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아르덴 대삼림 그리고 엘프왕국
아옐루나는 칼스가 선물해준 숲의 숨결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른 의원들의 간절한 눈빛에도 결코 자신의 앞에 놓인 남은술을 나눠 마시려하지 않았다.
"후후. 비록 숲의 숨결만큼은 아니어도 원인족이 만든 과일주도 아주 맛이 좋답니다."
"아니 여왕님! 치사하게 혼자 그 술을 독점하실생각이십니까?"
"어머? 이건 칼스님이 제게 선물해준것이니 제것이 맞죠. 안그런가요 칼스?"
"하하. 그렇죠."
"크으윽... 어이 거기 인간! 저 숲의숨결은 또 언제쯤 만들수 있는거지? 내가 전장을 누비며 얻은 멋진 무구들이 있는데 그것과 교환하지 않겠나."
"어허! 어디서 그런 녹슨 골동품을 가지고 귀물을 얻으시려고 하나. 자 칼스 우리 연금술공방에가면 아주 좋은 마법 물품들이 있다네 분명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을게야."
여왕이 제공해준 술과 음식을 먹는동안 하늘의회의 의원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숲의숨결을 팔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럴때마다 칼스는 당장 만들어둔 물량 자체가 남아있는 병에든게 전부라고 말했고, 그럴수록 아옐루나는 더 즐겁다는듯 미소지으며 다른 의원들을 애타게 만들고 있었다.
"어이 링메인. 너는 엘프왕국의 중신들이 이런이들이란걸 상상해본적이 있냐?"
"설마. 오늘 우리가본걸 다른사람에게 이야기해줘봐야 믿을사람도 없을거같은데? 그냥 술이나 마시자고."
점심식사가 마무리될때쯤 칼스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품에 고이 모셔왔던 물품을 여왕에게 내밀었다. 아옐루나는 칼스가 내민 작은 그릇을보며 아직도 뭔가 더 내놓을게 있었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또 뭔가 제게 보여줄것이 남아있었나보군요. 이번에는 뭔가요?"
"이건 제가 새롭게 만들어낸 상품은아닙니다만. 이곳에서 매우 귀하게 여겨지는 품목이라고 하여 따로 준비해왔습니다."
"으음? 아! 이건 [생명의꿀]이군요!"
아옐루나는 칼스가 건네준 작은그릇에 담긴 노르스름한 버터같은 물질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는데. 바로 이쪽 세계에서는 생명의꿀이라 불리는 로열젤리였다.
엘프 왕국에서 아주 극소량만 제작할수 있는 비약 [엘릭서]의 핵심재료중 하나인 생명의꿀은 숲에서 발견되는 벌집에서 아주 극소량만 얻어낼 수 있었기에 늘 부족함에 허덕이는 물품이었다.
"생명의꿀이라니요! 잠시 저도 좀!"
의원들중에 의약방을 언급하던 한 노년의 엘프가 생명의꿀이라는 단어에 황급하게 달려와 아옐루나가 들고있는 그릇을 건네받았고, 그는 그안에 들어있는 로열젤리를 보고는 감격어린 탄성을 내뱉었다.
"오오오! 이정도 양이면 올해 만들 엘릭서의 양을 늘릴 수 있을겁니다."
"엘릭서를 더 만들 수 있다구요?"
"네. 다른 재료는 넉넉한 편인데. 이 생명의꿀이 늘 부족했지요. 만약 이것만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다면 엘릭서의 생산량을 더 늘릴수도 있을겁니다."
"칼스. 이 생명의꿀도 혹시 판매품목에 들어있는건가요?"
"네. 물론입니다."
"설마 자네는 이 생명의꿀을 대량으로 만들어낼 방법을 알고있는것인가?"
"대량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자연에서 얻어지는 양보다는 훨씬 많은양을 만들어낼수 있죠."
"호..혹시 그 비법을 우리에게도 전해줄수 있겠는가."
"으음... 그건 생각을 좀 해봐야겠군요."
칼스의 대답에 낙담한 표정을 짓는 늙은 엘프였고, 그런 그에게 작은 한숨을 내쉬며 나무라듯 타이르는 아옐루나였다.
