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아르덴 대삼림 그리고 엘프왕국 (50/65)



〈 50화 〉아르덴 대삼림 그리고 엘프왕국

릴리나의 안내를 받아 움직이기 시작한 칼스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하늘궁전 전면부에 마련된 커다란 광장이었다.

"릴리나. 여기 광장은 어떤 용도로 쓰이는 건가요?"
"여기는 여왕님이 특별한 일이 있을  주민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묻거나 급히 경비대를 파견해야 할 때 집합하는 장소로 쓰기 위해 만든 광장이에요. 그런데 보통은 엘기간테의 주민들이 서로가진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로 활용되는 곳이죠."
"아하. 그래서 저렇게 사람... 아니 엘프? 아닌데.. 아무튼 주민분들이 많이 돌아다니는군요. 어? 그럼 여기서는 어떤 화폐가 통용되는 건가요? 동부 왕국에서 주조한 주화는 아닐 거 같은데."
"보통은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지. 근데 요새는 인간들의 돈이 많이 들어와서 그것도 쓰이는 편이야."
"오호. 그럼 한번 구경해볼까."

칼스는 자신의 수중에 있는 잔액을 헤아려보며 광장 외곽을 따라 펼쳐져 있는 노점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엘프뿐 아니라 여러 종족들이 뒤섞여 자신들이 팔고자 하는 물건을 늘어놓고 있었는데, 서로가 좀 더 유리한 값을 받기 위해 밀고 당기는 모습은 인간들의 장터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어이~ 거기 인간. 이쪽에 좋은 물건이 많은데 보고 가라고."
"태우면 아주 좋은 향이 나는 향목들이 있다오."


드라이어드들이 파는 향목들과 엘프들이 팔고 있는 여러 약초들을 구경하던 칼스는 다시 릴리나의 안내를 받아 첫 번째 목적지인 엘기간테의 의약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의약방은 엘기간테의 동부에 위치했는데. 그것은 의약방이 아르케 여신을 따르는 이들이 만든 신전에서 분리되어 나온 시설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륙 중부에서 이곳 아르덴 대삼림으로 이주했을 당시 어머니의 나무를 발견한 엘프들은 자연스럽게 그 나무를 중심으로 모여 살기 시작했고, 그들 중에 아르케 여신을 위한 제례를 담당하던 이들은 여신의 기운이 잔뜩 묻어나는 동쪽에 제단을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아직 규모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던 때라 사제님들이 의료활동까지 같이 담당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점점 엘기간테가 커지고, 여러 다른 종족들 중에 아픈 이들이 찾기 시작하자 아예 의약방을 분리해 신전 옆에 설치한 거예요."
"오호! 근데 정확히 의약방에서 하는 일이 뭔가요? 그냥 엘릭서 같은 약품을 만드는 거 아니었어요?"
"엘릭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숲속에서 다치거나 병든 이들을 치료하는  더 큰 목적이에요. 작년에 큰불이 났을 땐 의약방에 다친 이들로 가득 차서 외곽에 커다란 임시 진료소를 만들어서 부상자들의 회복을 도왔었죠. 그래서 의약방과 신전에 속한 이들은 숲속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답니다."

릴리나의 설명을 들으며 걷다 보니 어머니 나무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그 크기와 생김새가 범상치 않은 거대한 나무  그루가 솟은 건물이 보였다. 칼스는 왠지 모를 이끌림이 느껴지는 저 건물이 아르케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신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챌  있었고, 그런 그의 예상이 맞아떨어지기라도 하듯 릴리나는 일행을 이끌고  나무가 솟아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와.  어머니 나무만 아니었어도 세상에 저런 나무도 있구나! 하면서 놀랐을 텐데."
"저 나무 하나만 베어도 우리 부족이 겨우내 쓸 땔감이 나오겠는데."
"저건 성목 알케라실이예요. 정착 초기에 합류한 드라이어드분들이 여신님을 위해 심어준 성스러운 나무죠."
"망구다이 들었지? 성목이래. 저런 걸 베어다가 땔감으로 쓸 생각을 하다니 다른 엘프가 들었다간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말이라고."

