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아르덴 대삼림 그리고 엘프왕국 (44/65)



〈 44화 〉아르덴 대삼림 그리고 엘프왕국

칼스는 자그마한 병에  성수를 들고 돌아와 얼마 전에 만들어뒀던 위스키의 원료인 스피릿을 꺼내들었다.


"나무 통에 넣어 숙성시켜보기엔 너무 적은 양이라 남겨둔 건데. 성수와 희석하면 나쁘지 않을  같단 말이지."


예전에 마를르성에서 받았던 아르케 교단의 목걸이와 마찬가지로 성수에서도 상쾌한 숲내음이 넘쳐흘렀기에 이걸 스피릿과 블렌딩하여 맛과 향이 괜찮은 술이 탄생한다면 그것을 여왕에게 선물해 보려 한 칼스였다.

괜히 한 번에 다 섞었다가 잘못될 수도 있었기에 작은 잔에 술과 성수를 적당히 섞은  먼저 향을 맡아보았는데 기대했던 대로 알코올 특유의 향은 누그러들고 성수에서 나오는 향이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단 향은 합격이고, 맛은 어떠려나."

칼스는 기대감을 품고 잔을 조금씩 기울여 입안에 흘려 넣었고, 그러자 알싸한 알코올 특유의 시원함과 함께 마치 자X리톨껌을 씹었을  배어 나오는 맛과 비슷한 향취가 입안을 채워나갔다. 그 후 삼킬 때까지도 그 맛과 향이 유지가 되었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술이 되어버렸다.

"이건 위스키라기보다는 도수가 낮은 아콰비트에 가깝네. 그래도  정도면 충분하니 적당한 술병에 넣어 가지고 가면 되겠다."

나중에 조금 더 술의 맛과 향을 개선해서 판매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엘프 여왕을 만나러 갈 준비를 마쳤다.


* * *

이틀 후 칼스는 함께 아르덴 대삼림으로 향할 망구다이와 링메인을 대동한 채 마을 밖으로 나섰다. 망구다이는 꽤 큼직한 등짐을 지고 있었고, 링메인은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활과 검을 든 완전 무장 상태였다. 엘프들은 이미 먼저 나와 준비 중이었는지 그들이 마을을 나서자마자 저 멀리 숲속에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나왔군."
"안녕하세요. 아무래도 그곳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니 빨리 출발하는게 나을 거 같아서요."
"하긴. 인간들의 걸음으로는 제법 시간이 걸릴 테지. 그 셋이 일행의 전부인가?"
"네."
"그럼 출발하도록 하자."

타렌이 선두에서 일행을 숲으로 인도했고, 레일라와 릴리나는 칼스의 옆에서 아르덴 대삼림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식생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아르덴 대삼림 외곽지역은 칼스도 처음 꿀벌을 찾기 위해 드나든 적이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안쪽으로 들어서자  외곽과는  다른 느낌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숲이 우거져서 굉장히 음침하고 습할 거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그럼~ 우리 일족들이 나무를 얼마나 잘 관리하는데. 적당히 숲 안으로도 햇볕이 들어야 다른 꽃들도 자랄 수 있어."
"신기하네요. 아 참! 그러고 보니 타렌씨나 릴리나는 딱히 활 같은 건 사용  하나 봐요?"
"활?  활?"


칼스는 지구에서 접한 여러 매체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엘프들이 종종 활을  다루는 종족으로 묘사되어 있길래 질문을 던진 것이었으나. 돌아오는 답과 시선을 봤을 때 그건 이 세계에서는 맞지 않는 내용인듯싶었다.


"활은 일단 시야가 탁 트여있고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무기지. 거기에 이것저것 걸릴게 많은 환경인 숲속에서 활을 사용한다는 건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아. 물론 활을 다루는 동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잘 다루느냐 묻는다면 글쎄..."
"저 엘프의 말이 맞아. 활은 우리 같은 초원의 전사들이  쓰지. 아! 아직 칼스는 못 봤겠구나? 나중에 내가 말위에서 활 쏘는 것도 보여줄게."
"그렇군요... 하긴 활이란 무기가 습기에도 취약한 걸 생각해 보면 이래저래 숲과는 맞지 않는 무기겠네요."
"게다가 숲에서 우리가 마음먹고 기척을 죽인 채 접근하면 알아챌  있는 존재는 극히 드물어. 숲이라는 공간 안에서 우리들을 적대하는 건 애초에 지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괴물 녀석들과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들뿐이야."


