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9화-암살자 (9/179)



〈 9화 〉9화-암살자

건남은 라구나로 향했다. 그러다가 소형 비행정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새벽 두 시가 넘어간 시간. 도시의 전등이 하나하나 꺼져 가지만, 빌딩들에 켜져 있는 불빛은 도시가 어둡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 전조등을 켜고 날아다니는 비행정이 점점 줄어드는 시간. 그래도 상당수의 비행정이 날아다닌다.

자동 항법장치가 시판되었을 때, 애주가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역으로 대리 항해사들은 사라졌지만, 운전을 하지 않아도 안전하게 집에 귀가시켜 줄 정도로 정교한 시스템을 자랑했다. 수동 조작보다는 시간이 2배 이상 걸린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주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의 자동항법은 뭐랄까 그냥 수동으로 불릴 정도의 기술.

아무튼, 그런 이점 때문일 까. 건남은 조용히 주점으로 향한다.


- buzz bar 안 -



건남은 조용히 술을 마셨다. 미적지근한 맥주병을 입가에 가져간다. 라구나 bar처럼 이곳은 조용하지 않았다. 시끌시끌한 손님들. 커다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펑키 스타일의 음악. 볼륨이 맥스인지 음악소린 엄청 크다.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들. 그러나 건남은 조용히 술만 깨작거린다. 그런 그에게 이곳의 사장이자 건남의  동료였던 우현이 다가왔다.

" 건남성. 무슨 일 있어요? 조용히 술만 먹다니? "

아니 아니 생각할  있어서... 나 신경  써도 되니까  봐. "

" 알았어요. 성. "

우현이는 자리를 뜬다. 그 뒤에는 라구나에서처럼 현상범 사진이 걸려 있다. 팔콘, 재필, OEN. 그중 건남은 재필의 사진을 노려봤다. 그리곤 카페 주인이 주었던 파우스의 요원증을 어루만진다. 그런 그의 혼잣말.

재필 유... "

건남은 회상을 한다.





- 10년 전 -

건남의 나이가 26살이 되어가던 해였다. 그때 당시 건남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이리저리 거래처를 다녔다. 영업사원이란 타이틀로 이곳저곳 잘도 돌아다녔다.

일이 끝나면 그는 자신의 여자 친구 집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그녀. 이별의 최고의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를 닮았다. 그녀의 집. 낡은 40층 건물 옥상에 덩그러니 놓인 옥탑방이었다. 보기 드문 옥탑방. 마들가리 행성에서 옥탑방을 찾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아무튼, 건남은 그녀의 방으로 비밀번호를 누른 후 들어갔다.

온기가 없는 방.  사람 냄새가 없는 방이었다. 그 이윤 아마도 잠만 자는 곳이기 때문이겠지. 그런 그곳을 건남은 청소하기 시작했다. 먹다 남은 음식이 있는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며 방바닥을 쓸고 닦았다. 청소가 마무리되면 그제야 한쪽 귀퉁이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었다. 피곤함 때문일까 몇 장 넘기지 못하고 스르륵 잠이든 건남. 그런 건남을 깨우는 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온 그녀의 여자 친구 다래였다.

자고 있던 건남은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고, 바로 앞에 얼굴을 디밀고 있는 다래를 확인했다. 얼굴 간격 10cm. 건남은 환하게 웃었다.

" 너무 잘 자고 있어서 안 깨웠어요. 오빠. "

건남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채며, 다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둘만의 환희. 서로를 탐닉하는 혀 끝의 교감. 아름다운 그녀를 끌어안은 건남. 시간의 울타리를 벗어난 둘만의 사랑놀음은 끝이 날줄 모르고 있었다.

어느덧 둘은 매트리스 위에 알몸으로 서로를 안고 있었다. 마주 보는 두 사람. 건남의 손 끝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 오늘 일은 어땠어? "

" 그냥 재미있었어요. 좋은 손님도 만난 같고... "

" 요새 많이 힘들지? 학교 다니느라. 일하느라. 그렇게 열심히 사는 다래가 오빠는 자랑스럽다. "

" 에이 오빠도 참. 요새는 다들 그렇게 살아요. 특별한  아니예요. 히히히. "

잠시 정적. 말을 이은  다래였다.

" 아~ 오빠랑 이렇게 누워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해... "

건남은 흐뭇하게 웃었다.

" 참! 좋은 손님 만났다며? 누구야? "

" 아~ 그분. 얼마 전부터 우리 커피숍에 오기 시작했는데, 매너도 좋구 이미지도 깔끔해요. 중요한 건 몇 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내 전공을 물어보는 거예요. "

" 그래서? "

이야기했죠. 미술이라고... "

그러고 보니 다래의 방에는 이젤과 함께 그림들이 널브러져 있기 마련이었다. 완성된 그림도 액자 값이 모자라 방치해 두곤 했다.

오빠도 알다시피 생활비도 빠듯한데 그림 그리는 여유가 안 되는 거 알죠? "

" 그럼. 그래서 오빠가 얼마나 미안한 줄 알아. 도와주지 못해서. 휴~ "

근데 그분이 화방을 한데요. "

그래? "

" 네에... 그래서 미술용품 필요하면 언제든 공짜로 가져가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불쌍해 보였나 봐요. 히히히. 나중에 기회 되면 그 손님 소개 드릴게요. "

건남은 사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녀의 웃음소리에 그냥 흐뭇하게 미소로 대답했다. 그때 까지는 몰랐다. 둘만의 아름다운 사랑이 그 손님으로 인해 무너질 것이란 걸.

