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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베스티아-70화 (70/110)

70화<쭈니>

도영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가말 옆으로 다가가 싱크대에 손을 짚었다.

가말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영이 먼저 말했다.

“맛있어 보이네.”

“그래? 다행이야.”

가말은 도영을 보지 않고 말하고 계속 냄비를 저었다. 도영은 한동안 유심히 지켜보다가 물었다.

“다된 거 아냐?”

“응. 조금 더하면.”

여전히 가말은 도영을 돌아보지 않았다.

무엇이 스위치를 켰는지 모르겠지만 가말에게서 흥분한 냄새가 났다.

암컷이라고 하면 심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그런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는 냄새였다.

인간이었을 때는 평생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는데, 항상 이런 냄새를 맡으면서 그 정도로밖에 방만하지 않은 토라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말의 몸이 그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말은 그런 자신이 낯설어 애써 숨기려고 하고 있었다.

도영의 가슴속에서 조금 다른 종류의 사냥 본능이 움틀었다.

도영은 태연히 물었다.

“파슬리를 좀 더 넣어야 하지 않아?”

“파슬리가 뭐야?”

도영은 가말 뒤로 선반에 달려있는 양념통으로 손을 뻗었다. 몸이 거의 닿을 것 같자 가말은 숨길 새도 없이 흠칫했다. 그리고 얼른 먼저 양념통을 꺼냈다.

“내가 넣을게.”

도영은 옆에 가만히 서있었다. 열기가 느껴질 것이다.

마침내 가말이 그를 흘긋 보았다.

“왜 거기 서 있어?”

“혹시 그거 알아?”

“뭐…?”

“그거 강황 가루야.”

가말은 놀라 스튜를 보았다. 노란색으로 물든 스튜가 지옥의 유황탕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당황하던 가말은 흠칫했다.

“읏, 도영….”

도영이 어느새 뒷목을 핥고 있었다.

“잠깐….”

도영은 가말의 허리를 잡아 싱크대 옆 조리대에 올려놓았다.

“싸웠어. 초등학생처럼. 성질을 못 참아서.”

가말은 깜짝 놀랐다.

“싸웠어? 다쳤어?”

그러고는 도영이 어디 다쳤을까 싶어서 다급한 몸짓으로 둘러보았다. 도영은 그런 가말의 얼굴을 잡아 그대로 키스했다.

도영은 홈 AI에게 말했다.

“블라인드를 닫아줘.”

자동으로 천천히 블라인드가 닫혔다. 하지만 워낙 햇빛이 강한 상태여서 흰 블라인드 너머로 햇빛이 넘실거렸다.

온 집이 투과되어 들어오는 아이보리색 햇빛으로 가득했다. 마치 황금색 물속에 있는 것처럼.

가말은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 사이를 채운 성적인 긴장감이 물처럼 넘실거렸다.

이내 가말은 더 이상 도영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녀는 최근 도영만 보면 몸이 뜨거워져서 곤란했다.

도영은 멋있었다. 예전에도 멋있었지만 그때는 소년 같은 해맑은 느낌이 있었다면 지금은 좀 더 짙고 어두운, 낮이 밤이 된 느낌이었다.

안 그래도 타운의 여자들이 넋 놓고 도영을 보는 걸 보았다. 여자들은 ‘인간에서 루아스가 된 사람들을 몇 보았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멋있게 변한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꽉 조여있지만 내재된 힘이 느껴지는 매끄러운 몸, 짓궂은 빛이 섞여있는 낮은 눈빛….

같이 있지 않을 때도 도영 생각을 하면 멍해지고, 종종 소름이 올라왔다.

아다위는 다정했고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왜 그래?”

도영은 가말이 자신을 보게 하며 물었다. 가말은 주저했다.

“도영이 너무….”

“내가 너무?”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최대한 말해봐.”

가말은 뜨거운 숨처럼 말을 토해냈다.

“참을 수 없게 해….”

도영은 가말의 목덜미에서 귓불까지 핥으며 속삭였다.

“네 피를 빨고 싶어.”

