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마를르 남작과의 만남 (13/65)



〈 13화 〉마를르 남작과의 만남

부드러운 흙바닥에 연신 머리를 찧어대는 칼스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르케가 손가락을 튕기자 엎어져있던 자세 그대로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그녀가 만들어낸 나무의자에 부드럽게 안착하게 되었다.

"너무 그렇게 죄송해할 필요는없어~ 오랜만에 참 신선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가끔 너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녀석들이 있기는 했는데 적어도 너는 그런 쓰레기들과는 달라보였으니 말이야."
"그... 그런가요?"
"게다가! 애초에 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흘러들어온 잔재가 뒤섞인 녀석이잖아? 그런 너에게 이쪽세계의 신이라고 한들 크게 와닿지 않는것도 사실이었을 테니까 말야."

칼스는 자신이 가족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던 비밀을 그녀가 알고있다는 사실에 깜짝놀랄수밖에 없었다.


"헉! 그걸 어떻게."
"괜히 우리가 수많은 종족의 아이들에게 신으로 떠받들어지는게 아니란다."

뭐 이런걸 가지고 그러니? 라고 말하는듯한 표정의 아르케를 보며 칼스는 자신이 생각했던것보다 이세계의 신이라는 존재들이 엄청나다는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잠깐만요! 그렇다는건 제 비밀을 여러 신들이 다 알고있다는거네요?'
"아니아니~ 그렇지는 않아. 대부분의 신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세계에 눈을 돌리지 않거든. 나름대로 바쁘다고나할까? 나같은 경우에는 오랜만에 잠시 들렀는데 얻어걸렸다고 봐야겠지. 뭐 나만 알고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많아봐야 하나둘정도일까?"
"아르케여신님께서 알게된건 역시 제가 여신님의 이름을 팔고다녀서 그런가 보군요. 하하... 이거참 하필 그걸 핑계로 삼아서 이렇게 되다니."

나름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다고 한것이 아르케여신의 이름을 팔아 설득하는것이었는데. 이것이 이런식으로 되돌아올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칼스였다.


"그것이 바로 운명이라는 것이지. 아무튼 그 후로  지켜보았는데 딱히 네 지식을 쓸데없는곳에 쓰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듯해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어."
"나름대로 제 욕심을 채우려고 남용하고 있는데요?"
"뭐. 돈을 잔뜩 끌어모아서 네가 살던 세상의 모습과 최대한 가깝게만든후 편한 삶을 누리겠다는 그 알량한 꿈말이야? 그정도는 세상을 살아가는 그 어떤 존재든 가질 수 있는 생각아니겠니? 하물며 별다른 지능이 없는 동물들조차 잘먹고 잘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마련인데."

칼스는 혹여나 여신이 지구에서 얻은 자신의 지식을 사용하는데 제약을 걸지는 않을까 걱정했으나. 생각외로 그녀는 그부분에 대해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는듯 했다.


오히려 어느부분에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지식을 활용하라 종용하는 그녀였다.

"그니까 쓸데없이  눈치보지말고 가진 지식을 팍팍 활용해도 된다고, 뭐 어차피 네가 가진 지식이래봐야 딱히 위험해보이는것도 없는데 뭘. 막말로 맨바닥에서 컴퓨터라는걸 만들어 낼 수 있어? 끽해봐야 좀 더 개량된 무기들정도일텐데 그정도는 이세계의 머리좋은 녀석들이라면 다 생각해낼  있는 부분이니까."
"으음... 확실히 제가 알고있는 얄팍한 지식으로는 할 수 있는게 별로 없긴하네요. 사실 벌을 키우는 방법마저 몰랐다면 그냥 마을에서 소랑 양이나 치면서 살려고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실제로 그녀의 말마따나 당장 그가 만들려고 하는 비누만 보더라도, 그 제작과정이 쉽지만은 않은상황인데 컴퓨터나 정밀기계 같은 부분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어야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뭐 위험한 사상이나 지식만 퍼트리지 않는다면  문제를 삼지는 않을거야. 오히려 네가 알고있는 작은 의학지식 같은 건 적극적으로 풀어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
"근데 들어보면  기억을 다 들여다 보실 수 있는것 같은데, 여신님께서 직접 사제들에게 이러한 지식들을 설파하면 되는것 아닌가요? 들어보니 이전에도 몇번 그런적이 있다고 하시던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들여다   있다면, 그녀가 퍼트리기를 원하는 것들을 추종자들을 통해 전파해 나가면 되는게 아닌가 싶어 질문을 던진 칼스였다. 그런 그의 질문에 조금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은 그녀가 대답했다.

"아쉽게도 나와같은 신 역시도 얽메이는것이 없는게 아니거든. 우리가 전해줄 수 있는 지식에는 그 한계가 명확한 편이야. 하지만 너는 아까 내가 말했듯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세계의 잔재가 흘러들어온것이고, 네가 행하는것은 우리가 전해준게 아니니  문제가 되지않는다는거지."
"그럼 혹시 그전에도 신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존재들이 혹시..?"
"네가 생각하는것과 비슷할거야. 다만 그들이  너와 같은세계에서 들어온거라고 생각은 않았으면 좋겠네.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속에서 살던 녀석들이 굴러들어와서 사고를 친적도 많으니까. 어쩌다 이세계가 이모양 이꼴이 됐는지..."


꽤나 곤란했던 일이 있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까딱이던 그녀는 앉아있던 나무의자에서 일어나 칼스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내가 해줄말은 다 한것같으니 슬슬 돌려보내줄게. 그래도 여기까지 들여온 손님인데 빈손으로 내보내기엔 내 면이 안사니까."


- 쪽


"그럼 열심히 살아보라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볼수있겠지?


