌장과는 자주 얼굴을 맞대는 편이지."
"그렇구나. 저는 마를르영지에서 동쪽방면에는 우리마을밖에 없는줄알았어요."


칼스는 자신이 생각했던것보다 많은수의 마을이 존재한다는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센은 그런 마을들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날때마다 그에게 해당 마을의 특징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주곤했다.

"너도 이제 곧 마를르성에가면 알게 되겠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마을과 성이 존재해. 그리고 그중에서도 우리마을은 아주 작은크기이지. 다른마을사람이 우리마을에 잘 들르지 않는건 딱히 우리마을에 그들이 원하는 물품이 없기때문이란다."
"그래도 소와 양같은건 어느마을에서나 필요한 가축아닌가요?"
"보얀마을도 우리처럼 소와 양을 기르는 마을이야. 그리고 영지내의 다른 마을에서 가축을 구할일이 생겨도 우리마을에 오기보다는 마를르성에서 구입을하기 마련이지 마을끼리 거래를 하더라도 그 규모는 크지않다. 괜히 그러다가 마를르성내의 상단에 밉보이면 여러모로 골치아파지거든."

칼스는 마를르남작가에서 영지내의 마을간 교역을 억제해 각 마을에 필요한 물품을 통제함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하고있다는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했던것보다 많은수의 마을이 존재한다는것도 알수있었는데, 한센은 그런 마을들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날때마다 해당 마을의 특징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주곤했다.


걷는속도로 이동하는데다 가축들이 지칠때쯤 휴식을 취해야했기에 아침해가뜰때 마을을 나섰던 칼스일행의 눈에 마를르성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것은 해가 서녘에 걸려 붉은 노을이깔릴 무렵이었다.


마침 그들이 지나는 길이 높은 언덕이었기에 마를르성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볼수 있었다.


"와. 저 멀리 보이는 성벽이 마를르 성인거죠? 근데 성밖에도 집들이 있네요?"
"네가 보는 성벽을 기준으로 그 안쪽을 내성이라고 하지. 최초 마를르성을 개척할때 함께했던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두른 성이 바로 마를르성이란다. 그러다가 마을이 도시가되면서 점점커지자 성벽 밖까지 주거지역이 넓어졌는데, 그들과 경작지와 목장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게 바로 저 목책이란다. 언젠가 도시가 더 발전하게 되면 저 목책도 굳건한 성벽으로 바뀌게 되겠지."


성은 전형적인 중세 석조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높게 솟아오른 성벽밖으로도 작은 집들이 지어져있었고, 그런 집들을 포함한 넓은영역을 둘러싼 목책이 실질적인 마를르시의 경계인듯 보였다.

"그렇구나. 그럼 우리는 저 성 안으로 들어가는거예요?"
"오늘은 이미 해가 지고있으니 성문이 닫혀버렸을거다. 게다가 우리가 가져온 가축들을 내성까지 몰고갈수는 없으니 외부에있는 목장에 인계를 해야지."


마를르 외성으로 들어가는 목책앞은 에올론 마을과 비슷한 이유로 성을 찾아온것으로 보이는 행렬이 몇몇 더 존재했다.


먼저 도착한 마을들의 행렬이 모두 입장하고 나서야 에올론 마을의 차례가 되었고, 겉모습만 봐도 굉장히 든든해보이는 체격을 한 경비병들 가운데에 서있던 멋드러진 갑옷을 걸친 남자가 한센에게 다가왔다.


"고생들이 많군. 어느마을에서 온 일행인가?"
"동쪽 끝자락에있는 에올론 마을에서 온 한센입니다."
"잠시 수레에 실린 것들을 좀 살펴도 되겠나."
"물론이죠. 천천히 한번 살펴보시죠."

한센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하자 목책의 입구에 서있던 경비병 중 몇몇이 에올론 마을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칼스가 타고있는 수레로 다가와 쌓여있는 꿀단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꼬마야. 이 수레에 실린 물건들은 뭐니?"
"이쪽 수레에 실린건 영주님께 바칠 꿀과 벌꿀주, 그리고 밀랍이예요."
"꿀? 이게 다 꿀단지라고?"
"네."


칼스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짓던 그는 한센에게 맞냐는듯한 제스쳐를 취했고, 이에 한센이 긍정의 표시를 하자 더욱 놀라워하며 서로 부딪혀 깨지지않도록 잘 고정되어있던 꿀단지중 하나를 들어올리더니 끈으로 묶어 입구를 봉해둔 천을 열어젖혔다.


"진짜 꿀이군. 얼마전 회의때 꿀을 납품할 수 있게된 마을이 생겼다고 들은거같기도 한데."
"할트님! 짐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가축수는 소 5마리에 양은 20마리입니다."
"그래? 꼼꼼히 살펴본거지? 일과시간 끝나간다고 대충했다가 문제생기면 작살나는거야!"
"걱정 붙들어 매십쇼."


그사이 검사를 마친 병사들이 그에게 다가와 보고했고, 별다른 문제점이 없다는 사실에 통과허가를 내어주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하니 들어가도 좋네. 단. 가축들은 오른쪽에 보이는 농장에 넣어두도록하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마를르에 들어선 칼스일행은 먼저 가축들을 농장에 잘 넣어두고, 적당해보이는 숙소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칼스역시 해가 완전히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기전에 한번더 물품을 살핀후에 잠들었다.

다음날아침 밖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잠이깬 칼스는 허름한 숙소건물을 빠져나와 여느때처럼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사이 다른 마을사람들도 깨어났고 한센은 아침식사를 하며 그들에게 마를르성에서의 일정을 이야기했다.

"어제 큰 문제없이 여정을 마쳐줘서 고맙다. 오늘은 오전에 가져온 물품들중에 남작님께 바쳐야할 것들을 제출한뒤, 남은 물품들을 판매하고 각자 휴식을 취하면 된다. 적당한 용돈을 나누어줄테니 하고싶은것을 하되 큰 사고치지 않도록 주의해라."
"네 촌장님! 걱정마십쇼."
"너희들이 제일 걱정이야. 괜히 술먹고 창관에서 사고치지말고 적당히 놀아."
"에이. 이럴때아니면 언제 도시아가씨들과 어울립니까."
"콥스! 말은 제대로해야지. 아가씨가 아니라 아줌마들이나 너와 어울려줄테니 말야."
"야! 너 누가  이쁜 아가씨를 꾀어내는지 내기할래?"

한센의 말에 오는길 내내 창을들고 일행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던 마을 젊은남자들이 좋아죽겠다는듯 웃음을 터트렸고, 한센 역시 혈기왕성한 남자들이 도시에서 돈을 어디에쓸지 뻔히 알고있었기에 그러려니하며 넘어갔다.

"칼스. 너는 나를따라다니면 된다. 아직 너는 어려서 저놈들이랑 같이 어울리면 안돼."
"알았어요. 그런데 영주님은 언제 뵈러가는거예요?"
"글쎄다. 그건 우리 마음대로 정할수있는 문제가 아니니 일단 가서 물어보자꾸나."

아침식사를 마친 한센은 칼스와 마을에서 가져온 물품들을 가지고 내성 입구로 향했다.

외성역할을 하는 목책역시 에올론 마을의 그것과는 비교할수 없을정도로 튼튼해보였지만. 내성은 높이만 7~8미터쯤 되어보이는 거대한 석벽으로 둘러싸여있어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다.

내성벽 바깥에는 폭이 2미터는 되어보이는 해자까지 파여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로지 거대한 도개교뿐이라고 한센이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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