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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베스티아-52화 (52/110)

52화<쭈니>

천장이 높은 수술실에는 수술대를 중심으로 의료진이 빙 둘러 서있었다.

일반적인 수술실보다 넓은 수술실에는 각종 장비들이 성벽처럼 의료진을 두르고 있었다.

개중 한 모니터를 간호사가 확인하고 말했다.

“활성화 1단계. Pulse(맥박) 약합니다.”

의사 중 한 명도 흘긋 모니터를 보았다.

“심장 쪽에서 포기하지 않고 각개전투를 치르고 있군요.”

“경추의 손상이 심각합니다. 일반적인 케이스였다면 경추가 잘리는 순간 심장도 멎었을 겁니다.”

다른 의사가 말했다.

띠딧.

모니터에서 소리가 나자 간호사가 다시 모니터를 보고 말했다.

“활성화 2단계에 진입합니다.”

첫 번째 의사가 모니터를 쳐다보자 두 번째 의사가 손짓했다. 그러자 한쪽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수술복을 입은 남자가 뭔가를 작성했다.

“역시 활성화가 좀 빠르군요. 실험군 티어1 대상자의 기본적인 육체능력이 좋아서 그런 거 같습니다.”

“대상자의 육체능력과 스프레딩 속도가 관계있다는 연구 결과가 유의미하군요. 체크해두죠.”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평범한 의사들의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수술복을 입은 한 사람이 카트를 끌고 들어왔다. 간호사가 돌아보고 말했다.

“수혈 팩 들어옵니다.”

철컹.

카트가 수술대 옆에 멈춰 서자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인 많은 혈액 팩들이 가볍게 흔들렸다. 혈액 팩 위에는 동일한 라벨이 붙어있었다.

기증자, 이바노프

천장이 높은 수술실 위쪽 유리 너머 참관실에서는 사람들이 수술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장과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섞여있었다. 개중에 연하가 있었다.

의사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있는 도영을 보았다. 핏자국은 식염수로 모두 씻어냈지만 수술실의 조명에 비춰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은 이미 주검이나 다름없었다.

의사는 희망을 담아 말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소령님.”

***

한참 수술을 지켜보고 있는 연하의 손목 밴드가 울리며 전화가 왔다. 연하는 참관실 뒤쪽으로 이동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마마, 언제 와?]

그러자 어린 아들의 미성이 울렸다.

“금방 갈게. 조금만 기다려.”

[파파도 없어.]

“파파도 마마한테 오고 있어.”

연하는 말하면서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놀고 있으면 곧….”

그러다가 멈칫했다. 복도에 피를 뒤집어쓴 가말이 앉지도 않고 그대로 서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정신이 없어서 그녀는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어 그야말로 유령 같았다. 그나마 한 걸음 뒤에는 군인 둘이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마마 금방 갈게.”

연하는 전화를 끊고 가말에게 다가섰다.

“가말.”

가말은 아주 느리게 눈을 들어 연하를 보았다.

“도영은 살아?”

“살 거야.”

연하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가말은 꼭 아무래도 좋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고 싶어?”

연하가 묻자 가말은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연하는 가말의 팔목을 잡았다.

“그래. 그전에 피만 좀 씻고 오자. 위생 문제도 있으니까.”

가말은 완전히 텅 비어버린 눈동자로 연하를 보았다. 그건 절망하기도 전에 절망해버린 사람의 눈이었다.

연하는 이해했다. 가말이 겪고 본 것을 미루어 넋을 놓고 울부짖거나 정신을 잃지 않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가자.”

연하는 가말을 잡고 끌었다. 그러자 가말은 저항할 기운도 없는지 순순히 따라왔다.

“여기 씻을 만한 곳이 있나요?”

연하는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안내해드릴게요.”

그리고 간호사가 안내해주는 방으로 가말을 데리고 들어갔다.

“씻어.”

연하는 가말을 욕실까지 데려다주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방으로 가서 기다리다가 무슨 생각이 들어 다시 욕실로 가보자 역시 가말은 욕실 가운데 그냥 서있었다.

연하는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숨기고 가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어깨를 짚자 가말은 먼 곳에서 돌아오듯이 연하를 보았다.

연하는 굳이 말하지 않고 가말의 옷을 벗겨주기 시작했다. 가말은 연하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속옷까지 핏물이 들어있었다.

새하얀 욕실에 서 있는 희고 가느다란 몸에 산 채로 살이 발겨진 생선 같은 섬뜩한 긴장감이 흘렀다.

욕조에 물을 받는 사이에 가말에게 샤워기로 물을 끼얹자 벌건 핏물이 발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샤워를 끝내고 연하는 말했다.

“들어가.”

가말은 순순히 욕조에 들어가 앉았다. 그러자 핏물이 머리카락에 좀 남아있었는지 투명한 물에 옅은 붉은빛이 넘실거리며 번졌다.

가말은 양팔로 제 무릎을 감싸 안았다. 그사이에 연하는 핏물이 흐른 바닥에 물을 뿌려 청소했다.

“타실(TASIL) 프로젝트가 뭐야?”

갑자기 가말이 물었다. 연하는 멈칫하고 돌아보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가말은 여전히 초점이 흐린 탁한 눈이었지만 똑바로 연하를 보며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끽.

연하는 샤워기를 끄고 욕조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샤워기에서 물방울이 톡톡 흘렀다.

“타실은….”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가감 없이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가말은 알 자격이 있었으니까.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우리 이바노프 클랜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ISLE.

항공 산업으로 시작해 현재는 뱀파이어 관련 기술 분야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글로벌기업이었다.

창립자였던 이반이 자리를 넘겨준 후 현재는 렉스의 첫 번째 클리엔테스인 셀레나 추가 수장으로서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타실은 MCTC와 ISLE이 합작한 기밀 프로젝트야.”