- 파아앗!


칼스는 자신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는 아르케 여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는데, 곧이어 자신의 몸에서 환한 빛이 터져나오더니 다시금 원래 있던 신전의 기도실로 돌아온것을 알수있었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왠지모르게 더 청량한 느낌이 가득해진 기도실의 모습과 더불어 환희에찬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여사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앗! 하이디아님! 드디어 기도를 마쳤나봐요."
"세상에! 내눈으로 이 광경을 보게 될줄이야."
"저기요? 무슨일이라도 있었나요?"
"카..칼스형제님. 호호혹시 기도중에 여신님을 또 뵙고 온건가요?"


차분하게만 보였던 휠리나 주교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까지 더듬어가며 물어왔고, 칼스는 보아하니 이것또한 아르케 여신이 일부러 만든 상황이 아닌가 싶어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다.


"네. 기도를 시작했더니 숲속에 꽃이 가득한 공간속이었어요. 그리고 그곳에는 아르케 여신님이 기다리고 계셧구요."
"아아! 여신이시여. 역시 방금전 그 빛이. 게다가 칼스의 이마에 보이는 저흔적은! 세상에."
"고맙구나. 네 덕분에 기적을 체험할수 있었어.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분께서 어떤 말씀을 했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는 하이디아의 말에 칼스는 딱히 감출것도 아니다 싶어 답했다.


"그냥 여신님께서 가르쳐주신 지식을 잘 사용하고있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라고 하시던데요."
"그렇구나. 역시 여신께서 제대로  사람을 찾은 모양이야. 앞으로도 여신님께서 내려주신 지혜를 널리 알려다오."
"네. 노력해볼게요."

칼스는 자신의 지식으로 얻어질 여러 공들이 아르케 여신의 공적으로 치부되지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들자 그녀가 왜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으며 마지막에는 축복까지 내려주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속물적이기도 하시네요. 아무튼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됐으니 여신님의 뜻대로 활개를 쳐보도록 하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도 저는 모릅니다.'


속으로 왠지모르게 자신을 내려다 보며 웃고있을 여신에게 전할 메시지를 떠올린 그는 아직도 여신의 직접적인 권능의 잔재를 만끽하는 두 여사제와 어느새 달려왔는지 수십명은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눈을 감은채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지체되는듯하여 물었다.

"저기... 이제 슬슬 나가봐야 할거같은데.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구요."
"아! 이런 우리가 너무 감상에 젖어있었던 모양이구나. 휠리나 자매님이 여기계신 다른 형제자매분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세요. 다들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이니까. 저는 칼스를 밖에 데려다주고 올테니."
"네. 칼스님. 오늘의 일은 제가 책임지고 본단으로 알리도록 할게요. 그러면 아마 정식 사제는 아니시지만 그에 합당한 직함을 받게될겁니다."


사제에 합당하는 직함을 받게될거라는 그녀의 말에. 괜히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건 아닌지 걱정되는 칼스였다.


"에.. 저는 딱히 특정 종교에 몸담을 생각이 없는데요? 여신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구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저희에게 중요한것은 칼스님의 이마에 여신께서 직접 내리신 성흔이 존재한다는거니까요. 아마 어느곳에 가더라도 아르케여신님을 비롯한 여러신을 믿고 따르는 사제들은 당신을 가까이에서 살필경우 그분의 자취를 느낄 수 있을것이고, 그것만으로도 형제님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되실겁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하이디아의 안내을 받아 기도실을 나서는 칼스를 향해 아르케의 사제로 보이는 여러 남녀들이 경건한 자세로 인사를 했다. 자신은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 휠리나와 하이디아의 말에 따르면 방금전 가벼운 입맞춤으로 느껴졌던것이 성흔을 내리는 의식이었으리라.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텅텅 비어있는 짐마차에 기대 졸고있는 콥스의 모습을  수 있었다.

"그럼 이만 돌아가볼게요. 앞으로도 자주 꿀과 밀랍을 들고 찾아올테니 문전박대 하시면 안돼요."
"그럴일이 있겠느냐. 오히려 본단에서 이 사실을 알면 네가 사는 마을로 찾아가지 않을까 싶다만... 아무튼 성흔이 함께하니 앞으로 잔병치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다. 그리고 너무 부담을 갖지는 말았으면 좋겠구나."
"부담가질게 뭐 있나요. 제게 손해가 될것도 아닌데요. 오히려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한다니 든든할 뿐이예요."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고맙다. 그럼 나중에 또 볼날을 기대하마."

하이디아는 그렇게 말하며 칼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칼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그녀에게 진심이 담긴 인사를 건네곤 졸고있는 콥스를 깨웠다.

"형! 일어나 슬슬 돌아가야지!"
"스으읍! 어엉? 왔어? 제법 오래걸렸네?"
"어. 아무래도 아르케교단의 사제님들이 나한테 물어볼것이 많았던 모양이더라."
"그렇겠지. 그분들에겐 네 존재가 자신들이 믿고있는 대상이 실재하신다는 증거나 다름없으니까."
"증거라... 뭐 그럴수도 있겠네. "
"읏차! 그럼 숙소로 곧바로 돌아가면 되려나?"
"아니. 몇군데 들를데가 있어. 내일 당장 영주님과 만나게 될텐데 이런 몰골로 찾아뵐  없잖아. 치수가 맞는 옷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새옷이나 한벌 맞춰보려고."
"뭐 어차피 오늘은 촌장님이 너랑 같이 다니라고했으니 상관없어. 그럼 옷가게가 모여있는곳으로 가볼까?"

예상외의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긴 했으나 당장 내일있을 마를르 남작과의 만남에 대비해 준비를 해야했기에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는 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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