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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베스티아-59화 (59/110)

59화<쭈니>

“그렇게까지 해주는 건 바라지도….”

말하던 도영이 갑자기 인상을 쓰며 입을 막았다. 한 중사가 왜 그러나 의아하게 쳐다보자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다.

“혀 찔렀어요.”

한 중사는 킬킬거렸다.

“자기 혀 좀 찔러봐야 진짜 뱀파이어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도영은 입안을 혀로 쓸고 다시 밥을 먹었다. 그러자 한 중사는 숟가락으로 도영의 목을 가리키고 말했다.

“근데 그 흉터는 어떻게 안 된답니까?”

“훈장이죠, 뭐.”

도영은 대수롭잖게 말했다.

안 그래도 멀끔한 외모 탓인지 쉽게 보는 녀석들이 많아서 칼자국이라도 하나 있어야 하나 생각했다. 그렇다고 일부러 만들 생각까진 없었지만 기왕 생긴 거 잘 사용하면 되지 않나 싶었다.

“웬만하면 저도 훌륭한 훈장 하나 생겼다고 하겠는데 목에 있어서 그런지 좀 너무 무시무시해서….”

한 중사가 말하고 있는데 연하가 그 옆자리에 와 앉았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네.”

“강 소위님.”

한 중사가 알은체했다.

“부대로 안 돌아갔어?”

도영은 밥을 먹으며 무심히 물었다.

“돌봐야 할 가정도 있는 녀석이 왜 이렇게 오래 있어?”

“돌아갔다가 다시 왔어. 걱정돼서.”

연하는 대답했다. 하지만 도영은 심상하게 말했다.

“거의 목이 날아가고도 살아난 사람한테 걱정도 팔자다.”

“소령님 걱정한 거 아니거든.”

그러고는 연하는 숟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가말을 걱정한 거지.”

갑자기 말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 방향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도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가말이 식당 바깥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머리가 산발인 걸 보니 일어나서 도영이 없자 옷만 대충 껴입고 분분히 달려온 모양이었다.

“가말, 이리 와.”

도영이 말했다. 하지만 가말은 오지 않았다. 하도 괴롭힌 탓인지 오히려 슬쩍 더 문 뒤로 몸을 감추었다.

도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도영이 점차 다가오자 가말은 주춤거리며 물러서더니 갑자기 뒤돌아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는 연하가 한심하단 듯이 말했다.

“소령님 껌딱지인 가말이 오죽했으면 저래?”

도영은 돌아보고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어쩐지 고소해하는 거 같다?”

“조금?”

도영은 고개를 젓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도망가는 녀석을 쫓아가봐야 더 도망갈 게 분명하니까. 그리고 식판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들었다.

“다시 왔지?”

연하는 문을 보았다. 가말이 문가에서 음침한 의도를 가진 사람처럼 얼굴 반쪽만 내밀고 도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응.”

연하는 대답했다.

***

“저건 가말 씨 새로운 취미입니까?”

한 중사가 물었다.

안 그래도 도영은 기가 찼다. 가말은 스토커처럼 멀찍이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나마 스토커라고 할 수 없는 점은 저쪽이 이쪽을 따라다니는 데 별생각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도영은 말했다.

“하루 종일 씻지도 않고 저러고 있어요.”

한 중사는 가말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도 어지럽고 좀 꼬질꼬질해 보였다.

며칠간 도영에게 당한 게 있으니 곁에 오긴 두렵고 그렇다고 시야에 두지 않자니 걱정이 돼서 그런 모양이었다.

“정말 누가 저 사람을 삼천 년이나 산 루아스라고….”

한 중사는 말하며 도영을 돌아보았다가, 멈칫했다. 도영이 가말을 보고 있는 눈빛을 본 순간 하려던 말이 뭐였는지도 까먹었다.

“와우.”

그러고는 한 중사는 지나갔다.

“뭐가요?”

그제야 도영은 어리둥절해하며 돌아봤지만 한 중사는 그냥 가버렸다.