이 보들거리는 피부 아래 달콤한 수액이 흐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피부 너머 넘실거리는 수맥을 따라 길게 핥아 올렸다. 가슴골을 지나 목을 타고 귀 뒤까지 두근거리는 피의 흐름을 쫓았다.

가말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더듬더듬 말했다.

“안 돼. 감염원이 달라서….”

“알아.”

도영은 배에서 명치까지 길게 핥아 내렸다.

“하지만 널 전부 내 안으로 마셔버리고 싶어.”

가말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는 소리가 들렸다.

흡혈귀가 된다는 건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폭발적인 충동에 시달린다는 의미였다.

도영은 이를 세웠다. 저항이 느껴지는, 단단하면서도 여린 귓불을 뚫고 첨단이 밀려들어갔다.

귓불을 깨물린 가말은 크게 몸을 떨었다. 가말이 고통스러워하는 게 분명했지만 도영은 개의치 않고 피를 빨았다.

“도영…!”

도영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가말은 다급하게 그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피를 제 안으로 삼켰다. 그러고도 혹시라도 남아있을까 혀로 입안을 샅샅이 훑었다.

그사이에 입술이 몇 번이고 부딪쳐 키스를 하는 건지 피를 핥아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겨우 떨어졌지만, 눈이 마주쳤다.

잿빛이 섞인 푸른 눈동자가 휘몰아쳤다.

가말은 입안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흥분으로, 충동으로, 욕망으로.

가말은 충동을 토하듯이 도영에게 키스했다.

***

도영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땀이 배인 가말을 끌어안은 그대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꽃꽂이가 확실히 효과가 있네.”

“그래…?”

가말은 몽롱해서 도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기계적으로 되물었다.

“좀 더 자주 해야겠어.”

진짜 의미를 알면 기겁할 만한 말이었지만 그걸 알 리 없는 가말은 그냥 숨만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다.

도영은 송곳니 구멍이 난 귓불을 핥았다.

“아파?”

가말은 고개를 저었다.

“뭔가… 짜릿했어.”

도영은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음란해졌어.”

가말은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음란이 뭐야? 좋은 거야?”

하긴, 누가 그런 단어를 가말 앞에서 썼겠는가?

도영은 가말의 볼에 뽀뽀하고 말했다.

“좋은 거야.”

***

다음 날이었다. 식당은 분주하고 웅성거렸다. 그 사이에서 도영과 팀원들 몇은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맥코이 하사에게 전화가 왔다.

“응.”

맥코이 하사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상대편이 하는 말을 듣는가 싶더니 날숨을 들이켜 쉬었다. 하지만 다들 밥을 먹느라 그가 그러는 걸 몰랐다.

맥코이 하사가 전화를 끊고 말했다.

“소령님, 가말 씨한테 뭐라고 한 겁니까?”

모두 무슨 일인가 싶어 맥코이 하사를 쳐다보았다. 맥코이 하사는 기가 차다는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가말 씨가 아까 반상회에서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도영이 나한테 음란해졌대.”

가말은 뿌듯하게 말했다. 정말 더 뿌듯할 수 없게.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말을 쳐다본 채로 얼어있었다.

쨍그랑.

누군가가 놓친 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쿨럭….”

한 중사는 사레가 들려 다급하게 숨을 삼켰다. 맥코이 하사는 말했다.

“사람들이 다 뒤집어졌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도영은 당황하지 않았다. 디저트로 나온 과자를 집어먹더니만 입매를 늘어뜨리며 웃었다.

“가말은 참 귀여워요. 그쵸?”

그러고는 일어나서 갔다.

모두 그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개중 한 대원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소령님 이미지가 좀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뭐예요, 저 ‘나쁘지만 섹시해’ 남자 느낌은?”

한 중사는 손을 저었다.

“저러는 건 원래 그랬어요. 툴툴거리는 게 사라져서 그렇지.”

***

“으응… 도영….”

가말은 칭얼거렸다. 도영은 가말의 목 뒤를 입술로 훑어 내려가며 말했다.

