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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134화 (134/432)

134화 - 제26장. 다시 화산혈마사(華山血魔史) (4)

천무경이 시선을 진도건과 천서은에게 돌렸다.

“비무를 통해 느끼긴 했다만, 그래도 확실하진 않으니. 너희 둘이 겨루면 누가 이길 것 같으냐?”

그의 물음에 진도건과 천서은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두의 관심이 두 사람에게 크게 쏠렸다.

한 사람은 직전의 비무대에서 천무경을 상대로 큰 인상을 남겼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천무경의 피를 이은 여걸이었다.

“하하…….”

“제가 이길걸요?”

진도건이 난감한 듯 웃자 천서은이 씩 웃으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진도건도 순순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천무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잘 알았다.”

“뭐에요, 아버지? 그 반응은? 딸의 말을 믿지 않으시나요?”

“하하하! 믿는다, 믿어.”

“아미타불, 두 소협은 그래도 흑풍신마를 상대로 싸우는 걸 직접 보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천 소저께서 흑풍신마의 힘을 많이 빼놓긴 했지만, 결국 진 건 진 거죠. 다만 그 힘 빠진 걸 진 대형이 받아서 마무리를 지었긴 했는데 역시 위태로워 완전한 승리라 보기 어렵고. 두 분이 엇비슷한 것 같은데, 그렇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현걸의 물음에 영은성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하지만, 천서은은 최현걸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를 향해 따가운 눈초리로 대하였다.

“이보세요, 최 소협?”

“네, 네?”

“힘을 빼놨다는 건 제 공격이 충분히 먹혀들어 갔다는 소리예요. 그렇죠?”

“그, 그렇죠.”

“그렇다면 제가 10년만 더 내공을 쌓았어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었다는 소리예요. 그렇지 않나요?”

“그…… 그렇게 볼 수 있죠.”

“그렇다면 그땐 ‘진 건 진 거다’라고 얘기할 게 아니라 ‘승부가 아까웠다’에 방점을 두고 얘기하는 게 맞겠죠?”

“하하, 하…….”

천서은은 멋쩍게 웃는 최현걸에게 ‘비무 한 번 더 할까요?’라고 물어보려다가 바로 옆에 홍두형이 있었기에 꾹 눌러 참았다. 최현걸도 동시에 사부가 옆에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야율균은은 이 창천맹 핵심 인사들에게 혹시 있을 불신을 조금이라도 걷어낼 겸, 천서은에게 딴지도 걸어볼 겸 그녀가 알고 있는 작은 정보를 풀어내고자 마음먹었다.

“흑풍마종. 기실 흑풍대는 사실 천마신교와 가장 거리가 먼 분파긴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흑풍신마 야율재의 무공은 구주마종 안에서도 네 번째 정도로 평가받는 거로 알고 있어요.”

“호오, 그럼 흑풍신마보다 위는 누군가?”

“차이가 얼마나 크고 적은지는 알 수 없으나 일월신마, 성혈신마, 염황신마의 무력이 구주마종 가운데서도 가장 돋보인다 들었어요. 다만 그들은 모두 나이들이 많았으니 야율재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던 거 같네요.”

“나머지는 흑풍신마보다 아래란 소리군.”

“여전히 주인이 없는 혈마종을 제외하면 구주마종 안에서도 4강으로 분류할 정도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정사 무림의 천하오절급 고수들 가운데 구주마종의 신마들과 직접 붙어본 사람은 모두 넷이었다.

섬서 화산에서 천무경이 상대한 일월신마.

하남 여남에서 강정학이 상대한 염황신마.

호북 방현에서 소요자가 상대한 광혈신마.

사천 파중(巴中)에서 당혁수가 상대한 사혈신마.

팔대마종 중에 4강4약 사이에서 각각 둘씩 상대해 본 것이었다. 그중 사천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사혈신마에 대한 정보가 적은 편이긴 했다.

“혈마종을 계속 비워 두는 건 역시 진도건 때문에 혹은 홍천환 때문이라고 보면 되오?”

“저도 천마신교의 사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진도건이 보여 주는 무공은 분명 마공의 색을 띠고 있으니 그렇게 볼 가능성도 있겠네요.”

