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직원들 (38/65)



〈 38화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직원들

칼스가 집에 돌아와 보니 그때까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가족들 모두가 식탁에 모여 앉아있었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일이 드문 마을인데다 최소한 1년가량을 함께 지내야 한다고 하니 새로 들여온 직원들에 대한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그래. 대충 급한 일들은 다 처리하고  거냐?"
"네. 상단 등록도 마쳤고, 엘레노아와의 약혼에 대해서도 마를르 남작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너 이제 영주님의 따님의 이름을 엄청 쉽게 입에 올리는구나. 근데 정말로 괜찮겠어?"
"어 나보다야 그쪽이  신경 쓸게 많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에 당장 약혼식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케인 형이 결혼하고 나서  후에 일자를 잡기로 했으니 빨라도 내년일 거야."

칼스의 약혼 건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에 엘레노아가 방문하고 나서 이야기를 나눈  있었기에 금세 새로 합류한 이들에게 화제가 돌아갔다.

"칼스! 아까 멀리서 보니까 잘생긴 남자  명이 같이 왔던데 그 사람은 누구야?"
"잘생긴 사람? 아! 제레미를 말하는 건가? 금발에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을 말하는 거지?"
"응. 제레미라고 하는구나."
"그 사람은 우리 상단의 총관감으로 점찍어서 데려온 사람이야. 머리도 좋은 데다 루엠상단에서 직접 물건을 사고판 경험도 있어서 내게는 아주 소중한 인재지."


서출이라고는 하나 귀족가의 피를 이어받은 제레미의 외견은 매우 빼어났던 데다 천성이 책을 좋아했고, 여건상 실내에서 서류작업  장부정리를 주로 했던 터라 피부도 탄 자국 하나 없이 뽀얀 모습이었기에 아무래도 에일린의 눈에 띈 모양이었다. 칼스가 그런 그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자 가만히 듣고 있던 케인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꺾으며 물었다.

"흐음.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 너를 따라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응.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사람이거든. 아! 물론  범죄 같은 거에 연루된 건 아니야. 제이콥님이 직접 추천해 준 사람이니까."
"제이콥님이?"
"응. 거기에 북부 테칼트 초원에서 온 푸른  부족의 일원들도 제이콥님이 소개해 주셨지. 그들은 일단 1년 정도 함께 일하기로 계약되어 있는데.  사이에 잘 설득해서 계속 남아있을  있도록 해야 해."

그리고 루엠 상단 앞에서 만난 스티븐 남매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끼니를 때울 돈이 없어서 맨손으로 나무를 뜯어 조각을 판매하려 했다는 그의 행동에 다들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차라리 그 정도면 다른 일을 돕는 게 낫지 않나?"
"도시는 어지간한 일자리는 이미 다 일손이 가득 차있는 모양이더라고, 게다가 스티븐도 그렇게 튼실해 보이는 모습도 아니었고 말이야. 뭐 어쨌든 성에서 조각으로 먹고살았다는 아버지의 곁에서 배웠다고 하니까 그 실력을 조금만  잘 갈고닦으면 비누를 예쁘게 만들어서 귀족들에게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헤에. 나중에 한번 조각품을 보여달라고 해야겠다."
"당분간은 힘들 거야. 아무리 조각 실력을 보고 데려왔다지만 그것만 하게 놔둘 수는 없지. 잭과 제니에게 붙여서 간단히 벌을 돌보는 방법 정도는 가르쳐야겠어."

그렇게 새로 허니 상단에 합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났고, 얼마 후 방문하기로 약속한 아르케 신전의 사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센에게 해준 칼스였다.

"아 참! 다음 달에 아르케 여신님을 모시는 사제분들이 마을에 방문해 주신다고 했어요."
"정말이냐?! 사제님들이 여기까지 와주신다고? 그 이야기를 왜 이제야 하는 거냐?"
"다들 새로 온 사람들에 대해서만 궁금해 해놓고 왜 그러세요. 아무튼 사제분들도 마을 옆에 픽시들이 자리 잡은 일이랑 여신님이 가르쳐준 벌을 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모양이에요. 아마 그리 오래는 머물지 않을  같은데 적어도 며칠은 이곳에 계시겠죠."
"네가 정말 마을에 큰 도움을 주는구나. 안 그래도 작년 겨울에 기침병에 걸린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그때 한번 치료를 받아보라고 해야겠다."

이 세계에는 딱히 병원이나 의사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병이 걸리거나 크게 다치게 되는 경우 도시나 큰 마을에 있는 신전에 찾아가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는 수밖에 없었다.


간혹가다 특정한 마을에 머물며 연구하는 마법사나 연금술사들에게도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일단 근처의 사제들을 먼저 찾아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병들고 다친 몸을 이끌고 사제가 있는 곳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여정인데다 막상 그곳에 가더라도 사제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니 결국 살고 있는 마을에서 어떻게든 차제적으로 치료를 하거나 방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제분들이 머물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데 잭슨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려구요. 그래도 대략적인 신전의 모습은 갖춰야 하지 않겠어요? 혹시 잘 만들어두면 사제님들 중에 한두 명은 계속 마을에 남아주실 수도 있는 거고요."
"그렇게만 된다면 누구든 못 도와주겠느냐. 내일 당장 잭슨에게 이야기를 해둘 테니 바로 작업에 들어가도록 해라."