타실 프로젝트의 지원 조건은, 당장 현장에서 뛸 수 있는 신체조건을 지닌 군 복무기간 10년 이상의 인간 대원.

하지만 군 복무기간 10년을 넘어가면 대체로 현장을 떠나기 때문에 ‘당장 현장에서 뛸 수 있는 신체조건’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즉, 애초에 극소수의 정예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였다.

군인 루아스 전환(Transfer a Soldier into Luax) 프로젝트. 줄여서 TASIL.

가말은 이해하고 있는 건지 못 하고 있는 건지 그저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연하는 계속 말했다.

“한마디로, 인간인 상태에서 미리 루아스 바이러스를 몸에 받아놓는 거야. ‘보균자’가 되는 거지.”

뱀파이어의 혈액은 체내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괴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보관이 까다로웠기 때문에 뱀파이어 혈액은 샘플을 채취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재작년 ISLE 그룹 산하의 바이오 연구소는 루아스의 혈액에서 루아스 바이러스를 분리, 보균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MCTC는 그 기술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지금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연하는 잠깐 말을 끌었다.

“군인 한 명이 제 몫을 하도록 훈련시키는 데는 아주 많은 돈이 들어가. 그 군인을 잃으면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지. 반대로 루아스를 데려다가 조직 생활에 적합하게 훈련하는데도 만만찮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고.”

그러면서 가말을 보았다.

“하지만 이미 훈련되어있는 군인이 사망했을 때 다시 루아스가 되어 살아난다면….”

그리고 연하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MCTC는 그 엄청난 효율성에 주목했어.”

“타실 프로젝트는 성공 가능성이 극히 미약합니다.”

ISLE에서 파견된 타실 프로젝트의 담당자는 군 강의실에 저마다 앉아있는 MCTC의 군인들, 즉 도영을 포함한 자원자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저희가 개발한 건 바이러스를 보균하는 기술입니다. 바이러스 자체를 수정하거나 감염 가능성을 높이진 못했죠. 즉, 타실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은 자연 상태에서 감염을 이길 가능성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사실 보균된 바이러스가 인간 숙주가 사망했을 때 100% 활동상태에 들어갈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따라서 타실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고 봐야 하죠.”

그 말에 특별히 심각한 얼굴을 하는 군인들은 없었다.

위험성이 높다.

가능성이 희박하다.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워낙 그런 종류의 말을 듣는 데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상시험에서 인체에 유해한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프로젝트 담당자는 치과에 가기 전 아이를 다룰 때와는 반대로 잔뜩 겁을 주었다. 그러자 한 군인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래서 언제 시작한다고요?”

“하지만 참가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사망해도 바이러스는 발현되지 않았어.”

연하는 담담하게 말했다.

“한 번도.”

타실 프로젝트는 사실상 실패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정식 절차를 밟지 않았을 뿐 프로젝트는 거의 폐쇄 수순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하는 가말을 돌아보고 덧붙였다.

“소령님 전에는.”

그 말을 듣는 가말의 머릿속에서 아까 기억이 폭풍우 쳤다.

***

“이미 늦었습니다.”

휴 대위가 말했다.

가말은 이렇게 쉽게 도영을 포기해버리는 게 믿기지 않았다.

늦었을 리가 없었다. 늦어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은 모두 할 것이다.

가말은 이를 드러내며 울부짖었다.

“늦지 않았어!”

“늦었습니다.”

하지만 휴 대위는 위압되지도, 단호한 태도를 바꾸지도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다른 감염원은 안 됩니다.”

갑자기 그의 눈이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감염은 이미 시작됐으니까요.”

“뭐?”

팀원들이 필사적으로 지혈하고 있는 도영은 목에서 터진 피로 온몸이 검붉게 젖은 상태였다. 머리카락 때문에 눈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피가 모자라 밀랍 빛으로 질린 낯빛은 결코 산 자의 것이 아니었다.

“소령님은 보균자입니다.”

가말은 멍하니 휴 대위를 돌아보았다.

“보균…자?”

“타실 프로젝트.”

그 말에 한 중사는 눈을 크게 뜨고 번뜩 도영을 보았다. 뒤늦게 어떤 사실이 떠오른 듯.

휴 대위는 말했다.

“현역 대원들의 체내에 루아스 바이러스를 미리 보균해놓고, 해당 대원이 사망했을 때 바이러스가 저절로 발현되도록 한 MCTC의 바이오포스 프로젝트입니다. 소령님은 프로젝트의 참가자였죠.”

가말은 도영을 돌아보았다.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면서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가말은 믿을 수 없어 중얼거렸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휴 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추가 잘렸는데 심장이 아직 뛰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무사히 활성상태에 들어간 겁니다.”

가말은 휴 대위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순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멍하니 물었다.

“도영은… 살아?”

“그건 신만이 아시겠죠.”

그때 가말은 몰랐지만 휴 대위는 ‘타실 프로젝트는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다.’는 말을 삼켰다. 어쨌든 이번에도 실패하리란 근거는 없었기에.

아니, 이번에야말로 성공하리라고 믿고 싶었기에.

가말은 멍하니 제 손을 보았다. 두 손에 도영의 피가 흥건했다.

가말은 두 손으로 제 눈을 감쌌다. 천천히 벌어지는 입에서 형용할 수 없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건 말이나 비명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가장 깊은 절망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너무나 괴로워 군인들은 눈꺼풀을 닫듯이 차라리 귀도 닫아버리고 싶었다.

대원들의 배우자나 연인들은 항상 사랑하는 사람을 배웅하며 상대가 무사히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그들이 죽는 모습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가말은 연인이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다. 그것도 제 형제에게, 자신이 원인이 되어.

그 심정은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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