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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베스티아-58화 (58/110)

58화<쭈니>

도영은 얼핏 정신이 들었다.

냄새가 새벽녘 같았다. 방은 처음 깼을 때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지금은 품에 가말이 있었다.

스푼처럼 한 방향으로 포개져있는 그들 사이에 가말의 머리카락이 검은 웅덩이처럼 고여있었다.

조용히 숨을 내쉬며 잠들어있는 가말의 볼이 둥그랬다. 그가 감염을 겪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안쓰러워, 도영은 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 느낌에 가말은 눈을 뜨고 그를 살짝 돌아보았다.

“도영….”

그리고 가말은 도영의 손을 잡아 살짝 그러쥐면서 잠결에 읊조렸다.

“좋아….”

도영의 배 속에서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쪽 능력도 루아스화 되는 건지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상대가 가말인 탓인지 여전히 충족이 되지 않았다.

천천히 손이 타고 내려갔다.

가말은 조금 움찔했지만 깨어나진 않았다. 도영은 즐거워졌다.

“응….”

그 순간 가말은 깬 것 같았다.

가말은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해하다가 등 뒤에 뜨거운 열기를 뿜는 남자의 몸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도영?”

도영은 가말의 귓불을 깨물었다.

“엄살 피운 거였구나.”

가말은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

루아스 체력으로도 이렇게 땀이 날 정도로 그들은 계속해 사랑을 나누었다.

가말은 몇 번째인지도 모를 열락에 몸부림쳤다. 시트를 휘감아 쥐어 당기고 발이 저리도록 시트를 밀어냈다.

마침내 온통 엉망이 된 시트 위에 엉망이 되어 늘어졌다.

뇌에 자극이 지나쳐 잠조차 들 수 없는 것처럼 몽롱하게 풀어졌다. 온몸의 뼈가 녹아버린 느낌이었다.

도영은 가말의 볼에 입 맞추며 속삭였다.

“잘 했어.”

“잘…한 거야?”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인지 헷갈려 가말은 물었다. 그런 가말이 귀여워 도영은 희미하게 웃었다.

“잘한 거야. 기분 좋지?”

“너무… 힘들어.”

가말은 겨우 몸을 돌려 도영에게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너 생각보다 지구력이 약하구나.”

인간일 때는 그렇게 압도적으로 느껴졌는데 기본 육체 능력의 눈높이가 같아지자 문제점이 보였다.

사실 검술 실력과 별개로 섬에 숨어 지낸 지 오래돼서 지구력을 키울 만한 상황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도영은 가말을 붙잡았다.

“어디 가.”

“또 해?”

가말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남아있는 체력이라고는 없었다.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도영은 처음 시작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가말….”

뒤에서 귓가로 나직한 속삭임이 다가왔다.

“아직 멀었어.”

***

도영은 가말에게 계속 입 맞추었다. 헐떡임이 깊어졌다. 제 생각보다 많이 참았던 모양인지 뭔가 충족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가말이 도영을 살짝 밀어내면서 말했다.

“도영… 피가 부족해.”

도영은 선뜻 말이 이해되지 않아 가말을 보았다.

“눈빛이… 사나워졌어.”

그건 가말도 마찬가지였다. 녹아내려 몽롱하게 풀어진 얼굴과 별개로 눈에 희번덕거리는 살기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몇 시간째인지 모를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미안해. 생각을 못했어.”

도영은 몸을 일으켜 냉장고로 걸어갔다.

가말은 조금씩 헐떡이며 그대로 누워서 도영이 걸어가는 걸 지켜보았다.

너무 지치고 배가 고프고 어지러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최근에 이 정도로 몸을 혹사시킨 일은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궁금했지만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기도 힘들었다. 아무리 루아스여도 이렇게 오랫동안, 그것도 쉬지 않고 운동하면 남는 체력이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도영은 이제 막 오랜 가사상태에서 눈을 떴는데 왜 이렇게 멀쩡하다 못해 체력이 넘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막 루아스가 된 도영으로서는 인간처럼 ‘배가 고프다’는 감각과 영혼으로부터 올라오는 것 같은 허기를 구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무절제하게 살다가 루아스가 된 사람과는 다르게 확실히 자신의 욕구를 제어할 줄 아는 것 같았다.

