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18화-침입자
파우스를 경찰서에 넘기고 3일이 지나는 시점이었다. 라구나에는 아무런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280층 건물 옥상 위에, 다해가 정찰용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핀다. 위장용 천막 안에서.
위장용 천막은 하늘에서 보았을 때 완벽하게 옥상의 일부처럼 보였다. 같은 층에서 보면 그냥 천막이다. 회색으로 만들어진 천막이라 하면 맞을 것이다. 다만, 사방을 천막으로 두르면 그냥 조그마한 옥상 위의 건물처럼 꾸밀 수는 있었다.
특히 밤에는 더욱 그럴싸했다.
지금은 낮. 여름의 한 낮. 푹푹 찌는 더위에 위장용 천막에 들어가 있는 다해는 흐르는 땀에 녹초가 되어 있었다.
벌써 3일째. 날 버리고 승규랑 눈 맞은 벌을 이렇게 받고 있는 거라 난 생각한다. 쌤통이다. 메렁~
그런 다해에게 라구나에서 연락이 온다.
" 다해야 어때? "
" 언냐! 아무것도 주변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욧. "
" 그래! 너는 어때? "
" 언냐! 그냥 재필한테 암살당해 죽으나 여기서 찜닭 돼서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꼭 이 짓을 해야 해요. 히힝. 죽겠어요. 씻지도 못하고 냄새나서. 승규가 이런 꼴 보면 저랑 헤어질 껄요! "
" 네가 고생이 많다. 건남 옵한테 말해서 잠깐 들어와 샤워라도 하게 해 줄까? "
" 네! 언냐! 흑흑흑 이게 뭐예요. 넘 심드렁! "
" 어쩌겠어 내가 맡은 직책이 저격인데... "
다해의 구시렁거리는 목소리가 건남의 귀에도 들리는지 건남은 귀를 후벼 판다.
- 그 시각 23 구역 유치장 -
사실 라구나에 아무 일이 없는 것은 아직까지 파우스가 조직에 연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행성에서는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는 사실 빠르게 교도소로 감금된다. 3일 동안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는 건 무언가 경찰서 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아무튼 파우스는 오늘 이송될 계획이다.
유치장에 누워 있는 파우스.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무언가를 유치장 안으로 던진다. 빠르게 사라지는 경찰관. 주사기처럼 생긴 휴대용 칩 이식기. 엄지 손가락 만하다.
기다렸다는 듯 파우스는 그 물건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목 뒤에 주사한다.
파우스의 동공이 흔들린다. 입술과 얼굴 근육이 꿈틀거린다. 이 주사기의 용도는 그들, 재필의 조직에서 만들어낸 신형 장비었다.
과연 뭘 주사한 걸까?
박식한 이 히리가 설명해 줄 테니 잘 듣기 바란다. 에헴~
- 휴대용 칩 이식기: 재필의 조직이 만들어낸 장비로 조직의 중간급 조직원들에게는 몸속에, 신경조직과 연결된 곳에 무선 통신장비가 심어져 있다. 그곳에 칩을 심는 장비를 일컫는다.
에헴~ 그럼 용도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통신장비다. GPS용도 그리고 간단한 메시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그 메시지가 무선으로 전달된다. 뭔가 있어 보이는 장비 같지만, 신체 이상 반응이 있으면 안 되기에 한 시간 밖에 못쓰는 단점이 있다. 어때나 좀 유식하지!
' 이야옹~ '
그런 단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파우스는 자신의 상황을 빠르게 조직으로 전송한다. 사냥꾼에 잡혔다는 이야기부터 현재 유치장에 갇힌 이야기, 라구나 232의 마지막 위치정보, 자신의 위치정보 등등등 쓸데없는 정보까지 쓸어 담았다.
비열한 웃음을 짓는 파우스. 악마가 따로 없군.
- 라구나 함정 안 -
벌써 5일째 지나가는 밤이다. 처음과는 다르게 함정 안의 긴장감은 다소 풀린감이 있다. 내가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그 누구하나 터치하는 인간이 없다는 게 단적인 증거일 것이다.
