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쭈니>
칼이 꽂히려는 찰나 드비나는 경악해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쿠니스가 벽을 짚으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손이 벽에서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욕설을 터뜨렸다.
“젠장…!”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은 단단하게 잠겨있었고, 여기서 교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창을 뚫고 비산하는 유리 파편들과 함께 검은 인영이 들이닥쳤다.
동시에 총소리가 났다.
탕!
그리고 가말 옆에 있는 영원교 신도들이 총에 맞아 뒤로 날아갔다.
이어서 검은 인영은 바닥에 내려서기도 전에 가말을 에워싸고 있는 영원교 신도들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맞췄다.
검은 전투복 때문에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아도 목표물을 정확히 맞춘 동체시력은 루아스였다.
그리고 미처 총성이 잦아들기도 전이었다.
콰장창.
나머지 창들을 뚫고 다른 검은 인영들이 들이닥쳤다.
지이이익-
라펠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일사불란하게 착지했다. 그러자마자 총을 쏘려고 하는 경비병들을 정확하게 맞춰서 순식간에 제압했다.
그리고 영원교 신도들에게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
안 그래도 남아있는 영원교 신도들은 거의 비전투원이었기 때문에 놀라서 얼어붙었다.
무장한 한 군인이 쿠니스의 머리에도 총을 겨누었다.
“두 손 들어.”
쿠니스는 코웃음을 치고 가슴에서 손을 빼내 두 손이 보이도록 들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교주와 영원교 신도들, 그리고 쿠니스까지 제압했다.
그때 가장 처음 창을 뚫고 들어왔던 군인이 헬멧을 벗어던지며 제단으로 달려갔다.
“가말!”
도영이었다.
하지만 가말은 반응이 없었다.
“가말!”
여러 차례 부르자 마침내 가말은 흐릿하게 눈을 뜨고 도영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제 눈앞에 있는 게 진짜 도영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가말.”
도영도 믿을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말의 꼴은 엉망이었다. 재와 피를 뒤집어쓴 채로 무슨 약이라도 잘못 먹었는지 숨은 거칠고, 가위로 잘린 옷자락은 벌어져서 거의 가슴이 보일 지경이었다.
이런 꼴이 되기 전에 오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와, 이 상황에 대한 분노가 겹쳐 끓어 넘칠 것 같았다.
하지만 분노 따위에 정신이 팔려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영은 애써 목소리를 억누르고 속삭였다.
“미안해.”
그제야 가말은 깨달았다. 볼을 감싼 건 도영의 손이었다. 이번엔, 진짜였다.
가말은 숨이 찬 듯이 입술을 달싹였다.
“베이비가….”
도영은 당장 손짓했다. 그러자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각자 메고 온 장비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군인은 각자 등에 짐처럼 메고 온 사람들을 고정하고 있는 끈의 버클을 풀어냈다. 그러자 등에 업혀있던 한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내려섰다.
전신을 가리는 전투복을 입고 있어도 근육질이라는 게 보이는 군인에 비해 다소 왜소해 보였다.
그를 내려준 한 대원이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선생님.”
의사였다.
“좀 어지럽지만 괜찮습니다.”
의사는 대답했다.
그사이에 다른 군인들이 사방에 연기가 뿌옇게 일어나도록 소독 스프레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모두 사전에 준비한 대로였다.
의사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폭발물 처리) 대원의 도움을 받아 방폭복을 입으면서 말했다.
“좀 더 꼼꼼하게 뿌리세요. 아래까지.”
그 옆에서 마취 전문의도 도움을 받아 서둘러 방폭복을 입고 있었다.
여전히 마취는, 특히 뱀파이어를 마취하는 일은 생각보다 전문성이 필요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마취 전문의까지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제단은 금세 수술대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 모습을 보며 도영이 의사에게 물었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해봐야죠.”
의사는 간호사 역할을 하는 팀원이 펼쳐준 장갑을 끼느라 도영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가말에게 링거를 연결하고 한 대원이 마취제 팩을 스탠드 대신 들어주었다.
그리고 마취 전문의가 가말의 입에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아니, 씌우려고 하자 가말이 무어라 더듬거렸다.
“드비나…. 구해….”
모두 가말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았다.
그 끝에 있는 드비나는 깜짝 놀랐다. 저런 상태가 되어서도 그녀를 신경 쓴다는 사실에.
가말은 정말 착했던 것이다, 그녀가 말했던 대로.
“드비나 씨?”
한 중사가 물었다.
“네.”
대답하고 드비나는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그 말에 드비나가 걸음을 내디디자, 그녀 옆에 있던 여자가 말했다.
“드비나.”
그리고 경고하듯이 눈에 힘을 주고 드비나를 보았다. 교인들 사이에 유일하게 똑바로 서있는 드비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드비나는, 항상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꺼져. 이 미친 사이비야.”
그러고는 드비나는 돌아서서 걸어갔다.
마침내 마취 전문의가 가말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마취를 시작했다. 마취제가 돌자 가말은 금세 잠들었다.
“괜찮겠습니까?”
의사가 마지막으로 확인하듯이 도영을 보고 물었다.
사실 그야말로 도박이었다, 이 자리에서 가슴의 폭탄을 수술로 제거하겠다는 건. 그럼에도 도영은 이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없었기에.
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세요.”
“시작하겠습니다.”
의사는 지체하지 않고 수술을 시작했다. 이미 가말의 가슴에 나있는 상처에 메스를 누르고 거침없이 갈랐다.
베인 자리에서 핏물이 소용돌이치듯이 고였다가 양옆으로 흘러넘쳤다.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수술 도구가 부딪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때였다.