하루는 건남이 다래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카운터에서 쇼윈도를 바라보는 다래의 모습이 햇살에 비치어 더욱 밝게 빛났다. 그런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며 뛰어오는 건남. 입꼬리가 하늘을 뚫고 올라갈 기세였다.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간 건남은 다래에게 다가갔다. 화들짝 놀래는 다래.

" 오빠! 이 시간에 어떻게 오셨어요? "

" 아~ 거래처가 이 근처라서 들렸지 뭐. 헤헷. "

" 그래요. 잘 됐어요. 제가 저번에 말했던 손님 기억하세요? "

" 누구? 그 화방 하신다는? "

" 네! 맞아요. 지금 와 계시거든요. "

다래는 창가 한쪽을 가리켰다.

" 저기요! 소개시켜 드릴게요. "

뭐가 그리 신난  까. 다래는 카운터에서 나와 건남의 손을 붙잡고, 그녀가 말했던 손님에게 다가갔다. 이끌려 가는 건남. 어느새 둘은 화방을 운영한다는 손님 앞에 섰다. 가볍게 목인사를 하는 다래.

" 안녕하세요. "

전자신문을 읽던 손님은 홀로그램을 껐다. 스르륵 사라지는 테이블 위의 홀로그램. 의아한 표정으로 다래와 건남을 쳐다봤다.

" 어. 어. 다래구나. 옆에 계신 분은? "

기분이 들뜬 걸 까. 다래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건남을 소개했다.

" 제 남자 친구예요. 히힛 "

손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건남에게 악수를 청했다.

" 안녕하세요. 다래 양에게 조금씩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들렸다.

어색한 건남은 자신감이 결여된 음성으로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저 또한 반갑습니다. "

다래의 저 표정은 무언가 뿌듯한 모습이다. 건남은 카운터에 계산을 하러가는 다래의 모습을 본다.

" 오빠 여기서 손님하고 있어요. 전  좀 볼게요. "

" 어 그래. 그래. "

건남은 고개를 연신 꾸벅이며 자리에 앉았다. 다래가 떠난 어색한 분위기가 두 남자 사이에 흘렀다. 건남은 손님을 살짝 쳐다봤다. 깍지를 낀 두 손. 두 손은 주먹을 쥐며 턱을 괴고 건남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사람. 건남은 이상한 감정에 사로 잡혔다.  손님은 다래가 이야기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직감했다. 건남의 떨림.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는 떨림이었다. 무섭게도 타인의 마음이 들여다보이는것 같았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싫다. 지금의 감정은.

그때의 상대방 손님, 화방 손님의 감정은 살의였다. 뜬금없이 손님이 대화를 요청했다.

" 이름이? "

" 건남이라 합니다. "

" 나이는요? "

26살입니다. "

" 아... 저랑 동갑이군요! "

저는 재필이라 합니다. "

재필. 그랬다. 건남이 재필을 처음 만난  이때였다. 마들가리 행성력 232년 최고의 암살자 집단의 두목 재필. 건남과 재필,  사람의 악연이 되는 시발점이 그때였다.

" 화방을 운영하신다 하셨는데... 젊으시군요. "

" 하하하하. 그런가요? "

환하게 웃던 재필의 모습이 급하게 굳어졌다. 무서울 정도로...

" 이봐 친구. "

카리스마 있는 재필의 중저음이 건남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 내가 화방이나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나. 훗후후. 난 긴 이야기하는  별로 안 좋아해. 다래에게서 떨어져 주었으면 하는데... 어때? "

이게 무슨 소린가 처음 보는 사람이, 다래가 좋게 평가했던 사람이 건남 앞에서 실없는 소리를 너무나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건남은 당황하기보다 그냥 멍했다. 잠시의 정적이 그들을 허락했다.

"넌 정체가 뭐냐? "

이봐. 자네가 말 놓을 정도로 난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말까지 말지. "

굳어버린 건남.

" 내 말 잘 들어. 내가 다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너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 조용히 떠나. 시간을 줄 테니, 그렇지 않으면 나 스스로 널 없애 줄  밖에. "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이야기를 하던 재필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살짝 걸쳐졌다.

" 둘이서 무슨 이야기하셨어요? "

밝게 웃으며 찾아온 다래. 건남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 걸까 너무 흐뭇해한다. 재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 표정이 바뀌며 악마에서 천사로 둔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

건남은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인상을 쓰며 다래의 팔목을 잡고 일어섰다. 재필을 바라보며...

" 미친 새끼! 헛소리 집어치워! "

그리고 다래를 바라본다.

" 잠깐 나랑 이야기  하자! "

다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래는 건남에게 이끌려 커피숍 밖으로 끌려 나왔다. 웅성거리는 손님들. 지켜보는 재필. 속닥거리는 커피숍 직원들.

" 오빠 왜 그래요? 오빠 답지 않게. "

끌려 나온 다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건남이었다.

" 다래야  사람 만나지 마! 네가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절대. 절대로... "

납득할 수 없는 다래였다.

" 오빠 질투하는 거예요? "

아니야! 다래야 이건 그런 거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뚜렷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 사람 가까이 두면 안돼! "

다래는 고개를 흔들었다.

" 오빠! 이러지 마요. 나 오빠 사랑하니까. 날 믿어줘요. 재필 오빠가 날 좋아하는 감정은 다른 거니까... 네? "

건남은 말문이 막혔다. 그대로 다래를 데리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한쪽 구석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그런 건남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마들가리 행성에 아무도 없었다. 느낌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때, 커피숍 점장이 문을 열고 다래를 불렀다.

" 다래야 무슨 일이야. 일 안 해? "

" 점장님. 금방 들어갈게요. "

그렇게 말하고 건남을 바라본다.

오빠 나중에 이야기하자. "

뒤돌아 급하게 커피숍으로 들어가는 다래를 건남은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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