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직원들 (35/65)



〈 35화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직원들

과연 네가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펠트르였으나 칼스는 반대로 그들의 몸값이 생각했던 것보다 싸다 여기고 있었다.


이는 그가 알게 모르게 지구에서의 임금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 세계에서 사람이 몸으로 때우는 일들에 대한 가치는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그들이 북방 이민족 출신이지만 제법 솜씨가 좋다고 소문이 나서 이 정도였지. 북방인 용병들 중 하루에 동전  개만 받아 가며 일하는 이들이 수두룩한 게 현실이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죠. 일단 1년간 함께 일해보고  이어갈지는 그때 다시 정하는 걸로 해요. 여기 계약금 개념으로 이번 달 임금의 절반을 먼저 드리도록 할게요."
"이거 나이는 어리지만 화끈한 고용주님이셨군. 그럼 계약이 끝나는 날까지 잘 부탁드리오."
"휘이익! 역시! 오자마자 맥주 한 잔씩 돌릴 때부터 나는 고용주의 배포를 알아봤다니까?"

다들 1년이나 되는 계약 기간에 즐거워하며 남아있는 맥주잔을 들이켰고, 몸에 착 달라붙는 옷 덕에 늘씬한 몸매를 여과 없이 드러낸 링메인이 칼스에게 유혹의 몸짓을 보였으나 세르티네에게 제압당했다.


"꺄악! 1년 계약이라니. 게다가 돈도 바로 내주는 멋쟁이였잖아? 저기 칼스. 혹시  누나랑 좋은 거 하러 가지 않을래?"
"링메인 고용주님한테 괜히 추태 보이지 말고 올라가서 짐이나 싸자."


칼스는 그들에게 지금 당장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나 일단 마을 사람들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숙소를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상단을 지켜줄 이들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칼스는 혼자서 다시 루엠상단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밍슈펠트르의 만류로 앙켈젠과 세르티네 두 사람이 따라나섰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찌 이 마를르성까지 오신 거예요? 테칼트초원이면 마를르영지랑은 정반대편에 가까운데."
"내가 막 태어날 때쯤 원래 자리 잡고 있던 부족 마을 자리에 오크들이 들이닥쳐서 터전을 잃고 겨우 초원 끝자락에 정착했어. 근데 거긴 물도 가축도 구하기 힘든 척박한 곳이었거든. 그래서 부족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용병으로 일하며 마을에 돈과 물품을 보내주고 있지. 우리도 이렇게 마을을 나선 거고."
"처음엔 나나 다른 녀석들 모두 솔라스 왕국과 동부 왕국 사이의 국경에서 용병 활동을 했어. 몇 푼의 돈을 받고 상대방 병사와 싸우는 고기 방패나 다름없는 일이었지. 그 과정에서 많은 이웃들이 죽거나 다쳤어 그곳에서 우리는 그저 소모품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다가 대장이 이대론 안되겠다면서 우리를 데리고 동쪽으로 온 거야. 상단 일도 하고 몬스터도 잡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온 거지."

흡사 장비를 연상케하는 부리부리한 눈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앙켈젠이 자신의 부족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했고, 그런 그의 말에 세르티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간 겪어왔던 여러 가지 일들을 늘어놓으며 약간은 회상에 잠긴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헤에. 대단하네요. 근데 그럼 두 분은 몇 살인 거예요?"
"나는 올해로 스물둘."
"난 스무 살이야. 왜 관심이라도 생겼어? 아까 보니까 링메인 고년이 꼬리칠 때도 딱히 싫어하는 반응은 아니던데. 북부 인이어도 괜찮나 봐? 아래쪽 사람들은 우리 피부색이 누렇다고 꺼려 하던데."
"왜요. 건강미 넘치고 좋아 보이는데. 다만 관심은 안가네요 제가 열두 살인데 나이차가 너무나잖아요."
"엑? 겨우 열둘이라고? 이쪽 사람들이 키가 크긴 한데 그래도  너무한 거 같은데."
"제가  특별하긴 해요."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루엠상단의 입구에 도착할  있었는데. 그곳에는 웬 남루한 복장의 소년이 조잡한 나뭇조각  개를 들고 루엠상단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제발 부탁드려요! 단 동전  개... 아니 하나라도 좋으니 좀 사주세요. 동생이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고 있어요."
"아니 뭔 아침부터 거지 같은 녀석이 와서 난리야? 그리고 이따위 나무토막을 누가 산다고 자꾸 들이미는 거야? 깎으려면  제대로 다듬어서 가지고 오던가. 예전에는 썩 괜찮은 모양새로 깎아와서 몇 번 사줬더니 이따위로 요령을 부려? 차라리 나무째로 가져왔으면 불쏘시개로라도 쓰지.  돌아가! 에잇!"

