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면 (58/65)



〈 58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면

칼스는 며칠 전 확보한 성수를 가지고 숲의 숨결을 만들던 도중 자신의 부탁을 받아 마를르성으로 향했던 제레미가 낯선 이들을 이끌고 마을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증류 작업을 잭에게 맡기곤 상단 건물로 돌아왔다.

고든과 그의 가족들을 상단의 식당 겸 회의실에 앉혀두고 칼스의 집무실 앞에서 기다리던 제레미는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상단주님 오셨습니까."
"제레미. 저 때문에 괜한 고생을 한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다행히 상단주께서 바라던 인물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렌튼백작가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은퇴한 고든이라는 사람인데 문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직접 요리를 전담하긴 힘들어 보이더군요. 다만  손녀딸이 그의 요리를 배우고 있는 거 같아 함께 데리고 왔습니다."
"직접 요리를 하기 힘들다니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나요?"
"그의 말로는 나이가 들어 손에 힘이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일반적인 요리는 가능하지만 귀족들이 먹고 즐길만한 요리를 할 정도의 세심한 손놀림이 불가능한 거 같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그 손녀딸이 요리를 배우고 있었고, 그의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지금 그들은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
"네."
"그럼 바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사람은 곧바로 건물 1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먼 길을 오느라 조금은 피로해 보이는 노인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속닥거리는  남매를   있었다.

"갑작스럽게 먼 길을 오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제가  허니 상단의 상단주인 칼스라고 합니다."

고든은 당장 먹고  길이 막막한 상황에 제레미를 따라나서긴 했으나 자신을 고용할 상단주가 이렇게 어린아이일 줄 몰랐는지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다 어느새 표정을 고치고는 칼스가 내민 손을 맞잡고 흔들며 인사했다.

"허. 상단주가 어리다기에 적어도  아들 또래는 되었을  알았는데 막내 손주와 비슷한 연배시구려. 반갑소 고든이라고 하오."
"이곳까지 발걸음을 하셨다는 건 저희와 함께 일을 하겠다는 의사가 있다고 봐도 괜찮겠습니까?"
"저기 제레미라는 청년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 늙어서 제 뜻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뚱이라도 쓸 의향이 있다면 기꺼이 함께하겠소. 자랑같이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여기 내 손녀딸 셀레나가 어지간한 귀족가 주방의 요리사들 보다도 솜씨가 좋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게요."

고든의 말에 동생 레임스와 가만히 앉아있던 셀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칼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인사했고, 칼스는 그런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며   세밀한 계약 내용을 정리해나갔다.

그 결과 고든은 일종의 자문 역할을 하며 주방 전반에 대한 관리를 맡기로 했고, 지금까지 주방을 담당하고 있던 이들과 셀레나에게 요리 지식을 전수해 주기로 했다. 그 대신 칼스는 고든과 그 손주들이 머물 집을 지어주고 넉넉한 임금을 약속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요리 외에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평생을 조리실에서 살아온 나에게 요리 외에 부탁이 있다니 그게 무엇인가."
"제가 지금 구상 중인 몇 가지 요리들이 있는데 그것을 좀 고급스러운 요리가 되게끔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궁금한 점 하나가 있었네.  봐도 이 시골마을에 귀족들을 대상으로 할만한 요리가 필요할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굳이  같은 이를 찾았던 이유가 있는가."

고든의 질문에 칼스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곧바로 답변을 내놓았다.

"그건.  꿈이 이 마을을 대륙의 그 누구라도 한 번쯤 찾고 싶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는 것도 다 그 일환인 것이죠."
"그런가. 하긴 상단주정도의 나이면 한참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 나이이긴 하지. 그 꿈을 이뤄가는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있다면 이 낡은 지식 하나 보태는 게 어렵겠는가."
"감사합니다. 일단 오늘은  길 오시느라 힘들었을 텐데 쉬시지요."