도영은 침대 옆에 있는 작은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만 쌓여있는 독신 남자의 냉장고처럼 팩들이 쌓여있는 모습은 익숙했다.

플로스를 하나 꺼내 마셔보았다. 가까이 가져오기 전부터 달콤한 냄새가 났다. 인간일 때는 단 한 번도 맡지 못한 냄새였다.

한 모금 마시자, 달았다. 하지만 설탕이 많이 첨가돼서 달다는 느낌과는 질적으로 다른 맛이었다.

음료라기보다 생기를 한 컵 마시는 것처럼 손끝, 발끝까지 기운이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이상한 느낌이네.”

그리고 도영은 플로스를 가지고 가말에게 다가왔다. 이어서 자신이 플로스를 마시더니 입을 겹쳐왔다.

“응….”

몇 번에 걸쳐 키스인지 식사인지 알 수 없는 식사를 하고 나자 가말은 겨우 좀 살 것 같았다.

도영은 가말을 내려서 눕혀주었다. 이제 좀 쉬겠다 싶어지는데 도영이 가말의 입술 위에 속삭였다.

“루아스는 편하네. 이렇게 마시기만 해도 돼서.”

“하지만 죽지만 않는, 다는 거….”

가말은 절망에 사로잡혀 중얼거렸다.

“도영 다시 인간해.”

***

도영은 눈을 떴다. 가말은 그의 팔을 베고 안겨 잠들어있었다.

벽에 홀로그램으로 떠있는 시계를 보자 아침이었다, 삼 일이 지난.

그리고 그들은 알몸으로 이불에 휘감겨 바닥에 누워있었다.

옆에 있는 침대는 한쪽 구석이 내려앉아있었다. 루아스 무게에 버틸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됐지만 내내 흔들리는 충격을 이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 순간 무너져버려, 도영은 깔끔하게 가말을 바닥으로 끌어내려 하던 일을 마저 했다.

만약 그의 몸에 군살이란 게 1%라도 남아있었다면 이번에야말로 아예 싹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도영은 루아스로 처음 눈을 떴을 때보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숨을 들이켜자 폐가 시원한 공기로 부풀고 다리에 힘이 꿈틀거렸다.

마지막까지 체력을 소진하고 기절한 듯이 오래 잤기 때문인지 특별히 피로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몸에 쌓인 묵은 때가 다 벗겨진 느낌이었다.

도영은 정신없이 잠에 빠져있는 가말의 어깨를 쥐고 살짝 흔들었다.

“가말.”

그러자마자 가말은 그를 피하는 듯이 몸을 웅크리며 웅얼거렸다.

“으응…. 그만해….”

정말 이번에는 그게 아닌데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도영은 가말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배고프지 않아?”

“응… 그만….”

어지간히 시달렸는지 가말은 그러고서는 다시 잠들었다. 다행히 어디가 아픈 것 같진 않았다.

도영은 피식 웃고 일어나 무너진 침대를 확인했다.

이불이 흩어지며 알몸이 드러났다. 탄탄한 뒤태를 뽐내며 그대로 욕실로 들어갔다. 목에 무시무시한 흉터를 휘감은 남자가 거울에 비쳤다.

샤워기 아래 서자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영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고개를 들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왔지만 가말은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자고 있는 게 영 깨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영은 옷장을 열고 반듯하게 접혀있는 군복을 꺼내 바지를 끌어올려 입고 제 피부 같은 군용 티셔츠를 입었다.

“가말.”

그리고 침대로 가서 가말의 어깨를 짚고 말했다.

“쉬고 있어.”

깊이 잠든 가말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영은 방을 나섰다. 그리고 복도를 걸어간 지 얼마 안 돼서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령님.”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군의관이었다.

“잠깐 보시죠.”

그러고는 군의관은 손짓하고 먼저 갔다. 도영은 따라서 그의 사무실로 갔다.