“모임에서 많이 음란해졌다고 자랑했다며?”

“안 그래도 도영이… 거짓말해서… 좋은 게 아니었잖아.”

“좋은 거야. 나한테는.”

“또 오, 오자마자….”

가말은 부르르 떨었다. 시린 빛이 흐를 정도로 희고 가느다란 허리가 떨리는 모양새가 꼭 꽃줄기가 바람에 떨리는 것 같았다.

도영은 가말을 끌어안고 소파에 누웠다. 몸속에 넘실거리는 난폭성이 이제야 좀 잠잠해지는 느낌이었다.

도영은 완전히 힘을 풀고 제게 기대고 있는 가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물었다.

“가말, 뭐 하고 싶은 게 있어?”

“하고 싶은 거…?”

가말은 졸려서 웅얼거렸다. 도영은 말했다.

“일이나 취미 같은 거.”

“잘 모르겠어.”

“천천히 찾아봐. 시간은 많으니까.”

“응….”

가말은 천천히 몸이 이완되었다. 잠든 모양이었다. 도영도 잠이 발끝에서부터 밀려오듯이 졸려져서, 그대로 잠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잤는지 얼핏 정신이 들자 둘은 소파에 푹 잠겨있었다. 가말은 그대로 도영 위에 엎드려있었다.

그의 몸 위에 얹어놓은, 따듯한 물을 넣어놓은 물렁한 찜질팩처럼 그의 몸에 딱 맞는 모양으로 얹어져있었다.

가말이 맞닿아있어서 슬그머니 욕망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완전히 풀어져있는 가말을 보니 깨우고 싶진 않았다.

밖에는 추적거리며 비가 오고 있었다. 안락한 느낌이 들어, 도영은 가말의 사늘한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어 내렸다.

아기처럼 새근대며 자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평온하다는 느낌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사람들이 이래서 결혼을 하는 것 같았다. 둘이 존재하는 이 공간을 지키고 싶었다.

“응….”

그때 가말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사타디어로 도영으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안 돼, 그만….」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깨울까 싶었는데 바로 깨우면 놀랄까봐 도영은 가말의 등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가말은 흠칫하고 벌떡 일어났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난 가야 돼.”

그리고 가말은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일어나 뛰어나가려고 했다. 도영은 얼떨떨했지만 얼른 일어나 가말의 팔을 잡았다.

“가말. 왜 그러….”

“가야 돼!”

가말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고 도영을 뿌리쳤다. 그리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도영은 혀를 내차고 가말을 쫓아나갔다.

“가말!”

도영은 막 거리로 나간 가말을 붙잡아 돌렸다.

“대체 어딜 간다는 거….”

“난 널 죽게 해. 언젠가.”

가말은 발작적으로 말했다. 도영은 멈칫했다.

가말은 도영에게 잡힌 팔을 잡아당기면서 거의 울 듯이 말했다.

“난 섬에서 나오면 안 돼. 섬으로 돌아갈 거야. 다시는 누구도 만나지 않아.”

도영은 미간에 심각한 빛이 흘렀다.

“이제 대공 녀석은 네가 섬에 숨어있었다는 걸 알아. 어떤 섬에 숨어도 금방 찾아낼걸.”

“내가 죽으면 끝나.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하지만 무서웠어,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었어. 난 도망쳐왔던 거야, 죽음으로부터.”

그러더니 가말은 도영을 밀쳤다.

“놔줘, 제발…!”

하지만 도영은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갑자기 가말의 팔을 잡아끌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말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힘을 주었지만 도영을 떨쳐낼 정도로 강한 힘은 아니었고, 설사 그렇다 해도 도영의 힘이 세서 쉽게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말은 목줄에 메인 개처럼 뒤로 버티면서 끌려갔다.

“도영…!”

집으로 들어간 도영은 아까 누워있던 소파의 쿠션 아래쪽에 손을 넣어 권총을 꺼냈다. 가말은 도영이 권총을 제 관자놀이에 겨누자마자 방아쇠를 당기는 걸 보았다.

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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