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쭈니>
도영은 턱을 괸 자세 그대로 눈도 깜빡이지 않고 강도들을 쳐다보았다. 강도들이 움직이는 걸 따라 눈동자만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팀원들은 어쩐지 그게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 같아서.
하지만 고작(?) 동네 무장 강도 둘에 루아스 특수부대원을 갖다 댔다가는 과실치사가 나올 것이다.
아침까지 계속된 훈련을 겨우 끝내고 귀가하는 길에 간단하게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왔다가 무장 강도를 맞닥뜨린 그들이 불쌍한지, 아니면 마침 식사 중인 특수부대원 일곱 명-루아스 둘포함-을 마주친 강도 둘이 더 불쌍한지는 좀 깊이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한 중사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일을 마친 강도들이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한 중사가 손짓하는 동시에, 도영과 맥코이 하사를-즉 루아스들- 제외한 팀원들이 전부 뛰어나가 강도들을 덮쳐들었다.
“뭐…!”
강도들이 깜짝 놀라는 소리에 이어 우당탕 구르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그 와중에 맥코이 하사는 혹시 몰라 앉은 채로 대기하고, 도영만 태연하게 햄버거를 먹었다.
“이 새끼들이!”
강도 하나가 악에 받쳐 총을 꺼내어 들자 한 중사가 그걸 재빨리 뺏었다. 그야말로 그냥 손에서 집어서 가져오듯이.
분명히 보면서도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기에 강도는 자신이 뭘 본 건지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한 중사는 웃으며 슬라이드를 당겼다.
“무력화시키려면 어쩔 수 없어서 말이야. 안 아프게 쏴줄게.”
그러고는 바로 강도의 허벅지에 총을 쐈다.
탕!
강도는 바닥에 구르며 돼지 멱을 따는 것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안 아프게 쏴준다는 말에 배신당한 사람 같은 얼굴로 한 중사를 보았다.
“아, 아프…!”
한 중사는 코웃음을 쳤다.
“이거 웃긴 놈일세. 아무리 내가 그렇게 말했기로서니 총 맞고 아예 안 아플 리가 있냐?”
거의 정리되는 분위기에 도영은 다 먹고 난 햄버거 포장지를 구겨 트레이에 던졌다. 그리고 일어나 트레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
그때 뒤에서 들려 온 작은 소리에 도영은 고개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말을 한 건 뒤쪽 의자에 앉아있는 여자들 셋이었다.
“덕분에 살았어요.”
여자들은 강도들이 제압된 모습을 보더니 슬그머니 의자에서 나와서 말했다.
그러자 강도 하나를 무릎으로 내리누르고 있는 크루즈 중사가 어리둥절해하며 옆에 있는 한 중사에게 물었다.
“제압한 건 우리인데 왜 인사는 소령님한테 하는 거야?”
“거울을 보면 알게 될 거야.”
상당한 현실주의자인 한 중사는 다른 강도의 팔을 묶으며 무심한 투로 말했다. 그동안 도영은 여자들에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다치지 않으셨다면 다행이군요.”
여자들은 시선을 교환하더니 물었다.
“루아스이시죠? 악수 한번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갑자기 웬 악수 타령인가 싶었다.
반면 크루즈 중사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아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소령님한테….”
“돌머리야. 구실이라는 단어는 아냐?”
한 중사는 한심하다는 어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
크루즈 중사가 반문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도영이 홱 창밖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비호같이 옆에 있는 테이블을 잡아 뽑았다.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테이블을.
다른 사람들은 미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도영이 그러자마자 바로 총성이 울렸다.
우두-두-두-두.
창이 산산조각 나 무너지고 도영이 들고 있는 테이블이 총격을 받아 흔들거렸다. 여자들은 제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내질렀다.
깨진 유리 파편으로 엉망이 된 창가 밖에 평범한 캐주얼 복장을 한 남자 둘이 소총을 들고 서있었다. 저걸 저 차림 어디에 숨겨서 다가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다른 남자가 나타났다. 어깨에 RPG(휴대용 대전차 유탄 발사기)를 짊어진 채로.