군의관은 말했다.

“사실 첫날 확인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아마 도영이 깨어나자마자 방에 틀어박히는 바람에 검사를 해야 한다고 끌어내기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도 다른 대원들의 증언을 들었다면 왜 방에 틀어박혔는지 알았을 테니.

“몸 상태가 괜찮은지 가볍게 검사만 몇 개 해보죠. 밥은 드시고 오셨습니까?”

군의관, 중령은 물었다.

“플로스는 먹었습니다.”

“그럼 일단 검사하죠.”

검사를 다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이미 중령이 검사 결과를 패드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패드를 내려놓고 말했다.

“전부 괜찮아 보이는군요.”

그러고는 덧붙였다.

“안 그래도 부작용이 있을 거 같진 않았습니다. 삼 일간 힘을 쓰고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으니.”

아무래도 서늘한 얼굴로 농담하는 게 이 군의관의 특성인 모양이었다.

“유일한 부작용은 목의 흉터인데….”

중령은 도영의 흉터를 보고 말을 끌었다.

“보균된 바이러스로 감염됐기 때문인지, 아니면 목처럼 위험한 부분이 잘렸기 때문인지는 저희로서도 모르겠습니다. 두 경우 다 처음 보는 거여서요.”

그리고 중령은 덧붙였다.

“어쨌든 완전히 루아스가 되고도 사라지지 않은 걸 보면 앞으로도 남아있을 거 같군요.”

목의 3분의 2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흉터는 빈말로도 보기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도영은 오히려 가말을 구하는 데 이 정도면 싸게 먹혔다고 생각했다. 루아스가 되는 데 성공했고.

영원히 살고 싶어서라기보다 가말과 하고 싶어서였다는 점이 본인도 황당하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타실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나름 두 번째 기회를 얻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어쨌든 확실하게 목을 자르려고 했던 걸 보면 대공 녀석이 얼마나 가말에게 집착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여간 사이코 녀석이었다.

“괜찮습니다, 흉터쯤은.”

“하긴, 살아 돌아오신 것만 해도 신이 보우하신 일이죠.”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옛날에는 뱀파이어가 됐다면 신에게 버림받아서라는 말을 들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 가봐도 되겠습니까?”

“곧 심리 상담도 받으셔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도영은 손을 흔들고 밖으로 나와 식당으로 갔다.

식당으로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알아보는 얼굴이었다. 그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그리고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으러 가자 배식을 하는 식당 직원이 이러면서 식판에 포크커틀릿을 세 장이나 올려주었다.

“살아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영은 자리에 식판을 내려놓고 앉았다.

다들 루아스가 된 도영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지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보고 지나갔다.

현역 대원인 와중에 루아스가 된 경우는 손에 꼽아서 그렇다고 해도, 동물원의 동물이 된 느낌이었다. 그가 좀 더 쉬워 보였더라면 찔러보고 가기라도 할 기세였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앞자리에 식판을 내려놓고 앉았다.

“오랜만에 보네요. 같은 기지에 있으면서 말이죠.”

한 중사였다.

도영은 인사 대신 숟가락을 한 번 들었다가 내렸다.

“저도 반갑습니다.”

“이제 식당보다 플로스 배급실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먹던 버릇이 있어서요.”

그러고는 두 사람은 어제도 이렇게 같이 밥을 먹었던 양 대화하면서 식사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인 줄 알고 그냥 지나갈 뻔했습니다.”

“안 그래도 옷을 다 다시 사야 합니다.”

키도 커졌지만 어깨도 더 넓어졌고 전체적으로 체형이 재조정된 것 같았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몸이 완성된 느낌이었다. 예전에도 그런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완성될 게 남아있었다는 점에서 역시 자만하면 안 된다는 때 아닌 교훈을 얻었다.

한 중사는 밥을 먹으면서 물었다.

“그것도 일종의 경비인데 지원해주지 않는답니까?”

“그렇게까지 해주는 건 바라지도….”

말하던 도영이 갑자기 인상을 쓰며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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