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아르덴 대삼림 그리고 엘프왕국 (46/65)



〈 46화 〉아르덴 대삼림 그리고 엘프왕국

찬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칼스는 이렐린으로부터 간단한 류트의 연주법을 배웠는데, 6현으로 이루어진 류트는 여러모로 지구에서 연주해봤던 기타와 비슷한 점이 많아 금세 감을 잡고 기본적인 코드를 짚을 수 있었다.

디링 띠링

"후후. 잠깐 가르쳤는데 금방 감을 잡는 걸 보니 류트에도 제법 소질이 있는 모양이네."
"이게 다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뛰어나서겠죠. 자 여기 잘 썼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우리들이 나무로 만든 악기를 선물해 줄게."
"그럼 저야 감사할 따름이죠."
"자. 그럼 슬슬 저녁시간이니 엘프식 저녁식사를 대접해 줘야겠네?"
"어어... 저희는 그냥 돌아가서 따로 해먹어도 되는데."
"우리는 자신의 집에 들인 손님은 가족처럼 대접해 준단다. 그러니 크게 개의치 말고 먹고 가려무나."

그렇게 본의 아닌 식사 대접까지 받게  칼스는 난생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해주는 음식을 대접받게 되었다. 엘프들은 숲속에서 얻는 많은 재료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었는데, 딱히 채식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냥을 하지 않는 종족적 습관 덕에 버섯과 산나물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하였다.

이렐린은 버섯과 각종 채소, 산나물을 넣고 끓여낸 스튜와 함께 버섯과 도라지 비슷한 산나물을 구운 것을 가지고 왔다.

"와... 여기에 고기와 술만 더해지면 최고의 조합일 거 같네요."
"미안하게도 집안에 고기남은게 없어서 말이지. 술은 과일주가 좀 있는데 가져올까?"
"아녜요. 이걸로도 충분한걸요. 그냥 해본 말이니 괘념치 마세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칼스는 자신의 앞에 놓인 스튜를 한입 먹어보았는데, 여러 채소와 버섯에서 우러난 맛이 조화를 이루어 깊은 맛을 느낄  있었다. 거기에 불에 직접 구워서 내놓은 버섯들은 마치 고기와 같은 식감과 맛을 내주었기에 낯선 음식임에도 남김없이 모든 음식을 먹어치웠고 다른 일행들 역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것을 보니 제법 음식이 입에 맞는 모양이었다.


식사를 마친  사람은 두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릴리나의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고,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다시금 엘기간테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엘기간테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우리끼리만 가는 거였다면 오늘 내로 도착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숲에 익숙하지 않은 너희들을 생각하면 하루쯤은 숲속에서 노숙을 해야 할 거다. 별다른 일이 없다는 가정하에 대충 내일 오후쯤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 같군."
"으아...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건가요?"
"그나마도 우리가 최대한 빠른 길을 찾아줘서 이 정도이지. 길도 모른  숲속으로 들어서면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숲에 잡아먹히게 될 거야."
"실제로도 가끔 귀한 약재를 찾는다고 숲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는 인간들이 발생하거든요. 우리들도 숲 전체를 살펴볼 수가 없으니 뒤늦게 발견하면 대부분 짐승들의 먹이가 되어버리곤 하죠."


레일라의 말에 칼스는 지구에서도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발생하곤 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숲속을 헤치며 걸어가던 중 선두에 서있던 타렌이 멈춰 서더니 길쭉한 귀를 움찔거리며 어떤 소리를 듣는듯한 모습을 취했다.

"흠... 이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군."
"무슨 일인가요 타렌?"
"리즐베어가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는 것 같아."
"리즐베어가요?"
"아무래도 저 등짐 속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따라오는 거 같군. 녀석들은 꿀이라면 아주 환장을 하는 놈들이니 말이야."
"링메인. 리즐베어가 뭐예요?"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숲속에서 절대로 만나면  되는 존재라고 해야 하려나. 곰의 일종인데 거의 몬스터로 분류되는 녀석이야. 완전히 다  수컷 리즐베어같은 경우엔 기사 정도나 되어야 1:1로 맞붙을 수 있다고 하지."