혈마종과 관련된 정보는 대부분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혈마라는 존재를 홍천환을 통해 만들려고 했던 건 진도건에게 가해졌던 일월신마의 행위를 통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진도건의 상태가 창천맹의 입장에선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 그가 예전처럼 폭주한다면 다른 팔대신마급의 대적이 추가로 생기는 형국이 되기에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천무경은 주백자와 인연을 구축하고 있던 부맹주들로부터 화산에서 잠깐 마주쳤던 조강선의 정체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진도건의 선천진기가 조강선이 전수한 원류검결로 인해 강해져 혈마의 구속에서 벗어났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두 전설적인 존재들을 이 자리에 있는 창천맹의 세 수장이 마주치고 만났기에 망정이지 그저 구설로만 전해진 존재들에 불과했다면 그와 관련한 일련의 지난 선택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지도 몰랐다.

“도건아.”

“예.”

“며칠 맹 내에 머무르면서 구 단주가 부탁한 일을 돕거라.”

“알겠습니다.”

십수논검에 진도건을 활용하기로 의견을 낸 것은 천무경이었다. 구치상도 창무대에서의 비무를 보고 난 뒤 그 의견의 합리성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천무경이 다소 진지해진 표정으로 오늘 창천맹에 들어온 다섯 사람을 둘러보았다.

“너희 다섯은 앞으로 중요한 일을 맡아야 한다.”

“그게 무엇입니까?”

“3년 전 그 사태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도, 마교도 그때 입은 상처를 회복하고 다가올 무림 전쟁에 대비해 힘을 비축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물론 국지적인 충돌이 종종 나타나긴 했지만, 큰 흐름을 일으킬만한 건 아니었어. 그러나 최근 들어서 그런 흐름을 만들어 낼 만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천마신교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

그 가운데 가장 큰 건은 바로 녹림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는 일이었다. 녹림 조직 특성상 힘의 논리와 이권에 크게 지배되는 편인데 천마신교는 이를 휘어잡을 능력이 있었다. 만약 녹림 안에서 주태소라는 조직 논리 하에 특이한 존재가 삼문협 수상전에서 살아남지 못했다면 녹림은 결국 마교에 삼켜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 주태소를 지원하기 위해 정보 협력을 이뤄내고 낭인조직 중천을 이끄는 안효철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었기에 조기에 차단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었다.

몽골 초원과 청해에서 발발한 전쟁도 그것 중 하나였다. 다행히 서쪽으로 전선을 집중시키기 위한 선택으로 흑풍신마를 친 것이 주효하게 작동하였으니 이도 현시점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었고 서쪽 전쟁은 차차 계획을 세워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놓인 가장 큰 숙제는 사천무림의 패권 확보다.”

천무경은 말과 함께 홍두형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개방 방주이자 창천맹의 부맹주로서 모든 정보의 총책을 맡고 있다 보니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홍두형은 헛기침과 함께 설명을 시작했다.

“크흠, 흠! 잘 듣거라. 사천은 지금 군소방파들과 사천 전통의 정파 3강인 당문, 청성파, 아미파가 중심을 이뤄 마교의 견제를 버티고 있다. 3년 전 전쟁으로 마교의 구주마종이 상당 부분 피해를 보았기에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으나 작년부터 사천지역에서 분쟁이 발발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현걸아, 사천의 지역 특성을 말해 보아라.”

“으음, 당문 등이 있는 성도는 거대한 사천 분지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데 사실상 사방이 고산지대로 갇혀 있는 지세라 진입이 어렵습니다.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외에 진입할 수 있는 경로는 많지 않지요.”

“잘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사천 지역의 크기가 넓은 만큼 다른 지역과도 많이 인접하고 있지만, 실상 통할 수 있는 길은 지역당 한 곳 정도가 전부네. 그런데 알다시피 감숙은 마교의 영향력이 본토 안에서도 특히 높은 곳이고, 귀주는 염황신마가 강정학과 싸운 뒤로 후퇴했다고 알려진 지역이라 접근이 쉽지 않네. 관군이나 맹의 영향력도 잘 닿지 않고. 즉, 이곳 하남이나 섬서 지역에서 진입해야 하는데 진입로가 정해져 있어 대규모 지원을 하기엔 감시를 피할 수가 없어. 기습의 우려가 크단 얘기다.”

“산지를 뚫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초원에서만 살아 중원 사정을 잘 몰랐던 야율균은이 바로 물어보았다.