링메인이 망구다이에게 질책 어린 잔소리를 했고, 그는 멋쩍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게 거대한 성목이 솟아있는 신전을 지나자 알싸한 약 냄새가 풍겨오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무 넝쿨과 잎으로 짜인 천장으로 덮여있는 제법 넓은 부지에는 환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누워있는 나뭇잎 침상들로 가득했고, 그런 침상들을 오가며 환자들에게 약을 먹이거나 신전에서 나온 듯 보이는 이들이 신성력을 사용해 치료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침상들 너머에 있는 건물에서는 무언가를 끓이는 것인지 연기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는데 주변을 가득 메운 약 냄새는 아무래도 저 건물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어라? 칼스! 여기는 어쩐 일이야? 어디 아픈 데라도 있어?"
"레일라! 아뇨. 어디 아픈 건 아니고 엘기간테의 의약방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찾아와봤어요. 레일라도 여기서 환자들을 돌보시나 봐요?"
"응. 여신님을 믿고 따르는 사제들은 다들 이 의약방에 환자들을 돌보러 나오곤 하거든. 아픈 건 아니라니까 다행이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아무래도 며칠 자리를 비운 사이 일이 쌓이는 바람에 힘들 거 같네."
"네. 레일라도 저희와 숲을 오가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후후. 걱정해 주는 거야? 고마워."

그렇게 레일라는 다시 다른 환자들을 돌보러 갔고, 칼스는 마치 한국의 건강원 건물처럼 약 냄새를 풍겨대는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약이라는 귀한 물품을 다루는 곳이라서 그런지 건물 입구를 지키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칼스를 멈춰세우고는 방문 목적을 물었다.

"거기 인간! 무슨 일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지? 아픈 곳이 있다면 앞의 빈 침상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도록."
"아. 저는 의약방의 쿠엘토 장로님을 만나 뵈러 온 거예요."
"장로님을?"
"네. 여왕님의 손님으로 초대받은 칼스가 찾아왔다고 하면 아실 거예요."
"아! 당신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여왕의 손님 자격으로 찾아왔다는 칼스의 말에 사무적인 태도에서 좀  친절한 모습으로 변모한 엘프들 중 하나가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곧 장로님이 허락하셨다는 말을 하며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건물 안쪽은 그야말로 전쟁통을 방불케했는데, 엘프와 픽시 그리고 드라이어드들이 뭔지 모를 약초가 담긴 바구니들을 들고 정신없이 오가고 있었고, 냄새가 가장 짙게 풍겨 나오는 곳에서는 점심시간에 보았던 쿠엘토장로가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모양새였다.


"백년초풀은 가지러 간 거 맞아? 달빛 이슬과 성목의 수액도 넉넉하게 챙겨오라고 해! 불정령을 다루는 이들은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 관리해 주고."
"저기... 쿠엘토장로님? 바쁘신가요?"
"누구? 아! 칼스인가? 뭐 아직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것은 아니라 이야기 정도는 나눌  있을 걸세. 켈린! 잠시 나는 손님과 이야기  나눌 테니 뭐하나 빠트리지 말고 준비해놓거라."
"네! 스승님!"


쿠엘토는 쭈볏거리며 서있는 칼스를 보더니 자신의 제자인  보이는 드라이어드에게 일을 맡기곤, 그들을 이끌고 의약방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그의 집무실로 데려갔다. 쿠엘토가 머무는 개인 공간 내에도 그 종류와 효능을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많은 약물들이 놓여있었다.

"조금 정신이 없었지? 자네가 가져다준 생명의 꿀 덕분에 엘릭서 생산을 시작할  있게 되어 준비작업에 한창이었지."
"그렇군요. 저는 혹시나 바쁘신데 방해를 드린 건 아닌가 싶어서요."
"뭐. 엘릭서 제조를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다 준비하려면 며칠은 걸릴 테니 그때까지는 여유가 있는 편이야. 아무래도 미리 구비해둘  없는 재료들이  가지 존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이렇게 빨리 이곳에 방문해 줄 줄은 몰랐군,"
"하하. 아무래도 신비의 묘약이라고 불리는 엘릭서를 만드는 곳이 어떤 장소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부탁드릴 것도 하나 있어서요."
"부탁? 아. 꿀의 거래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 부분이라면 얼마든지 사들일 수 있지."
"꿀 판매도 판매인데. 사실은..."