"쿠엘토장로님. 그렇게 무턱대고 귀한 지식을 공유해달라고 하면 어떻게해요. 칼스 당황스러웠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장로님이 평생을 의약당에서 봉사하시느라 워낙 인간사회에 대해 모르다보니 실수를 저지른것 같네요."
"크흠... 그렇군. 내가 생명의꿀에 눈이멀어 자네가 인간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해버린 모양이야."
"아뇨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은 좀 무리더라도 나중에는 충분히 알려드릴 수 있는 지식이니까요. 물론 이 지식을 다른곳에 함부로 풀지 않는다는 조건과 함께 제게도 적당한 이익이 되는 부분이 있어야겠지만요."
"정말인가요?"
그녀는 아무래도 가능성이 희박할거라 여겼던 부분에서 의외의 대답을 듣자 놀라워하며 되물었다.
"네. 제가 생각하는 사업 구상중에는 다른 도시에도 상단의 분점을 내서 벌통을 설치하고 관리하는것도 포함되어있거든요. 엘기간테에 벌통을 만들고 관리하는부분을 의약당에 계신분들께 맡기면 될거같네요. 물론 벌통을 만들고 유지하는방법부터 생명의꿀을 채취하는 방법까지 직접 제게 배워야하겠지만요."
"그러려면 칼스가 사는 마을에 의약당 소속의 인원을 파견해야겠군요.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는걸로 하죠. 쿠엘토장로님은 이 생명의꿀로 엘릭서를 만들어주시면 될거같아요. 어차피 제가 따로 가지고 있어봐야 딱히 쓸일이 없을거같으니 말예요."
"당장 의약당으로 돌아가 작업을 시작해야겠군. 칼스라고 했나? 엘기간테를 떠나기 전에 의약당에 한번 들려주게. 우리가 만드는 약에는 생명의꿀 말고도 일반 꿀 역시 많이 필요로한다네."
"네. 나중에 꼭 들리도록 할게요. 좋은 거래가 될거같네요."
칼스의 협조적인 모습이 긍정적으로 비쳐진 것인지 허니상단이 엘기간테에서의 거래건에 대한 의제는 무난하게 통과되었다. 다만 상세한 조항에 대해서는 따로 시간을 내서 확정짓기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자리가 파하자 쿠엘토장로는 아옐루나에게 받은 생명의꿀을 들고 황급히 하늘궁전을 빠져나갔다.
"인간이지만 너는 제법 마음에 드는구나. 나중에 장다름 본부에도 한번 찾아오도록해라."
"연금술 공방에서도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원래 인간들에게는 팔지 않는 물건들도 많은데 네가 오면 특별히 팔아줄지도?"
"아르케 여신님에게 기도를 올리고 싶으면 언제든지 방문해도 좋단다. 레일라와 함께 기다리고있으마."
"드라이어드를 대표해 다시한번 감사를 표하네. 혹여나 우리에게 궁금한점이 있다면 엘기간테의 동쪽에 위치한 드라이어드지구를 찾아오도록."
그뒤로 다른 의원들 역시 칼스에게 한마디씩 인사를 하며 떠나갔고, 결국 여왕 아옐루나와 칼스일행만이 하늘궁전에 남게 되었다. 그녀는 하늘궁전에서 일하는 이들을 불러 회의장을 정리하게 하고는 칼스와 일행들을 이끌고 왼쪽건물로 향했다.
"이곳에 방을 준비하라 말해두었으니 그곳을 사용하면 될거예요. 각 방마다 전담 인원을 한명씩 붙여두었으니 도움이 필요할땐 방에 비치된 종을 흔들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궁전내에 숙소를 준비해주실줄은 몰랐네요."
"후후후. 칼스는 제가 초대한 손님인걸요. 당연히 편히 쉴 공간도 준비를 해줘야하는거죠. 그럼 저녁식사때 다시 뵙도록 하죠."
그렇게 아옐루나는 하늘궁전의 중앙건물로 걸어갔다. 여왕이 떠나고 칼스일행이 숙소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엘프들이 그들을 안내해주었는데, 두개의 방이 준비되어있었기에 칼스와 망구다이가 한방을쓰고 남은 한방에 링메인과 릴리나가 머물기로했다.
궁전에 마련된 방에는 다양한 마법과 정령을 이용한 편의시설이 갖춰져있었고, 그중에서 칼스의 마음에 쏙들었던것은 물의정령의 도움을 받아 사용한다는 수도설비였다.
