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아르덴 대삼림 그리고 엘프왕국 (51/65)



〈 51화 〉아르덴 대삼림 그리고 엘프왕국


릴리나의 합류는 칼스에게 큰 힘이 되는 일이었기에 그녀의 승낙이 떨어지자 곧바로 구체적인 계약사항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릴리나. 정말 고마워요. 그럼 몇 년 정도의 계약으로 할까요?"
"으음... 기간은 상관없어요. 굳이 정하자면 아까 말한 칼스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상단이 운영되는 것 같다고 생각될 때까지면 될 거 같네요."
"하하하. 그럼 사실상 종신고용이 될 텐데 괜찮겠어요?"
"후후. 칼스가 노인이 되어도 저는 아직 한창의 나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좋습니다. 대신 급료는 섭섭하지 않게 챙겨드릴게요."


칼스는 일단 상단 내에서 가장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제레미와 동급으로 두는 것으로 하고 다른 방에서 노닥거리고 있던 망구다이와 링메인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망구다이는 릴리나의 합류에 어차피 들어올 이 가  거라는듯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링메인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의 소식에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쩝. 내심 나보고 자리를 비켜달라길래 우리 고용주께서 릴리나에게 사랑고백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그렇게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저녁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면서, 방을 관리하던 엘프들이 여왕이 머무는 본관에 위치한 식당으로 안내해 주었다. 식당에 도착하니 여왕 아옐루나를 비롯해 몇몇이 더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 칼스도 익히 잘 알고 있는 타렌의 모습도 보였다.

"어서 와요 칼스. 엘기간테 구경은 잘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다른 인간의 도시와 비교했을 때와 어떤 차이를 느꼈을지 궁금하네요."
"여왕님 덕분에 편히 휴식을 취하고 여유 있게 도시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활기찬 곳이더군요. 제가 아직 어린 나이인데다 마을을 벗어나 본 적이 별로 없어 가 본 곳이라고는 마를르영지의 주성인 마를르정도뿐인데 그곳과 비교하기엔 엘기간테의 모습이 너무 빼어난 거 같습니다."
"후후후. 고마워요. 아! 이쪽은 제 반려자인 카를로스랍니다."
"반갑군. 어린 나이임에도 우리들을 비롯한 많은 동포들을 위해 큰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다. 나는 아옐루나의 남편이자 그녀를 수호하는 장다름의 일원인 카를로스라고 한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동부왕국출신의 칼스라고 합니다."


이미 상석에 자리한  개의 좌석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부터 여왕 아옐루나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이라 생각했었기에. 칼스는 카를로스 대공을 소개하는 여왕의 말에도 크게 당황치 않고 인사를 나눌  있었다.


 후로 요리가 들어오며 본격적인 저녁식사가 시작됐고, 식사 중에 카를로스 대공과 아옐루나는 칼스와 그 주변인들과 농담거리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휴우. 정말 맛있는 식사였네요. 특히 스튜의 향이 일품이었어요."
"후후.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네요. 엘기간테에는 언제까지 머물 생각인가요?"
"음. 제가 오래 시간을 비우기는 애매해서. 모레 오전쯤에는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혹시 그 사이에 뭔가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어... 필요한 거라면 하나 있기는 한데."
"그래요? 무엇인가요."

칼스는 아옐루나에게 자신이 릴리나를 상단의 직원으로 고용했다는 것과 쿠엘토장로와 릴리나에게 들은 인간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젊은 엘프들을 몇몇 고용하기 위해 내일 오전 중앙청의 셀트란 장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 말하자 아옐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확실히. 요새 동족들 중에 많은 수가 숲 바깥으로 나가기를 원하고 있긴 하지요."
"어차피 앞으로 꿀을 비롯해 생명의 꿀과 숲의 숨결 등의 물품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엘기간테로 꽤 많은 인원들이 드나들어야 할 겁니다. 그 일을 그 엘프분들에게 맡긴다면 자연스레 동부 왕국을 드나들며 인간들의 문화를 직접 겪어볼 수 있을 테니 그들의 불만도 잦아들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엘프와 인간이 한층 더 가까운 이웃으로 자리할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제가 칼스에게 도움을  부분은 어떤 것이죠? 어차피 그들을 설득하는 건 칼스의 몫일 텐데."
"엘기간테에 허니 상단이 활용할 수 있는 부지를 내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공짜로 달라고 하는  아닙니다. 차후에 벌통을 설치해서 그곳에서 나오는 꿀과 생명의 꿀 등의 일정량을 드리겠습니다."

사실 칼스는 이런 제안을 하면서도 아옐루나가 이것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제안은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당장 그는 엘기간테내에 상단부지를 얻을 수 있는데 반해 아옐루나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언제 생산될지 모르는 미래의 가치였기 때문이었다.

칼스는 이런 부분을 감안해 만약 그녀가 곤란하다고 대답하면 그냥 상품을 보관해둘 작은 창고 정도만 빌려달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예상과는 달리 아옐루나는 그의 제안에 별다른 조건을 걸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의 의사를 밝혔다.

"그렇군요. 그 정도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역시. 그럼 작은 창고라도... 네?"
"엘기간테의 중심부에 위치한 곳이어야 하는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벌통을 놓아야 할 곳이니 픽시들이 머무는 꽃밭 근처에 자리를 마련해드릴까 했는데."
"아. 그래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내일 오전에 중앙청의 셀트란 장로를 만나러 간다고 하셨으니. 그에게 제가 미리 이야기를 전해두겠습니다.  정도면 숲의 숨결과 생명의 꿀을 선물받은 값은 충분히 치른 거 같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 그럼 식사도 다 끝난 것 같으니 엘기간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맞이하러 가실까요?"

