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쭈니>
“곧 UFD(The United Federal Desert, 연합 사막 연방)의 국경을 넘어가게 됩니다.”
조종사가 흘긋 돌아보고 말했다. 하지만 도영은 눈에 힘을 주고 앞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식별되지 않는 외국 군용기에게 전한다.]1)
마침 교신이 들어왔다.
[해당 군용기는 국경에 접근 중이다. 기수를 돌리길 바란다.]
창밖을 보자 저 멀리 언뜻 전투기가 두 대가 따라 붙어있었다. 조종사는 대답했다.
“우리는 MCTC 소속의 군용기다. 무선을 보내는 쪽의 신원을 밝혀라.”
[UFD 공군이다.]
조종사는 창밖 전투기들의 기색을 살피면서 교신을 보냈다.
“우리는 합법적인 군사행동으로 UFD의 영내로 들어가길 원한다. 허가 바란다.”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이쪽도 모두 아무 말하지 않고 긴장이 감도는 분위기에서 기다렸다. 마침내 다시 교신이 들어왔다.
[해당 군사 행동을 불허한다. 바로 돌아가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소령님.”
조종사가 심각한 얼굴로 돌아보고 불렀다. 하지만 도영은 후퇴를 명령하지 않았다. 그저 앞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경고다. 기수를 돌리지 않으면 격추하겠다.]
“소령님.”
도영은 이를 꾹 물었다.
고집을 피운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이대로 밀고 들어가 봤자 전 UFD 공군의 추격을 받을 뿐이었다.
“돌리십시오.”
헬기는 호선을 그리며 반대로 기수를 돌렸다.
도영의 눈이 심각한 빛을 띠었다.
“UFD에서 레기온 녀석들을 요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는 의미는 두 가지였다. 레기온의 비행기를 놓쳤거나, UFD와 레기온 사이에 모종의 이해관계가 있거나.
안타까운 건, 첫 번째는 별로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었다. UFD도 그렇게 허술한 국방 시스템을 지니고 있진 않을 테니까.
***
“소장님.”
대위가 와서 렉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렉스는 드물게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뭐라고?”
소식을 전해준 대위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렉스는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자신이 소식을 전해주긴 했지만 대위는 반듯하기 이를 데 없는 소장이 욕을 다 쓰는 모습에 놀랐다.
“하필….”
렉스는 손을 내리고 대위를 보고 물었다.
“소령과 팀은?”
“곧 도착합니다.”
렉스는 말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막 격납고 앞에는 헬기가 내려앉고 있었다. 문이 전부 열리기도 전에 도영이 박차고 내렸다.
“UFD(연합 사막 연방)에 공조를 요청해주십시오. 한 시간 내로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소령.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렉스는 제 곁을 지나가는 도영에게 말했다.
“지금은 둘 다 듣고 싶지 않습니다.”
“들어야 할 겁니다.”
도영은 멈춰 서서 렉스를 보았다. 렉스는 지체 없이 말했다.
“좋은 쪽부터 말하죠. 축하합니다. 가말이 임신했습니다.”
도영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렉스는 덧붙였다.
“이번엔 진짜입니다.”
도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무슨 작전입니까?”
“공교롭게도 그사이에 착상된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주의를 했는데….”
안 그래도 이 상황에서 아이를 가지면 노릴 녀석들이 너무 많아서 최대한 주의했다.
하지만 렉스는 말했다.
“중요한 건 됐다는 겁니다.”
마침내 이 상황이 작전도, 기분 나쁜 농담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도영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게 무슨….”
그때 목소리가 들려와 돌아보자, 막 도착한 토라가 서 있었다.
“토라.”
도영은 기운이 빠지는 듯 토라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가말이….”
토라는 도영을 보았다가 렉스를 보았다.
“그럼 지금 아이를 가진 마티가 그 미저리 녀석 손에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토라는 기가 차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 상황에 나쁜 소식은 뭐죠?”
“같은 겁니다. 가말이 임신했습니다.”
렉스는 쓴웃음을 짓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죠.”
***
수송기는 좀비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듯이 텅 비어있는 공항에 착륙했다.
거기서 헬기로 바꿔 타고, 또 한참을 날아갔다. 가는 내내 아래로는 끝없이 모래 바다만이 펼쳐졌다.
헬기가 빠르게 지나가 꼭 모래가 파도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서 가말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폭탄을 심은 이후로 쿠니스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조금 떨어진 가운데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갔는지 모래의 망망대해가 끝나는 곳에, 마침내 도시가 나타났다.
가말은 창에 붙이고 있던 얼굴을 서서히 들었다.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떠오르는 건 도시가 아니었다. 요새였다.
일순 도시로 착각할 정도로,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이어지며 반대쪽에 자리한 절벽 끝까지 성벽에 둘러싸인 거대한 요새였다.
꼭 시리아의 십자군 요새 크락 데 슈발리에와 현재는 스페인인 옛 그라나다 왕국의 알함브라 궁전을 섞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전체적인 형태는 적군을 막는 데 기능과 구조를 집중한 요새지만, 성벽은 왕궁을 보호하는 것처럼 육중한 삼중 구조였다.
그 안쪽으로 피아식별(아군인지 적군인지 식별하는 일)을 끝낸 지대공 미사일들이 덜컹거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AF-11. 착륙을 허가한다.]
