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직원들 (41/65)



〈 41화 〉새로운 이웃과 새로운 직원들

잠시 후 기도를 마친 그녀들을 이끌고 임시 신전 건물 안으로 들어선 칼스는 그들이 머물 방과 기도실로 사용할만한 곳을 선보였다. 그러자 하이디아는 다른 이들은 밖에 대기하라 전하곤 자신의 일행과 칼스만을 데리고 기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가 기도실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장소예요. 보다시피 여신님의 신상을 둘 자리는 비워놨어요. 어떤 것을 배치해야 할지 몰라서요."
"아주 멋진 기도실이구나. 칼스 네가 정말 우리를 위해 힘써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야."
"사실 전 크게 한일이 없어요. 마을의 어른들이 사제님들이 오신다는 소식에  날 며칠을 이곳에 머물며 작업해  것이죠."
"나중에 꼭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구나. 그리고 신상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원래 아르케 여신님의 신전은 작은 꽃나무 하나만 있어도 되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하이디아는 품에서 작은 씨앗 하나를 꺼내더니 여신상을 둬야 할 자리에 올려놓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그러자 씨앗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싹이 돋으며 단단한 돌바닥을 뚫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자그마한 꽃들이 피어있는 꽃나무 하나가 기도실 가운데 자리 잡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여신님의 상징인 꽃나무란다. 신기하지?"
"네. 신비롭네요. 근데 마를르성에 갔을 때는 분명 커다란 석상이 세워져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마를르성에있는 여신상도 신전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은 아니란다. 하지만 이런 작은 꽃나무에 기도를 올리는 것이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습게 보인 모양이야. 그러다가 어느  신도가 너처럼 여신님을 직접 뵙고는 그분의 모습을 본뜬 신상을 만들었고, 신상이 생기니 외부의 시선은 물론 우리 신도들의 신앙심도 더 강해졌지. 그 후로는 마를르성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신전에는 그런 신상을 하나씩 배치해두고 있단다. 하지만 사실 기도실의 핵심은 바로 이 작은 꽃나무란다."


하이디아의 말에 칼스는 마를르성에있는 아르케 여신의 신전 기도실안에 많은 꽃과 나무들이 자라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그저 숲과 꽃을 주관하는 여신인 아르케를 따르는 사제들이 신전 내부에 키워낸 것들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꽃과 나무들이 여신의 직접적인 힘을 투사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체였던 것이다.


"그럼 그 씨앗만 있다면 어디든 신전을 세울 수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다. 이 씨앗은 아무 데서나 그 뿌리를 내리지는 않거든. 씨앗 안에 일정 이상의 기운을 주입해야만 싹을 틔울 수 있지. 애초에  씨앗은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들을 위해 여신님께서 내려주신 은혜이니 말이야. 잘은 몰라도 엘프들이 머무는 마을에도 꼭  나무가 한 그루씩은 존재할 거다. 그들은 이것을 아주 크게 키워내어 어머니 나무라 부르며 여신님과 동일시하며 기도를 올리곤 하지. 으음..."

그렇게 작게 자라난 나무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하이디아가 일순 몸을 휘청였고, 이에 옆에 있던 사제 리지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하이디아님 잠시 올라가서 쉬세요. 나머지는 저희들이 정리할게요."
"후후. 내 걱정을 해주는 거니 리지?"
"당연하죠! 하이디아님을 잘 모시라고 휠리나주교님이 얼마나 신신당부했는데요. 로라와 수잔은 하이디아님을 방으로 모셔다드리고 오렴. 칼스님은 저와 잠시 이야기 좀 나누도록 해요."


리지라는 사제의 말에 두 어린 복사(Acolyte)는 하이디아를 부축하며 기도실을 나섰다. 칼스는 하이디아가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며 리지사제에게 물었다.


"이런! 저렇게 힘겨워 하시다니. 저 나무를 심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가 보군요."
"저 싹을 홀로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분은 교단 내에도 많지 않아요. 적어도 주교급 이상은 되어야 겨우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싹을 틔우는 것뿐인데 저렇게 단숨에 자라나게 하다니... 아!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마를르성의 신전에서 이곳 에올론 마을로 파견된 사제 리지라고 해요."
"아. 전 이 마을에서 작은 사업을 하고 있는 칼스입니다. 근데... 파견이라 하심은 혹시."

칼스는 그저 며칠간 머무르는 일정을 가지고 파견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고, 리지는 이에 싱긋 웃으며 그가 기대하고 있던 답을 내주었다.


"네. 하이디아님과 저를 비롯한 넷은 앞으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마을에서 머물며 여신님의 은총을 베풀 거예요. 아! 물론 이 마을 촌장님의 허락이 있어야겠지만요."
"허락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을. 오히려 촌장인 아버지가 가장 원하는 것이 그것일 텐데요. 마을 사람들도 두 손 벌려 환영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새로  신전 건물을 만들어드리는 거였는데요."
"후후. 사실 저와 두 복사 아이들은 이 작은 마을에 가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  걱정이 많았답니다. 그런데 신전  화단과 이곳을 보니 생각보다 그리 나쁜 환경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네요. 이런 결정의 배경엔 칼스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두도록 하세요. 본단에서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칼스는 그녀에게 이 기쁜 소식을 촌장인 아버지에게 전해드려도 되는지 물었고, 리지는 당연히 그렇게 해도 좋다면서 신전에 마을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러 오는 것은 내일부터 가능할 거라 일러주었다.

