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화<쭈니>
여태 만났던 인간들은 가말을 이렇게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보더라도 두려워하고 꺼림칙해 했다.
인간에게 그녀는 둘 중 하나였다.
신 혹은 괴물.
하지만 이 남자에게 그녀는….
사실 같은 사람까진 아니고 개 정도인 것 같았다.
도영이 알게 되면 놀라겠지만 의외로 가말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던 것이다.
“다 됐어?”
도영은 물었다.
“응.”
가말은 마지막 매듭을 묶고 도영을 부축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벌써 그러는 게 제법 익숙해진 도영은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런데 발을 딛고 서 있는 바위 표면이 고르지 않아 도영이 살짝 비틀거렸다. 가말은 얼른 지탱해주었다. 그러면서 가말의 어깨와 도영의 겨드랑이가 요철처럼 맞물렸다.
훅 가까워진 거리에 시선이 마주쳤다.
가말은 놀라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도영은 가말의 어깨에 둘러진 제 팔을 들었다.
“가자.”
명심해야 했다. 이건 생존 서바이벌이지 순정만화가 아니라는 걸.
***
아침에 일어나니 또 가말 등 뒤에 붙어있었다. 도영은 가말을 쳐다보았다.
‘사람 심란해지게 생긴 건 왜 이렇게 생겨서.’
통계적으로 신체조건이 좋은 사람들이 감염을 이기고 루아스가 될 확률이 높아서 루아스들 중에 외모가 된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개중에서도 가말은 상위 1%에 속한다고 할 만했다.
만약 바깥에서 살았다면 하렘을 거느리고 살았을지도 몰랐다. 본인이 싫다고 해도 남자들이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았을 테니까.
가말이 천천히 눈을 떴다. 속눈썹이 들리면서 붉은 눈동자가 드러나는 모습이 거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가말도 도영을 쳐다볼 뿐 아무런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했다. 어딘가 나무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그들을 가로지르고 있는 빛이 출렁였다.
그리고 어렴풋이 파도 소리가 들렸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나가는 소리에 따라 몸의 피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소령….”
가말은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등줄기에 희미한 소름이 일으키는 그 목소리로, 물었다.
“배고파?”
***
토기를 정리하는 가말을 보며, 도영은 계속 궁금했던 걸 물었다.
“너 누구한테 프랑스어를 배운 거야?”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되는데 가끔 쓰는 말들이 교과서에나 볼 법한 옛날 말이기도 하고 발음도 좀 이상했다. 아무래도 프랑스인한테 배운 것 같진 않았다.
“요하네스.”
“요하네스?”
대뜸 실명이었다.
가말은 고개를 끄덕였다.
“떠내려왔어. 배가 꼬르륵해서.”
배가 가라앉아서 조난당했다는 의미 같았다. 도영은 물었다.
“언제?”
“오래전에.”
“그러니까 얼마나 오래전이냐고.”
가말은 멀뚱히 도영을 보았다.
“소령은 질문이 많아.”
“봐. 난 조난돼서 이 섬에 떠내려왔어.”
정확히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려서 이 섬까지 헤엄쳐왔다.’였지만 가말이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었다.
“가족들은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난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적어도 정확히 내 상황이 ‘최악’과 ‘버틸만함’ 사이 어디쯤 있는지 알기 위해 질문하는 정도는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그제야 가말은 석연치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대답했다.
“정확한 건 몰라. 날짜 안 세. 아주 오래됐어.”
이름이 요하네스라면….
“독일 사람이었어?”
“아니, 네덜란드.”
그렇다면 항해를 나온 동인도 회사 소속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럼 늦어도 한 이백 년 전이었을 것이다.
“요하네스 프랑스어 조금 했어. 나 가르쳤어.”
그러더니 가말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 것처럼 얼굴이 밝아졌다.
“아, 나 네덜란드 말은 잘해. 요하네스랑 말 많이 해서.”
“내가 못해.”