처음 하루 이틀은 날 감금시키고 상황실에 발도 못 들이게 하더만, 지금은 장난감 쥐도 풀어준다. 얼마나 서러웠는지, 당한 고양이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 냐아옹~ '
" 아하암~ "
상희가 크게 하품하며 따분함을 과시한다. 무기 상황 모니터에 앉아 있는 건남은 뭘 하는지 손놀림이 빠르다. 명치대인은 조종실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평소 지금쯤이면 상희나, 다해나 명치대인은 게임용 고글을 쓰고 열심히 게임에 열중할 시간인데, 좀 쑤셔서 어떻게 참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 건남옵. 녀석들 나타나긴 나타나는 거야? "
모니터를 바라보는 건남은 건성으로 대답한다.
" 응! "
" 안 되겠다. 오늘부터 나타나지 않으면 하루당 건남옵 10 크랑 벌금 받아야지. 아하함~ "
상희가 코를 후비적거린다.
" 오~ 누나 굿 아이디어! "
건남은 관심 없다는 듯 계속 화면만 주시한다.
" 그러시던 지요... "
그럼 밖의 상황은 어떨까? 유유히 다해가 있는 빌딩을 중심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라구나 함정. 양옆에 소형 전투정이 호위를 하며 함께 돌고 있었다.
다해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냐고? 아니다. 자동 주시 모드로 망원경을 놓아두고 바주카포를 비계 삼아 잠자고 있다. 참 잘잔다. 무언가 망원경에 이상한 물체가 다가오면 경보음이 울린다.
컴컴해진 하늘.
막 해가 저문 시간.
하나 둘 켜지는 네온사인과 비상등.
그렇게 시간이 지나갈 무렵 옥상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끼익~ '
녹슨 경첩에서 들리는 쇳소리에 다해가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그리고 다해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본다. 컴컴함에 검은 그림자만 100m 전방에 보인다. 다해는 급하게 라구나에 연락했다.
" 이 시간에 이쪽으로 오시는 분 없죠? 검은색 물체가 제게로 다가와요.사람 같아요. "
그 그림자는다해 쪽으로 다가오다가, 그녀를 중심으로 9시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는 라구나를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그리로 돌린다.
점점 다해에게서 멀어지는 검은 물체. 어두운 옥상에 검은 인영. 그 인영은 육안으로 식별이 되지 않았다.
" 건남옵 화면 좀 키워봐! "
비율이 확대되고, 옥상의 전체적 화면이 점점 줄어들며, 사람의 크기만 잡힌다.
베레모를 연상케 하는 모자. 다해와 비슷한 모형의 바주카포를 앞으로 들고 있었다. 정확한 얼굴 윤곽은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옥상의 끝으로 다가온 검은 사나이는 라구나 함정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선다. 망원경으로 라구나를 살피는 그.
" 다해야! 저격수인 것 같다. 도청 가능해? "
" 네 최대 볼륨으로 올려 볼게욧. "
다해는 선글라스의 기능을 도청 모드로 전환하고 검은 사내가 있는 곳을 주시한다. 망원경으로 그를 관찰하며...
" 언니! 녀석이 쓰고 있는 저격용 바주카포... PP 45 모델인데요! "
" 그게 왜? "
" 무지하게 좋은 거예요... 세발 동시 발사가 가능해요. 그에 비해 반동도 적고. 지대공 전문 바주카포예요. 앗! 어디다 통신하는 것 같아요. 쉿! "
100m 떨어진 검은 사나이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 함정 규모 중급.
- 전투 비행정 2기 포착.
- 경찰과 이미 연계한 것 같음.
- 그럼 우선 철수하겠음.
" 뭐라고라고라... 철수한다고... 여태껏 기다렸는뎅! 누나 뭐해요? 잡아요! "
검은 그림자는 바주카포를 뒤로 매고 서서히 옥상을 빠져나가려 한다.