타렌의 마지막 말에 무언가 뼈가 담겨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칼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 말은 수백 년 전 솔라의 광신도들이 그들이 살고 있던 터전을 짓밟았던 것을 이야기하는 거라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후로 칼스는  외부에서는 쉽게 얻지 못하는 약초와 버섯들이 나타나면 그것들에 대한 효능과 사용법을 배워가며 조금씩 안쪽으로 들어섰고, 하룻밤을 숲속에서 보내고 다음날 낮이 되어서야 엘프들의 마을이자 릴리나의 고향인 엘그랑가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끝없이 나무들로 채워져 있을 것 같았던 아르덴 대삼림 속에 꽁꽁 숨겨져있던 호숫가에 넓은 공터가 펼쳐져 있었고,  호수를 중심으로 주변에 아기자기한 나무로 지어진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집 주변으로는 넓은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엔 여러 엘프들이 무언가를 채집하는  바구니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숲에서 나타난 칼스 일행을 보더니 깜짝 놀라 마을 안쪽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여기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엘그랑가든이야."
"와! 정말 멋져요. 숲속에 이런 호수가 있을 줄이야."
"벌써부터 놀랐다가 나중에 엘기간테를 보면 얼마나 더 놀라려고 그러는지 모르겠군. 오늘 하루는 여기서 머물다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는 걸로 하지. 릴리나 장로님 댁으로 가자. 아무래도 외부인을 데리고 온 만큼 그분께 먼저 인사를 드려야겠어."
"네. 안 그래도 출발 전에 말씀을 드려놔서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릴리나의 안내를 받으며 엘그랑가든 안으로 진입한 칼스는 이 마을에 엘프들 외에도 몇몇 이종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마을 주변의 꽃밭을 가꾸는 픽시들도 보였고, 동물의 형상을 띄고 있는 수인족들도 몇몇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와... 저들은 어떤 종족인 거예요?"
"누구? 아! 묘인족들을 말하는 건가. 수인족 계열의 하나지. 보통은 수인족들은 자기들끼리 집단을 형성해서 살아가는데 특이하게 묘인족들은 다른 종족들이 만들어둔 보금자리에 같이 뒤섞여 살아가는 녀석들이야.  도시에 가면  자주 볼  있는 수인족이기도 하고."
"성격이 꽤나 앙칼져서 친해지기 힘들지만. 한번 마음을 열어준 이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다정하게 대해준다고 하더라."

칼스가 엘프들의 사이에 섞여있는 고양이 귀를  수인족을 가리키며 묻자.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망구다이와 링메인이 답해주었다. 그런 그들의 설명을 들으며 실제 고양이와 다를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걸어가다 보니 엘그랑가든에서 가장 커다란 건물 앞에 서있는 한 엘프의 앞에 다다르게 되었다.

"어서 오게. 내가 이 마을의 장로인 유엘라스라네. 여신님의 기운이 한껏 묻어나는 것이 느껴지는  보니 네가 칼스라는 인간인가 보구나. 일전에 보내준 꿀은 맛있게 먹었단다."
"안녕하세요. 숲 인근에 자리 잡은 에올론마을의 칼스라고 합니다."
"그래. 여왕의 초대를 받아 엘기간테까지 간다고 들었다. 제법 먼 길을 가야 할 테니 오늘은 여기서 편하게 쉬려무나."
"감사합니다."


장로인 유엘라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야 칼스 일행은 마음 편히 엘그랑가든을 거닐 수 있었다.

엘그랑가든은 그야말로 인간이  집단생활을 시작했을 당시의 모습과 흡사한 구조로 만들어져있었다. 마을에 지어진 집들 역시 어떤 규칙성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자리에 그대로 세워져 있었기에 어찌 보면 조금 난잡해 보이기까지 한마을이었다.

하지만 그런 집들 사이마다 푸른 풀과 꽃들이 피어있었고, 엘프들은 그런 꽃과 수풀들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움직이거나 아예 건물을 감싸며 자라나있는 나무의 가지를 박차며 이집 저집을 오가는 모양이었다.