- 휘익!
덜그럭.

상단 직원이 들고 있던 나무토막을 하찮다는 듯  던져버리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우연찮게도 그 나무토막은 칼스가 다가오던 방향으로 날아와 떨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실랑이가 잦은 것인지 별다른 반응 없이 제  일을 하고 있었고, 칼스의 양옆에 서있는 앙켈젠과 세르티네역시 그냥 인상을 살짝 찌푸릴 뿐이었다. 뭔가 넋을 놓아버린  멍하니 서있는 소년의 모습과 자신의 앞에 떨어진 나무토막을 번갈아 쳐다보던 칼스는 몸을 숙이고 그것을 주워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음..."
"이건 뭔가 손때도 많이 탔고 너저분한 물건이네. 괜히 그런 거 만졌다가 나쁜 병이라도 옮을 수 있으니 어서 내려놓는  좋을  같다."
"나도 이번만큼은 앙켈젠말에 전적으로 동의해. 어차피 저런 아이들이야 어느 도시를 가나 널려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그냥  궁금해져서요. 어이 거기! 이건 대체  만들려고  거야?"


루엠상단의 입구 한편에 멍하니 서있던 그 소년은 칼스가 묻자. 그제서야 자신의 물건이 그의 손에 들려있음을 확인하곤 힘없이 걸어와 그것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건. 풍요의 여신님인 세레스님의 상징을 나타낸 거예요. 비록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는 못했지만요."
"이게? 으음... 자세히 보면 얼핏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걸 팔려고 했던 거냐? 아서라.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잘 만들겠다. 차라리 허드렛일이라도 찾아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날붙이가  닳아버려서 제대로 다듬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만 돌려주세요. 어떻게든 좀 더 모양을 내서 가지고 와봐야 하니까..."

칼스는 자신에게 나무토막을 달라며 내미는 소년의 손이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손은 손톱이 마치 갈려나간 것 같이 거의 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심지어 내밀지 않은 반대쪽 손에서는 손톱이 깨졌는지 핏물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날붙이가 없다고 손톱으로 이걸 뜯어가며 만든 건가?"
"맞아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오늘도 동생이 굶게 생겼거든요. 며칠 전까지는 그래도 조각칼의 날이 조금이라도 쓸  있어서 팔 만한 물건을 만들 수 있었는데..."
"세상에! 이거 이거 아주 독한 놈이네."

앙켈젠은 그런 소년의 말에 질색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칼스는 잠시 그런 그의 손과 나무토막을 살피다가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게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어. 굳이 이 나무토막을 만들어 팔려고 했던 이유가 뭐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었으니까요. 나는 힘도 약하고 체구도 작아서 잡일꾼으로도 잘 안 받아줘요. 그렇다고 오래 자리를 비우면 어린 여동생 혼자 방치되거든요. 아버지는 마를르성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상을 팔아 생계를 꾸리셨어요. 나도 조금씩 그 기술을 배우고 있었는데... 작년 겨울에 기침병이 들더니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동생을 낳고 얼마  있어 돌아가셨다고 해요. 양옆에 호위를  걸 보니 제법 여유가 있는 집안의 자제인듯한데 부탁드려요. 단 동전 한두 닢이라도 좋으니 이걸 사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이 신세는 언젠가  갚을 테니... 제발."
"흐음. 그럼 지금 당장은 이곳에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말이잖아? 조각사의 아들이라..."

칼스는 굶고 있는 누이를 위해 날붙이가 떨어지자 맨손으로라도 작품을 만들어 일용할 양식을 구해보려는 소년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앞으로 고급화된 비누를 만드는 데 있어서 고급스러운 형태로 비누를 조각하여 판매할 계획도 세우고 있기도 했다.

"좋아. 이 나무조각 내가 사줄게.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 나는 며칠 내로 이 도시를 떠나 마을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그곳에서 나만의 사업을 시작할 건데 그곳에서 네 동생과 함께 살며 일하게 해줄 테니 같이 가자."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그러니 생각 있으면 나를 찾아오라고. 아참 네 이름은 뭐지?"
"스티븐. 스티븐입니다."

칼스는 스티븐이라는 조각가 소년에게 자신의 마을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다행히 그는 도시 내에서 간간이 잡일꾼으로 일하기도 했기에 그 위치를 알고 있었고, 칼스는 그런 그에게 만약 자신이 없다면 에올론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대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조잡한 나무토막 값으로 동전 두 개를 쥐여준 후 상단 안으로 들어갔는데 밖에서는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는 스티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음... 우리 고용주님 너무 씀씀이가 헤퍼지는  아니야? 저런 아이들을 죄다 거둬들이다간 아무리 돈을 벌어도 모자랄걸?"
"괜찮아요. 적어도 저런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 뭔가를 해보려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세르티네가 약간은 걱정된다는 어조로 이야기하자 칼스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고,  그들은 제이콥이 일하고 있는 곳에 도착할  있었다.