" 다해야. 미행 가능해? "
" 그럼 여기서 못한다고 그럴까요? 히힝. "
" 건남옵. 나갈 동안 미행해줘! 화면 전송 계속해 주고. 옵! 뭐해 나가지 않고... "
" 누나. 건남형 벌써 나갔는데! "
" 에잇 디따 빠르네! "
" 난 또 누나가 바로 안 잡나 했드만, 더 큰 걸 노리는 거였어! "
" 그래 이 자식아! 한방에 가자! "
" 너도 준비해! "
" 준비라니? "
" 함정 비울 거야 소형 비행정으로 이동해! "
" 뭐야? 무슨 꿍꿍이야? "
" 시키는 데로 움직이시죠! "
" 넵 누님! "
사건의 심각성은 경찰 쪽에서도 진행되었다. 보호 경찰관 팀장은 23구역 경찰서 상황실로 상황을 보고했다.
" 건남옵 따라붙고 있는 거야? "
- 어! 다해가 보내주는 화면 계속 주시하면서 움직이고 있어!
" 오케이 양호! 들키지 않게 조심해! 팀장님. 전투 비행정 한 대는 라구나호에 묶어 두시고 한 대로 지원 부탁드릴게요. "
" 그러시죠. 이미 상황실에 보고 했으니 저희 쪽에서도 움직일 겁니다. "
" 넵! 움직이시죠! "
상희와 명치대인 그리고 경찰관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해는 검은 사나이를 조심히 미행한다. 엘리베이터를 탄 그. 가장 큰 난관이다. 이 사람이 바로 일층으로 내려갈지 다른 층에서 내릴지는 그 사람 만이 안다.
" 어쩌지! 건남 삼춘한테 배웠는데... 에잇 모르겠다. "
다해는 옆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1층 버튼을 누른다.
감으로 하는 미행. 이런 녀석들이 이 행성의 일등 사냥꾼이라니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그래도 운이 좋은 건지 상대방 저격수는 1층으로 내려왔다.
잠시 후 다해도 1층에 도착한다.
벌써 로비 중앙에서 출구로 향하는 그.
그의 발자취를 조심조심 따라붙는 다해.
" 삼춘 화면 주시하고 있죠? 지금 1층 로비예요. 밖으로 나가고 있어욧. "
키가 큰 그가 롱 코트에 베레모와 비슷한 모자를 쓰고, 바주카포를 뒤로 맨 상태로 커다란 회전문을 통과한다.
" 조금만 더 따라붙어줘! 아직 도착하지 못했어! "
" 알았어욧! "
다해가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검은색 4륜 비행정에 탑승하는 베레모의 사나이. 다해는 비행정 넘버를 바라본다.
-R 8789-
" 건남 삼춘 이 비행정이에욧! "
비행정 넘버가 건남의 하이바 투명막에 새겨진다.
" 오케이! 거의 도착했어! 날아가는 방향으로 잘 주시해줘! "
" 알았어요.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색 4륜 비행정은 수직상승을 천천히 하다가 앞으로 전진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비행정을 정박했던 곳까지 뛰어가는 다해.
4륜 비행정이 사라지고 다해의 뒤에서 건남의 3륜 비행정이 그녀의 위로 지나간다. 다해는 건남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비행정을 정박해 놓은 곳으로 계속 달린다.
- 건남옵. 따라붙은 거야?
" 어! 추격 중이야! 내 위치 확인하면서 따라와! "
- 알았어 양호!
건남은 자신이 추격하고 있는 검은색 비행정을 조준한다. 하이바의 투명막에 가늠자가 생기고, 추격하는 비행정 범퍼와 일직선이 되자 경보음이 울린다. 버튼을 누르는 건남.
건남의 비행정 라이트 부분에 조그만 구멍이 생겼다. 그 안에서 다트핀이 튀어나오며, 검은색 비행정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 피육. '
' 팍. '
건남의 추적용 위치정보 장비가 범퍼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