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직원들 (31/65)



〈 31화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직원들


칼스는 혹시 전에 기도를 올렸을 때처럼 아르케 여신이 직접 그의 머릿속에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를 했으나 아쉽게도 이번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다만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저 가만히 그녀의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듯한 느낌을 받을  있었다.

마치 숲속 한가운데에 들어온듯한 청량한 향취가 느껴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떠보았으나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하이디아와 휠리나 그리고 그 외의 몇몇 신도들이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후우. 상쾌하네. 이런 방향제를 만들 수만 있으면 떼돈을   있을 거 같은데."


어찌 보면 신성모독이라고도 여겨질  있을법한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은 그는 다른 이들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만끽했고, 하나 둘 기도를 마친 신도들은 어김없이 기도실 중앙에 위치한 그를 향해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여 보여 그를 당황케했다.

"칼스는 항상 올 때마다 놀라운 일을 만들어내는군요."
"엥 무슨 일 있었나요? 오늘 기도에는 여신님께서 딱히 답해주거나 하지는 않았는데요?"
"칼스가 기도를 하자  신상에서 신성력과 함께 여신님의 기운이 뿜어 나왔답니다.  기운이 워낙 강렬해서 이곳에 머물던 다른 신도들이 이렇게 모여든 거고요."
"그런가요?"
"일단 여기는  혼잡스러우니 시간 여유가 된다면 안쪽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좀 나눠도 될까요?"
"그래 휠리나 말대로 하거라. 저번에는 일행 때문에 급히 떠나지 않았니."

칼스는 그런 하이디아와 휠리나의 권유에 어차피 오늘 이곳을 방문한 것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이유도 있었기에 기꺼이 응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평소 이곳 신전을 관리하는 휠리나가 머무는 집무실인  보였는데 휠리나는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을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안 그래도 이제 날이 풀려서 에올론 마을에 사제들을 파견할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마침 칼스 형제님이 왔으니 그 일정부터 정해두는  좋을 것 같군요."
"오! 정말인가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기뻐할 겁니다."
"사실 저도 직접 그곳에 가서 여신님으로부터 배운 지혜의 결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데, 이곳을 비울 수가 없다 보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주교님은 아무래도 이곳의 책임자이니까요."

휠리나의 말에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칼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인 사제도 아닌 주교급의 인물이 잠시나마 마을에 머물며 신성력을 활용한 치료를 하게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주변마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에올론 마을에 방문케 하는 효과가 있을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말거라. 대신에 내가 함께 가기로 했으니."
"하이디아사제님이요?"
"왜. 내가 못 미더워 보이니? 내가 그저 뒷방 늙은이처럼 보여도 십 년 전까지는 주교의 자리에 있었던 몸이야. 지금에서야 그 자리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꽃이나 가꾸고 있지만 말이지."

하이디아는 마를르 남작령이 처음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 전대 마를르남작이 성내에 신전을 세워줄 테니 사제를 파견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본단에서 파견되어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 후 이제  세워져 아무런 기반도 없던 이 아르케 여신의 교단을 마를르 성내에서 제법 규모 있는 곳으로 키워냈고, 십여 년  마를르 성에서 거둬들인 어린 사제들 중에 두각을 보이던 휠리나가 성장하자 그녀에게 주교 자리와 함께 이 신전의 전권을 넘겨주고 일선에서 물러나있었던 것이었다.

"못미더울리가 있나요. 사실  입장에선 어떤 사제님이 오셔도 감사할 따름이죠. 저는 그저 하이디아님이  여정에 고생하시지 않을까 싶어 걱정스러운 거예요."
"흘... 내가 이곳에 정착하기 전엔 대륙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몸이야. 그 정도는 고생 축에도 들지 않으니 걱정 말거라."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은 아직 날이 풀린지 얼마 안 되었고, 저도 이곳에서 돌아가면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으니 한 달 뒤쯤이 어떨까 싶은데요."
"그럼 그때로 알고 인편을 구성해 두도록 하마 아마 많아야 네다섯 정도가 전부일 거다. 다만 이때 발생하는 지출에 대해서 네가 보전해 줘야  텐데 부담스럽지는 않겠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마을에 오셔서도 편히 모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을 테니까요. 오히려 와서 너무 편하다고 돌아가지 않겠다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칼스의 호언장담에 하이디아와 휠리나는 웃음을 터트렸고, 잠시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얼마  마을 근처에 자리 잡은 픽시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호오! 마을 바로 근처에 픽시들이 자리를 잡았다고?"
"네. 그래서 꽃이 엄청 많이 자라난 덕분에 꿀을 많이 얻을 수 있었지요. 아르덴 대삼림의 엘프들과도 운 좋게 인연이 닿아 픽시들하고 직접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그들도 그곳이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확실히 너는 아르케 여신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같구나. 이참에 우리 교단에 이름을 올리고 제대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보는 건 어떻겠느냐."
"아쉽게도 전 장사를 해서 부자가 되는 게 꿈이라서요. 대신 제가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아르케 여신님을 모시는 교단에도 많이 기부를  테니 그걸로 보답을 하는 셈 치죠 뭐."
"여신님의 가르침으로 만든 결실에 픽시들까지. 아아! 하이디아님! 이곳 신전의 관리자 자리 다시 넘겨드릴 테니 제가 에올론 마을에 다녀오면 안 될까요?"
"어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여신님의 가르침을 되새겨서 대주교 시험 준비나 잘하거라."