"오~ 뒤에 서있는 익숙한 얼굴을 보니 이야기가  풀렸나 보군."
"네. 일단은 함께 일해보기로 했어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실력과 신뢰성은 충분하다 넘치는 사람들이거든. 영지민을 우선으로 뽑으라는 남작님의 지시사항만 없었어도 우리 상단에서 직접 고용했을지도 몰라."


그저 빈말은 아니었는지 제이콥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것을  칼스는 푸른 매 일족의 용병들이 제법 그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정도인가요? 그럼 저도  더 잘 대우해 줘야겠네요. 그나저나 이제 머리를 잘 쓴다는 분도 소개해 주시죠. 그것 때문에 곧바로 다시 돌아온 건데."
"나 참.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녀석이 뭐가 그렇게 바쁜지. 잠시만 기다려봐. 금방 데리고 올 테니까."
"여기에서 일하는 직원분이에요?"
"직원이라기도 좀 애매하고... 아무튼 만나보면  거다."

칼스를 자리에 앉혀둔 제이콥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십여 분이 흘렀을까 다시금 집무실의 문이 열리더니 처음보는 잘생긴 청년 한 명과 함께 들어왔다.

"자 여기 데리고 왔다."
"반갑습니다. 저는 에올론 마을에서  칼스입니다."
"흐응. 네가 엘레노아의 남편감이야? 생각보다 수수하게 생겼는데."
"엘레노아? 혹시... 남작님의 자제분이신가요?"
"마를르남작의 자식이냐고 묻는 거라면 맞기는 해. 다만 정식으로 집안에 들어갈 수 없는 몸이라는  그 차이일 뿐. 반가워. 나는 제레미 흔히 말하는 사생아라고 보면 돼. 아 그렇다고 꽁꽁 숨겨진 존재는 아냐. 엘레노아도 그렇고 그쪽 사람들과도 가끔씩 만나서 밥 먹고 그러는 사이니까. 다만 공식적인 자리에는 같이 나갈 수 없는 것뿐이지."


제레미는 마를르남작이 한참 영주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던 젊은 무렵에 마를르성에서 시종으로 일하던 조안나라는 여인에게서 얻은 자식이었다. 어느  술에 취한 그는 조안나를 품게 되었는데 다음날 아침 술에서 깨어 품에 안겨있는 여시종을 보고는 그녀에게 미안하다 말하며 넉넉한 위로금을 주고 비밀로 하라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몇 달 후 점차 불러오는 배를 보고 자신이 그날 남작의 씨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것을 보두앵에게만 조용히 알린  성에서의 일을 그만두었다. 그 후에 남작에게서 받은 위로금으로 작은 가게를 차린 조안나는 그곳에서 제레미를 낳고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아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보두앵에게 모두 속속들이 보고되고 있었는데 자신의 피를 이은 아이가 아비도 모른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결국 그는 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녀들은 가문의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조안나와 제레미를 비공식적인 가족으로 받아들여 준 것이다.

"아무튼 나름 상인으로는 쓸만한 재능이 있다는 건 확실하니 데려가서 쓰면 된다."
"아니. 제이콥   의사는 무시하는 겁니까?"
"어차피 여기서는 제대로 얼굴조차 내밀지 못하고 골방에서 서류만 만지작 거려야  거라는 걸 너 스스로가 잘 알지 않냐. 그럴 바에  녀석을 따라 그쪽에서 일하면 당당하게 앞으로 나설 수 있을 거고, 그 상단이 크면 저절로 마를르가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이조 아니겠어?"
"그런가? 흐음.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약간 속아 넘어가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까짓것 한번 가보죠."

제레미는 어쩔 수 없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칼스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비록 보잘것없는 재주지만 데려가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상단이 번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어... 고개는 들어도 돼요. 사실상 엘레노아 아가씨의 오빠라는 거잖아요? 오히려 제가  잘 부탁한다고 말해야 하는걸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법. 상단의 일원이 되기로 했으니 상단주께 존칭을 취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지랄 똥을 싸라. 어색한 연기는 때려치우고 일이나 잘해 인마."
"아! 좀! 제 이미지  망치지 말아요 제이콥!"
"칼스. 보다시피 이런 녀석이니 너무 휘둘리지 마라.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소개해 줄 것도 내줄 것도 없으니까 돌아가!"
"고마워요 제이콥. 앞으로도 좋은 거래가 이어졌으면 좋겠네요."

제레미는 아직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이 있다면서 그것을 마무리하는 대로 에올론 마을 사람들이 머무는 숙소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칼스는 제레미라는 한 명의 인재[?]까지 얻고 나서야 루엠상단 건물을 나설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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