칼스는 고든과 그의 가족들을 제레미에게 맡겨두고, 지금까지 식당에서 고생해온 메릴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혹시나 자신이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눈초리였는데 오히려 수십 년간 귀족가의 요리사로 일했던 이에게 정식으로 요리를 배울 수 있게 됐다는 말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든과 그의 손녀 셀레나의 합류로 인한 변화는 당장 그날 저녁 식사때부터 나타났는데, 평소에 접했던 평범한 가정식 음식 외에  가지 새로운 메뉴들이 식탁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우와. 이건 대체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거지?"
"맛있어! 대단하잖아?"
"대단하네요. 남은 음식이 있으면 집에 좀 싸가고 싶어질 정도예요."
"요리는 넉넉하게 준비했으니 조금 빼두도록 하겠네. 사실 내가 더 놀랐다네 이 시골마을 주방에 백작가에서도 보기 힘든 향료가 넉넉하게 구비되어 있었다니 말이야. 그 덕에 오랜만에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해볼 수 있었지."
"밀가루의 질은  아쉬웠지만. 꿀과 치즈가 넉넉한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조금만 손보면 정말 맛있는 빵들을 구워낼  있을 거 같아요."
"하하. 이거 이제 다들 집에 안 가고 삼시 세끼를 이곳에서 해결하려 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확실한 건 이제 여러분이 없는 주방은 상상도 할  없게 됐다는 거겠지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앞세워 기존 직원들에게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으며 허니 상단에 합류한 고든과 셀레나는 다음날부터 칼스와 함께 새로운 메뉴를 만들 준비에 착수했다.

"에올론 마을에서의 첫날밤은 잘 보내셨습니까. 여러모로 작은 마을이라 불편한 점이 많았을 텐데요.
"이 마을로 오는 길에 제레미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네. 사실 믿기 힘든 내용이기는 했지만 오늘 아침에 본 엄청난 수의 벌통과 벌들을 보니 이제서야 실감이 되더군."
"게다가 엘프랑 드라이어드도 직원으로 일하고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어요! 마을 밖에는 픽시들이 가꾼 꽃밭도 있다고 하던데 꼭 한번 구경 가보고 싶어요."

 하루였으나 에올론마을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매력을 알아본 두 조손은 아직은 자그마한  마을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적극적인 자세로 칼스의 말을 경청했다.

"제가 원하는 음식은 바로 귀족 아가씨들의 입맛을 사로잡을만한 간식이에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마을에는 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지니고 있죠."
"하긴. 달콤한 것을 싫어하는 아가씨들은 보기 힘들지."
"맞아요. 그 달콤한 맛은  옳으니까요. 안 그래도 어제 주방에 비치된 꿀을 보면서 그걸 가지고 뭘 만들어볼까 고민을 했었거든요. 밀가루의 상태를 보고 뒤로 미뤘지만 말이죠."
"음. 확실히 귀족들이 먹고 즐길만한 밑재료로는 부족한 게 사실이야. 자네가 모를 수도 있는 부분이니 설명하자면 밀가루는 거의 대부분의 음식에 들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밑재료일세. 그만큼 그 맛을 좌우하는 재료의 질이 중요하지. 현재 이곳에서 사용하는 밀가루는 너무 거칠다는 게 문제일세. 아무래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을 늘리려다 보니 깎아내야 할 부분이 남아서 그런 걸 거야."
"그럼 마을 제분소에 이야기를  해놔야겠군요. 적어도 귀족들을 타깃으로 한 요리를 만들 때 쓰는 재료만이라도 일단 최상질의 밀가루를 사용해야겠습니다."

입맛이 그다지 까다로운 편은 아닌 칼스였기에 지금 사용하는 밀가루로 만든 빵들도 충분히 먹을만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귀족들의 취향을 따르기 위해선 개선이 필요하다 여겼기에 곧바로 그 부분은 반영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지구에서 젊은 여성에게 가장  인기를 누렸던  가지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건 바로 고르곤졸라 피자였다.