군중 가운데 있는 한 신도가 들썩거렸다. 대원들은 바로 그쪽으로 총구를 돌리며 경계했다.
“끄으….”
그 신도는 천천히 경기를 일으키더니 거품을 물고 뒤집어졌다. 그러자 다른 신도들 역시 당황해 웅성거렸다.
“여덟.”
그걸 본 휴 대위가 심각한 투로 불렀다. 도영은 그대로 대기하란 의미로 손을 내밀고 계단을 내려갔다.
불타오르는 전쟁의 신이 강림하는 모습을 보는 인간들처럼, 영원교 신도들은 자리가 비좁아서 비키지는 못하고 옆으로 움찔거리며 몸을 젖혔다.
그 사이로 갈라지듯 길이 나 기절한 신도에게까지 이어졌다.
신도는 간질 환자인지 눈을 까뒤집고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도영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목의 맥박을 확인했다.
그 순간 남자의 뒤집혔던 눈이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남자가 몸 아래 숨기고 있던 칼을 내질렀다.
그래봤자 인간이 하는 공격이었다. 도영은 어렵지 않게 팔을 잡아 막았다.
“가만히….”
그런데 그때를 노린 듯이 다른 신도가 도영을 뒤에서 덮쳐들었다.
“……!”
아니, 신도가 아니었다.
목을 옭죄는 팔은 인간이 아니라 뱀파이어의 것이었다.
“가만히 계십시오.”
그가 말했다.
평신도로 위장하고 있던 영원교 사제였던 것이다.
“덤벼!”
이어서 두 남자가 외치며 도영을 양옆에서 덮쳐들었다. 그들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도영은 순간적으로 공격하지 못했다.
“잡아!”
그러자 도영이 밀린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사람들도 다급하게 일어나 덤비기 시작했다. 여자나 노인 가릴 것 없이.
“여덟!”
팀원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갑자기 다른 곳에서 한 영원교도인이 벌떡 일어나 사자후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하아아아!”
그러자 영원교인들은 대답했다, 작동이 멈췄던 기계에 전류가 흘러 벌떡 깨어난 것처럼.
“테렌티, 아세 수에이 에우스타키스!”
끊는 부분 하나 다르지 않아서 정말 한 사람이 여러 목소리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영원교인들은 일제히 제단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당장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멈춰!”
허공에 시험 사격을 했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쏩니다!”
팀원들은 외치자마자 대응하기 시작했다.
탕, 탕!
두 차례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다리에 총을 맞은 신도가 넘어지고 어깨에 맞은 신도는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놀랍게도 영원교인들은 멈추지 않았다. 따라서 팀원들은 다시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번 총성이 울렸다.
급소는 피해서 총을 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보통 노약자라고 하는 사람들까지 하얀 계단을 피로 물들이며 기어서 올라왔다.
그 광경이 주는 비주얼 쇼크는 산전수전을 겪은 군인들마저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다. 기세가 밀리는 건 그 찰나면 충분했다.
맥코이 하사가 기가 질려 외쳤다.
“저 이 장면 좀비 영화에서 본 거 같습니다!”
방어선이 점차 뒤로 밀려 팀원들의 등이 제단에 두른 비닐에 닿았다. 그러자 비닐 안에 있는 의사가 시선을 들지도 않고 소리쳤다.
“들어오면 안 됩니다!”
“들어가면 안 되는 걸 몰라서 이러는 거 같습니까?”
팀원들은 총을 쏘는 걸 멈추지 않으면서 소리쳤다.
사제에게 붙잡혀있는 도영은 이를 꽉 물었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사제의 멱살을 붙잡는 동시에 그대로 팔의 힘으로만 휘둘러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 반동으로 그에게 매달려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떨어져나가고 굉음과 함께 바닥이 잔해를 토해내며 갈라졌다.
이어서 도영은 다시 사제의 멱살과 배를 잡고 들어 올렸다.
“……!”
도영과 무게가 비슷하거나 더 나갈 것 같은 뱀파이어가 맥을 추지 못하고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쿵!
도영은 그대로 사제를 한 번 더 바닥에 내리찍었다가 던져버렸다. 던진 힘이 얼마나 셌던지, 날아간 사제는 그대로 벽에 파묻히듯이 박혀버렸다.
그리고 도영은 좌중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기백에 눌려 다들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멀리서 한 중사가 중얼거렸다.
“와우. 무파사인 줄.”
도영이 갑자기 돌아보고 물었다.
“교주는 어디 있습니까?”
“네? 여기….”
없었다.
돌아본 자리에 교주는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다.
대신 창가에 그가 입었던 주교복이 버려져있고, 레펠이 창밖 아래쪽으로 내려져있었다.
쿠니스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비웃음을 띠고 말했다.
“SEALs(네이비 씰) 훈련을 받았다더군.”
도영은 황당해서 되물었다.
“도망치는 걸 그냥 보고 있었다고?”
쿠니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보고 있지 않을 이유도 없어서.”
“이 개새…!”
큰 소리가 터졌다. 한 중사였다.
한 중사는 당장이라도 쏠 것처럼 쿠니스에게 총을 겨누었다.
“아홉!”
도영이 날카롭게 외쳤다. 그러자 한 중사는 버럭 소리쳤다.
“이 새끼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더 화가 나야 할 저도 있습니다.”
도영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한 중사는 총구를 쿠니스에게서 돌리지 않았다. 반면 쿠니스는 태연하게 총구를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홉.”
도영은 조용히 한 중사를 한 번 더 불렀다.
그라고 딱히 쿠니스를 살려두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심장이 멈추면 폭탄이 폭발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에 한 중사는 이를 꽉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