칼스는 링메인에게 리즐베어가 뭐냐고 물었고, 그녀는 숲속에서 살아가는 괴물과 짐승 그 중간 언저리쯤에 걸쳐진 곰이라고 했다. 완전히 성장한 성체의 경우 두발로 섰을 때 키가 3미터에 육박할 정도라고 하니 그야말로 괴물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어쩌죠? 꿀을 좀 덜어내서 유인해볼까요?"
"아니. 그랬다간 녀석이 꿀의 존재를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우리를 쫓을 거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뒤에 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무래도 내가 먼저 녀석을 덮쳐야겠군."
"타렌 혼자서요? 설명을 들어보니 굉장히 위험한 녀석인 것 같아 보이는데."


커다란 곰과 1:1대결을 펼치려 하다니 어느 세계 불곰국 형님들의 이야기를 실제로 목격하게 된 칼스는 타렌이 걱정되었으나 그는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며 칼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하. 숲속에서 우리 장다름은 인간들의 기사보다 뛰어난 전투능력을 지니고 있지. 릴리나! 여기서부터는 네가 선두에 서서 이끌도록 해. 나는 뒤에 남아있다가 녀석을 칠 테니 말이야. 그사이 다른 녀석들이 또 달라붙을 수 있으니 각별히 유의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이쪽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릴리나에게 선두 자리를 인계한 타렌은 옆의 나무를 타고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아 약간은 풀어진 모습을 보였던 링메인과 망구다이도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칼스는 내심 엘프들이 어떤 식으로 적을 상대하는지 궁금했으나. 그렇다고 여기에 남아 타렌이 곰을 상대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계속 나아갔다.


* * *


엘프들의 지도자이자 정치적 정신적 구심점인 여왕의 곁을 지키는 100명의 정예 엘프들은 장다름(gendarme)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어떤 태생적인 신분으로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건 간에 최고의 실력을 지닌 이들만이 뽑힐 수 있었는데, 타렌은 마법이나 정령술이 아닌 순수한 전투능력으로 장다름의 일원이  케이스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르덴 대삼림을 누비며 여러 짐승과 괴물들을 상대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엘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더니 차기 장다름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다. 그러던 중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장다름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엘프가 생겼고, 그는 그렇게 영예로운 여왕의 근위대 장다름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스스스슥

타렌은  멀리 걸어가는 칼스 일행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그들이 어느 정도 멀어졌다는 걸 확인하고는 자신의 기척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상태로 눈을 감은 채 자신들을 쫓던 리즐베어를 기다렸다.


- 킁킁! 저벅 저벅.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타렌이 숨어있던 나무의 전면에서 거대한 동체의 짐승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자신이 좋아하는 달콤한 냄새를 맡고 그 냄새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연신 코를 벌름이며 이리저리 고개를 휘저어 댔는데, 분명 녀석이 생각했던 위치까지 도착했으나 또다시 멀어진 냄새의 근원지에 화가 나기 시작했는지 콧김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놈이 무방비 상태로 자신이 대기 중이던 나무 밑을 지나는 그 순간 미리 빼어두었던 칼을 역수로  채 뛰어내리는 타렌이었다.

푸우우욱!
- 커허허어어엉!!!
- 까악! 퍼더더덕!!

마력을 잔뜩 머금은 칼날이 정확히 곰의 두개골을 가르고 들어가 놈의 뇌를 곤죽으로 만들었고, 순간적인 충격에 마지막으로 내뱉은 엄청난 크기의 울부짖음에 숲속에 살고 있던 새들이 화들짝 놀라 여기저기서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쯧... 하필 오늘 같은 날 우리의 뒤를 밟다니. 네 녀석의 운명을 탓하거라. 그나저나 이 큰 녀석을 어찌 처리해야 하나."

타렌은 일격에 쓰러트린 리즐베어의 사체를 내려다보며 방금 전에 사용했던 검에 묻은 피와 뇌수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다시금 허리춤에 매어두었다.

리즐베어의 마지막 울부짖음을 들었는지 저 멀리서 다급히 다가오는 칼스와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 *


- 커허허어어엉!!!