“그게 쉽지가 않네.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라 숙련되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야. 게다가 특정 지역은 산세가 보통 험한 게 아니어서 경공으로 구름을 밟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짧은 기일 안에 당도하는 건 불가능하네.”

“그 정도로 촌각을 다투는 사안인가요?”

천서은이 손을 들고 물어보자 홍두형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표정에서는 여전히 심각한 기류를 은근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니야. 그러나 저들이 계략을 꾸미고 연속적으로 무언가를 행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기류는 감지되고 있다. 일례로 광혈종은 이미 작년부터 모습을 틈틈이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직접 갈 수 있는 길목들에서 계속 놈들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는 첩보야. 이게 뭘 의미하겠느냐?”

“창천맹의 개입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사천 삼강에 대한 포위를 구축하겠다는 거군요.”

“맹주님 여식이 참으로 똑똑하시군. 바로 그거네. 그래서 우리는 사천 안으로 들어가 우리의 정보를 정파 수장들에게 공유해 줌과 동시에 안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여 줄 소수 정예가 필요하네. 염황신마나 혹은 다른 구주마종이 중원 어딘가에서 나타나 바깥으로 협공을 가할 수 있는 마당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집단을 움직일 수는 없어. 정사가 창천맹의 깃발 아래 뭉치긴 했으나 구룡문같이 거대 문파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어서 대응해야 하고, 불안요소가 한두 개가 아닌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지.”

“그게 우리입니까?”

“그렇다. 너희 개개인의 실력이 창천단과 비교해서도 충분히 발군이고 또 서로를 잘 이해하면서 나름 지휘체계도 잘 갖춰져 있는 것 같은데.”

“저흰 모두 천 소저의 명령이라면 불길 속으로도 뛰어 들어갑니다.”

최현걸이 씩 웃으며 천무경의 말에 반응했다. 그걸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천서은의 시선이 눈길을 끈 것은 덤이었다.

천무경은 진도건과 천서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협력하면 광혈신마 정도는 충분히 잡아내지 않겠느냐? 물론 각자 신마 한 사람을 맡을 정도가 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흐음!”

진도건이 무거운 책임감에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리 광혈신마가 4강보다 약체라고는 하나 그도 일대종사급일 터. 게다가 마공마다 특색이 워낙 괴이하고 강렬하여 상성 같은 것도 승부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쨌든 언제 어느 때 사태가 터질지 모르는데, 곧장 출발해야만 하는 것 아닙니까?”

영은성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조금 전 말했듯이 두 사람은 신마 한 사람씩 맡을 수 있을 만큼 역량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보름에서 한 달 정도는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집중적인 수련을 해야 할 것이고.”

“그사이에 우리는 중요한 포석을 놓아 적들의 움직임을 견제할 것입니다.”

천무경의 말이 끝나자 범굉대사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리고 오른쪽 손바닥을 펼쳐서 왼손으로 오른쪽 검지 하나를 접었다.

“첫째로 구룡문이 어디로 튈지 모르나 구룡문주 금태하는 명백한 천하오절이니 무림에 중요한 전력. 정보조직을 최대한 가동해서 그 움직임을 감시할 것.”

범굉대사가 중지를 이어 접었다.

“둘째는 중천과 안효철을 귀주로 은밀히 배치할 것. 현재 비혈단이 전력으로 염황종을 쫓고 있는데 위치가 파악되면 검림과 강정학 총수께서 움직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아직은 움직임만 감지할 뿐이지 소재지가 명확하지 않았는데 거길 특정할 수 있다면 강 대협께서는 바로 염황종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강정학과 염황신마가 어떤 격렬한 사투를 벌였는지는 강호에 소문이 파다해서 이를 알지 못하는 자가 드물 정도였다. 염황신마의 손에 강정학의 이제자 마산호가 죽고 삼제자 양자성은 행방불명, 소수 정예였던 검림 검객들도 일부가 불에 타 죽었으니 그 원한이 실로 대단했다.

창천맹은 그들이 움직인다면 안효철과 중천으로 하여금 지원하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검림도 그럼 제멋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겠군요?”

영은성의 물음에 홍두형이 입을 열었다.

“일단 사전 포석을 해 두었지. 한 달쯤 전에 군사(軍師)로서 창천맹에 있었던 복룡 선생을 검림으로 보내놨네. 지금의 큰 틀에서의 계획은 그의 주도로 세운 것이니 그나마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검림이라면 주도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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