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요정의 집 전격 개장 (64/65)



〈 64화 〉요정의 집 전격 개장

"세상에... 정말 멋지구나."
"그러게요 언니. 나무가 어쩜 저렇게 건물과  어울리게 자라날 수 있는 거죠?"
"어머나! 저기 벽에 피어있는 꽃들 좀 봐요!"

칼스는 자신의 뒤편에서 들려오는 감탄사의 향연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저택에 대한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이 앞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요정의 집]이라고 이름 붙인 저택입니다. 기초적인 공사는 마를르성에서 초대한 장인들의 솜씨로 이뤄졌고, 건물의 외벽을 따라 자라난 나무와 넝쿨식물들은 엘프 왕국의 여왕님이 살고 있는 하늘궁전의 가구와 내부 자재를 만드는 분들이 직접 찾아와 작업을 해주셨습니다."

건물 내부의 장식과 가구를 손보러 왔던 이케라와 프리츠는 내부에 비해 건물 외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건물 외벽의 장식까지 해주었다.

특히 저택의 정문 양옆으로 자라난 커다란 나무는 프리츠가 드라이어드들의 비술을 사용해 급속 성장시킨 것으로 마치 건물의 기둥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의 외벽은 덩굴로 뒤덮여있었는데, 그 덩굴 중간중간에 피어난 꽃들 덕에 정말 요정들이 사는 집과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하늘궁전?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구나. 밤이면 정령들이 빛을 뿜는 모습이 그야말로 절경이라고 하던데 정밀이던가?"
"제가 직접 가봤는데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아 맞다! 칼스 너 엘프 여왕의 초대를 받아서 엘기간테에 갔었다고 했지?"
"그게 정말이니 엘레노아?"
"네. 어머니. 작년에 우연히 아르덴 숲의 엘프들을 도울 일이 있었는데, 그 보답으로 초대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엘레노아의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칼스에게 집중되었고, 그는 그런  여인들의 시선에 약간 무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냥 제가 가지고 있던 꿀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해서 좀 나눠준거 뿐이었어요. 뭐  덕분에 이렇게 멋진 저택을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릴 수 있게 됐지만요."
"점점  기대가 되는구나."

커다란 나무 기둥사이로 열린 문을 통해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채광 창들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따스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연회장의 모습이었다. 정갈하게 세팅된 테이블의 앞에는 하얀색 가운을 입고 서있는 고든이 있었고, 칼스는 그런 그를 소개해 주었다.

고든은 그녀들에게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는 곧바로 식사를 내오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고, 그런 그의 뒤를 따르는 몇몇 사용인들이 있었는데 아마 남작가의 여인들에게 제공될 음식에 뭔가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위함인 듯 보였다.

"세상에! 이 테이블 에보니로 만들어진 거잖아?"
"에보니라면. 흑단목을 말하는 건가요. 헨리에타?"
"네. 처음엔 그냥 검은색 칠을 한 삼나무일 거라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통짜 에보니로 만들어진 테이블이네요.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멋진 물건을 이런 작은 마을에서 보게 될 줄이야."

루엠상단의 총수이자 재무관인 크리스티안 루엠의 사촌동생인 헨리에타는 연회장에 놓여있는 흑단목 테이블을 만져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보니라 불리는 흑단목은 대륙의 남부지역에서 나는 특이한 나무로 겉껍질은 일반적인 나무처럼 갈색을 띠지만 그 안을 파보면 검은빛을 내는 단단한 속살로 채워져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빛깔이 매우 고급스러운데다 다른 나무에 비할  없을 만큼 튼튼했기에 최고의 목재로 손꼽혔다. 적어도 이 정도 크기의 테이블을 만들 정도의 흑단목이면 금화로 그 가치를 헤아려야  정도였다.

"이것 역시 프리츠라 불리는 드라이어드 장인분께서 만들어주신 겁니다. 테이블 위의 향초는 엘기간테에서 가져온 것으로 심신을 평안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요."
"오호..."