한편 칼스는 혼자 남은 타렌이 혹여나 곰에게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뒤쪽에서 엄청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소리 들었어요? 아무래도 타렌님이 곰과 맞닥뜨린 모양이에요. 당장 도우러 가야 하지 않을까요?"
"에에. 우리가? 그 장다름의 일원인 타렌을? 후후후. 그분의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저도 레일라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숲속에서 타렌님이 짐승에게 당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으니 말이에요. 일단 돌아는 가보죠. 어떤 녀석이 칼스의 뒤를 밟았는지는 봐야 하지 않겠어요?"

칼스와 마찬가지로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무기를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망구다이와 링메인과는 달리  엘프들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일행들을 다시금 왔던 길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여차하면 지원을 나갈 생각을 하던 칼스였기에 타렌이 리즐베어를 사냥한 장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고, 금세 그들은 거대한 곰의 사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타렌의 모습을 발견할  있었다.


"타렌님!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전혀. 애초에 이런 곰에게 상처를 입었다간 당장 지위를 박탈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테지. 레일라! 아무래도 이 녀석을 통째로 가져갈 방법은 없겠지?"
"으음. 아무리 마법 배낭이 뛰어난 물건이라지만  덩치를 다 밀어 넣을 수는 없어요. 게다가 무게는 어쩌려고요."
"쯧... 어쩔 수 없나. 적당히 필요한 부분만 잘라가야겠군. 이 근처 동물들만 잔치를 벌이겠어."

레일라가 타렌의 질문에 자신의 배낭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어쩔 수 없다는  작은 단검을 꺼내어 리즐베어의 사체를 해체하려 하는 타렌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동을 제지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칼스의 호위로 따라온 링메인이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제가 해도 될까요? 이래 봬도 짐승들 가죽 벗기는 데는 제법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데요."
"흐음. 북부 초원의 전사들이 잡아오던 소와 말과는 차이가 있는 짐승인데 괜찮겠나?"
"후후. 그럼요. 고향을 떠나 온갖 일들 해오면서 벗겨낸 짐승의 종류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랍니다."
"그럼 믿고 맡겨보지."

타렌이 순순히 자리를 내어주자 링메인은 망구다이에게 리즐베어의 사체를 뒤집어달라 요청하더니 순식간에 곰의 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표정으로 작업을 지켜보던 타렌은 링메인의 솜씨가 나쁘지 않았는지 별말 없이 해체 과정을 구경했고, 칼스도 소와 양 같은 가축이 아닌 거대한 곰을 도축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으나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광경을 보자 인상을 찌푸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후우. 덩치가  녀석이라 그런지 가죽도 어마어마하게 크네요. 워낙 잔상처 없이 깔끔하게 잡아서 꽤나 값어치가 나갈 것 같아 보이는데요. 여기 발톱이랑 이빨도 빼놨으니 가져가세요."
"아주 일처리가 깔끔하군. 인간 치고는 제법이야."
"고기는 어떻게 할 건가요?"
"적당히 먹을만큼만 잘라서 가져가도록 하지 나머지는 더 들고 가봐야 짐만될 뿐이야."
"머리는 잘라서 잘 말리면 멋진 장식이 될 텐데요."
"그건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니 우리에겐 필요 없다. 그쪽에서 필요로 한다면 챙겨도 좋아."


타렌의 말에 링메인은 칼스를 보며 의향을 물었으나 칼스 역시 그런 쪽에는 딱히 취미가 없었기에 머리 역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렇게 리즐베어에게서 가죽과 발톱을 챙긴 일행들은 계속해서 숲을 헤쳐나갔고, 어느덧 해가 저물 때가 다가오자 타렌은 하룻밤을 지낼만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저쪽으로 가면 적당한 장소가 나올  같군."


타렌이 말한 장소로 가자 그의 말대로 야영지로 활용할만한 장소가 있어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 일행들은 주변에서 마른 나무를 모아다가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그사이 릴리나가 채집해온 감자 비슷한 뿌리식물과 아까 잡은 리즐베어의 고기를 불에 구워서 저녁 삼아 먹으며 그날 저녁의 불침번 순서를 정했는데, 칼스 역시 불침번에 포함시켜달라 주장했으나 다른 이들에게 주변에서 다가오는 위험을 알아채지도 못할 텐데 무슨 불침번이냐는 핀잔을 들을 뿐이었다.


결국 그와 레일라는 불침번에서 제외됐고, 나머지 인원들이 돌아가며 번을 섰기에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와 숲속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빠져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