도영은 왜 저러느냐는 듯이 쳐다보고는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갔다. 가말은 여전히 거리를 유지한 채 뒤따라왔다.

도영은 어떤 건물로 들어갔다. 가말은 어떡할까 하다가 고민하다가 그냥 앞에서 기다렸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그녀를 알아보았다.

“어, 가말 씨.”

가말은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어쨌든 상대가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대답했다.

“응.”

“여기서 뭐하세요?”

“도영 기다려.”

“아, 드페르 소령님이요? 불러드려요?”

가말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갈 길 가.”

“아, 네. 그럼….”

행인은 지나가려다가 갑자기 돌아보고 물었다.

“혹시 사탕 좋아하세요?”

가말은 왜 그런 걸 묻는지 몰랐지만 단 건 맛있으니까 사실대로 대답했다.

“좋아해.”

그러자 행인은 주머니에서 알사탕 하나를 꺼내서 주었다.

“드세요.”

역시 가말은 왜 이런 걸 자신에게 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상대는 호의로 하는 일 같았기 때문에 받았다.

“고마워.”

그러자 행인은 뭔가 해낸 것처럼 뿌듯해하는 얼굴로 갔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도영이 나와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래서 시간차를 두고 따라가려는데 갑자기 도영이 빙글 돌아서더니 제 쪽으로 다가왔다. 가말은 얼른 도망가려고 자세를 잡았다.

“가말.”

그때 도영이 불렀다. 가말은 멈칫했다. 저 목소리에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도영이 다가와 손목을 잡았다.

“집에 가자.”

그러고는 손목을 잡아끌었다. 가말은 말없이 따라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가는 방향이 낯설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이 있는 건물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방 저쪽이야.”

“더는 아냐.”

“아냐?”

가말은 어리둥절해했다. 그때 도영은 가말이 손에 꼭 쥐고 있는 물건에 시선이 닿아 물었다.

“근데 손에 쥐고 있는 건 뭐야?”

“사탕. 누가 줬어.”

“누가?”

“모르는 사람.”

도영은 한쪽 눈썹을 추켜들었다.

“남자였어?”

가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자.”

“그래?”

도영은 어조가 누그러졌다. 하지만 가말이 쥐고 있는 걸 잠깐 보더니 뺏어들었다.

“누구한테서도 받지 마.”

그러고는 다시 가말의 손목을 쥐고 끌었다.

“아무튼 가자.”

“어디?”

“가보면 알아.”

***

도영은 차를 멈추었다. 가말은 차창 밖을 보았다.

“여긴 어디야?”

“집.”

가말은 도영을 의아하게 보았다.

“도영 집?”

문명 세계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가말은 몰랐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전형적인 미국 교외의 마을 같았다.

그리고 도영이 차를 멈춰 세운 곳은 마을 가운데쯤 있는, 지붕이 푸른 2층 집이었다. 다른 집들도 그렇긴 했지만 잘 정리된 정원이 딸렸고 나무 울타리가 둘러져있었다.

“내려.”

그러면서 도영은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일단 가말도 따라 내렸다. 그러자 도영은 뒷좌석에서 짐을 내리면서 말했다.

“우리 집이야.”

“우리 집…?”

가말은 그 말 자체가 낯설어 중얼거렸다.

도영은 가말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말은 망연해서 끌려갔다.

“여기는 장교 가족들이 쓰는 관사 마을이야. 너랑 있으려면 여기가 더 좋을 거 같아서 신청했어.”

그리고 몇 달은 기다려야 하는 평소와 달리, 나름 지낼 곳이 없다는 비상 상황에 프로젝트 참가자라는 특혜가 더해져 이례적으로 바로 집을 받았다.

가말은 말을 잃고 집을 보았다.

집 자체는 크게 특색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 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거실에는 민무늬 소파에 유리 테이블이 놓여있고, 부엌 쪽에는 흰 식탁이 얼핏 보였다.