“소령님!”
한 중사가 경악해 돌아보면서 외쳤다. 그 뒤로 남자가 RPG를 쏘았다. 탄두는 굉음과 불꽃을 뿜으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도영은 테이블을 집어던졌다. 테이블이 바닥에 떨어져 양쪽이 다 부서지는 소리가 시끄러울 법했지만, RPG 탄두가 날아오는 소리에 묻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도영은 RPG 탄두가 정면으로 날아오는 자리에서 피하지 않았다. 그가 피하면 이 자리에 남게 되는 건 적어도 살아있는 종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팀원들이 모두 경악해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도영은 불꽃 꼬리를 폭발시키며 날아오는 RPG 탄두를 잡았다.
손으로.
***
“아무리 루아스라도 손바닥 살갗이 벗겨지죠.”
군의관은 가차 없이 말했다.
“당연하죠. RPG 탄두를 손으로 잡았으니까요. RPG의 뜻이 왜 ‘휴대용 대전차 유탄 발사기’인지 아십니까? 대전차용이란 말입니다.”
군의관 앞에 앉은 도영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바닥이 벌겋게 타버렸다. 인간이었을 때 이 정도 화상이었다면 손바닥 살갗 이식 수술을 몇 번이나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나마도 자폭하기 전에 다른 방향으로 집어 던진다고 거의 후려치는 느낌으로 받아서 그렇지, 정통으로 받았더라면 루아스의 손이라고 해도 남아나는 게 없었을 터였다.
어쨌거나 도영은 두통이 올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에 제가 잔소리할 때 강연하 소위의 기분이 이랬겠군요. 될 거 같았는데 좀 부족했던 걸 어쩌겠습니까?”
“루아스 대원들의 사망 원인 1위가 뭔지 아십니까?”
“모르면 안 됩니까?”
안 되는 모양이었다. 군의관은 무시하고 말했다.
“무리한 임무 수행으로 인한 부상입니다. 그것도 몸이 튼튼한 만큼 한번에는 안 죽고 기지에 돌아와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죠.”
붕대를 감으면서도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목이 잘리고도 겨우 살아나서 임무 중에 입은 부상 때문에 병든 닭처럼 앓다가 죽고 싶으신 건 아니죠?”
도영은 머리가 아파왔다.
“일 절만 하죠.”
“도영!”
갑자기 가말이 외치는 소리와 동시에 자동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즉, 부서진 것이다.
도영은 눈을 굴렸다.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는….”
그리고 돌아보다 말고 멈칫했다. 입구에 서있는 가말은 섬세한 레이스가 달려 사랑스러워 보이는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웨딩드레스도 최대한 간편하게 입기로 했는데 마침 고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드레스 입어보고 있었어?”
“도영, 상처는….”
얼마나 뛰어왔는지 가말은 숨을 헐떡이며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도영은 가말을 보면서 말했다.
“예쁘네.”
“뭐가 어떻게 된….”
“넌 마음에 들어?”
서로 계속 말이 엇갈리자 가말은 멈칫했다. 그리고 그녀가 재롱부리는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냥 따듯한 눈으로 보고 있는 도영을 올려다보다가, 원피스를 잡아 단번에 머리 위로 벗어던졌다.
그러자 흰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친 매끄러운 몸이 드러났다. 가말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다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영은 난폭하게 인상을 구겼다.
“가말, 무슨 짓을….”
“내가 끝낼 거야.”
갑작스러운 말에 도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뭘?”
가말은 속옷 차림으로 똑바로 선 채 당당하게 말했다.
“쿠니스는 내 상대가 되지 않아.”
여태 쿠니스를 상대할 수 없었던 건 그가 ‘집단’을 다룰 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말은 개인적인 힘으로는 자신이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무협지에서처럼 초야에 은둔해 무술을 갈고닦듯이 노력해온 건 이쪽이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상대한다면 쿠니스를 이길 수 있다.