헬기 조종사가 무전을 받고 조종간을 틀자 헬기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성벽을 넘어갔다. 그리고 요새 가운데 광장에 내려섰다.
천천히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잦아들었다.
철컹.
헬기 문이 열리고 쿠니스가 먼저 내려섰다. 이어서 옆에 앉아있던 레기온 대원이 가말에게 말했다.
“내리시죠.”
가말은 일어나 내려갔다. 밖에는 이런 기후에서는 더워 보일 정도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소총을 들고 포진해있었다.
겉보기엔 다소 황량해 보였지만 요새 내부는 중세에 지은 요새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호사스러웠다.
바닥 전체에 색이 화려한 타일이 깔려있었고, 낮은 계단을 내려가 이어지는 네모난 중정의 연못에는 폭포가 쏟아졌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셨습니까.”
선두에 서있는 토브(아랍 남성이 입는 겉옷)를 입은 아랍계 중년 남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가 고개를 들자 붉은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하심, 오랜만이군.”
쿠니스가 알은체하자 하심이 정중하게 묵례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준비되었다는 연락은 받았지만 요새에는 처음 와보는 쿠니스가 주변을 둘러보자 하심이 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지낼 만하겠군.”
그때 하심의 시선이 뒤에 서있는 가말에게 멈추었다. 그녀를 발견한 붉은 눈이 타올랐다.
“마침내 쌍둥이분을 찾으셨군요.”
쿠니스가 가말을 돌아보고 이곳의 주인처럼 말했다.
“어서 와.”
“여긴….”
가말은 주변을 보았다.
“우리의 새로운 고향이야.”
색색의 불빛이 빛나는 궁전은 오히려 로맨틱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무장을 한 경비병들과 고급 호텔의 직원처럼 흰 제복을 입은 남녀들, 캐주얼부터 클래식까지 제멋대로 통일성 없는 옷을 입은 레기온의 간부들이 포진해있었다.
그 가운데 쿠니스는 연회에 온 사람처럼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상태였다.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사진들을 잘라 갖다 붙여놓은 것처럼 기이한 그림이었다.
가말은 다시 쿠니스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우린 한 번도 왕궁에 살았던 적 없어.”
“곧 적응될 거야.”
그렇게 말하고 쿠니스는 가말에게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가말은 흠칫 물러나며 제 곁에 있는 라토의 팔을 꽉 쥐었다.
“내게 다가오지 마.”
쿠니스는 멈추었다. 라토도 가말을 제 뒤로 감추면서 적대적인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쿠니스는 둘 사이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어차피 갈등의 골이 깊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방을 안내해줄 거야. 일단 쉬어.”
말하고 쿠니스는 돌아서서 갔다. 그러자 레기온의 간부들이 왕의 망토처럼 전부 따라가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 장관에 가까웠다.
이내 주변에는 흰 옷을 입은 자들만이 남았다.
“마티.”
간부들이 사라지기 기다렸다가 라토가 작게 불렀다. 가말은 라토의 손을 꽉 쥐었다.
“괜찮아.”
그때 흰 옷을 입은 여자들이 다가와 말했다.
“방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가말은 그들을 의아하게 보았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여기 있는 여자들은 인간이었다.
처음에는 이 요새에 잡혀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자들의 얼굴에서는 특별히 두려움이나 공포가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태연해 보였다.
“여기 잡혀있는 거야?”
가말이 묻자 여자들은 오히려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네? 아뇨.”
“그럼 여기서 뭐해? 너흰 인간이잖아.”
여자들은 여전히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말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온화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사도님을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에는 가말이 이해하지 못했다.
“사도님?”
“네, 사도님.”
“나?”
낯선 호칭이 자기를 말한다고 생각지도 못한 가말은 되물었다.
“왜 날 모셔?”
여자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도님께서 지상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모시는 일은 당연합니다.”
갑자기 라토가 가말의 손을 힘주어 잡자, 가말은 라토를 올려다보았다.
라토의 얼굴이 심각했다. 아니, 정체가 탄로 난 뒤로 계속 심각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곳이 제 무덤이라는 이야기라도 들은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라토?”
가말이 불렀지만 라토는 여자를 보고 물었다.
“영원교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네?”
여자들은 자신들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하지만 그건 위치나 권리가 되지 않아서라기보다 해가 뜨고 밤이 오는 것처럼 당연해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보지 않은 이치에 대해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습니까?”
그때 좀 나이 든 여자가 여자들 사이로 다가와 물었다.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도록 자리를 비켜줬을 법한, 온화한 인상을 지닌 중년 여성이었다.
“아니야. 방이 어디라고?”
라토는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여자들이 안내하는 대로 복도를 걸어갔다. 가면서 가말이 작게 물었다.
“영원교가 뭐야?”
1) 교신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L17Mj3EPJA&ab_channel=%EB%A9%94%EB%A1%9C%EB%8B%88
https://www.youtube.com/watch?v=lunow6tNQeU&ab_channel=%EB%A9%94%EB%A1%9C%EB%8B%88
https://www.youtube.com/watch?v=ZQNYAk-9sjQ&ab_channel=%EB%A9%94%EB%A1%9C%EB%8B%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