엘프들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의 나무 근처에는 정령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그들에게 부탁하여 물을 공급받는다고 했다.
"아하. 그렇군요. 그럼 그런 정령들을 관리하는건 누구인가요?"
"관리라뇨? 정령들은 딱히 구속받는 존재가 아닌데요."
"어어.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과 계약을 해서 힘을 빌려주는거 아니었나요."
"계약이랄것 까지는 없는데... 그냥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정도인걸요."
그 엘프는 칼스에게 정령과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칼스는 자신이 막연하게 상상하고 있었던 정령과 이곳의 정령이 조금다르다는걸 알수있었다.
지구에서는 흔히 정령들이 자기들의 세계에서 소환자와 계약을 맺고 그들의 마력을 양분삼아 소환되는것이라고 표현된다면. 이곳의 정령은 에올론 마을 근처에 자리잡은 픽시들처럼 자신들이 머물기에 적합한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그 근처를 머무는 존재들인듯했다. 엘프들은 그런 정령들중에 어머니나무 근처에 머무는 정령들과 적당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정령들의 도움덕에 깨끗한 물을 실컷 사용하여 개운하게 몸을 씻어낸 칼스는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슬슬 엘기간테를 둘러보기 위해 다른방에 머물고있던 링메인과 릴리나를 불러들였다. 그녀들 역시 그간의 묵은때를 깨끗하게 씻어낸 모습으로 나타났다.
"릴리나. 릴리나는 엘기간테에 몇번 와보셨죠? 오늘 우리를 좀 안내해줄수 있나요?"
"물론이죠. 칼스덕분에 여왕님과 같이 식사를할 기회를 얻었는걸요. 어차피 이번 엘기간테에서 되돌아갈때까지 칼스와 함께하는걸로 하죠."
"고마워요. 나중에 마을에 돌아가면 꼭 보답할게요."
"그럼 지금 나가볼건가요?"
"그래야죠. 여기서 몇날 며칠을 머물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그들은 궁전을 관리하는 이들의 안내를받아 밖으로 나섰고, 이전에 마법으로 올라왔던 궁전의 정면이아닌 측면 구석에있는 마법 승강기를 이용해 지상으로 내려올수 있었다. 마법 승강기에 올라탄 칼스는 문득 궁금하다는듯 마력을 이용해 승강기를 작동시키려하는 이에게 물었다.
"다시 올라갈때는 어떻게 해야하죠?"
"당연히 걸어서 올라오셔야... 후후 농담입니다. 아래에 궁전을 수호해주시는 장다름분들이 계시는데요. 저분들에게 요청하시면 신원확인을 하고 다시 올려보내주실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즐거운 여정 되시길."
정중한 인사를 건넨 엘프가 마력을 일으키자 칼스일행이 딛고 서있던 바닥이 서서히 지상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링메인과 망구다이는 영 불안한 표정을 짓고있었으나. 칼스는 지구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과연 이것이 어떤구조로 만들어진것인지 궁금해했다.
승강기를 작동시켜줬던 엘프가 말한 것처럼 지상에 도착하자 칼스를 맞이해준 것은 하늘궁전 주위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여왕의 근위대 장다름이었다. 그들은 두터운 가죽 갑옷과 은빛 투구를 쓰고 있는 직접 전투를 담당하는 이와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장비를 걸친 이가 한조가 되어 근무를 서고 있었다.
"여왕님의 손님분들이시군요. 어디를 가시는 건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음... 딱 어디라고 정해둔 건 아니고 엘기간테를 둘러보고 싶어서요."
"그렇다면 이것을 지참하고 다녀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딱히 특정한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았다는 칼스의 대답을 들은 가벼운 차림새를 한 여엘프가 눈을 감고 무언가 주문을 읊자 손에서 초록빛이 터져 나오더니 작은 구슬 하나가 생겨났고, 그것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요?"
"그건 혹시라도 여왕님이 손님을 찾거나 하면 연락을 할 수 있게 제 마력을 뭉쳐만든 구슬입니다. 만약 그 구슬이 진동하면서 빛을 발하면 근처에 있는 경비원이나 장다름에게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아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칼스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이 일종의 비상연락수단이라는 것을 알고는 가슴 쪽에 달린 주머니에 넣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