칼스가 연회장 내에 설치된 여러 가지 가구들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는 사이, 주방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음식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점심으로 준비된 음식은 엘기간테에서 기른 버섯을 활용해 만든 크림 파스타와 신선한 채소와 과일에 엘프들의 특제 드레싱과 꿀을 얹은 샐러드였다. 그리고 음료로는  가지 생과일을 갈아만든 주스와 도수가 낮은 와인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곳 요정의 집에서 사용하는 버섯과 채소들은 모두 아르덴 숲에서 가져온 것들이며, 여타 다른 재료들 역시 최고의 품질로 만들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시느라 점심 식사도 아직 못하셨을 텐데. 비록 보잘것없지만 정성껏 준비했으니 부디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래는 주방장인 고든이 해야  설명이었으나, 실제로 요정의 집에서 제공하는 음식 메뉴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칼스가  것이었기에 그가 직접 테이블을 오가며 요리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어머. 색이 특이해서 어떤 맛이 날까 궁금했는데, 엄청 고소하네?"
"하얀색이 감도는  우유와 버터를 이용해 만든 크림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샐러드는 또 어떻고.  드레싱은 따로 얻을 방법이 없을까? 성에 가서도 가끔씩 생각날  같은데."
"사람을 주방에 보내시면 따로 챙겨드리겠습니다."

애초에 허기를 면하게 하기 위한 가벼운 식사 자리였기에 금방 끝이 났지만 준비한 음식에 대한 반응은 제법 괜찮아 보였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칼스는 마를르남작가의 여인들에게 각각의 객실을 안내해 주었다. 첫째 부인 마가렛을 시작으로 차례대로 한 명씩 안내를 하다 보니 어느덧 막내이자 칼스의 약혼녀인 엘레노아만이 남게 되었다.

칼스는 싱글벙글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이끌고 그녀가 머물게 될 방으로 안내했고, 식사시간에 이미 에밀이 먼저 다녀갔는지 방에는 그녀의 물품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 와락!

"보고 싶었어 칼스. 정말 힘들었다구."
"으아앗?!"

객실에 단둘이 남게 되자마자 급작스럽게 자신을 끌어안는 엘레노아의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부드러운 그녀의 품에 안기게 된 칼스는 어느덧 자신과 키가 비슷해져 버린 그녀의 등을 가볍게 쓸어주며 말했다.

"나도 보고 싶었어요. 엘레노아."

잠시 그렇게 그를 끌어안고 있던 엘레노아는 누군가 객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졌는지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잠시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엘레노아의 직속 하녀인 에밀리아였다. 그녀는 어색하게 떨어져 있는 두 사람과 붉게 달아올라있는 엘레노아의 얼굴을 보더니 한숨을 폭 내쉬곤 입을 열었다.

"제가 방해를 한 거 같은데. 조금 있다가 돌아오면 될까요?
"아냐아냐!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그나저나 칼스 그 사이에 또 훌쩍 키가 자랐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나보다  커질 거 같은데."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던데."
"으음... 확실해. 그땐 내가 살짝 내려다봐야 했는데, 지금은 시선이 딱 맞는걸. 이러다가 나중엔 옆에 나란히 서면 어린애처럼 보이게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아가씨의 말대로 확실히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자란  같군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아가씨는 키가 아닌 다른 부분이 꾸준히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에밀!!"

약간은 짓궂은 에밀의 농담에 엘레노아가 빼액 소리쳤고, 칼스는 자기도 모르게 엘레노아의 몸에서 가장 도드라진 부위를 쳐다보다가 얼른 화제를 돌려버렸다.

"흠흠. 그나저나 수도에서의 수련은 잘 되어가고 있나요?"
"우우... 너무 힘들어서 하마터면 포기할뻔했다니까? 본격적으로 기사 수행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스승님께 말씀드렸더니 아주 그냥  잡아먹어서 난리야. 내년 초까지 열심히 하면 추천장을 써주신다고 했으니 그때까진 꾹 참고 견뎌야지 뭐."
"기사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몸조심 해야 하는 거 알죠?"

자신을 걱정해 주는 칼스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배시시 웃음 지어 보이는 엘레노아였다.

"자. 이곳 요정의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을 소개해 줄 테니 이쪽으로 와봐요."
"응? 그런 곳이 있어?"
"네. 객실마다 마련된 발코니에서 보이는 풍경이야말로 이 저택을 지은 이유니까요."
"아아! 아까 저도 짐 정리를 하다가 한참 동안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정말 최고였어요."