가말은 갑자기 도영을 돌아보고 물었다.

“봐도 돼?”

“얼마든지.”

도영이 말하자마자 가말은 뛰어갔다. 그리고 새 집에 이사 와서 신난 아이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보더니 다시 도영 앞에 섰다.

이내 벅차 말을 토해냈다.

“우리 집이야.”

그러고는 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 도영.”

도영도 웃으며 가말을 안았다.

여태 가말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집은 거의 없었다.

정착하고 살면 어디든지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테지만 토라와 라토가 오기 전까지는 사타디 섬의 숲 속 통나무집도 진정한 의미에서 집은 아니었다. 그저 ‘거처’였지.

지금 이 집에는 그녀의 물건 하나 없지만 이미 어느 곳보다 집처럼 느껴졌다.

“도영…?”

갑자기 가말은 슬그머니 도영을 불렀다.

“응.”

도영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손은 가말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가말이 움찔하며 물러나려고 했지만 도영은 놔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가말의 귀 뒤를 핥았다.

가말은 점차 숨이 가빠지면서 물었다.

“또…?”

“네 탓이야. 하루 종일 달아나면서 날 애타게 만들었잖아.”

“응…?”

가말은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물었지만 도영은 뻔뻔하게 말했다.

“네가 제대로 하면 한 번만 할게.”

그러자 가말은 정말 고마워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응…!”

도영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렇게 오래 산 주제에 이렇게 순진한 점이 정말 참을 수 없었다.

***

도영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는 그 아래 있는 가말은 좀 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한 번만… 한다고….”

“네가 너무 제대로 해서 참을 수가 없잖아.”

“으응…?”

그제야 가말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도영은 한껏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난 뒤였고, 아직 끝낼 생각이 없었다.

“자, 잠깐….”

불길함을 느낀 가말이 거의 바퀴벌레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기어서 도망가려고 했다. 막 가말을 붙잡으려고 할 때였다.

띵동.

갑자기 벨소리가 났다. 도영은 현관문 쪽을 쳐다보았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띵동.

누가 착각해서 누르진 않았는지 다시 벨이 울렸다.

가말과 도영은 시선을 교환했다. 결국 도영이 일어나 티셔츠를 입으며 거실을 가로질러 가서 문을 열었다.

“누구….”

“서프라이즈!”

케이크를 들고 있는 한 중사가 제일 먼저 보이고 팀원들, 토라와 자인, 연하도 보였다.

도영은 삐딱하게 섰다.

“주소를 잘못 찾은 거 아닙니까?”

한 중사가 먼저 막무가내로 집 안으로 들어가 거실 테이블에 생일 케이크를 올려놓았다.

“생일파티 해야죠.”

“저희 어머니가 절 이번 달에 낳은 기억은 없을 텐데요.”

도영이 시니컬하게 말했지만 소리를 들은 가말이 안에서 나오며 반색했다.

“파티야?”

옷을 입긴 했지만 상기된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보고는 사람들이 도영을 음흉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도영은 뻔뻔하게 마주 보았다.

다들 고개를 내젓고 멋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연하가 얼음 박스에 담긴 샴페인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루아스로 다시 태어난 생일 말이야. 사실 깨어난 날 하려고 했지만 둘이 밖에 나와야 말이지. 자.”

그러고는 도영에게 샴페인 잔을 건네주었다.

“가말도 받아.”

모두 샴페인 잔을 들자 한 중사가 말했다.

“자, 그럼, 무인도에 표류되고도 살아 돌아오고, 목이 거의 잘렸어도 살아 돌아오고,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사정없이 유턴해온 우리 소령님의 끈질긴 생명력을 위하여.”

“이 정도면 거의 바퀴벌레죠.”

“옛날 영화 제목처럼 ‘죽어야 사는 남자’나 다름없다니까요.”

다들 한마디씩 보태, 도영은 기가 막혔다.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살아 돌아왔더니 바퀴벌레 취급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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