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코드네임 베스티아-66화 (66/110)

66화<쭈니>

도영은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자동문을 넘어 가게로 들어섰다.

흑백의 모던한 인테리어였고, 깔끔하게 청소되어있었다. 한쪽 벽면을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란 피카소의 황소 연작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피 냄새.’

생각보다 쾌적했지만 피 냄새를 잉크 냄새가 덮고 있었다.

벨소리를 듣고 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화려한 여자가 나왔다.

머리는 무지개 색이었고 파란 컬러렌즈를 했다. 그리고 민소매를 입은 아래 양쪽 팔에 총천연색의 문신이 내려와 있었다.

화장도 진하고 화려했지만 그런 게 다 어울릴 정도로 꽤 미인이었다.

타투이스트는 도영을 위아래로 훑고는 군말할 것 없이 물었다.

“어디에 할 거예요?”

도영이 이곳에 온 목적이 호기심이나 견학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도영은 말없이 폴라 티셔츠의 목을 끌어내렸다. 그러자 타투이스트는 말을 잃은 얼굴로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이건 또… 강렬한 흉터네.”

원래 도영은 그 흔한 문신 하나 없는 몸이었다. 동료들 중 누군가는 도화지보다 더 제 몸에 그림을 그리길 즐겨했지만 도영은 그럴 시간도 없었고 별로 이런 쪽에는 취미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흉터를 가릴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앉아요.”

타투이스트 리타는 타투 의자로 고갯짓했다.

“특별히 원하는 이미지 있어요?”

도영은 이미지를 전송했다.

“흥미롭네요.”

이미지를 본 리타는 말했다. 그리고 준비를 하더니 검은 라텍스 장갑을 끼고 물었다.

“목이라도 잘렸었어요?”

그러고는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했다.

“그럴 린 없겠지만. 뱀파이어도 목이 잘리고는 살 수 없으니까.”

도영은 리타를 보았다. 이런 세상이라도 일반인이 뱀파이어를 볼 일은 많지 않을 텐데, 눈앞에 있는 게 뱀파이어라고 알아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인간과 피부가 달라서 기술이 좀 필요하다는 뱀파이어 타투가 가능한 기술자니까 뱀파이어야 숱하게 보겠지만 말이다.

“뱀파이어인지 한눈에 알아보는군요.”

“피부만 만져봐도 알 수 있죠.”

리타는 도영의 흉터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루아스 피부는 뭐랄까… 탄성소재 같거든요.”

그러면서 피부를 꾹 눌렀다.

“부드러운 바위에 새기는 느낌이랄까. 뱀파이어 피부에 문신을 새기고 있으면 꼭 내가 알타미라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는 주술사가 된 느낌이 들어요.”

알타미라 동굴의 동물 벽화가 주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학설도 있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게 중요한 건 아닐 테니.

리타는 싱긋 웃었다.

“인간의 피부는 늙고 늘어지지만 뱀파이어 피부에 새긴 내 작품은 영원히 남아있을 테니까.”

도영은 바깥쪽으로 고갯짓했다.

“가게 이름은 그래서?”

“그렇죠.”

그리고 리타는 타투 바늘을 들었다.

“보통 뱀파이어는 어지간히 큰 이미지가 아니면 한 번에 끝내는 편이에요. 참을 수 있겠어요?”

“시작하죠.”

도영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리타는 웃었다.

“뱀파이어들은 터프해서 좋다니까.”

***

리타는 천으로 피를 닦아내고 말했다.

“하루 정도 샤워는 하지 말아요.”

도영은 거울을 확인했다.

단순히 흉터를 가린 게 아니라 흉터 모양을 따라서 섬세하게 그림을 그려서 오히려 처음부터 이렇게 그리려고 계획했던 것 같았다.

누구도 이 아래 흉터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실력이 좋군요.”

“리터치는 평생 무료예요.”

리타가 한 말에 도영은 보통 그러나 싶어 돌아보았다.

“평생?”

“술 한잔할래요?”

