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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베스티아-104화 (104/110)

104화<쭈니>

“그러니까 나 때문에 이러지 마. 위험해지는 일은….”

가말의 말에 드비나는 기가 막혔다.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그 말을 듣던 교주가 온화한 얼굴로 웃었다.

“아뇨. 사도님이십니다.”

“……?”

확언에 가말은 오히려 의아해져 교주를 보았다.

“전 계시를 받았습니다.”

교주의 휘어진 눈매 사이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빛이 일렁였다.

“어렸을 때부터 환영을 보았죠. 가슴에 불의 화살을 맞은 데레사 성녀가 느꼈던 것 같은 환락 속에서, 전 감히 존엄하신 메시아의 옥안을 보았습니다. 총수를 보는 순간 알았습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옥안이다.”

교주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메시아는 아직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믿는 이들이 하늘을 우러러 보는 가운데 광휘를 뿜으며 오실 분이었죠. 이렇게 오래되고 딱딱한 화석 같은 존재일 리 없었죠.”

교주의 눈이 거의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메시아의 강림이 머지않았습니다. 보십시오, 지복의 나라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가말은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이 인간들은 제 생각보다 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교주는 창 너머를 보고 환희에 차 말했다.

“저 빛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빛?”

가말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 밖을 보았다.

진짜 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반응할 새도 없이 저 멀리에서부터 가까워져서 사방에 눈부신 섬광을 뿌리면서 지나갔다.

쿵.

이어서 천지가 흔들렸다.

다들 놀라서 저마다 지지할 것을 붙잡으며 휘청거리거나 넘어졌다. 가말은 얼른 드비나를 잡아주었다.

드비나는 불안에 떨리는 눈으로 천장을 보고 중얼거렸다.

“공습이에요.”

공습이라면….

“MCTC야?”

가말은 심각하게 물었다. 그러자 드비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사도님이 아직 탈출하지 않았는데 공습할 리가 없어요. 이건….”

드비나는 긴장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로열 스타예요.”

***

“광신보다 더한 무기는 없지.”

리는 빛이 폭발하는 화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어떤 신념에 몰입하다 보면 맨손으로도 사람을 찢어죽일 수 있는 법이니까. 저 광신도들만큼은 나도 설득시킬 수 없을 정도거든.”

옆에 서있는, 정장을 입은 젊은 여자가 리를 흘긋 보고 말했다.

“고양이라도 쓰다듬고 있으셔야 할 거 같군요.”

리는 피식 웃었다.

“하긴, 완전히 악당의 포지션이군.”

그리고 화면을 보자 폭격기가 떨어뜨린 폭탄을 얻어맞은 한쪽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는 요새가 보였다.

리는 의자 팔걸이에 팔꿈치를 댄 손등으로 가볍게 한쪽 턱을 괴고 웃었다.

“어쨌든 아이만 있으면 돼.”

여기저기서 루아스 배아를 노리고 있지만 무지한 자들은 루아스 배아의 가치를 반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저건 유기물 형태로 태어나는 금에 다름없었다.

“저 광신도들 말마따나 저 배 속에 있는 건 메시아일지도 모르겠어.”

그러면서 리는 여자를 보았다. 화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을 비춘 눈이 기묘한 윤광을 발했다.

“우리 프로젝트의 앞날을 밝혀줄 메시아.”

***

“자, 이제 메시아께서 강림하실 시간입니다.”

교주는 근엄하게 선포했다.

“지엄하신 분께서 저희를 구원하여 지복의 나라로 인도하실 겁니다.”

그러자 영원교 신도들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드비나는 흔들리는 얼굴로 가말을 봤다가, 영원교인들 사이로 녹아들었다.

이 상황에서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섣불리 가말을 도우려다가 제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었다.

“다가오지 마.”

가말은 주춤 물러났다. 하필 영원교인들은 모두 인간이어서, 공격할 수가 없었다.

교주는 영원교인들 너머에서 말했다.

“고통은 없을 겁니다. 메시아가 오시는 길에 고통 같은 감정은 어울리지 않죠. 오로지 황홀감과 전율만이 있을 겁니다.”

가말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 베이비야. 메시아 따위가 아냐.”

그러자 갑자기 교주는 얼굴이 슬퍼졌다.

“사도께서 어찌 메시아의 존재를 부정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더니 갑자기 교주는 무슨 생각이 난 듯이 눈을 반짝였다.

“당신은 가짜 사도군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도들의 기색이 바뀌었다. 마치 영화에서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표정이 변하는 것처럼.

한순간에 가말을 보는 눈빛의 온도가 달라졌다.

영원교 교리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가짜 사도의 억압을 뚫고 강림한다는.

교주는 손가락 끝으로 찌를 듯이 가말을 가리켰다.

“메시아께선 메시아의 탄생을 저지하는 가짜 사도의 껍질을 뚫고 강림하시는 것이다.”

그러고는 천명했다.

“진짜 사도는 영생 그 자체이시니, 저 육체는 메시아의 탄생을 방해하는 껍데기일 뿐이다.”

“가짜 사도다.”

신도들이 웅성거렸다.

“가짜 사도야.”

영원교인들이 거리를 좁혀오자 가말은 한 걸음 물러났다.

그때였다.

“손 떼.”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멈칫했다.

복도 한가운데에, 쿠니스가 서있었다.

쿠니스는 가말을 쭉 훑어 내렸다.

“옛날과 똑같은 꼴이구나. 힘을 가지고도 고작 인간들을 떨치지 못해서 붙잡혀있는 꼴이라니.”

영원교 신도들이 주춤거렸다. 하지만 쿠니스는 신경 쓰지 않고 가말에게 말했다.