아옐루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어리둥절해하는 칼스와 일행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여왕이 그들을 데리고 간 곳은 바로 하늘궁전의 3층에 설치된 거대한 발코니였는데 주변이  트인 전경을 바라보는 칼스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휘둥그레져있었다.

"우와! 이게 대체..."
"멋지죠? 이곳 하늘궁전의 테라스에서만  수 있는 엘기간테의 야경입니다."
"와아.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정도일 줄이야."
"비현실적인 모습이군요."

엘기간테의 중심에 위치한 어머니의 나무는 밤이 되면 은은한 빛을 내었고,  어머니 나무 주변에 잠들어있던 수많은 정령들이 각양각색의 빛을 내며 엘기간테의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낮에는 정령들이 모두 잠들어있다가 저녁이 되어 어머니 나무가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하면 저렇게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죠."
"그렇군요. 근데 어머니 나무는 어째서 저녁에 저렇게 빛을 내며 마력을 뿜어내는 건가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많은 이들이 어머니 나무의 마력 방출 현상에 대해 연구했지만 딱히 이렇다  성과를 내지는 못했거든요. 지금은 그저 여신님이 내려준 기적 중 하나라고 여기며 살아갈 뿐이에요."
"여신님이 내려준 기적이라. 확실히  장면만 본다면 그보다 더 어울리는 명칭은 없을 거 같네요."

특정한 모습을 갖추지 않은 정령들은 자유로이 엘기간테의 하늘을 날아다녔고, 그중 일부는 하늘궁전 테라스까지 다가와 칼스의 주변을 맴돌고 가기도 했다.

칼스는 그렇게 다가온 정령들을 손으로 만져보려 했으나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그의 손을 피해 달아나버렸고, 그런 모습을 본 일행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발코니 위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저녁식사 자리는 끝을 맺었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엘기간테의 하루는 여느 도시들보다 조금 빠르게 시작되었는데,  이유는 바로 엘기간테의 주민 중 절반 이상인 엘프들이 매일 해뜰녘이 되면 집 밖으로 나와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칼스 역시 평소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시작했다. 어제 숲속을 통과해 엘기간테까지 이동하고 오후 내내 도시 안을 걸어 다녔음에도 큰 피로감 없이 개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저 커다란 나무에서 뿜어내는 산소와 피톤치드의 영향인 거 같긴 한데. 정말 개운하긴 하네."

지구에서 배운 기초적인 지식에 기대어 개운한  상태의 원인을 찾던 칼스는 이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냥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만끽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침 운동을 마치고 방에 준비된 물로 간단히 땀을 씻어낸 칼스는 일행들과 아침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엘기간테의 2일차 일정을 시작했다.


"중앙청은 보통 언제쯤에 열리나요?"
"보통은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업무를 시작하니까 조금 있으면 개방될 거예요. 단 장로님은 언제쯤 업무를 시작하실지 모르지만요."
"흠... 그럼 아침 운동 삼아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방문하는 걸로 해야겠군요."

이제 막 해가 떠오른 이른 시간이었기에 일단 하늘궁전을 벗어나 엘기간테의 거리를 구경 다녀보기로 했다. 아침의 거리는 인간들의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는데, 다들 자신이 일해야 하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중 일부는 밤새 활동을 했는지 연신 하품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린 수인족과 엘프들은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웃음을 터트리며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고, 드라이어드와 픽시들이 자신들이 가꾸는 꽃과 나무에 물을 주는 모습도   있었다. 그런 평화로운 모습을 한참 구경하던 칼스는 엘기간테의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있다는 중앙청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기간테의 중앙청은 어머니나무 정면 광장에서 뻗어나가는 큰길을따라 남쪽으로 조금더 내려간 위치해 존재했는데, 원래는 처음 이곳에 엘프들이 정착했을시절 여왕이 머물던 거처였다. 그러다가 하늘궁전이 완성되면서 여왕의 거처가 옮겨지고나서, 그때까지 여왕의 궁전에서 함께 진행됐던 여러가지 정치적 기능만을 남겨둔것이 바로 지금의 중앙청이었다.


- 웅성웅성


"여기는 아침부터 북적거리네요."
"엘기간테의 모든 일이 이쪽에서 시작되거든요. 마땅히 할일이 없는 주민들의경우 이곳에서 해야할일을 분배받기도 하니 매일 이렇게 장사진을 이루죠."
"자! 동부 화재피해지역 복구작업에 참여할 인원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남부 습지대 인접지역에 침입한 자든족들이 있다고 하니 그쪽으로 가는분들은 이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칼스가 시끌벅적한 중앙청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오니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이들사이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뭔가를 살펴보고 있는 엘프들이 보여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기. 실례합니다."
"음? 인간이 중앙청에는 무슨일로 방문한거지? 연금공방을 찾아온거라면 여기가 아니니 좀더 남쪽으로 내려가보도록 해."
"아뇨. 저는 이번에 여왕님의 초대를 받아 엘기간테에 온 칼스라고합니다. 쿠엘토 장로님의 소개로 셀트란 장로님을 만나뵈러왔는데요."
"아! 당신이 그 인간이군. 셀트란 장로님과는 미리 약속이 되어있는건가?"
"아뇨. 따로 약속은 잡지못했는데요."
"음... 그럼 일단 장로님께 연락은 넣어보겠지만 다른 일이 바쁘시면 만나뵙지 못할수도 있으니 그렇게 알고있도록."


 엘프는 칼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옆자리의 다른이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안쪽으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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