칼스의 말에 응접실을 지나 침실과 연결되어 있는 발코니로 발걸음을 옮긴 엘레노아는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발코니에선 픽시들의 꽃밭과 아르덴 대삼림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심지어 발코니 난간에도 꽃이 핀 덩굴이 휘감겨 있었다. 멍하니 서있는 그녀의 눈앞에 자그마한 픽시 하나가 나타나더니 칼스에게 인사했다.

[어? 칼스다! 안녕?]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는구나?"
[응! 이 주변에는 멋진 꽃들이 많아서 할 일이 많거든. 아 참! 저번에 준 꿀은 맛있게 먹었어!]
"그래?  됐네. 나중에 또 도움이 필요하면 부를게."
[얼마든지! 옆에 있는 인간들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안녕?]
"어어.. 안녕?"
[수줍음이 많은 인간이구나! 앗! 홀라홀라한테 혼나겠다. 먼저 갈게!]

픽시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엘레노아와 에밀을 바라보던 칼스는 발코니 난간에 몸을 기대어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꽃내음을 맡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멋진 저택이지?"
"응. 그런 거 같아."

각각의 객실에 설치된 발코니에는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술이나 차를 마실  있도록 작은 간이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었다. 엘레노아와 칼스뿐만 아니라 다른 객실에 머물고 있는 이들 역시 이 요정의 집에서 가장 멋진 장소가 발코니인 것을 알아챘는지 여기저기서 탄성과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에올론 마을 인근에 자리 잡은 픽시들의 수는 어느덧 세 자릿수에 가까워졌는데, 그들은 마치 칼스가 키우는 벌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우와! 사실 네가 마을 근처에 픽시들이 자리 잡았다고 말했을 땐 그저  명 정도가 온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여기서 내려다보니 그게 아니었네."
"처음에는  남짓한 개체 수였는데, 꽃밭이 점점 넓어지는가 싶더니 픽시들의 수도 계속 불어나더라고요."
"헤에... 그럼 픽시들의 마을은 저 꽃밭 안에 있는 건가?"
"뭔가 마법적인 힘으로 숨겨둔 건지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근데 제가 가져다주는 꿀을  꽃밭으로 가져가는 걸 보면 그쪽에 있긴 한  같아요."
"하긴. 쟤들 반쯤은 정령에 가까운 존재였지?"

인간과 비슷한 모습에 대화까지 통하다 보니 가끔 픽시들을 일반적인 생명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데, 픽시는 엄연히 꽃의 기운이 응집되어 탄생한 정령에 가까운 존재였다. 수백 년 전에는 인간들이 모여사는  근처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존재였다고 하지만. 솔라 제국의 만행으로 인해 대륙의 픽시들은 대부분 울창한 숲과 같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었기에 좀처럼 접할 일이 없게 되었다.

"어라? 저기 마을 아이들이 꽃밭에 들어가는데 상관없는 거야?"
"네. 이곳에 자리 잡은 픽시들은 사람들을 크게 경계하지 않게 됐거든요. 아까도 봤듯 처음 보는 사람이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고 자기  일을 하더라고요.  꽃밭을 망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그래? 나도 가까이서 구경해보고 싶은데."

엘레노아는 방금 전 자신에게 인사를 하며 날아갔던 픽시의 모습을 떠올리며 칼스에게 말했고, 그는 그녀의 부탁에 안 그래도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픽시들이 가꾼 꽃밭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음을 밝혔다.

"엘레노아야 워낙 튼튼하니까 괜찮겠지만. 다른 남작부인분들은 긴 마차 이동으로 인해 피로가 쌓이셨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요. 조금만 더 있다가 다 함께 내려가는 걸로 해요."
"트... 튼튼하다니."
"기사를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 연약하다고 할 순 없잖아요. 자 그럼 저는 잠깐 다른 곳의 상황을 살피고 올테니 쉬고 있어요."

칼스는 다른 객실의 확인해야 했기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고, 그런 그의 뒤에서 뭔가 불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엘레노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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