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2-따분함
- 마들가리 행성 23구역 -
건남의 눈에 라구나 함정이 보인다. 그 옆을 순회하는 전투정도 함께 보인다. 건남은 오랜만에 자신의 몸속에 있는 인식 프로그램을 살피며, 15구역에서 23구역으로 날아왔다.
다트핀을 움직이는 조종대, 컨트롤 장비는 건남의 몸속에 칩으로 박혀있었다.
생각.
그래서 건남이 머릿속으로 다트핀의 움직임을 생각하면 그것은 지시하는 방향으로 날아가거나, 멈추거나 했던 것이었다. 물론 수동으로도 움직임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근데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걸 굳이 수동 조작할 필요가 있을 까? 물아일체라는 단어는 이 행성에서는 놀라운 단어가 아니다. 장착하는데 비싸긴 하지만.
이걸 만든 사람이 명택이었다. 그러니 가난했던 건남이 이런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명택이 준 살상용 다트핀은 뭐가 다른가를 살펴본 건남은 흐뭇했다. 굉장한 걸 손에 얻은 기분 일 것이다. 그렇게 기뻐하며 건남은 라구나로 들어간다.
- 라구나 함정 안 -
보초를 서고 있는 명치대인은 졸려움을 참기 위해, 안경알이 없는 검은색 뿔테 안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눈을 찌른다.
" 안돼 잠들면! "
그의 혼잣말이 끝나며 건남이 들어왔다.
" 형! 어디 갔다 와! 말도 없이? "
벌떡 일어나는 명치대인에게 다트핀을 꺼내 드는 건남이었다.
" 이거 사러 갔었지. "
" 명택 노친네 만나고 왔군! 잘 지내셔? "
" 아직 정정하시더라. "
" 에휴~ 아무튼 형. 이거 누나가 형 오면 전해주래. "
근식이 주고 갔던 이상한 열쇠를 건남에게 넘긴다.
" 뭐야 이건? "
" 저도 모릅니다요? 대충 성우형이 근식이라는 사람 시켜서 가지고 왔는데, 짱고의 물건이라나 어쨌다나 몰래 빼왔다고 그러던데. 어떻게 쓰이는 물건 인지는 형이 알아봐야 하는 숙제인 듯. "
건남은 열쇠를 눈으로 뚫을 기세다. 열쇠를 움켜쥐고 빠르게 방으로 들어간다. 멀뚱히 건남을 바라보다 투덜거린다.
" 아니. 이래도 되는겨? 나 오늘 그래도 칼 맞은 사람인데 이렇게 막 굴려도 되는 거냐고... 보초는 빼 줘야지... "
" 야! 야 이년아!!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던가! "
건남이 들어오는 소리에 일어난 상희가 명치대인의 투덜거림을 들었다.
" 넵! 누님! 근무 잘 서겠습니다. "
" 잘해! 나 간디."
명치대인의 머리를 툭 치고 상희는 화장실로 향한다. 명치대인은 삐뚤어진 안경을 바로잡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날 끌어안는다.
젠장! 다해 방에서 잠이나 잘 걸...
" 히리야! 넌 내 맘 알지? 흑흑흑 "
알기는 개뿔! 놔. 놔! 징그러...
" 너 밖에 없다. 내 맘을 아는 건... "
에라이! 털 흐트러져! 비비지 마!
이것들이 다 다해를 닮아가나? 내가 제명에 못 죽지...
' 이야옹. 이야옹~ '
그러고 보니 내 주인은 뭐 하고 있으려나? 시대의 옥상녀가 되어버린 내 주인을 생각하며 명치대인이 흐트러 놓은 털을 난 그루밍한다.
나. 쁜. 놈.
다해는 시대의 옥상녀답게 옥상 위장막 안에서, 바주카포를 승규삼아 끌어안고는 잘 자고 있다. 물론, 자동 주시 모드로 망원경을 켜둔 채. 참고로 라구나 함정은 한 곳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빌딩 옥상을 옮겨 다니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재필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해는 23구역에 있는 빌딩 옥상을 한 번씩은 다 밟아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친다.