한센 역시 에올론 마을의 촌장으로서 수십 년간 마을 발전을 위해 사제들을 마을에 데려오려 노력해왔었다. 하지만 마을의 규모도 작은 데다 딱히 신전 측에서도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기에 몇 년에 한차례 포교를 겸하여  번씩 들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아들이 아르케 여신님의 가르침을 받게 됐고, 그런 아르케 여신을 따르는 사제들이 마을을 방문한다니 잘만 하면 아들의 말대로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으하암. 새벽부터 서둘러 움직였더니 너무 피곤하네요. 일단 좀 쉬러들어가볼게요."
"그래. 그러고 보니 너무 오래 붙잡아뒀구나. 네 방은 이 엄마가 깨끗하게 청소해뒀으니 어서 올라가서 푹 쉬렴."

그렇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선 칼스는 그대로 침대 위에 엎어져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자신의 방에서 하루를 시작한 칼스는 늘 그래왔듯 새벽 운동을 하고 나서 허니 상단의 건물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마를르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용병들로 가득했고, 몇몇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무언가 의뢰를 하려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수 있었다.

칼스는 그런 용병들을 통제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밍슈펠트르를 발견하곤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밍슈펠트르! 어제는 잘 주무셨어요?"
"오! 상단주. 잠자리는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게다가 그 벌꿀주 덕분에 평소보다 깊게 잠들 수 있었는지 아주 몸 상태가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돌아갈 용병들은 준비가 다 끝난 모양이죠?"
"방금 전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아마 곧 떠나갈 거 같군요."


그의 말마따나 곧 그들 중에서 나름 경력이 있는 이가 임시 리더가 되었는지 칼스에게 다가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무래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보니 슬슬 출발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촌장님은 나오지 않으십니까?"
"아버지는 아마 집에 계실 거고요. 마을 입구 쪽엔 제 형님이 나가있으니 지금 출발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넉넉한 보수를 챙겨주시고 잠자리까지 마련해 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저기 많은 의뢰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용병들을 배려해 주는 곳은 별로 보질 못했지요. 혹시나 나중에도 일손이 필요하면 피콜슨을 찾아주십시오."

그렇게 칼스에게 인사를 한 그는 용병들을 데리고 마을 목책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나선 용병들의 행색은 각양각색이었는데, 칼스에게 받은 의뢰금으로 마을의 유제품이나 훈제고기 등을 사서 마를르성에 팔아 이득을 보려는 이들도 있었고, 마을의 과부들에게 적당한 돈을 주고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이들도 있었다.

용병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마을 입구에 나와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상황에 대비하던 케인은 하품을 하며 칼스에게 말했다.

"흐아아암... 다행히 딱히 큰 문제는 없었던  같네. 이렇게 많은 외부의 젊은 용병들이 마을에 들어온 건 처음이라 다들 긴장하고 있었는데."
"응.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마을밖에 임시 야영지 같은 걸 설치해서 그곳에 머물게 해야겠어.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네."
"뭐. 덕분에 하루였지만 마을에 활기가 돌았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 다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있으니 다음부터는 네가 말한 대로 바깥에 머물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는  좋을  같다. 안 그래도 마을 남자들이 밤새 번갈아가며 순찰을 했거든."
"어제 고생해  분들한테는 제가  나중에 보답해 드릴 거라고 전해줘. 그럼 새로 상단에서 일할 사람들에게 가봐야 해서 먼저 들어갈게."

그렇게 용병에 대한 일을 모두 처리한 칼스는 드디어 상단 건물로 돌아와 새 식구들과 기존에 일하던 잭과 제니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몇몇은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조금 퀭한 얼굴이었으나 대부분은 쌩쌩한 모습이었기에 웃으면서 입을 연 칼스였다.


"일단 모두 푹 쉰  같아 보여 다행이네요. 어제저녁에 서로 인사는 나누었으니 자기소개는 넘어갈게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허니 상단의 일을 시작할 건데요. 일단 스티븐!"
"네. 상단주님."
"스티븐은 잭에게 간단히 벌을 관리하는 법부터 배우도록 해. 아무래도 그쪽에서 일할 시간이 가장  테니까."
"알겠습니다."
"저도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최선을 다해 가르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티븐은 의욕이 가득한 표정으로 칼스의 지시를 들었고, 잭은 공적인 자리인 만큼 칼스에게 깍듯이 존대를 하며 답했다.


"제니는 제레미에게 상단 내에 있는 여러 물건들의 현황을 알려주고, 제레미는 따로 활용 가능한 예산을 배정해 줄 테니 당장 상단 내에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다음 상행 때 구입해올 수 있게 목록화해줘."
"알았어요."
"깔끔하게 정리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밍슈펠트르님과 푸른  일족분들은 상단건물주변을 주기적으로 순찰해주시고, 상단 내부엔   명 이상이 상주할  있도록 해주세요.  참! 그리고 다들 말을 잘 다루신다고 하셨죠? 마을에 제가   말들이  필 있는데 가능하면 그 녀석들도  돌봐주세요. 수만 늘릴 수 있다면 여러모로 편리할 테니까요."
"맡겨만 달라고."


모든 이들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대략적으로 지시해 준 칼스는 어제부터 상단의 주방에 나와 일을 하기 시작한 메릴과도 이야기를 나누어 앞으로도 상단 식구들의 식사 준비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는 그 대가로 약간의 보수와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을 가져가는 것으로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  아버지 한센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잭슨에게 임시 신전으로 활용할 부지를 지정해 주고서야 양봉장으로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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