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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베스티아-105화 (105/110)

105화<쭈니>

루아스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몸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여태 본 적이 없었다.

작전을 준비하면서 훈련을 많이 하긴 했지만, 이건 거의 사기 수준이었다.

“와우.”

맥코이 하사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일당백이라는 게 이런 말이네요. 저희가 없어도 충분하겠는데요?”

“작전을 혼자서 할 수 있는 거 봤습니까?”

도영이 무심히 말하자 팀원들은 휘파람을 내불었다.

“반하겠네.”

“어서 가죠.”

도영은 마음이 급했다. 공기 중에서 가말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손이 닿을 것 같았다.

***

“읏….”

그제야 쿠니스가 눈치채고 가말을 보았다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상태를 발견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대원을 보고 물었다.

“아직 나오려면 날짜가 남았잖아.”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거 같습니다.”

확실히 임산부가 보기에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갑자기 가말이 덥석 쿠니스의 손을 잡았다.

쿠니스는 흠칫 놀랐다.

가말과 이렇게 닿은 게 삼천 년 만이었던가, 아니면 언젠가 있기는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말이 고개를 들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은 거의 푸른 기운이 돌 정도였다.

“쿠니스.”

그 눈 속에 고통과 두려움이 휘몰아쳤다. 아이를 잃을지도 모를까봐. 가말은 밀려오는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난 강해지려고 노력했어. 혼자서만 살았어. 아무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어.”

그 긴 세월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늘 인적이 없는 곳으로,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을 곳으로, 숨고 피했던 나날들….

가말의 눈에 윤기 같은 물기가 맴돌았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안 돼.”

가말은 손 위에 뼈대가 도드라지도록 쿠니스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통증을 참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베이비는 작고 약해. 모두가 지켜줘야 돼.”

쿠니스는 여전히 가말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대로 석상이 되어버린 것 같기라도 했다.

그때였다.

쾅 소리가 나면서 쿠니스가 날아갔다.

가말은 놀랄 새도 없었다. 바로 옆에 있던 레기온 간부가 연기가 올라오는 반자동 산탄총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네 쌍둥이 타령은 질렸어.”

가말은 통증 때문에 떨리는 숨을 몰아쉬었다. 간부는 가말을 고갯짓하며 다른 대원들에게 말했다.

“챙겨. 탈출한다.”

쿠니스를 배신한 레기온 대원들이 가말의 양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가말은 힘겹게 입술을 떼었다.

“왜….”

간부는 가말이 그렇게 물을 줄 알았다는 듯, 그리고 정말 그렇게 묻는 가말의 순진함을 비웃듯이 피식 웃었다.

“로열 스타가 꽤 큰돈을 약속했거든. 영원히 사는 만큼 많은 돈이 필요하잖아?”

가말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고, 광기와 비인간성의 기차를 타고 영원히 멈추지 않는 레이스를 하는.

그리고 자신은 이 지옥을 멈출 힘이 없었다.

“끝내고 와.”

간부가 저편에 쓰러져있는 쿠니스를 고갯짓하며 제 대원에게 말했다. 그러자 대원은 쿠니스에게 다가갔다.

퍽 소리가 났다.

가슴을 뚫어버린 것이다.

펄떡이는 심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컥… ㅋ….”

쿠니스가 손을 잡아 빼자 대원의 입으로 핏물이 꿀럭꿀럭 넘쳐흘렀다. 그리고 대원은 옆으로 쿵 넘어갔다.

“정말 싫은 게 뭔지 알아?”

철퍽.

쿠니스가 바닥에 흥건한 피 웅덩이를 밟자 파문이 번졌다. 루아스들은 저도 모르게 주춤했다.

“뱀파이어가 된 녀석들은 자기가 뭐나 되는 줄 안다는 거야. 생존한 적자라고 생각하지. 암이 사람 가리는 거 봤어? 그 정도 우연에 우쭐하지 말라고.”

쿠니스는 죽은 대원이 떨어뜨린 창을 집어 들었다.

“다 죽여버리고 싶어지니까.”

한 루아스가 외쳤다.

“쏴!”

쿠니스는 창을 다시 잡아 그대로 던져버렸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피할 새도 없이 다음 순간 창이 그 루아스를 꿰뚫고 있었다.

간부 일행이 소총을 난사하며 소리쳤다.

“빨리, 데려가!”

남자들이 가말을 잡아끌었지만 그녀는 통증 때문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가진 몸은 이렇게 약했다. 아니, 그녀는 약했다. 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순간 제 가슴에 있는 폭탄이 떠올랐다.

이걸 터뜨리면….

아니, 그건 또 도망치는 길이었다. 이번에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결과가 바뀌지 않을지라도.

저벅.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 앞에 섰다. 가말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반면 쿠니스는 덤벼오는 적들을 창으로 후려쳤다.

괜히 국제 테러리스트 네크워크의 리더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는 듯 그는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자비가 없었다.

“멈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 쿠니스는 멈칫했다. 그리고 돌아보자, 간부 하나가 가말의 머리에 총을 겨누면서 비웃음을 지었다.

“어디 머리가 날아간 사도의 배 속에서도 메시아가 제대로 태어날 수 있나 볼까?”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퍽.

살덩어리가 날아갔다.

가말 앞에 쿠니스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탄환을 막은 손의 손가락 두 개가 날아가 손바닥도 반밖에 남지 않았다.

“애초에 넌 총수 재목이 아니었어.”

간부는 말하고 그대로 쿠니스의 허벅지에 총을 쐈다. 쿠니스는 한쪽으로 무릎을 꿇으며 무너졌다.

간부는 거의 침을 뱉듯이 말했다.

