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직원들 (37/65)



〈 37화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직원들

기세 좋게 마를르성을 출발한 칼스는 새로 합류한 인원들에게 에올론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까. 마을에서 조금만 더 깊숙이 들어가면 아르덴 대삼림이 나온다는 겁니까? 그럼 엘프들도 자주 볼  있었겠군요?"
"아뇨. 사실 얼마 전까진 엘프들이 마을에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된 엘프가 있어서 요 근래엔 몇 번 왕래가 있었어요."
"확실히... 그들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 하지 않지요. 저도 여러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몇  엘프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홀로 행동하는 것을 선호하더군요."
"맞아. 한 번은 대장. 아니 뭐라고 해야 하지? 아무튼 저 아저씨가 어떤 엘프의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었는데. 그냥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선 사라져버리더라니까? 그때 그 엘프를 어떻게든 팀원으로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그건 그때 네가 발정 난 개마냥 쳐다보고 있으니 도망친 거였잖아."

푸른 매 일족의 다섯 전사들이 에올론 마을 근처에 엘프들이 자리 잡은 아르덴 대삼림이 있다는 것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면 제레미는 픽시들이 자리 잡은 꽃밭에 좀 더 호기심들 드러냈다.


"오호! 안 그래도 이번에 대량의 꿀이 들어온 것을 보고 놀랐었는데. 픽시들이 자리 잡은 꽃밭이 근처에 있었던 거군요. 픽시와 꿀벌의 조합이라니... 이거 돈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요?"
"정말 생각도  한 횡재였다니까요.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꽃밭이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을 땐 그저 농담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 일이 발생했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그리고 스티븐과 스밀라 남매는 수레에 올라탄 채 그런 일행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빠. 픽시가 뭐야?"
"으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뭔가 특별한 동물 같은 게 아닐까?"
"동물? 귀여울까? 귀여우면 나도 한번 보고 싶은데..."
"픽시는 귀엽기는 한데. 동물이 아니라 정령이야. 아마 스밀라 같이 착한 아이라면 픽시들도 반겨줄 거야."
"정령이 뭐예요?"
"정령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기운들이 뭉쳐져서 탄생한 존재들이야. 그냥 쉽게 생각해서 픽시는 꽃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난 이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래서 그들은 꽃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지."
"헤에... 그렇구나아. 감사합니다."

스밀라는 중간에 끼어들어 대답을 해준 칼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녀와 스티븐은 어제까지 오랜 굶주림 때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모습을 보였었기에 다른 이들과 달리 칼스가 타고 있는 수레 뒤에 자리를 마련해서 함께 타고 가게끔 했다.


"칼스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가 궁금한데?"
"그때는 저희가 워낙 급한 상황이었기에 물어보지 못했는데 그곳에 가면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겁니까?"
"왜. 이제 와서 험한 일이라도 시킬까 봐 겁나는 거야?"
"아뇨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동생에 대해서는 조금 편의를 베풀어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는 무슨 일이라도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네가 그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던 아버지로부터 배웠다는  실력을 활용해 보기 위해 데려온 거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야외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 후 조금 더 움직이자 에올론 마을의 모습이 저 멀리에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왔더니 그래도 여유 있게 도착했네요. 들어가는 대로 짐 정리를 마친 다음에 여러분들이 앞으로 지내게 될 건물을 보여드릴게요."
"호오. 따로 여관 같은 곳이 아닌 머무를 거처를 아예 마련해 주시는 겁니까?"
"이 마을에는 아직 여관이 없어요. 이전에도 루엠 상단에서 마을을 찾아오면 상인들은 마을 공터에 임시 거처를 만들어 머물렀으니까요. 그나마 그런 것 비슷한 역할을 하기 위해 작년에 건물을 지었죠. 이제 거래를 위해 자주 상인들이 방문하게 될 텐데 그러면 자연스레 이곳에 묵을만한 곳이 필요하니까요."


작년 겨우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달려들어 만든 허니 상단의 건물엔 작기는 해도 그들 모두가 들어가서 살아도 충분할 정도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칼스는 이들이 허니 상단에 제대로 자리 잡게 되면 각자 머물 수 있을만한 집을 하나씩 구해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칼스 일행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마을에서도 보았는지 몇몇 사람들이 마을 목책 입구까지 나와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칼스! 어서 와라. 안 그래도 잭과 제니가 너 가고 나서 고생이 많아 보이더구나."
"아버지. 가축들 돌보는 건 어쩌시고 마을에 계시는 거예요."
"그쪽은 네 형이 잘 하고 있으니 굳이 나까지 가야  필요가 없지 않겠냐. 그나저나  일행이 이렇게 늘어난 것이냐. 저들이 다 네 상단에서 일할 이들은 아니겠지?"
"전부는 아니에요. 일단 가져온 물건들부터 좀 정리할게요."
"그래. 네가 데려온 사람들은 알아서 잘 관리할 거라 믿으마."