아~ 기발한 영감이 떠 올랐다. 다해를 모티브 삼아 소설이나 써 볼까? '옥상 타는 뇨자' 어때 잘 팔릴 것 같지 않나? 소설가 히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 이야옹~ '
- 어딘지 모를 사무실 -
" 짱고가 연락이 안 된다고? "
" 네. 브라더. "
시커먼 빛이 탁자를 감싸고 그곳에 앉아 싸늘히 말하는 두 사람. 딱 봐도 재필과 연관된 사람들이다.
" 아무래도 당한 것 같습니다. "
" 음... 소문이 장난이 아니었나 보군! "
" 네 232가 재필 보스를 잡는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
" 보스를? 크크크크크... 발칙한 녀석이군. "
" 현상범들에게는 악명이높더군요. "
" 그래? "
" 네. 브라더. "
아 ~ 진짜 느끼해 죽겠다. 지들이 악당이면 악당이지 분위기 잡는 목소리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화자만 아니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들의 이야기는 상희에 대한 이야기였다.
" 어떻게 보스에게 보고 드릴까요? "
" 뭐 그깟 사냥꾼 때문에... 크크크크 그냥 우리선에서 해결해! 피라미 녀석들이 설친다고 이 세상은 달라지지 않아. "
" 알겠습니다. 짱고 정도면 쉽게 해결할 줄 알았는데... "
" 트럼팟 보내... 정운이나... 아헤보내던가... 사진핑도 괜찮겠군... 소리 소문 없이 암살들 잘하니... "
" 뭐 그런 녀석들 보낼 필요 있을까요? 일급 암살범 쓸 필요가... "
" 전적으로 네가 알아서 처리해 최대한 조용히! "
" 알겠습니다 브라더! "
- 라구나 함정 안 -
짱고가 잡히고 3일이 지났다. 파우스가 잡히고 일주일이 넘은 시간이다. 날씨는 여름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가지루한 라구나를 더욱 지치게 만든다.
우리 옥상녀는? 살아 있는 게 용하다. 직사광선을 직격으로 맞으며 붉게 탄 얼굴에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었다. 아! 얼굴에만 바르는 게 아니다. 온몸에 바른다. 피부가 빛에 닿는 곳은 죄다 퍼 바른다.
날이 더워 입은 옷도 별로 없기에 바를 곳도많다. 얼굴, 팔과 손 허벅지서부터 발가락까지 깊게 파인 가슴부터 배까지. 구석구석 꼼꼼하게 바른다.
한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해가 옆으로 빈 통을 던지자 다 쓴 선크림 깡통이 수북이 쌓여있다.
" 히힝. 우리 남푠 나 살 탄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떠케... 힝. "
그래 너답다. 그래야 다해지. 쯧쯧.
상희는 넋이 나간 채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파리를 눈으로만 쫓고 있었다. 고성능 파리 잡는 가전제품도 사용하기 귀찮은 눈치다.
명치대인은 이어폰을 귀에 끼고, 음악을 크게 틀어 발재간을 부리며 간단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녀석도 아마 좀이 쑤실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춤을 추러 가야 직성이 풀리는데, 어디 나갈 수가 있어야지...
이놈아! 정신 사나워! 가만히 좀 있어라... 젭알!
건남은 무언가 계속 찾는 것 같다. 열쇠를 얻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잠자는 시간 빼고 저러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차를 마실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집요한 녀석! 내가 저렇게 공부를 했음. 난 아마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이야옹~ '
한참 자료를 찾던 건남이 이 분위기를 깨려나? 한마디 한다.
" 이거였군! "
멍한 눈의 상희가 더 멍하게 건남에게 묻는다.