기도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센은 그 안에서 환한 표정의 칼스가 뛰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칼스. 방금 안에서 환한 빛무리가 퍼져 나오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 빛은 아르케 여신님의 신물이 기도실안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나온 거였어요. 사제님들이 우리 마을에 계속 머물러주실 거래요!"
"그게 정말이냐? 그냥 며칠 더 머무른다는 말을 잘못 들은 게 아니고?"
"아니에요.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여신님의 신물을 뿌리내리게 했다구요. 즉 이제 이 기도실은 신전과 그 격이 똑같아진 거라고요!"


칼스는 아직도 믿지 못겠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에게 하이디아가 심고 키워낸 꽃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제서야 그의 말이 진실임을 확인한 한센은 환희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칼스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세상에! 장하다! 네가 정말 큰일을 해주었구나. 우리 마을에 신전이 들어서다니! 어서 마을 사람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
"기도는 내일 오전부터 가능하다고 했으니 그것도 함께 전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거기에 신전에서 허드렛일을 도울 아이들을 몇몇 뽑아봐야겠다. 단순히 며칠 지내는 거라면 네가 챙겨드려도 되겠지만 아예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면 여러모로 필요한 것들이 많을 거다. 너도 그분들에게 혹시나 부족한 것은 없는지 꼼꼼하게 챙겨드리도록 해라."


한센은 칼스의 말에 기뻐하며 마을에서 그녀들을 지원해 줄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한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미소 짓던 칼스는 상단 건물로 돌아가 방금 도착한 꿀단지들을 수령하고 있을 제레미를 찾아갔다.

"제레미! 물건은 다 도착했어요?"
"아! 칼스님. 지금 막 계약서에 쓰인 물량과 가져온 물품을 비교해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게 도착했던데요."
"특이한 거요?"
"네. 꿀단지도 아니고... 좀 커다란 주전자 같은 물건인데 위아래 구멍이 다 뚫려있더군요. 그들의 말에 따르면 칼스님이 직접 주문을 넣은 거라고 하긴 했는데."
"아! 소줏고리가 도착한 모양이네. 어디에 있죠? 그건 직접  확인해봐야겠는데."
"이쪽으로 오세요."

제레미는 칼스를 데리고 상단의 창고로 향했다. 창고 안에는 오늘 가져온 여러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는 잭과 제니, 그리고 스티븐 남매가 있었다. 그들은 칼스의 등장에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오려 했으나 그냥 계속 정리 작업을 하라는 그의 몸짓을 보고는 다시금 꿀단지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에 몰두했다.


"자 여기에 따로 빼놨습니다."
"어디 보자... 한번 조립을 해봐야겠는데... 밖에 앙켈젠이랑 망구다이좀 불러줄래요? 아무래도 힘이 좋은 사람이 해야 할  같은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불러오겠습니다."

제레미가 두 사람을 부르러  사이 칼스는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소줏고리의 여러 파츠들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크기가 자신의 허리춤까지 올 정도로 커다란 물품들은 일단 겉으로 보기엔 그가 주문한 대로 만들어져있었다.

"무슨 일인데 나랑 망구다이를 불러낸 거야? 이건  뭐야 단지가 왜 위아래가 다 뚫려있어?"
"혹시 상인들이 야료를 부린 겁니까? 그것 때문에 부르신 거면 저랑 앙켈젠이 가서 제대로 혼쭐을 내주겠습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이 물건들은 하나로 조립을 해야 완성이 되는데 보다시피 크기가 커서 들어서 조립할 사람이 없어서요."
"아. 그런 거면 우리가 제격이긴 하지. 근데 어떻게 조립해야 하는데?"
"일단..."

칼스는 앙켈젠과 망구다이에게 그것들을 하나하나 조립할 수 있게 지시했고, 그러자 마치 항아리 위에 주전자를 거꾸로 씌워둔듯한 모양의 소줏고리가 완성되었다. 칼스는 작은 사다리를 가져와 완성된 소줏고리 위에 올라 이리저리 살펴보았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여 만족한듯한 표정으로 바닥에 내려왔다.


"근데 이건 대체 어디다 쓰는 겁니까?"
"아! 이건 앙켈젠이랑 망구다이 둘이 아주 좋아할 물건을 만들 때 쓰는 물건이에요."
"호오? 아무리 봐도 감도 안 오는데. 뭐 상단주가 좋다고 하면 좋은 거겠지."


두사람은 그들이 좋아할 물품을 만들어내는데 쓰인다는 말에 소줏고리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궁리를 해보았으나 전혀 머릿속에 떠오르는것이 없자 고개를 내저으며 물러났다.


"근데 최소 몇 년은 걸릴 물건이라 그때까지 두 분이 여기 계실지 모르겠네요."
"이런! 고작 요런 걸로 우리를 꾀려고 하는 거야? 아오... 궁금한  내가 못 참는 성격이라는  어찌 알고."
"그러니까 그때까지 계속 함께 일하자고요."
"그건 대장이 정해야  문제니까 그쪽에 알아보라고. 으음... 근데 궁금하긴 하군."
"일단 제대로 만들어진거같으니 다시 분해해서 저쪽에 조심히 내려놔주세요. 깨트리면 안돼요!"

칼스는 금방 분해할거면 뭐하러 조립하게 한거냐며 궁시렁대는 둘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것만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꿀에 이어 또 하나의 대표 상품이 탄생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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