그러자마자 리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옛날이었다면 그런 적극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 화려한 스타일이나 쿨한 성격도.

“술을 안 마셔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맥주 정도는 마셨지만 나이가 들수록 미세한 차이라도 뛰는 게 조금씩 힘들어지는 걸 느끼고 끊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파티에서 맥주를 몇 잔 마시기는 했지만, 리타가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었다.

“물이라도 좋아요.”

리타는 말했다.

“내가 원래 손님한테는 절대 이러지 않는데, 그쪽은 정말 놓치기가 아까워서.”

“제가 이 문신을 왜 새기는 것 같습니까?”

리타는 빤히 도영을 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 친구가 힘들어하는구나.”

잘 아는 것 같으니 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보기와 다르게 다정한 타입이었구나. 나쁜 남자인 줄 알았는데.”

그저 일어나며 물었다.

“끝났으면 가봐도 됩니까?”

옷걸이에서 재킷을 꺼내 입었다. 리타는 일어나서 배웅하는 미용실 직원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의자에 두 팔을 걸치고 말했다.

“혹시라도 생각 바뀌면 연락해요. 연락처는 알 테니까.”

도영은 문 앞에서 돌아보고 가게를 나섰다.

“안 바뀔 겁니다.”

리타는 중얼거렸다.

“정말 아깝네.”

***

도영은 집으로 들어섰다.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부엌으로 가자 테이블에 셋이 둘러 앉아있었다.

“도영, 왔어?”

가말이 돌아보고 물었다.

“오셨습니까?”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토라가 물었다. 그 옆에 앉아있는 라토는 살짝 묵례했다. 도영은 복잡한 심정으로 눈앞의 풍경을 보았다.

이 셋이 유난히 사이가 좋은 파트로네스, 클리엔테스인 건 알지만 제 여자가 잘생긴 쌍둥이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토라 하나만 있을 때는 그나마 효과가 덜했는데 둘이 되니 왠지 가말을 둬선 안 될 곳에 놔둔 느낌이었다.

덜컹.

가말이 갑자기 의자를 밀치고 일어섰다.

“도영, 왜 피 냄새가 나? 다쳤어?”

설마 그랬을까 싶어 가말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도영이 대답하려는데 토라가 차를 마시며 물었다.

“잘 됐습니까?”

가말은 토라를 봤다가 다시 도영을 보았다. 그리고 목의 문신을 뜯어보았다.

목을 따라 둘러진 검은 문신은 얼핏 보면 기하학적인 문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사타디어를 형상화한 모양이었다. 토라나 라토의 몸에 있는 것처럼.

그리고 가말은 제 목에 뭐가 있는지도 잊고 살던 도영이 굳이 문신을 새기고 온 이유를 알았다.

가말은 문신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문신… 아파?”

도영은 가말에게 몸을 기울이고 말했다.

“아파. 핥아줘.”

토라가 뒤로 지나가며 말했다.

“문신도 상처라 함부로 핥으면 덧납니다.”

도영은 어깨너머로 서늘한 시선을 던졌다.

“좀 가라.”

“갈 겁니다. 마티, 안녕.”

“토라, 라토, 잘 가.”

가말은 현관으로 가는 쌍둥이에게 인사했다. 토라는 손을 흔들고 라토는 살짝 고갯짓만 하고 집을 나섰다. 도영은 둘을 보며 물었다.

“라토 저 친구랑은 괜찮아?”

토라는 쇼윈도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속이 투명했지만 라토 쪽은 아직 거리감이 있었다. 일단 정중하게 대해주긴 하지만 말이 별로 없는 편인데다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여간 이 나이에 커다란 양아들이-심지어 그보다 나이도 몇 배는 많은- 그를 인정하는지 안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그런데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가말이 이리저리 킁킁대며 제 냄새를 맡고 있었다.

“뭐해?”

도영은 하도 기가 차 물었다. 가말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자 냄새 나.”

도영은 ‘아아’ 소리를 냈다.