"음... 엘프들의 집은 커다란 나무가 자라나 그 안쪽을 비워서 만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네요."
"나무 안의 빈 공간을 집으로 삼는다고? 으음. 엘기간테의 어머니 나무쯤 되는 거대한 신목이 아닌 이상 안에서 누군가가 살아갈 공간이 나오지는 않을  같은데."
"후후후. 만약 칼스의 말대로 우리들이 그런 생활을 한다면 마치 다람쥐처럼 웅크리고 들어가 있어야 할걸요?"
"그래도 일단 건물 주변을 나무들이 보호하듯 감싸고 있다는 건 생각과 같네요. 아무래도 언젠가 엘프 마을에 들른 누군가가 저 모습을 보고 이야기한 게 와전된 게 아닌가 싶어요."
"원래 사람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과장해서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법이니까."

칼스는 하룻밤을 묵게  릴리나의 집으로 향하며 지나치는 여러 채의 엘프들의 집들을 관찰했다. 아마 특수한 방법으로 성장을 시킨 것 같아 보이는 나무들이 작은 집 주변을 감싸고 있었고, 대부분의 집들은 따로 지붕이 없이 자라난 나무들의 잎과 가지로 층층이 뒤덮여 있었다.


마을의 엘프들과 수인족들은 갑자기 나타난 인간들의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는지 자라난 나뭇가지 사이로 설치된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거나 나무 위에 걸터앉은  그들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킁. 이거 완전 구경거리가 된 기분인데."
"이런 시선은 자주 느껴봤잖아? 처음 마을을 떠나서 동부 왕국에 들어섰을 때부터 말이야."
"그렇긴 하지. 인간이나 엘프나 그런 부분에선 비슷하군."

망구다이는  이방인 취급을 하며 배척하던 동부 왕국의 여러 마을에서 받아왔던 시선이 떠올랐는지 찜찜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꺾어댔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외부에서 인간이 마을에 들어온게 원체 오랜만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대신 사과드릴게요."
"아니. 사과까지 바라는  아니었는데... 으음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 저기가 바로 제 집이에요."
"릴리나. 그럼 이들을  부탁하도록 하마. 아무래도 우리까지 들어가기엔 좀 비좁을 수 있으니 나와 레일라는 다른 곳에서 하루를 보내도록 하지."

타렌과 레일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훌쩍 몸을 날려 가지를 타고 다른 곳으로 사라져갔다. 그런 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칼스에게 릴리나가 미소  얼굴로 자신의 집문을 열며 이야기했다.

"조금은 비좁을지 모르지만 하루 정도는 보낼 수 있을 테니 들어들 오세요."
"아... 실례하겠습니다."
"이거 고용주를 잘 둔 덕분에 엘프의 집에도 들어와 보는군."
"우와! 천장이  나뭇잎으로 덮여있잖아? 저쪽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같은 건가?"
"네 맞아요. 일단 짐은 이쪽에 내려두시면 되고요. 남자분들은 이쪽의 큰 방을 쓰시고, 거기 여성분은 여기 작은방을 사용하세요. 저는 부모님의 집에서 하루 머물도록 할게요."
"아하. 부모님과 같이 지내지 않나 보네요?"
"우리는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 자라나 성인식을 치를 때가 되면 들어가 살 수 있게끔 집을 미리 준비해둔답니다.  집과 주변의 나무들도 부모님께서 제가 태어났을 즈음에 심어두신 나무들이죠."
"헤에... 근데 그러면 엘프들이 결혼을 하면 집이 두 개가 되잖아요? 남는 집이 생기면 그건 어떻게 처리하는데요?"
"보통 첫째 아이에게 그렇게 남겨진 집들 중에 하나를 주거나, 집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해요. 만약 아무도  집을 원하지 않는다면 허물어버리고 나무는 마을의 자원으로 활용하면 되는 거죠."


칼스는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엘프들의 생활문화가 특이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그렇게 자신이 살거나 지은 집을 다른 이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내어준다는 말에 인간이라면 절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엘프가 태어나서 성인으로 자라나는 기간이 길다 보니 이런 식의 준비도 가능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집으로 지어진 나무를 자원으로 활용해요?"
"보통은 음식을 할 때 땔감으로 쓰거나 여러 도구들을 만들 때 사용하죠."
"오오. 그렇군요."

아무래도 지구에서 접한 엘프라는 종족의 선입견 때문인지 나무를 땔감으로 쓰거나 함부로 자르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름대로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기는 하지만  때는 쓰는 실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세계의 엘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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