한센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마을로 들어서자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칼스에게 그들을 잘 관리해달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마을에 외부인이 대거 들어와 행패를 부리거나 심지어는 약탈을 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세상이었기에 촌장으로써 당연한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걱정 마세요. 이쪽에 있는 초원의 전사분들은 제이콥 님의 추천으로 모셔온 거예요. 아마 이분들은 앞으로도 이곳에서 생활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뒤에 두 남매와 저기 저분 역시  상단에서 함께할 사람들이에요. 나머진 워낙 가져올 짐이 많다 보니 마를르성에서 고용한 용병들이라 내일이면 다 되돌아갈 거예요. 아시다시피 여긴 용병이 먹고 살 수 없는 환경이잖아요."
"그렇구나. 그럼 마을에 머물 분들과는 나중에 제대로 인사를 나눌 자리를 한번 만들어다오."
"네. 아 참! 메릴 아주머니에게 혹시 상단의 주방을 좀 맡아주실 의향이 있는지 여쭤봐주실래요? 안되면 다른 사람을 구할 때까지 며칠만이라도 좀 부탁드린다고 해주세요."
"아마 어지간하면  제안을 받아들일 거다. 그  남편이 병으로 죽고 나서 이래저래 가정 형편이 말이 아닌 모양이니까."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자! 다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칼스는 그들 모두를 허니 상단 건물의 창고 앞으로 이끌었고, 그곳에 짐을 내려놓으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아침부터 지금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용병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등짐을 내려놓았는데 칼스는 그런 그들에게 약속했던 의뢰금을 지급해 주고 하루 이곳에서 푹 쉬고 나서 마를르성으로 되돌아가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밍슈펠트르 일행과 제레미, 스티븐 남매가 머물 방을 각각 지정해 주는데 상단 건물 쪽이 소란스러워지자 양봉장에 나가있던 잭과 제니가 돌아와 일손을 거들기 시작했다.

"칼스! 돌아왔구나."
"잭! 이쪽에 있는 단지들은 채밀장쪽으로 옮겨줘. 제니는 주방으로 가서 저녁 음식 준비를 좀 해줄래? 보다시피 인원이 많으니까 넉넉하게 해야  거야. 메릴 아주머니를 보내달라고 아버지한테 요청했으니 그때까지만 좀 부탁해."
"알았어. 제니! 이것만 옮기고 나도 그쪽으로 가서 좀 도와줄게."
"응. 괜히 덜렁거리다가 귀한 단지 깨먹지 말고 조심히 해. 급하게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잠시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가고,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짐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들로 북적이는 허니 상단에 찾아와 구경하고 돌아가곤 했는데.

그 와중에 붙임성 있는 몇몇 용병들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자잘한 심부름 의뢰를 받기도 했다. 다행히 한센이  이야기를 전달했는지 메릴을 비롯한 마을에 남편을 잃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낙들 몇이 찾아와 제니를 도왔고, 덕분에 제법 근사한 저녁식사를  수 있었다.

"이야.  마을이 원래 소와 양을 치는 곳이라서 그런지 고기 요리가 다 나오네요."
"이것도 맛있긴 한데 역시 양고기는 우리 고향식으로 요리하는것도 나쁘지 않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대접해 줄게."
"정말요? 그거참 기대되네요."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이 마무리될 때쯤 칼스는 식당 내부에 있는 인원들의 앞에 투박한 나무 잔 안에 황금빛으로 찰랑이는 벌꿀주를 한 잔씩 따라주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스밀라에게는 꿀물을 내어주었는데 우습게도 그녀보다 한 살 어린 칼스는 주저 없이   가득 벌꿀주를 따라 놓고 있었다.


"오오. 이건 뭐지? 술인가?"
"야야! 앙켈젠! 아직 마시지 마! 딱 봐도 꼬마대장이 다 같이 마시자고 하는 거잖아. 조금 기다리라고."

앙켈젠은 자신의 손에 술잔이 쥐여지자 곧바로  번에 털어 넣을 모양새를 취하다가 옆에 있던 링메인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말았다. 그사이 모든 이들에게 잔을 돌린 칼스는 자신의 술잔을 치켜들며 말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은 최소 1년 이상은 제가 키워나갈 허니 상단과 함께하게  가족들입니다. 아직은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서먹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잔을 들이키고 난 이후로는 정말  가족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가며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제가 '허니 상단의 발전을!'라고 선창하면 다들 '위하여!'라고 답하신 후 준비된 술을 마시면 됩니다. 아셨죠?"
"알았으니 어서 합시다!  냄새에 환장하겠네 아주!"
"하하하. 그럼 갑니다! 허니 상단의 발전을!~!"
"위하여!!!!"

칼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들고 있던 잔에든 황금빛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고, 곧 벌꿀주 특유의 달큰한 향과 함께 발효주중에서도 20도에 가까운 높은 도수를 지녔기에 알싸한 알코올 향이 목구멍을 타고 뱃속까지 데워주었다.


술이란 것을 접해보기 어려웠던 스티븐은 그 생소한 느낌에 켁켁거리며 기침을 해댔고, 그런 그와 반대로 이미 술이란 음료의 매력을 잘 알고 있던 푸른 매 부족 일원들은 매우 만족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켁켁!"
"오빠 괜찮아?"
"푸하하! 하긴 아직 술맛을 모르는 이에게 이건 좀 독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군. 그나저나 상단주 이거 아주 물건인데? 어지간한 술보다 훨씬 세면서 향은 달큰하다니."
"으아! 한 잔만. 한 잔만 더 줘! 너무하잖아 이런 맛을 알아버리면 이제 맥주는 무슨 맛으로 먹으란 말이야."
"흐음... 이건 상품성이 굉장하겠군요. 생산량은 어느 정도 됩니까."
"제레미. 일은 나중에 실컷 안겨줄 테니 오늘은 그런 생각 말고 즐겨요. 벌꿀주는 여기 넉넉히 준비했으니 더 마시고 싶은 분들은  마셔도 좋습니다. 오늘 하루는 먹고 마시고 쉬는 겁니다 알겠죠?"
"오오오!!! 대장! 결심했어! 대장이 1년 후에 여길 떠난다고 해도 나는 남을 거야."
"크으... 오랜만에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나도 방금 상단주의 말을 듣고 정말 반해버렸어."

식당 안은 그 후로 한동안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술기운을 바탕으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가며 조금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준비했던 술도 다 떨어지고 스티븐을 비롯한 몇몇이들은 얼굴이 벌겋게 술기운이 올랐을 때쯤 자리를 파한 칼스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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