잠시 휠리나 주교가 하이디아에게 앙탈을 부리기도 했으나 순식간에 진압되었고, 그렇게 신전에서의 일정을 마친 칼스는 별관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런 그를 붙잡은 휠리나는 자신의 집무실 책상 안쪽에서 커다란 나무가 새겨진 펜던트를 하나 꺼내어 건네며 말했다.

"이건 우리 교단의 심벌이에요. 여러 사제들이 축복을 내리고 성수를 부어 만든 물품이라 미약하긴 하지만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효능을 지녔지요.  외에도 다른 도시에서 그것을 내보이면 우리 교단에서 보증하는 인물이라는 의미이니 어지간해서는 통행에 큰 문제가 없어질 거예요."
"와! 이런 귀한 것을. 고맙습니다 주교님."
"흘흘. 나쁜 기운이야 이미 여신님이 직접 은총을 내렸는데 저 녀석에게 접근이나  수 있겠느냐. 저 녀석에게 영향을 줄만한 저주라면 마신이 직접 개입할정도나 되어야 가능할 거다."
"그래도 저를 생각해 주신 거잖아요. 그리고 꼭 제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에게 주면 도움이  거고요."
"그래. 그럼 한 달 후에 너희 마을에서 보는 걸로 하자꾸나."
"저도 언젠가 꼭 칼스의 마을에 찾아갈게요."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칼스는 아르케 여신의 신전에서 빠져나왔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별채로 돌아올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영주성에서 보내온 시종이었다.

"마를르 남작님께서 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신다고요?"
"네. 저녁식사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눈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녁식사 전이라면 언제쯤을 이야기하시는 건지."
"되도록 일찍 움직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만..."
"후. 그럼 오전에 주문해둔 옷이 도착하는 대로 출발하는 걸로 하죠. 오전에 엘레노아가 식사때 입으라고 선물해 준 것이니."
"그럼 그렇게 알고 돌아가겠습니다."

시종은 그렇게 영주성으로 되돌아갔고, 칼스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보두앵 마를르 남작과의 만남에서 나눌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이 지역의 왕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행사하는 남작에게 자신이 만들 상단의 청사진을 잘 보여줘야 이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있을 것이었고, 거기에 더해 이제는 엘레노아의 아버지로서 사위로 맞게 될 남자에 대한 시험의 장 역할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음. 상단부분이야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겠는데 엘레노아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선 도저히 어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안 오네. 뭐 내가 적극적으로 꼬신 것도 아니고 남작이 직접 추진한 사안이니 빌어먹을 놈팡이로 만 비치지 않으면 되겠지."

저녁 시간이 슬슬 다가올 때쯤 주문해두었던 의상이 도착했고, 마음을 다잡은 칼스는 옷을 갈아입고는 곧바로 영주성으로 향했다.


마를르 남작의 영주성은 사실 다른 귀족가의 성들과 비교했을 때 성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저택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밖에서 보았을 땐 그 커다란 담벼락이 마치 하나의 성벽처럼 보였기에 다들 영주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어느새  말이 굳어져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었다.


칼스는 별채에서 영주성으로 향하겠다고 병사들에게 이야기하자 그들이 준비해 준 마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사실 거리로 보았을 때는 그냥 걸어가는 것이 더 나았을지 모를 정도로 가까웠다.


"뭐... 나름대로의 절차라는 게 있는 것일 테지."

밖에서는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 담벼락을 지나 영주성안으로 들어서자 지구에서 TV를 통해 보았던 옛 유럽 귀족의 저택과 같은 건물들이 여럿 세워져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앙에 위치한 건물이 영주가 머무는 집으로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마를르 남작가에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고마워요 보렐손."
"남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안내하도록 하죠."


마차가 멈춰 서고 문을 열어 칼스를 맞아준 것은 마를르 남작가의 집사 보렐손이었는데 그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더니 곧바로 마를르 남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접객실로 그를 안내했다.


마를르 남작가의 내부는 수십 년 전까지 왕도에서 활동했던 귀족가라는것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고색창연한 장식품들이 여기저기에 진열되어 있었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과 주인모를 초상화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 듯 커다란  앞에서 안쪽에 기별을 넣는 보렐손이었다.

"남작님. 에올론 마을의 칼스를 데리고 왔습니다."
"음.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군. 들여보내게."

문 안쪽에서 전에도 한번 들었던 마를르 남작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칼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조심히 문을 열어준 보렐손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선 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접객실 안에는 편안한 차림의 마를르남작이 기다란 검 하나를 꺼내 닦고 있었는데, 마치 그 모양새가 자신의 딸을 데려가 고생시키면 이 칼로 단칼에 베어 죽이겠다는 의미처럼 느껴진 칼스였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에올론 마을의 칼스가 영주님을 뵙습니다."
"하하!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라지는 않았나 모르겠군그래. 이렇게 다시 보게 되어 반갑군 예비사위."


칼스의 인사에 닦던 칼을 칼집에 밀어 넣은 남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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