프랑스인과 한국인 혼혈인 도영은 두 모국어인 프랑스어와 한국어 외에도 영어, 스페인어 중급, 러시아어 초급의 나쁘지 않은 언어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네덜란드어는 힘들었다.
통역기라도 있었다면 가능했겠지만 불행히도 여기서 그런 문명 세계의 물건은 사치였다.
어쨌든 옛날 외국인이 쓰는 프랑스어를 배워서 말이 이 모양 이 꼴인 모양이었다.
일단 궁금증은 풀렸다. 도영은 다음 질문을 했다.
“요하네스 씨는 어떻게 됐어?”
“죽었어.”
도영은 멈칫했다. 가말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천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나이 들었어. 자다가 갔어.”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때 도영은 눈앞에 있는 이 아름다운 존재가 새삼 자신과는 다른, 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 앞에 썩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조난당해 표류한 인간이 늙어 죽고 난 후에도 가말은 이곳에 있었다.
왠지 모르게 등줄기에 흐르는 불길함을 도영은 애써 떨쳐냈다. 그는 어떻게든 돌아갈 테니까.
“또 떠내려온 사람은 없었어?”
일단 정보를 모아야 했다. 최대한.
“다했어.”
그런데 가말은 토기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일어났다. 더 이야기할 생각이 없는 듯. 그 등에 대고 도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밖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
가말은 그 단어를 처음 들은 것처럼 돌아보았다.
“밖?”
“그래. 섬 밖.”
사실 가말이 탈출하는 걸 도와주면 지금이라도 섬을 나가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뱀파이어의 체력과 힘이면 헤엄을 치든 뗏목을 만들든 뭘 해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가말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
도영은 ‘도대체 왜?’라고 다그치고 싶은 걸 참고 차분히 물었다.
“왜?”
“여기가 좋아.”
“바깥에는 플로스도 있고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물건도 많아. 적어도 네가 태어났을 때면 토기 구워 돌칼로 잘라 먹는 시대도 아니었을 텐데 이러고 사는 게 불편하지도 않아?”
“불편 안 해.”
가말은 다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도영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네가 마지막으로 이 섬을 나간 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10년만 지났어도 엄청 변했을 거야. 내가 장담하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니까. 나가보고 싶지 않아?”
가말은 돌아보고, 어른들을 귀찮아하는 사춘기 소녀처럼 말했다.
“소령 귀찮아. 난 여기 있어.”
그러고 가말은 정말 가버렸다. 도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돌 같은 자식.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해?”
가말은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도영은 포기했는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무 그늘이 발치에 드리워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나무 꼭대기를 보자 그 너머로 빛나는 햇빛에 눈이 시려왔다.
***
밤이 됐는데 가말이 들어올 기색이 없었다. 도영은 기다리다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가말이 꼭 가출 청소년처럼 입구의 나무 계단에 앉아있었다. 도영은 물었다.
“안 들어오고 뭐 해?”
“밖에 가고 싶어, 소령?”
그런데 가말은 대답하는 대신 대뜸 물었다.
“집에.”
도영은 가말이 한 말을 고쳤다.
“집에 돌아가고 싶은 거야.”
가말은 무릎을 잡고 생각에 빠졌다. 도영은 은근히 기대했다. ‘그럼 밖에 가보자.’ 같은 말이 나올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가말은 멀리 하늘을 보았다.
“나도 집 있었어. 마티도, 타와도.”
모르는 단어였지만 눈치껏 엄마, 아빠를 의미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다위도.”
가말은 덧붙였다.
“아다위?”
그건 알 수 없는 단어라 도영은 물었다. 그러자 가말은 덤덤히 대답했다.
“결혼했어, 아다위랑.”
도영은 입을 다물었다. 옛날에는 조혼이 성행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말이 인간이었을 때 이미 남편이, 심지어 아이가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것도 스물다섯 정도면 아이가 셋은 있었어도 있었을 나이였다.