" 뭐~ 가? "
" 열쇠에 대해서 이리저리 찾아봤는데... "
" 그런데? "
" 아무것도 안 나오는 거야. "
" 옵! 가라사대 빼고 이야기하시죠. "
들뜬 건남의 마음. 상희는 말 잘라버리는 데 선수다.
" 응. 용케 하나 찾았는데, 방법이 없네? "
" 아놔! 답답하게 시리. 뭐가? "
" 이거. 중세시대 물건이야! 갔다 팔아도 1500 크랑은 더 나올 걸. "
그래 역시 돈에 약한 상희였다. 저 허망한 눈망울에 힘이 들어가다니. 내 눈보다 더 반짝인다. 눈 뽑아다 팔면 열쇠 값 보다 더 받을 것 같았다.
" 뭐야! 1500 크랑! 흐흐흐. 영업 못한 거 여기서 퉁치면 되겠다. "
명치대인이 춤을 추다 지쳤는지 귀에서 이어폰을 뽑으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 휴~ 힘들다. 근데 누나 눈 왜 이렇게 말똥말똥해? "
건남과 상희가 힐끗 보고는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 어따가 팔아야 되는 물건인고? "
" 상희야 근데 이건 팔면 안 돼? "
" 왜? "
" 재필이 숨어 있는 곳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거든. "
" 옵. 우리 다른 방법으로 재필이 찾고 이건 내다 팔자! "
그래. 그래야 상희지.
" 아니 되옵니다. 캡틴! "
" 아~ 왜? 통장 잔고 다 떨어져 간다규! 괜스레 가지고 있다가 영원히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옵이 책임질겨? 명치대인 내 말이 맞아? 안 맞아? "
얼떨떨한 명치대인.
" 뭐가? "
" 야 이년아. 맞아 틀려? "
" 넵! 누나 말이 다 맞습니다. "
" 거봐! 내 말이 다 맞다고 하잖아! "
" 에휴~ 그래도 안돼! 캡틴! "
" 캡틴은 무슨... 이럴 때만 캡틴이야! 젠장. 미쳐블. "
" 이 열쇠 0구역과 관련이 있거든. "
" 0구역 이든 10000구역이든 안 팔 거면 옵. 벌금 20 크랑. "
" 그건 또 왜? "
" 내 맘에 안 들어! "
" 에혀! 맘대로 하세요. "
" 형! 0구역이면 금지 구역 이잖아요! 생물이 살 수 없는 구역! "
" 그렇지! 미지의 구역이지. 우선 산소가 없는 구역이니까. "
" 거기에 뭐가 있다는 거예요? "
" 연구 자료를 찾다가 겨우 하나 나왔는데. 이곳을 드나드는 무언가가 발견됐나 봐. 그리고 중세시대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에 대한 고증도 조금 나와 있어. 이 이야기가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그곳엔 비밀기지가 있다는 소린데. "
" 에이 형도 참! 그렇게 논리적인 사람이 갑자기 그런 걸 믿으세요? "
" 그래. 명치대인 말이 옳아! 내다 팔자! 흐흐흐. "
" 이봐요! 울 이쁜 코파는 아가씨. 혹시 알아 그곳에 더 큰 보물이라도 있을지? "
" 이봐요. 술고래 아저씨! 그런 말로 회유하지 마시죠... "
갑자기 이야기가 모험 판타지로 빠지네. 보물이라니.
" 아무튼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감 오는 거 없어? "
" 무슨 감이요? "
" 감은 무슨... 요점만 얘기하시죠 술고래 아저씨! "
" 숨어 지내기 딱 좋은 곳이잖아. 그 누구도 다가올 수 없는 곳이니... "
" 에이 형! 아무리 재필이라지만, 그곳은 들어갈 수가 없다고요. "
" 아무튼 1%의 확률이라도 있으니 더 알아보자고. "
" 아저씨 맘데루 하시고요. 벌금이나 차곡차곡 내세요. 칫. "
0구역이 어떤 곳이길래. 저 야단인지?
' 이야옹~'