향수 냄새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리타는 화려한 스타일만큼 향수도 강했으니까.

“타투이스트가 여자였어.”

“문신을 새기는 건 신성한 일이야. 여자가 하면 안 돼.”

“무슨 고대 유물 같은 소릴… 아, 고대 유물 맞지.”

도영은 말하다가 깨달았다. 그때 가말이 말했다.

“남자한테 가.”

도영은 가말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 귀여운 뱀파이어 녀석….

“질투하는 거야?”

가말은 고개를 내젓고 했던 말을 반복했다.

“여자 냄새 나.”

“실력이 좋아.”

밀어붙이면 뭔가 나올 것 같아 일부러 말했다. 그러자 가말은 얼굴이 불퉁해졌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돌아서 방으로 올라갔다.

“도영은 여자를 좋아하니까.”

도영은 그녀를 따라가 문가에서 말했다.

“좋아하지.”

가말은 바로 울컥했다. 도영은 그 타이밍을 노린 듯이 덧붙였다.

“그러지 않으면 널 좋아할 수 없잖아.”

“말장난 재미없어.”

가말은 그를 흘겨보았다.

흘겨보다니, 그건 처음 보여주는 모습이라 신선했다.

그리고 가말은 일부러 그를 무시하는 척 옆으로 지나가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도영은 말했다.

“새침한 척도 하네.”

“척 아냐.”

가말은 호랑이가 제 으르렁거림을 고양이의 가르랑거림으로 취급받은 듯이 화를 냈다.

오히려 고양이가 털을 세운 모습을 보듯이 도영은 심장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애써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리고 가말의 팔목을 잡았다.

“네 마음을 말하라고 했잖아.”

“후회하지 마.”

여봐란듯이 말하는 것도 꽤나 귀여웠다.

제 모습이 정말 무서울 거라고 믿고 있는 듯이 가말은 무작정 그를 붙잡고 키스했다. 거의 박치기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부딪쳐오는 모습이었다.

“도영은 내 거야.”

어느 순간 도영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깨물지 마.”

하지만 가말은 더 깨물었다.

도영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

“근데 저 녀석들을 어떻게 키웠어?”

나란히 누워 도영은 물었다.

“숲에 왔을 때 다섯 살이었어. 둘 다 가릴 건 가렸어.”

“가릴….”

별로 안 좋은 그림을 상상할 뻔했다. 그때야 아이들이었겠지만 지금 장대 같은 모습을 보면 오히려 어린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

가말은 계속 말했다.

“둘 다 어른 같았어. 나 많이 도와줬어. 토라, 라토 키우는 동안엔 외롭지 않았어. 둘이 결혼하고 마을로 갔어. 외로웠어.”

천장을 보는 눈빛이 우련하게 깊어졌다.

“니카가 죽었을 때… 결혼시키지 말 걸 생각했어. 나 때문에 라토가 뱀파이어가 된 거야. 토라도.”

또 이상한데서 제 탓을 하고 있다 싶어 도영이 말하려고 했을 때였다.

“근데.”

가말이 먼저 덧붙였다.

“라토, 토라가 뱀파이어가 됐을 때 조금 기뻤어. 알아. 나쁜 생각.”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그 후로 라토, 토라는 떠나지 않았어. 한동안 그만 살고 싶었어. 하지만 둘이 날 살게 했어.”

도영은 셋 사이를 질투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쌍둥이는 가말에게 아들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더 이상 지속해야 할 이유를 모를 삶을 살아낼 원동력에 가까운.

가말이 자유가 없는 삼천 년이란 세월을 살아낼 수 있었던 건 첫 번째로는 자유로운 미래에 대한 낙관이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어느 순간 제게 찾아온 인연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영은 토라와 라토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 덕분에 가말이 오늘날까지 살아왔으니까.

가말은 도영을 돌아보고 웃었다.

“둘 다 다 컸어. 이젠 기뻐.”

“다 크기만 했을까.”

도영은 시니컬하게 말했다.

그런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훈훈하게 말할 수만은 없는 건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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