“가말.”
갑자기 목소리 톤이 너무 낮아져서 가말은 움찔했다.
도영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매우.
“내가 이름에 대해 뭐라고 했어?”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말라던 말이 그때만 의미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가말은 발작적으로 말하려고 했다.
“가말.”
흡사 병사에게 명령하는 조교 같은 투였다.
가말은 말문이 막혀 도영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도영은 팔짱을 꼈다.
“옷 입어.”
가말은 고개를 떨군 그대로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하지만 도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셋 센다. 그 안에 입지 않으면.”
도영이 팔짱을 풀자 정말 뭔가 할 것 같아 가말은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도영 미워!”
그러고는 뛰쳐나갔다.
군의관은 고개를 젓고 중얼거렸다.
“섬세하지 못했다고요.”
***
도영은 집으로 들어갔다.
“가말.”
대답이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했는데 집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말.”
도영은 가말을 부르면서 집 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가말은 보이지 않았다.
도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부엌에 섰다가 유리 너머 정원 한편에 있는 나무 통나무집을 보았다.
전에 이 관사를 쓴 사람들이 가족이었는지 정원에 아이들이 쓰던 작은 통나무집이 있었다.
혹시 싶어서 도영은 자동으로 열리는 전면 창을 넘어 정원으로 나갔다. 그리고 통나무집을 열고 들어갔다.
가말은 반대편 벽에 붙어서 다리를 무릎으로 감싸고 뒤돌아 앉아있었다. 삐친 아이처럼.
“가말.”
불렀지만 가말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영은 문을 닫고 들어가 가말 뒤에 섰다. 가말은 고집스럽게 뒤돌아보지 않았다.
도영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제 허리춤에서 글록을 꺼내서 슬라이드를 당기고 가말에게 쥐어주었다. 이어서 가말의 손을 감싸 잡아 제 가슴 쪽으로 겨누었다.
가말은 흠칫하며 글록을 빼려고 했다.
“도영, 또….”
도영은 가말의 손을 잡아 고정시켰다.
“만약 지금 네 앞에 있는 게 그 녀석이라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겠어?”
가말은 말문이 막힌 얼굴이었다.
“난….”
도영은 진지한 눈으로 다시 물었다.
“당길 수 있어?”
가말은 꾹 어금니를 물었다.
“있어. 쿠… 는 사람들을 죽게 했어.”
대공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말라는 말 때문에 이름은 탈락시키고 조사만 쓰는 모습이 쓰러지게 귀여워서 도영은 본래 의도도 잊어버릴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가말이 계속 말해서 본래 의도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
“날 괴롭히는 건 괜찮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괴롭혔어. 도영을 죽일 뻔했어. 그건 안 돼.”
“가말.”
도영은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누구나 방아쇠를 당길 순 없어. 그건 네 일이 아니야.”
“…….”
가말은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봐서 말문이 막혔다. 방아쇠를 당기는 게 그녀의 일이 아니라니…. 그런 식으로 생각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도영은 가말의 손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거야. 강하다는 거랑 냉정하다는 건 같은 말이 아니야. 자신을 죽도록 괴롭힌 사람이라고 해도 보통 죽일 생각 같은 건 못하는 게 당연해.”
도영은 어깨를 으쓱이고 덧붙였다.
“죽어버리길 바랄 순 있어도.”
그러고는 가말을 똑바로 보았다.
“사람들을 흡혈하기 싫었던 거지? 그러니까 넌 꽃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거야.”
가말은 제 손을 감싸 쥐고 있는 도영의 손을 보고 가만히 있었다. 이제 그가 말하려던 걸 이해한 것 같아서, 도영은 글록의 슬라이드를 풀어 다시 허리춤에 넣었다.
그러자 가말이 도영의 양손을 펼쳐 잡았다. 붕대로 싸인 손을 보는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도영이 다쳤어. 가슴이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