"얇은 밀가루 반죽 위에 꿀을 바르고 치즈를 얹어 구워내는 요리라."
"네. 이런 둥근 파이 형태로 만들되  위에 올리는 소스를 꿀과 치즈로 만드는 거죠."
"흠...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 문제는 어떤 치즈를 사용하느냐인데."
"일단 마을에서 만드는 치즈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한번 활용해보시면 어떨까 싶군요."
"저는 일단 찬성이에요. 그냥 그 둘만 쓰면  맛이 밍밍할 테니 적당한 향을 낼 허브들도 얹어주면 될 거 같아요."
"그럼 그 피자는 셀레나 네가 한번 만들어보려무나."
"그래도 될까요?"
"요리연구에 대한건 일임하기로 했으니 제 눈치를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맛있는 음식만 만들어주시면 되거든요."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 외에도 꿀과 치즈 그리고 마을의 소와 양을 잡아 만든 고기로 만든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조손을 보며 제법 괜찮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기 시작한 칼스였다. 그와 동시에 이제 막 건물의 터를 잡는 작업에 한창인 마을밖에 짓고 있는 새로운 건물을 떠올리며, 한동안은 제법  지출이 이어질  같아 한숨을 내쉬는 그였다.

'정말로 엘기간테 와의 교역이 불가능했으면 이렇게 일을 벌일 수도 없었겠네. 거기에 픽시들 덕분에  늘어난  생산량도 한몫 해주긴 했고.'

에올론 마을에 와서 며칠을 머무르며 그녀를 따라 이곳에 온 이종족 직원들의 적응을 돕던 릴리나는 어느 정도 그들이 이곳 일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금 엘기간테로 되돌아갔다.

그런 그녀에게 칼스는 여윳돈의 절반 이상을 건네주었기에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엘기간테에서만 구할 수 있는 향료들을 더 공급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물론 칼스 역시 새로운 자금줄이 될 위스키와 우연하게 만들어진 숲의 숨결의 물량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나 그 양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당장에 큰돈을 벌어줄 것은 결국 향료와 꿀이 전부였다.

허니 상단의 주방에 고든 조손이 합류한지  달여가 흐르고 그동안 칼스는 고든 그리고 셀레나와 머리를 맞대어 지구에서 맛보았던 고르곤졸라 피자와 비슷한 맛을 내는 요리를 개발해내는데 성공했다.

소젖이 아닌 양젖을 발효해 만든 치즈로 만든 피자엔 에올론피자라는 명칭을 붙였고,  외에도 에올론 마을과 엘기간테에서 나오는 재료를 활용한 요리 몇 가지를 더 만들어낼 수 있었다.

"흠. 이 정도면 오랜 기간은 아니더라도 하루 이틀 정도는 충분히 이곳만의 음식으로 근사한 식사를 대접할 수 있을 거 같구려."
"간식은 그 어느 곳보다도 다양한 종류를 구비할 수 있어요. 꿀과 각종 과일을 활용할 수 있다는  엄청난 메리트네요."
"문제는 이에 걸맞은 음료가 부족하다는 건데..."
"술도 다 우리가 만든 것으로 채워 넣고 싶지만. 당장은 힘든 부분이니 괜찮은 와인들을 사들여와야겠지요. 거기에 벌꿀주를 곁들여 내어주면 충분할 겁니다."
"음식과 술이 모두 준비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부족하지 않은가. 바로 이 음식과 술을 마시고 기꺼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줄 귀족들 말일세."

고든의 걱정 어린 말대로 아무리 그들이 요리와 음료를 준비한들 그것을 소비해 줄 부유층 귀족들이 방문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걱정에도 괜찮다는듯한 표정을 한 칼스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볼 테니.  사람은 요리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힘써주세요."
"알겠네."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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