“네가 저항하지 않으면 아이가 위험해져. 그래도 순진한 소리 따위를 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아이를 지킬 수 있어? 모두가 너한테서 아이를 뺏으려고 발광하는 이 상황에?”

그리고 쿠니스는 말했다.

“가말을 데려와.”

그가 살짝 턱을 당기자 눈에 윤광이 돌았다.

“그리고 전부 죽여버려.”

레기온 대원들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살육이 시작되었다.

그의 안에 있는 광기가 불을 뿜었다.

모두, 죽여버릴 것이다. 그와 가말을 갈라놓으려는 모든 것을 다 없애버리고 그가 울타리를 세운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아무도 멋대로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안 돼. 그만둬!”

가말은 외쳤다.

“동정하지 마.”

하지만 쿠니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저 인간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알아? 여자 뱀파이어들을 붙잡아 온갖 방법으로 죽인 녀석들이야. 사도인지 확인한다면서. 여자 뱀파이어들 숫자가 적은 데는 저 녀석들이 한몫하기도 했을걸.”

영원교가 저질렀을 일을 상상만 해도 가말은 더할 나위 없이 충격을 받았다. 그 얼굴이 드러나자 쿠니스는 오히려 여봐란듯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악으로 가득한 세상에 아이를 내놔도 되겠어?”

“흐아아아!”

그때였다. 괴성이 들리고 반대편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영원교 신도임을 나타내는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약이라도 한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하고 인간이 낼 수 없을 듯한 섬뜩한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왔다. 하지만 한 레기온 대원이 그를 간단히 붙잡아 막았다.

쾅.

순간 영원교 신도가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그리고 잔해와 폭발 에너지가 덮쳐왔다.

쿠니스의 눈가가 움찔했다.

폭발 반경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끔찍한 소리와 함께 반대편 벽에 날아가 부딪친 레기온 대원은 앞이 전부 탄 채였다.

영원히 산다는 게 어떤 물리력 앞에서도 멀쩡하다는 의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시죠.”

다른 레기온 대원이 다소 다급한 어조로 쿠니스에게 말했다.

일단은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쿠니스는 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쪽 골목에서 영원교 신도들이 나타났다.

아까 폭발한 신도는 괴성에 정신이 팔려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는 옷이 이상한 모양으로 부풀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마다 옷 안에 폭탄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부리부리한 눈을 한 그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의병처럼 저벅저벅 걷다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간 레기온 대원들도 주춤했다, 분명히.

하지만 인간 따위에게 겁먹었다는 사실을 본인들이 믿고 싶지 않은 듯이 이를 드러내며 달려갔다.

두 세력이 부딪쳤다.

쾅.

그리고 영원교 신도는 어김없이 폭발했다.

쾅.

여기저기서 여러 차례 폭발했다. 이내 복도에 뿌연 연기가 가득 차 한 치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신념으로 위장한 광신을 갑옷처럼 두른 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예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자살특공대의 공격에 레기온이 점차 밀렸다. 영원교가 덤비면 폭발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돌았다.

그때 아무도, 심지어 쿠니스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가말의 안색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읏….”

가말은 신음하며 배를 짚었다.

갑자기 배에 통증이 느껴졌다. 여태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통증이었다.

***

탕. 타다당.

총알 세례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는 시간을 너무 뺏겼다. 그래서 도영은 모퉁이 너머 전방을 살피면서 적의 숫자를 셌다. 그가 그러고 있자 옆에 있는 한 중사가 회의적으로 말했다.

“관광 오셨어요? 구경은 나중에 하시죠.”

“주세요.”

다짜고짜 도영은 그가 들고 있는 대구경 산탄을 가져가며 말했다.

“엄호해주십시오.”

팀원들은 의아한 기색이었지만 어쨌든 리더의 말이었으므로 군말 없이 자세를 잡았다. 도영은 산탄을 어깨에 걸치고 기척을 살폈다.

그 모습을 보며 맥코이 하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어려울 거 같습니다. 사각지대가 너무 많….”

꽤 옛날에, 렉스가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뱀파이어의 육체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원래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정신이 그 한계를 쉽게 넘지 못할 뿐이죠. ‘인간이었으니까 이만큼밖에 뛸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할 수 있다.

도영은 신기할 만큼 그 사실을 믿었다.

반복해서 꾸준히 쌓아온 실력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것처럼, 모든 게 눈앞으로 훅 다가오는 듯이 가깝게 보였다.

똑바로 목표물을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한 적군의 헬멧 유리가 터져나갔다. 10게이지 대구경 산탄을 가슴으로 얻어맞은 적군은 거의 한 바퀴를 돌아 바닥에 뒷머리를 찧으며 넘어졌다.

다급하게 피하려던 다른 적군은 탄을 배에 맞고 뒤에 오는 제 아군과 함께 날아갔다.

텅, 텅, 텅.

탄피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반동을 일으키고 튀어 올랐다.

파괴력이 높은 반면 정확성은 떨어지는 산탄이 한 발도 남김없이 적군을 때렸다.

여러 차례 산탄을 쏘는,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나자빠졌을 만한 반동에 도영의 팔이 흔들렸다.

철컥.

방아쇠가 더 이상 당겨지지 않았다. 탄환이 떨어진 것이다.

적 하나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왔다. 팀원들이 당장 지원사격을 하기 위해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도영은 그대로 총을 휘둘러 적을 후려쳤다. 적은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뒤에 오는 적은 목살을 잡아 바닥에 내려찍었다. 적은 말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그다음에 오는 남자는 앉은 자세 그대로 산탄총을 휘둘러 쳤다.

마침내 복도에 일어서있는 적군은 없었다.

도영은 조용히 일어섰다.

“…….”

다들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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