칼스는 조금 전 하늘 의회에서 보았던 인원들 중에 자신들에게 가장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던 쿠엘토에게 허니 상단의 지점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려 했다. 당장 여유가 없어 인원을 파견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해 둬야 나중에 편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만들어진 상단이라 당장엔 인원에 여유가 없긴 한데 언젠가 이곳에도 지점을 하나 둬야 할 거 같아서요."
"굳이 여기까지 사람을 파견해야 하나? 이곳에서 일할 이를 구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에... 이곳 분들이 제 상단에서 일을 하려고 할까요?"
"중앙청의 셀트란 장로를 찾아가 보게. 요새 어린아이들 사이에 인간들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그들이 셀트란 장로에게 자꾸만  밖으로 나가보고 싶다고 요청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더군. 그들을 고용해서 숲을 오가는 상행을 맡기면 되는 거 아니겠나."
"으음... 그렇군요. 말씀대로만 된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긴 하네요. 셀트란 장로님이라고 하셨죠? 혹시 그분도 아까 하늘 의회에서 식사를 같이 하신 분인가요?"
"안타깝게도 그 자리엔 참석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테니 내 이름을 팔면 문전 박대를 당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드려요."
"뭐 이 정도쯤이야. 아무튼 앞으로도  부탁한다는 뜻에서 선물을  안겨줘야겠군. 어디 보자. 이거는 머리 아플 때 좋은 약이고..."

그렇게 쿠엘토는 의약방에서 만든 약들 중에 인간에게도 효과를 보이는 몇 가지 약들을 칼스에게 선물로 주었고, 칼스는 그런 그에게 몇 가지 쉽게 접할  있는 약초들의 모양과  효능에 대한 설명까지 듣고 나서야 의약방을 나설 수 있었다.


어느덧 슬슬 저녁시간이 다가올 시점이었기에 중앙청을 방문하는 것은 다음날로 미루기로 마음먹은 그는 다시금 거대한 어머니의 나무에 위치한 하늘궁전으로 되돌아갔다.

방으로 되돌아온 칼스는 아직 저녁식사 준비가 되려면 시간이 남았기에 급한 용무부터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링메인과 릴리나가 머무는 방으로 찾아갔다.


- 똑똑


"저. 칼스인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음? 잠깐만. 릴리나씨 괜찮죠?"
"네. 저는 상관없어요."
"응! 들어와."


칼스의 방문에 무슨 일이냐는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링메인에게 잠시 릴리나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말하자.


음흉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자신은 망구다이에게 가있을 테니 끝나면 부르라는 말을 하곤 방을 나가버렸다. 그렇게 단둘만이 방안에 남게 되자 릴리나는 칼스가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저와 나눠야 할 이야기가 뭔가요 칼스?"
"아까 쿠엘토 장로님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해봤는데요. 아무래도 엘프분들이 다른 인간들에 비해 신뢰를 가져도 되는 이들이라고 해도,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일을 맡기는  부담스러워서요. 혹시 릴리나는 제가 만든 상단에서 일해볼 생각 없어요?"
"허니상단이요?"
"네."

칼스의 제안이 뜻밖이었던 것인지 릴리나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음... 사실 저도 쿠엘토장로님이 말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궁금해하던 이들 중에 하나였지요. 그래서 성년이 되고서 숲 밖에서 지내고 있는 동족들과의 연락을 주고받는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인간들을 만났답니다. 그중에는 동족들처럼 친절한 분들도 계셨고, 겉으로는 친절을 가장한 채 저를 이용해먹으려 한 인간들도 있었죠. 그렇게 몇 년을 돌아다니다 보니 인간에 대한 호기심은 이제 없어져 버린 지 오래예요."
"그렇군요."
"칼스 당신에 대해서는 조금 호기심이 남아있긴 하죠. 여태 제가 봐온 인간들 중에 가장 특이한 인간이거든요. 다만. 단순히 돈을 버는 일에 제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네요."
"저는 허니 상단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아니에요. 상단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에올론마을 주변을 대륙의 어느 누구든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멋진 곳으로 만들고 싶거든요. 그리고 그곳은 인간뿐 아니라 다른 여러 종족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요. 그 과정에 릴리나가 함께해 준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릴리나는 칼스의 말에 맑은 녹색의 눈으로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칼스의 모습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떤 확신에 차있는 모습이었고, 그런 그라면 방금 전 말한 말도 안 되는 일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좋아요. 그런 거라면 기꺼이 저도 칼스를 위해 도움을 주도록 할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