그런데도 순간 왜 누군가가 명치를 훅 때린 것 같은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부스럭.
소리가 나서 가말이 돌아보자 도영이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태연한 어조로 물었다.
“아이도 있었어?”
가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다위는 죽었어, 결혼한 날에.”
도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쩌다?”
“사고.”
가말은 또 그렇게만 말하고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를 했다.
“고향에 나무가 피었어. 많이. 열매가 맛있어서 좋아했어. 아직도 기억나.”
“무슨 나무인데?”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도영은 물었다. 그러자 가말은 고개를 저었다.
“더는 없어. 언젠가부터 아무 곳에서도 본 적 없어.”
“멸종했다는 거야?”
“멸종?”
“다 사라져버렸다는 거.”
가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 사라져버렸어.”
인간이 굳이 파괴 행위를 벌이지 않아도 지구상에 살았던 생물의 절대 다수가 여러 가지 이유로 사라졌다. 식량부족, 날씨, 천적의 출현 등. 그건 자연의 이치였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그러니까 가말이 말하는 그 나무도 자연의 순리를 따른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도영은 왜인지 담담한 어조가 더 슬프게 들렸다. 아마도, 가말이 좋으나 싫으나 그 순리를 벗어나버린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 외에는 서서히 모든 게 사라져가는.
“그 나무만이 아니라 고향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겠지.”
갑자기 가말은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으로 말했다.
“마티도, 타와도, 아다위의 무덤도.”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흘러내린 가말의 앞머리가 흩날리며 이마가 드러났다. 우련한 빛이 흐르는 이마였다.
도영은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여기서 혼자 사는 거야?”
“난….”
가말은 입을 열었다가 말을 삼키더니 다른 말을 했다.
“사람들이 왔어, 때때로. 배가 꼬르륵해서.”
“요하네스?”
도영은 가말이 삼킨 말이 무엇일지 궁금했지만 섣불리 물었다가는 이야기하기를 그만둘 것 같아서 일단 넘어갔다.
가말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도 여러 사람. 로드리게스는 발목을 삐었어. 작은 상처인 줄 알았어. 근데 부풀어 올랐어. 며칠 뒤에 죽었어. 빌도 상처 때문에 죽었어. 난 고칠 수가 없었어.”
아무리 뱀파이어여도 의학지식이 없는 한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은 인간과 같았기 때문이다. 도영의 다친 다리를 처치한 걸 보면 가말은 꽤 의학지식이 있었지만 그래도 민간요법 수준이었다.
“밀라는 혼자 여기 온 걸 받아들이지 못했어.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절벽에서 몸을 던졌어.”
그 이야기를 하는 가말은 정말로 슬퍼 보였다.
“소야는….”
가말은 섬에 왔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떠내려왔지만 살아서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얼추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가말이 만난 사람들은.
아마 가말이 잠들어있을 때도 사람들은 이곳으로 떠내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가말이 없었고, 개중 몇은 로드리게스나 빌처럼 상처로 죽고, 몇은 자살하고, 운이 좋은 한둘은 구조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해역은 섬이 많아 항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한 현대에서도 비행기를 띄워 내려다본다고 해도 수많은 섬 사이에서 하나의 특정한 섬을 골라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구조됐을 가능성은 낮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곳은 슬픈 섬이었다.
“무덤이 있어. 저기.”
가말은 산 쪽을 가리켰다.
“모두 묻어줬어. 더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어.”
물기가 일렁이는 가말의 눈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보였다.
깨닫게 된 게 있는데, 가말은 뱀파이어지만 어떻게 뱀파이어가 됐나 싶을 만큼 착하고 여린 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뱀파이어로서의 본성도 침범하지 못한 인간성이 가끔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그게 설정이거나 연기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제아무리 노회한 뱀파이어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런 녀석일수록 너무 제 교활함을 믿어서 숨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다.
“인간들은 약해. 빨리 죽어.”
가말은 슬퍼하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니.”
그런데 도영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