“네 쌍둥이나 찾으며 징징거리는 애였지.”

“그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말은 눈이 까맣게 패여 웅얼거렸다. 하지만 간부는 총알을 장전하고 쿠니스의 머리에 겨누었다.

그런데 쿠니스가 눈을 들었다.

“뭐 하나 잊고 있지 않아?”

간부는 뭔가 자신이 놓쳤나 싶어서 흠칫 긴장했다. 어쨌든 쿠니스는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척, 척척척….

마치 군대가 진군하는 것 같은, 일체의 어긋남이 없는 규칙적인 발소리.

이어서 복도 모퉁이를 돌아 영원교인들이 나타났다.

셀 수도 없이 많이.

쿠니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은 수가 많아. 그게 제일 문제지.”

복도 건너편에서 나타난 영원교는 어깨에 익숙한 물건을 지고 있었다. 바로 RPG였다.

쾅 소리와 함께 불꽃을 뿜으며 탄환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간부는 눈을 크게 떴다.

“저 미친 새…!”

RPG가 터지면서 폭음이 천지를 울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두꺼운 연기 사이로 잔해가 후두둑 투둑 떨어져 내렸다.

연기가 조금씩 가시면서, 끔찍한 풍경이 드러났다.

오로지 재와 피의 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쿠니스가 가말을 덮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자 머리에서 화산재처럼 두터운 잿빛 먼지가 후두두 떨어졌다.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가말은 눈빛이 흐렸다.

아름다운 검은 머리는 둔탁한 잿빛으로 덮였고 비단 드레스도 먼지와 여기저기서 튄 피로 엉망이었다. 그리고 얼굴은 식은땀에 젖어 파랗게 질려있었다.

진흙과 피가 묻은 신부복을 입은 어린 가말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가 목 졸라 죽인.

바삭.

그때 머리맡에 발들이 멈춰 섰다. 쿠니스는 올려다보았다. 아까의 자살특공대와는 다르게 제대로 무장한 영원교 신도들이었다.

선두에 선 사람이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가말을 보고 말했다.

“곧 태어나겠군.”

광신도 같지 않아 보이는 평범한 투였다.

치이익.

갑자기 그 남자 주변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면서 부옇게 안개가 퍼졌다.

“……?”

쿠니스는 의아했다. 생화학 무기라고 하기에는 남자 본인도 딱히 방독면을 쓰고 있지 않았고, 마약성 약물이라고 하기에는 뱀파이어에게는 인간의 약이 듣지….

순간 눈앞이 일렁였다.

토기가 치밀 정도로 어지러워서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쿠니스는 얼른 제 코와 입을 막았다.

이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꼭, 3년 전에 블란두스 박사의 아들 스테판 블란두스가 퍼뜨린 바이러스 같았다.

다만 그 바이러스는 접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의 온 구멍에서 피를 뿜어내며 죽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이런 약물 형태도 아니었고.

“효과는 확실하군.”

그 모습을 보고 남자가 만족한 듯이 말했다.

“이게 뭐지?”

친절하게 대답해줄 녀석들도 아니고 이런 질문이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쿠니스는 저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그만큼 궁금했기 때문이다.

“파나케이아.”(그리스 신화에서 치료의 여신)

남자는 훗 웃었다.

“뱀파이어라는 질병을 치료해줄 기적의 여인이지.”

질병.

이 녀석, 영원교도인이 아니었다.

뱀파이어를 영생의 천사라고 생각하는 영원교가 뱀파이어를 질병에 비유할 리가 없었다. 영원교 사이에 숨어든 로열 스타일 것이다.

어쨌든 어떤 약물을 여신에 비유하는 것 같았다.

“아직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게 아쉬울 뿐이지.”

하긴, 인간은 계속해서 뱀파이어를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물질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뭐가 나왔다 한들 놀랄 것도 없었다.

남자가 고갯짓하자 뒤에 있는 사내들이 도끼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어지럽긴 해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쿠니스가 공격하려고 하자 바로 가말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갖다 붙였다.

약물 때문에 가말은 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눈이 거의 까라져 뜨지 못했다.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약을 더 마신 모양이었다.

쿠니스는 눈에 꾹 힘을 주고 말했다.

“감히 사도님을 다치게 하려고?”

하지만 남자는 훗 웃었다.

“아이를 낳는 데 다리는 필요 없잖아?”

확실히 로열 스타라면 가말의 안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배라도 갈라 아이를 꺼내갈 것이다.

콰직.

그 순간이었다.

쿠니스가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도끼가 날아왔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날카로운 도끼날이 간발의 차로 그를 비켜 뒷벽을 때렸다.

그런데 그러자마자 바로 가말의 다리를 향해 도끼를 내려치는 다른 남자가 보였다.

“네가 피하면 사도님이 다치는 거야!”

남자가 외치는 소리에 쿠니스는 멈칫했다. 그 순간 날아온 도끼가 정확히 오른쪽 의족에 꽂혔다.

쿠니스는 한쪽으로 휘청거렸다. 그러자 영원교도인들이 바로 그를 벽에 밀어붙이고 목과 턱 사이에 도끼날을 갖다 붙였다.

다급한 몸짓에 힘이 들어가서 인간이었다면 목이 반쯤은 잘렸을 것이다.

남자가 다가오면서 주머니에서 꺼낸 정체 모를 주사기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더니 쿠니스의 팔뚝에 주사기를 꽂았다.

주사기 내부의 액체가 쭉 주사되었다.

“……!”

반응이 나타나기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쿠니스가 발작적으로 허리를 꺾으며 게워내자 모두 물러섰다.

말 그대로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병균에 면역이 있는 몸이라 이런 병든 것 같은 느낌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쿠니스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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